2010년 12월 1일 수요일

솔직하게 산다는 것.

만약, 딸내미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솔직히 난 바로 찬성은 못하겠다.

물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 하겠지만

감수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말하는 것일까

차분히 얘기 할 것 같다.

아니, 어쩜 그 전에 다행히 대부분 중요한 핵심사안들을 공유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이라는 것,

결혼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산다는 것에 대해

 

뭔가 내가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마흔을 넘겨도 혼란스럽다.

마흔 언저리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 언젠가 작가 공지영이 한 출판회에서

이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사랑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준 것이 있는가,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난 사랑조차 가르쳐 줄 자신이 없다.

내가 아직도 사랑에 대해

생각으로 갖는 사랑과

내가 생각한 사랑과

현실과

건강한 사랑에 대해

많이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지상에서 발이 떨어져 있거나 너무 묶여 있거나

이러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딸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진 말기를.

사랑보다 자신을 더욱 온전히 느껴볼 기회는 없다는 것을

상처받아도 사랑은 값진 것이며 사랑을 통해 발전해 간다는 것은

꼭 알려주고 싶다.

 

모두 자기 안경으로, 자기 필터로 사랑을 느낀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은 비숫하리라.

 

사랑하고

사랑받고

소통하고

공감하고

그러므로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어린 것들,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까지

사랑으로 인간은 성장해 가는 것.

 

사십이 넘어도

사랑은 이렇게 푸른 빛으로

내 안에 너울 거린다.

 

요즘은

체온을 느끼며

촉감이 살아있는

그런 에너지장이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이제는 형이상학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온전히 사는 것이 아니다.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가슴이 얘기하는 대로 살고 싶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나누는 사랑.

존재 자체로 나누는 사랑.

 

그런 사랑이 아직 있다고 여기는 한

난 결코 늙지 않으리.

 

팔과 다리가 아니라

이젠 몸통으로 느끼고 싶다.

오늘 춤테라피를 하면서

팔과 다리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일했는데

정작 호흡의 중심인 몸통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땅에 발을 딛고

꼬리뼈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이어진 자신감의 축을 바로 세우고

나는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를 보호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리라.

 

내 몸을 사랑하지 않은 시간들은

온전히 내 이웃을 사랑한 시간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진정 인류와 함께 하는 길이라고 여기며

 

찬바람을 맞으며

안개숲을 지나며

나는 오늘도 춤을 추러 갔다 왔다.

 

나는 몸으로 맞짱을 뜨고 있다.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

2010년 10월 1일 금요일

장애청소년 미술 수업

발도로프 교육을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중에  언어치료소를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

8월부터 다시 내가 백조부인이 된 것을 아시고는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습식수채화 수업을 도와

달라고 하셨다.

원래 백수가 더 바쁜 것이지만 장애청소년( 특히 자폐나 지적장애인)을 만나본 경험은 전무하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늘 뭔가를 배우기만 하는 것 같아서 '배워서 남주자'라는 공유,연대의식으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습식수채화란 도화지를 물에 적셔서 삼원색(파,노,빨)으로 색의 섞임과 번짐, 농도의 차이를

미묘하게 느끼는 그런 수채화 방식이다.

아직 관련 논문이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격주 일요일에 가는 발도로프 교육에서 자주 해 온 것이다.

 

어제가 세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 아이가 (고2?) 화장실에 똥을 쌌다.  

통 없던 일인데 뭔가 아이에게 일이 있었거나 심리적인 충격이 있었거나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고등학교 4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들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게 잘 생겼다. 중학생 한 명은 키가 185에 몸무게가 90킬로 정도

나간다.

겉으로 보면 듬직하기도 하고 곱기도 하고 준수해 보이는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지적, 감성적 수준은 초등 저학년 정도이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다 확인해주고 가르쳐주기도 해야한다.

색을 칠하는 중간중간에도 잠깐씩 다른 곳에서 오는 텔레파시와 교신을 하기도 한다.

눈빛과 몸짓이 다른 세계에 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 이 아이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 나가서 생활을 할 것인가?

하는 자문이 문득문득 든다.

 

몸은 멀쩡한 성인수준으로 자라고 있고

또한 성적인 감성도 약간식 드러나고 있는 사춘기인데

인지와 정서가 초등학생 수준이 이 아이들이

부모님없이 창창한 앞날을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나...

 

한편에선 '쓸모, 효율, 가치' 라는 단어들이 머리속을 맴돌고

한편에선 '인간, 인권, 존재자체, 생명, 다양성'이라는 낱말들이 앞선 단어들과 충돌한다.

 

칠해놓은 색들이 참 곱고 예뻐서 칭찬을 해주면

조금 뒤에 기뻐한다. 은근히 기뻐하며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느리게 반응하지만.

함께 해주는 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사춘기 고등학생의 호기심인지 내 손을 슬며지 잡아본다.

눈물이 날 것 같고 맘이 아프기까지 하다.

'이렇게 똑같이 느끼고 있구나. 청소년이고 남자아이이고...'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고 몸을 느끼는 생명인데

이 속도빠른 첨단의 세상에

달팽이처럼 느린 이 아이들이 잘 적응해 살 수 있을까?

지금은 괜찮지만 세월의 힘으로 이 세상에 이 아이들을 두고 가야 할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나마 이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런 치료센터에 아주 어려서부터

다니고 또 다른 센터로 체육관으로 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의 장애아들은 얼마나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까 싶다.

 

그래서 여기 선생님은

독일의 '캠프힐' 같은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하신다.

작업장이 있어서 비누나, 빵, 기타 장애인들의 노동으로 가능한 생산품들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며 결혼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그런 삶의 공동체.

 

어마어마한 일이다.

땅이 필요하고 작업장이 필요하고 선생님들이 필요하고 학교가 필요하고.......

물론 문제는 '돈'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이 자폐아들은, 장애인들은 어디가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효율의 눈으로

속도의 잣대로

생산력의 크기로

측정해서는 안되는

인간이고 사람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안에 이미 오래전부터 박혀있던 효율과 속도와 생산력이라는 절대 기준들을

내가 붙잡고 있어서 그게 아니라고

내게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칠한 색깔들로

예쁜 옷이나 가방을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벌써 생각이 앞서 나가고 있다.

 

내게 생명과 겸손과 다양함, 존재자체의 경건함을 가르쳐 주는 시간들, 아이들에게

두손 모아 감사를....

 

 

 

 

2010년 9월 10일 금요일

사랑하면 춤을 춰라(뮤지컬)

어제 아주아주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사랑하면 춤을 춰라'

4만원하는 공연인데 가입해 있는 문화단체에서 1만원 할인티켓을 구해줬다.

요즘 춤에 feel이 꽂혀있는 나이기에

딸내미와 뮤지컬 배우가 꿈인 5학년 재혁이를 델꼬가려고 했다.

근데 학교카페에 올려서 여럿이 신청해서 함께 갔다.

 

중간에 '선정성'을 우려한 한 부모는 취소를 하고

어른 3, 아이들 5명이 폭우를 뚫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하지 않으면 어찌 갔으랴.

 

공연 내내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입을 다물줄 모르고

손을 걍 놔두지 않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비트에 맞춰 손뼉을 쳤다.

 

춤으로 구성된 뮤지컬이라 그런지

어쩜 그리 춤도 잘추고

몸매들도 좋던지.

거의 구경할 길 없는

남자들의 초콜릿 복근을 아주 실컷 봤다. 나름 아름다웠다.

얼마나 연습을 해서 저런 근육을 만들었을까나...

화려함속에 감춰진 연습의 고통도 슬쩍 엿보이기도 했거

비보이춤은 정말 멋졌다. 근데 근육통이나 골절이 우려되기도 했다. 인대 늘어나는 것도..

(걱정도 팔자)

 

여배우들은 젊고 섹시했다.

요즘들어 섹시하단 말이 거북하지 않다.

아름다운, 인간이 갖고 있는 또하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인데

지나친 것들이 천박한 것이나 외설적인 것으로 치우치게 만든 단어인 듯.

딸내미가 '와우  가슴이 엄청 크고 올라갔다' 했다. ㅎㅎㅎㅎ

요즘 우리 딸도 외모나 성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성형수술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조막만한 얼굴에 날씬한 허리에

내가 봐도 그런 풍만한 가슴은 타고난 복이던가, 과학의 힘이든가

뭐 그럴 것 같았다.

보기 좋았다. 건강해보였다.

인간의 모든 몸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뭔가 필요에 의해 기준을 만들어서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해서 문제이지

원래 다 아름다운 것 같고 나름 고유한 멋이 있다.

 

유머가 있는 공연이라 더 재미있었고

관객과 경계가 없이 스며드는 면이 있어

자연스러웠다.

 

열정의 몸짓, 탄생과 성장의 인생을 담은 내용

 

암튼

어른들도 가슴후련하게 뜨겁게 보고

아이들은 신나게 느꼈던

댄스뮤지컬이었다.

 

와우~~~~~

2010년 9월 1일 수요일

늦더위 물러가라~~

오랜만에 펜마우스를 들었다. 딸내미가 구미호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다.

근데 컴퓨터로 그리지 말고 종이에다 그리란다. 학교 가져가야 한다며.

어떤 모습인지 설명해 줬는데 그냥 흘려 들어서 기억이 안난다.

새벽에 일어났다.

구미호땜시?

아니 그냥 자주 그런다. 누군가 날 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요즘 나는 춤을 추고 싶다.

오랫동안 내 속에 스며든 것들을 털어내고 싶은 것 같다.

오랫동안 맞은 슬픔의 빗물일까나?

 

 

 

 

그리고 종이에 구미호를 그렸다.

내가 아끼는 굵은 심 샤프로 그렸는데 심이 많이 닳았다.

구미호 드라마를 잘 안봐서 검색을 했더니 나온 장면이다.

 

 

 

근데 아침에 보여줬더니 이게 아니란다.

설명할때 뭐 들었냐고 혼났다.

한복 곱게 차려입은 구미호인데 손톱하고 이빨만 드러나고 꼬리 아홉개가 드러나야 한단다.

바로 그려줬다.

마음이 풀린 듯 밥도 잘 먹고 갔다.

 

앞으로는 딸 말을 잘 경청해야지.

 

새벽에 저 구미호 그리느라 무서웠는데.. 잉잉잉

 

저거 보고 늦더위나 물리치시길~~~~~~ * ^^ *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11년된 벗, 세탁기 거름망을 청소하면서...

99년에 결혼했으니 이 세탁기도 벌써 11년이 되었다.

우리딸보다 1살 더 많다.

자취할때 제일 아쉬운 것이 바로 세탁기였다. 23살부터 자취했으니 7년동안은 손으로 빨고

근처 빨래방을 이용했다.

결혼하면서 번쩍 번쩍 10킬로 짜리 세탁기가 '마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며 내게 왔다.

 

요즘 들어 빨래를 하면 옷에서 약간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세탁기 돌려놓고 제 때 꺼내서 얼른 널지 않아서 그럴까나 싶어서

부지런을 떨어 보았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세탁기를 열어 먼지를 모아주는 거름망(?)을 보니 농축된 먼지덩어리가 회색빛을 띠며

곰팡이와 먼지가 결합된 안 좋은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먼지를 꺼내고 다 쓴 칫솔로 망을 긁어낸 뒤 향좋은 비누로 빨았다.

칫솔질을 하면서

'11년 결혼생활에서도 이렇게 찌들고 농축된 삶의 찌꺼기들이 있을 텐데....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찌든  오래된 찌꺼기들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남편은 이 거름망을 청소한 적이 있을까 싶었다.

빨래를 돌리기보다 더 힘든 게 널기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름망도 청소해줘야 한다.

갑자기 딸내미 다니는 학교에 집안의 각종 가전제품이나 생활제품 사용법을 배울 것을

건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 학교에는 복사기 사용 자격증 시험(1.2급) 스캐너 사용 자격증 시험 등이 있다.

이 참에 숙제로 '자기네집 세탁기 기종 알아오고 사용법 익히기, 빨래  5번 이상 하기.'

뭐 이런 과제를 내 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청소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단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하든 안하든 스스로의 삶을 알아서 꾸려갔으면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소홀하기 쉬운 게 일상생활, 집안일 부분이다.

발도로프 학교나 대안학교에서는 그래서 요리나 농사, 수공예(뜨게실, 바느질, 옷만들기,가방만들기..)

를 배운다. 목공도 하고(숟가락, 밥그릇, 책꽂이, 고학년때는 악기도 만든단다. 기타 같은 것을! 헉!)

살림과 지식이 잘 어우러지고 과학과 예술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다.

 

세탁기 거름망 청소를 하면서 든

내 짧은 생각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일기

딸내미 학교 근처로 이사와서

학교 학부모 한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낮에 서울 엄마네 가서 반찬과 먹을 거리를 받아왔다.

김서방 주라고 엄마는 반찬그릇에 곱게 담아서 주셨다.

이웃 학부모 부부는 맥주를 사 가지고 왔다.

밥을  차리는 동안 컴퓨터를 고쳐주었다.

컴퓨터가 더위를 먹었는지 어찌되었는 지 남편이 한 번 손을 봤는데도

다시 안된다.

 

정말 고마웠다.

몸체를 뜯어 내장까지 다 살펴봐줬다.

아직 내가 못하는 수준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영어교육을 비롯한 외국어 교육,

음악교육을 비롯한 예술교육에 대해

우리 학교의 상황을 돌아보는 얘기를 나눴다.

 

오후에 그 집 아들네미와 우리 딸과 나랑 공원에서 실컷 자전거를 탔기에

몇잔 안 먹었는데 거나해졌다.

 

그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고

딸내미에게 일기를 쓰자고 했다.

딸이 은근히 싫어하는 눈치였다.

일기장을 학교에 숙제로 냈다고 했다.

내가 다른 공책에 쓰라고 하면서

"이 다음에 네가 어른이 돼서 '아, 내가 3학년때 이런 생각을 했고, 이렇게 놀았구나

나는 이런 면이 있던 아이였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추억의 선물이 바로 일기야."

애기해줬다.

 

그랬더니 엄마는 쓰냐고 했다.

 

그래서 책방에 가서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책꽂이를 뒤지며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의 그림이 그려진 내 일기장을 기어이 찾았다.

8월 2일까지 썼다.

 

같이 일기를 썼다.

 

시도 썼다.

딸내미에게

오늘 자전거 탔던 기분이나

엄마가 탔던 모습을 시로 써보라고 했다.

 

야호~하고 두 팔을 하늘로 벌리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엄마

 

천하무적

우리엄마

하지만

바람, 공기

앞에선

한업시(없이)

약해짐니다

나도 나만의 자유를

느끼고 싶습니다.

 

라고 썼다.

 

잘썼다.

역시 우리딸이라고 칭찬해줬다.

그림도 잘그렸는뎅..ㅎㅎㅎㅎ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고

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오늘 개학날 학교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자전거를 타니 정말 행복하다.

산 밑이라 kt 밖에 들어오지 않아 인터넷  신청을 했더니

자전거를 선물로 줬다.

 

내 자전거가 되어서

저녁에 많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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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24

 

딸하고 일기를 함께 쓴다.
딸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도 그렸다.

 

며칠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

내가 가질 수 있는 지

가져도 되는지 또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묻고 있다, 답을 구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지못하고

이렇게 주저하고 의심하고 있다.

 

난 이사와서

예현이에게

밥을 해주고

예현이를 도서관에 보내고

예현이가 집에 오는 것을 맞이하고

예현이와 자전거를 탔다.

 

바람이 우리 머리칼을 빗겨주고

바람이 젖은 우리 몸을 말려주고

바람이 싱싱한 산소를 우리 폐로 불어 넣어 주고

나무가 녹색향기로 온 몸을 감싸준다.

 

우린 나무가 되었다

우린 호수가 되었다.

 

난 내가 꿈꾸던, 내가 바라던,

엄마가 된 것 같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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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에서

아프로티데에서

데미테르가 된 것일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 행복.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겠지.

다시 전사로  나서야 하겠지.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지난주 화요일 비를 맞으며 이사를 했다.

딸내미는 4박5일 지리산으로 캠프를 가고

손가락 수술을 받고 아직도 붕대를 감고 다니는 서방이 하루 휴가를 내서

드디어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왔던 이 곳,

결혼생활 11년을 보낸 인천의 북쪽을 떠나

딸내미 학교가 있는 남동쪽으로 옮겼다.

 

불타는 청춘의 사연과 활동이 새록새록 영사기 필름 돌아가듯

머리속을 스친다.

지역 거점, 주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낮고 깊게 지역주민속으로 스미고자 했던 시간들.

일점돌파.

한 곳에 역량을 총집중해서 모델을 만들고 모범으로 승화해서 다른 곳으로 전파하는

그 한 점. 그 한 곳.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공부방, 도서관, 복지시설, 단체들이 많이 형성되고

이제 드디어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정치인들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많은 것들이 움직이는 도심 한 복판에서 살다가

이젠 새소리가 나고 텃밭이 보이고 담장이 낮은 주택들이 있는

조용한 이 곳으로 이사를 오니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오직 딸내미가 학교를 걸어서 가게 되었다는 점.

인천대공원이 바로 옆이라

좁은 집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큰 정원을 갖게 되었다는 점.

청소년수련관이 있어

값싸게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빈약하지만 도서관도 드나들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이사 오면서 얻게 된 행복들이다.

 

새벽에 공원에 나가보니

노부부가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기도 했다.

보기 좋았다.

 

이사 오면서 남편은 떼어 놓고 오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걍 뒀다. ㅎㅎ

남편도 직장이 가까와져서 심리적 육체적 부담도 조금 준 것 같고.

남편에게 있다는 삼재의 기운이 이사로 좀 더 잘 풀려가길 내심 바라고 있다.

 

딸내미 3학년, 4학년,5학년,6학년.

3-4년은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살던 곳보다 작은 집으로 왔고

오래된 가구들을 버리고 와서 알맹이만 있는 셈이라

버리고 정리할 것들이 많다.

언제 이렇게 사들였는지 모르겠는데

버리려니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버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

그닥 많이 새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해본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 갈 것이며

어떤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를.

 

 

 

 

 

 

 

 

 

 

 

 

 

 

 

 

 

2010년 7월 28일 수요일

딸내미 가슴에 새싹이~~~~ *^^*

자꾸 웃음이 난다.

뭔지 모르게 내 가슴이 아련해지고 설레인다.

기쁘고 행복하다.

 

딸내미가 자꾸 젖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만져보니

아무래도 젖가슴이 나오려는 젖몸살인 것 같다.

 

아~~~~  우리딸이 드디어 여성으로 자라는 첫 발을 떼는 셈이다.

수중분만할 때 오랜 진통끝에 내 자궁에서 물컹하고 나와

그 새카만 머리카락이 물에 나풀나풀 거린채  수영하듯  둥둥 떠 있던 딸.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딸은 한 여성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어린아이에서 소녀에서 숙녀로...

 

가슴이 나오는 것에 대해 내 준비가 안되어서

잠시 당황스럽고 몰래 검색이나 책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맞이 할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는데

가슴이 먼저이지 하고 다시 느꼈다.

 

어린시절

그리고 보니 나는 4학년 때 가슴이 나왔던 것 같다.

5,6학년때는 어깨에 매는 가방이 부담스러웠다.

반에서 네 다섯번째로 컸던 나는

가방을 매면 유난히 더 봉긋나오는 가슴이 창피했다.

골목에 앉아 있는 동네 할아버지, 아저씨들의 시선을

내가 먼저 신경썼고

그럴때면 가방끈을 손으로 잡아 가슴이 헐렁해져 보이게 했다.

6학년때 짖궃은 남자아이들이  하나 둘 브래지어를 해가는 여자아이들을

뒤에서 브래지어를 잡아 당기는 장난을 칠 때가 종종 있었다.

근데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감히 못 건든다.ㅎㅎ

 

가슴이 나오는 것,

수밀도 같은 가슴이라는 시처럼

정말 복숭아처럼 어여쁜 가슴,

아이를 살리고 키우는 소중한 젖을 만드는 가슴

이 귀한 가슴에 대해

여성들은 우선 수치감, 불편함, 숨기고 싶은 것...같은

안좋은 감정, 부정적인 정서를 먼저 갖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들어서는 풍만한 가슴을 갖고 싶은 욕망을

남모르게 지니게도 된다 ㅎㅎㅎ : 이것은 또한 누구를 위한 것이냐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제는 사회도 조금 달라져서

생리나 가슴발육에 대해

환영해주고 기뻐해주는 분위기가 됐으리라 본다.

물론 살펴보아야겠지만

 

아침에 방학으로 늦잠을 자는 딸아이를 안아주며

"으음... 엄마는 정말 기뻐. 울딸한테 예쁜 가슴이 생기는게~~ 더 더 잘 지켜줘야겠네.

점점 아가씨가 되니까는."

 

 

2010년 7월 25일 일요일

에니어그램 첫 강의

작년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낯설고 물설은 강남으로 가서

에니어그램지도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강사자격을 통과했다.

 

어제 전체강의는 아니지만

노당자인성센터 은숙언니랑 같이

딸내미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기본과정 1단계 작업을 했다.

 

은숙언니가 학회 세미나때문에 3시에 나가야 해서

준비해 간 강의 내용외에 다른 내용 한가지를 내가 해야했다.

 

물론 잠깐 머리가 하얘졌다.

하지만 어쩌나 해야지.

그리고 담담히 진행했다.

 

진행하면서도 순간순간  내 성격유형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설문지형식이나 체크리스트로 단순하게 성격유형을 알고 있던 학부모와 교사들은

좀 더 깊은 내용과 설명으로 자기 유형에 접근해 갔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고

깊이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름 첫 강의를 무난하게 마쳤다.

강의후 난 다시 엄마들과 함께 한 학부모로 돌아와

뒷풀이를 했다.^^

 

서방이 데리러 왔다.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시간내서  강의 평가도 들어보면서

재검토를 해보지 뭐.

 

담주엔 재미교포 청소년들과 춤테라피를 한다.

언어의 장벽을 넘고 잘 할수 있을까 싶지만

비언어적 영역에서의 소통, 음악, 몸짓, 눈빛의 교감의 힘이

더 크리라 믿는다. 아자!

 

2007년 우연하게 만난 춤테라피.

폭발할 것 같은 감정과 심연에 고개를 쳐박았던 슬픔과 우울을

이 춤테라피를 통해 발산하고 쓰다듬어주었다.

 

그동안 이끌이어 해왔던 것들이

구슬꿰어지듯 뭔가 하나로 통합돼 가길 바라고 있다.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월드컵...

오늘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봤다.

요즈 내가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친구인 원장이 낮에 긴급회의를 하지 않았으면

사실 돌 맞을 일이지만 난 경기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리라.

원장의 말인 즉슨, 아이들 정신이 몽땅 축구에 가 있으니 아예 1시간만 공부하고

같이 시청하는 걸로 하자. 다른 학원처럼 아예 수업을 안하면 길거리에서 배회할 것이므로

학원에 묶어두자, 그리고 시청전에 막무가내식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겠다 였다.

뭐, 원장님 말씀 틀린 것 없어서 그닥 반대하지 않았다.

 

요즘 많이 더워 더욱 비지땀을 흘리는 서방이 일때문에 힘들다며 경기 앞두고 맥주랑 안주를 사오라고 해서  탈레탈레 슈퍼에 가서 맥주랑 과자를 좀 사서 왔다.

남편은 정말 진지하게 경기를 관전했다.

 

사실 난 별 관심은 크게 없고 질수도 있고 이길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골이 많이 들어가면서 그래도 한 골이라도 넣었으면 싶었다. 한가닥 기가 죽지 않게

청룡씨가 한 골을 넣어줘서  참 기뻤다. 정말 기뻤다. 그리고 자살골인 박주영 선수가 계속 염려되었다.

잘 모르지만 아르헨티나가 축구를 꽤나 잘하는 팀이니 동점이나 약간 차이로 져도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리이스전에서 너무 잘해서 기대를 했다고 한다.

나는 너무 큰 기대는 선수들 죽이는 거다. 하고 말했다.

 

학생시절 선배들에게 댓거리를 받으며 전두환과 독재권력의 3s정책에 대해 배웠다.(스크린,스포츠,섹스 일거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고 영화는 마음과는 달리 볼 수가 없었고 섹스는 꿈도 못꾸는(아마 이건 기독교적 사관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크게 작용) 사람으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시점부터 영화를 안보면 삶을 이해 못하는 문화문외인이 되었고 스포츠는 대중화되어 흘러갔고 섹스는 뭐 별 영향없이 그냥 섹시하다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게 들리게 되었다. 나름 매력있다로...^^

 

여하튼 당장 눈 앞에서 보면 몰라도 일일이 챙겨서 보게 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스포츠.

특히 월드컵은 효순이 미선이의 미군탱크 압사사건과 겹치면서 약간의 거부감도 있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 최전선에 있던 남편이 사실 스포츠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물어보니 화를 내며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내가 너무 우리 남편을 선배,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게 아직 분명하다.

이 꿈은, 허상은 언제나 깨지려나.

 

나는 오늘까지 이번 월드컵에서 제일 남는것은 '정대세의 눈물'이다

3년전 내가 일하던 어린이도서관 사업에서 민족교류사업으로 '재일민족학교 책보내기 사업'차

일본에 갔었다. 거기엔 소위 말하는 조총련계 조선학교들이 있었다. 국적이 북녘인 재일동포 아이들이 다니는 초, 중, 고등학교 였다. 영화 '우리학교'로 알려진 재일동포의 자치학교 이야기이다.

 

이 민족학교는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있었다. 같은 외국인 학교인 프랑스,미국 등의 학교에는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유독 북녘에 적을 둔 조선학교에는 지원금을 거의 주지 않고 미용학원, 기술학원 취급을 한다. 그래서 여기 졸업생들은 정규 학력이 인정이 안된다.

일본대학에 들어가려면 검정고시 같은 것을 다시 봐야한다.

 

일제강점하에 강제징요되어 끌려간 동포들이 제나라 말을 잊지 말자며 세운 학교인데

수 차례 일본정부의 해산 명령에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지만 김치를 팔고 장사한 재산 전부를 기증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세운 학교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통학버스 이름이 어머니 차, 아버지 차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적 자부심 하나로 지켜온 학교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북쪽도 남쪽도, 게다가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으로만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은

짐작할 수 없을만큼 큰것이리.

 

내가 시범 수업을 했던 학교도 한 학년에 많게는 8, 적게는 5명 정도 였다. 그나마 유치원이 많았다.

나는 유치원을 맡아  우리말 수업을 했는데 유치원생들은 일본말을 한다. 초등학교 이상 학생들도 집에선 일본말을 더 많이 한다.

 

보이는 차별고 보이지 않는 차별속에서 재일조선동포의 아이들은 자란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몰아치기도 하고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테러로도

온다. 그 속에서 자란다.

 

민족학교가 북한에 기반한 것은 전후 그나마 북쪽이 잘 살았을 시기 (60,70년대정도) 엄청난 교육비 지원을 재일 조선학교에 한 것이다. 가보니 조국의 돌이라면서 지구과학시간에 해당할 수업에 쓰라고 북녘의 돌들을 종류별로 보냈고 식물표본도 보내고 책과 교육자료를 보냈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북쪽에서 그들을 챙겼던 것이다. 역사의 피해자이자 민족의 구성원이고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기에. 남쪽은 반공때문인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북쪽과 남쪽이 모두 조선이라는 조국이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조국.

 

정대세의 눈물엔 그 조국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재일동포들의 민족학교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아이들을 한 판 이길 수 있는것은

바로 축구인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족학교의 축구 열풍은 실로 대단하다.

 

아마 정대세도 그 속에서 자란 것 같다. 아버지는 한국적, 어머니는 북한적, 본인은.....

 

이 복잡한 자기정체성과 월드컵.

 

그 안에 켜켜이 담겨있는 사연과 설움과 눈물.

 

그것이 그날 그의 눈물이리라.

 

역사의 아픔은 오늘 2010년 푸른 청춘의 날랜 청년의 눈에서 정말 뜨거운, 멈출수 없는 눈물을

뿜어내게 하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 아니 이 지구상에 억압과, 강점과, 살육과 전쟁의 아픔을 드리우지 않았으면 싶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야만의 굴레. 아무리 고고한 사람도 그저 한 동물로 사라지는 무악한 인간의 욕망.

 

나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정대세의 눈물을 봤고 그래서 나도 그냥 울었다.

 

3년전 갔던 그 학교 아이들, 그리고 일본과의 축구로 들떠 있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속에서 자라났을 정대세를 생각하고 그저 울음이 계속 났다. 그것도 학원에서....^^

 

잘했다.

모두 잘했다.

 

그나마 이 축구라는 것이 권투같이 누굴 모질게 패서(때로는 죽도록) 이기는 야만의 경기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경기는 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싫어할 사람도 많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다.

 

축구처럼 팀플레이와 운, 응원, 같이 통합적인 전랴과 전술이 어우러진 인간활동의 총제적인 움직임이 있거나 개인의 극도의 훈련을 통해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던가, 여하튼 그런게 스포츠였으면 싶다.

 

승패를 떠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을 줄 아는 우리 관람자들의 자세도 정말 중요하다.

 

그냥 맥주 두 잔에 드는 생각이당.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예현이와 그림그리고 글쓰고 놀기

지난주 토요일 예현이와 슈타이너 교육예술연구소에서 홈스쿨링하는 가족과 만나
활동을 했다. 동시와 그림을 그렸다. 

 

예현이가 그린 강아지새끼 낳는 장면과 쓴 동시

 

강아지의 탄생

 

개가 새끼를 낳았다.

비닐처럼 생긴걸 감고

나왔다. 귀엽고 좀

징그럽다. 비닐을 뚫고

엄마 젖을 쪽쪽

 

정말 귀엽다.

 

 

사자개라고 별명 붙여준 중국개 치아우.

 

사자개 치아우

 

도원역에서 내리면

스프레이 휘황찬란한 고물상 벽화를 만나요.

그 담장을 지나면

황토빛 자투리 공원에 남도에서나 만날법한

유채꽃이 웃고 있지요.

 

파란 대문, 분홍 창문, 파스텔빛 예쁜 쪽방들을 거쳐

아예 담조차 없는 철사그물 얼기설기 엮어 세운

한겨울 찬바람 정통으로 맞을 것같은  아주 시원한 집을 만나요.

 

그 집을 돌면 살색 벽돌 큰교회와 학교가 보이고

왼쪽엔 손바닥만한 공원이 있지요.

나무로 만든 아담한 정자에서

잠시 쉬고 가고파 앉았지요.

 

뭔 이유가 있어 공원바닥에 깔았겠지만

우레탄 깔판이 벌건 해에 잔뜩 달궈져

매캐한 냄새를  쾍쾍 내뿜고 있어요.

에잉, 그냥 가자며 무릎을 세워 길을 나서지요.

 

공원을 조금 벗어나면

바로 그 개를 만나지요

사자개, 치아우!

 

맨처음 그 개를 만났을 때

도대체 저 동물이  진짜 개가 맞는지,

곰인가, 사자인가, 아님 극고도 비만견인가?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 맞아요.

 

다섯살짜리 단발머리 꼬마 아이가

자기보다 두어배 큰 그 개에게

뭐라고 야단을 칩니다.

다시 귀쫑긋이 들어보니

그 개이름이었어요.

 

"꼬마야, 얘 이름 뭐야?"

"치아우"

"응?"

"치아우"

"아하, 치아우. 어디나라 개야?"

"중국"

"응........ 치아우. 진짜 중국개이름이다. 난 사자인가 곰인가 했다."

 

중국개라 만두를 많이 먹어 그리 큰 걸까요?

치아우는 혓바닥이 까매요. 아주 까매요.

한참 쳐다보고 쓰다듬다가

다시 길을 나섰지요.

가다가 돌아보니 치아우가 묶여 있는 그 집 간판이 보이네요.

'운동화 세탁소'

 

갑자기 슬픔과 걱정이

먹물처럼 가슴에 번져왔어요.

혹시 집에 벌레있는지 정기검사 오는

아주머니가 짜놓고 간

싱크대 밑 치약같은 바퀴벌레약을

자주 핥아먹은

죽은 우리 토돌이.

 

.

.

.

.

.

 

 

혹시,

치아우

독한 빨래세제

너무 많이 핥아먹어서

혀가 그렇게

까만건 아닐까? 

2010년 5월 4일 화요일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토요일 오후 시아버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뭔 마음이 생겨서인지 퇴근할 서방을 모시러 회사까지 갔다.

고기가 먹고 싶다더니 집에 남은 삼겹살을 확인하고

오징어를 넣어서 오삼불고기를 해먹자고 딸내미를 꼬셨다.

오징어는 육류를 안먹는 나를 위한 배려차원이었으리라 짐작하지만

같이 넣고 요리하는데 별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요부분은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은 요리를 하겠으니 두 딸내미(서방은 딸과 나를 이렇게 부른다)가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오란다.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아버지처럼 얘기하니 우리도 딸처럼 그냥 순순히 심부름을 갔다.

물통 5개를 가지고 거의 어둑어둑할 무렵에는 처음으로 뒷산 약수터를 갔다.

속으로 뭔 이런 서방이 다 있나, 어두운데 여자 둘을, 그것도 산으로 내보내는 무심한 아버지, 남편..

하면서도 저녁무렵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딸과 다정하게 약수터에 도착했다.

다행히 순진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 둘이 있어서 좀 안심했지만

그들도 청년인지라 한편으론 불안했다.

 

왜이리 서두가 길까나 내 글은....ㅎㅎ

 

돌아오는 길에

딸내미가 내게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여신중에 아테나같다고 했다.

속으로 ' 나 그리스로마신화 잘 모르는데....' 하면서도 아는 척했다 .

"아테네가 어떤 여신이더라?" 하며 알고 있지만 다시 묻는 척 질문을 던졌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라나 뭐라나...

이어서 딸내미 학교 친구들 엄마들을 얘기하며 각각 어떤 여신 닮았냐고 물었다.

딸은 엄마들과 여신들을 조합해주면서 이유를 설명해줬다.

와우, 딸의 이 문학적 감성.

내심 기뻤다.

물론 만화로 섭렵한 그리스로마신화이지만

신화를 읽고 사람의 유형을 느끼고 분류하고 실제 사람들과 짝지을 수 있다니...

 

얼마전 책모임 함께 하는 엄마가 내게

자기는 아르테미스 유형이고 나는 아프로디테 유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그 책은 읽지 못했는데.

 

딸이 느끼는 나 (아테나)와

주변 엄마들이 느끼는 나 (아프로디테)는

어떤 차이일까나?

 

그리스로마 신화는(만화로 일단 봐야지) 나중에 보고

일단 궁금함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근데 요 내용으론 여신의 특징이 잘 안온다.

아무래도 책을 읽어봐야지.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여신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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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주요신들

 

<여신들>

 

▶ 가이아 - 카오스에서 나온 최초의 신.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와 결혼해 티탄 족을 낳았다.


▶ 레아(로마/오프스) -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난 딸. 크로노스와 결혼해 올림포스 신족 6남매, 즉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를 낳았다.


▶ 데메테르(로마/케레스) - 대지의 여신이자 곡식의 신. 제우스와의 사이에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 헤라(로마/유노, 주노) - 가정과 결혼의 신. 제우스의 아내

 

▶ 헤스티아(로마/베스타) - 화로와 신전의 신.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원한 처녀 신. 처음엔 12주신에 들었으나 나중에 디오니소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 아테나(로마/미네르바) - 지혜와 공예·전쟁의 신. 어머니 메티스가 제우스에게 잡아먹히는 바람에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 아르테미스(로마/디아나) - 사냥과 달의 신. 제우스와 여신 레토 사이에서 아폴론과 쌍둥이 남매로 태어났다.


▶ 아프로디테(로마/베누스) - 사랑과 미의 여신.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제우스와 바다의 정령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

 

<남신들>

 

▶ 우라노스 - 최초의 하늘 신.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

 

▶ 크로노스(로마/사트르누스) - 티탄 신족의 막내로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신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레아와 결혼하여 올림포스 신족을 낳았다.


▶ 제우스(로마/유피테르) - 올림포스의 최고신. 번개와 천둥의 신. 여러 여신·여성들과 관계를 맺어 많은 자식을 두었다.


▶ 포세이돈(로마/넵투누스) - 바다의 신. 제우스의 형제. 여신 암피트리테와 결혼하였다.


▶ 하데스(로마/플루토) - 저승의 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다.


▶ 아폴론(아폴로, 로마/메르쿠리우스) - 태양의 신이자 입법자 · 궁수 · 예술 ․ 예언의 신. 아르테미스의 동생.


▶ 헤르메스(로마/메르쿠리우스, 머큐리) - 신들의 전령이자 여행자 · 무역 · 상업 · 도둑 ․ 통신의 신. 제우스와 여신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 아레스(로마/마르스) - 전쟁의 신.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이라고도 한다.


▶ 헤파이스토스(로마/불카누스) - 대장간의 신. 헤라가 아비 없이 낳은 아들로서 절름발이다. 아프로디테의 남편


▶ 디오니소스(로마/바쿠스) - 술과 황홀경의 신.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레사이에서 태어났다. 헤스티아 대신 나중에 12주신에 들었다.

 

※ 올림포스 12신은 헤스티아,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아테나,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등을 가리키는데 헤스티아는 기원전 5세기경 디오니소스가 올림포스 신으로 추앙되면서 12신에서 탈락되었다. 저승의 신 하데스(플루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지하 세계에 살았으므로 올림포스 12신에서 제외된다. 제우스Zeus라는 이름은 ‘상공(上空)의 빛’을 뜻하는 인도유럽어 ‘디오스’에서 온 것이고, 주피터Jupiter란 이름도 ‘디우스’와 아버지를 뜻하는 ‘파테르pater’를 결합한 것으로서 결국 아버지 제우스라는 뜻이다. 헤라Hera는 영웅을 뜻하는 ‘히어로Hero’의 여성 형이다. 서양에서 6월은 결혼의 계절이고 6월을 준Jun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혼의 여신 주노Juno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봄과 죽음소식들

4월 들어 지인들의 가족들 소천소식이 끊임없이 있다.

 

산천은 겨울잠을 깨고 싹이 돋는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데

 

한 편에선 죽음이라고 하는 생명정지의 기운이 또한 있다.

 

예전에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착하고 바르고 최선을 다해 살면

 

천국과 지옥문 앞에서 하나님이든 관계자들이 죄값을 측정해서 갈 곳을 정해준다고 믿었고

 

다행히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죽기전에 그를 영접하면 천국으로 간다는

 

좀 불공평한 듯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배려라고 미루어 생각하는

 

아주 얕지만 소박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나님 눈에 거스르지 않게

 

혹시나 생각으로라도 죄를 지을까봐

 

엄청 조심하고 기도하고 단속하고 성경을 보고

 

선하고 자애로운 신앙의 선배들과 목회자들을 존경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이들의 선함, 밝음, 고매함, 우아함 면들만 우선 보았고

 

나 자신 스스로도 내 안의 그런 면들만 바라보고 데리고 살아왔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내가 외면했던 내 안의 갖가지 욕망들, 욕심, 유치하다고 여겨왔던 감정들을 발견하면서

 

그것 또한 나 자신이며 내가 데리고 살아갈 것이고 관리해야 할 것이며 바라봐줘야 할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순백의 신앙인이란 겉만 보아선 알 수 없고

 

순백의 신앙인이란 가능한 것일까 싶다.

 

선과 악, 아름다운과 추함을 모두 다 가진 부족한 인간이, 부족해서 인간인 인간이

 

그저 부단하게 노력해 가며 깨지고 깨달아가면서 성숙해가는  것같다.

 

짧은 직장생활을 통해 만난 성직자들의 다른 면, 신앙인들의 또 다른 면을 통해

 

머리속 관념과 이상주의로 나에게도 제대로 없는 면을 그들에게 너무 많이, 절대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인간적으로 애쓰며 살아갈 뿐. 성찰하며 살아갈 뿐.

 

 

요즘 드는 생각은

 

하느님은 '삶 - 죽음 - 지옥과 천국 중 한가지로 간다'

 

이런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존재의 주기를 갖고 계시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궤변일까나?

 

오히려 이 생에서 여러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고

 

다음 생에서 다시 더 성숙해가고

 

이런 과정이 더욱 성숙한 인간, 성장해 가는 생명체로서의 모습일것 같다.

 

그런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불행한 사고만 아니라면 죽음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천지개벽의  불행만은 아닐 것 같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느닷없는 죽음,

 

살아있는 동안 나누지 못했던, 주지 못했던 사랑, 따스한 말 한마디,

 

못하고 맘에 안든다고 다그치기보다 '너 자체로 소중해'하고  존재를 사랑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더욱 슬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리라.

 

그저 바라기는 어디에선가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면 그 인연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지기를.

 

이왕이면 못했던 것들 아쉬웠던 것들 그때 다시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

 

갑자기 떠오르는 말들.

 

' 내 엄마로 있어줘서 고마워.'

 

' 내 딸로 내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너 때문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단다.'

 

'메마른 삶에 널 만나 내가 누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벚꽃이

 

'파하 ! , 푸하~' 하고 웃는 듯

 

팝콘처럼 터져서 몽글몽글 가지에 달려 있는

 

이 봄.

 

생명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연결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인생이 조금 여유로와지는 느낌이다.  

 

 

 

산과 들,

 

꽃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소풍가시는 모든 분들께

 

작별의 인사를 고개숙여 드립니다.

 

분홍빛 곱디 고운 벚꽃 바람도 함께 보냅니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 * * * * * *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소리의 본질

슈타이너교육예술연구소에서 공부한 내용이다.

자음 'ㄹ'이 갖는 본질이 있단다. 모든 소리, 모든 것에는 본질이 있단다.

소리의 본질을 느껴볼만한 외국시를 보면서

다들 한 두편씩 우리 한글 'ㄹ'의 본질을 담은 동시나 시를 지어보았다.

생명이 움터오르는 봄날, 마찬가지로 활발한 생명력을 가진 어린아이들.

봄과 함께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가 돼 보았다.

 

 

'ㄹ'의 본질 ( r, l의 본질)

 

r : 인간이 주위의 생명을 흡수한다.       /  ㅣ: 우리를 중력에 반하여 끌어올린다.

 

 

 

I am the rider of the wind,

 

The stirrer of the storm;

 

The hurricane I left behind

 

Is yet with lightning warm

 

                                                                     -  Byron

 

봄과 나

 

아지랑이 아른아른

봄볕받아 룰루랄라

일어나서 춤을추네

 

개나리는 노릇노릇

진달래는 불긋불긋

산머리가 울긋불긋

 

봄바람이 살랑살랑

흰나비는 팔랑팔랑

내마음은 울렁울렁

 

놀라워라 봄날아침

아름다운 꽃의 함성

바둑이도 딸랑딸랑

 

손가락이 오물꼬물

발가락이 옴질꼼질

내온몸도 무럭무럭

 

                                                - 괜찮아 ^^ -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요한씨 때문에 또 살아지네요 ~~ ^^

<378호> 기대가 있는 곳에 실망이 있다


“물속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들은 물속에 있는 물체가 빛의 굴절 때문에 커 보이는 줄도 모르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만큼 클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보고는 너무나 작아 놀란다. 그때에는 자기 이외엔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다.”

- 고대 로마 문인, 루키아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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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늘 실망이 함께 합니다. 왜 그럴까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삶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베풀면 상대방도 나에게 잘 해줄 것이라는, 자신의 자식만큼은 아프지 않고 건강할 것이라는, 자신의 배우자는 기대만큼 자신을 잘 보살펴줄 것이라는, 자신이 놀러가는 날은 응당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등등의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이 뒤따랐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상대나 상황이 우리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준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충족되지 않는 기대가 실망과 고통을 준 것일까요?      


어부들이 바다에 나갈 때 아내들은 전송파티를 열지 않습니다. 대신 엄숙한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바랄 뿐입니다. 그들은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파티가 아니라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당연한 마음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파티를 엽니다.


우리의 기대가 클수록 실망과 고통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기대를 내려놓을 수는 없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높은 기대만큼은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휴가 가는 날에 비가 올 수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싫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삶에 큰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불확실성으로 인해 더 최선을 기하게 되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라도 실망에 빠져있기보다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당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 화가 났다면, 그것은 그 사람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기대 때문일까요?
 


- 2010. 4. 14.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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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전 우선 기대하는(아니 기대가 저절로 되는) 편이지요.

정말 기대만큼 실망도 큰 것이지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죠.

하지만 이런 심리적 구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면 실망의 덫에서 괴로워하겠죠.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거나 실망이 와도

'이건 내가 걸어놓은 주문이야' 하며 다른 사람 탓을 할 경우가 점점 줄어들겠죠.

이게 성숙해진 것일 것임.

 

속상하고 화가나고 복잡할때 한번씩 내게 내가 물어봐야겠어요.

 

기대가 컸니?

정말 다른 사람들 때문이니?

내가 그런 것 아닐까나?.......

 

여러 기억이 떠오르며 엉킨 실마리들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입니다.

한 번 해보세요^^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삶의 성장을 위해

살다보면

삶의 변화, 도전과 시도를 위해

잠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하고 좋은 시간들을

줄이거나 비워놔야 할 경우도 있다.

 

격려하고 축복하고 응원해야 할 일이다. 마땅히

그런데 

아직 주지 못한 사랑,

아직 나누지 못한 따스함

아직 까르르 함께 웃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안타까와

가슴 한 켠에서

서걱서걱

마른 모래가 밟히는 것 같고

노오란 봄빛 아래인데도

서늘한 가을 바람이

스산히 분다.

 

마음 한 가운데에 있는

옹달샘을

몸 밖으로 드러낸 것 같다.

이제는 누구의 것이 아닌냥

이제는 나의 것도 아닌냥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되길 바라는 냥

 

충만함의 옹달샘은

슬픈 눈물의 우물이 된 것이려나.

 

톡하고  건드리면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

 

친구가 이사가게 되어서

내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슬픔을 참고 삼키는

아홉살짜리

계집아이처럼

상고머리

볼 빨간 계집아이처럼

 

마음이 그렇다.

 

이적의 '다행이다'를 들으며

사막처럼

메말라가는

내 가슴을 축이고 있다.

 

아홉살 소녀에게 노래를 불러줘야겠다

 

'작 은 토 끼 야 들 어 와 편 히 쉬 어 라'

 

인생길에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계곡도 있고 능선도 있고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고

아주 멀리 떠날 수도 있고

지겹도록 붙어 있을 수도 있고 ....

 

하지만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고

성장하는 삶을 바라고 기원한다면

진짜 사랑하는 것이리라.

 

누군가 선물같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인생에서

참 행복한 기억이자 소중한 진짜 선물이다.

 

 

 

2010년 4월 3일 토요일

펌) 어느 어머니의 말씀 - 가슴으로 읽는 글

 

어느 어머니의 말씀


아들아!

결혼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면
네가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면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하는 맘이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않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네 생일 여태까지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무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겠느냐.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 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희 어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 걸
너희도 좀 이해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마라.
너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마라.
날 나쁜 시어미로 몰지 마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2010년 4월 2일 금요일

딸내미의 영어숙제

3학년이 되자 학교에서 딸내미가 영어수업을 받기시작했다.

cd가 달린 노래, 역할놀이, 단어가 나오는 교재와 역시 cd가 달린 유명한 동화작가의 영어동화책.

 

언젠가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려고 미리 봐뒀던 엄마표 영어지도서들과,

이것을 실제로 먹고 사는 일로 연결하고 싶어서 주 1회씩  한달간인가

집에서 하는 영어공부방 프렌차이즈 연수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반년인가 열기도 했었다.

 

동네가 좀 가난한 편이었고

처음으로 선거에 선배들이 나가면서 홍보파트쪽을 지원하기로 해서 접었다.

그때 만들어 놓은 영어단어들과 교구들이 아직 좀 남아 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상.....)

 

드디어 사랑하는 딸이 어쩔 수 없는 인정해야 하는 현시대의  세계공통어 위상을 가진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좀 설렌다.

내가 생각하고 미흡하나마 준비하기도 했던 영어를 아이와 진짜 함께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수학문제 푸는 것 보다가

가슴에서 욱! 하고 뭔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 물 한잔 마셨던 기억이 난다.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고 공부에 관여한다는 것은 엄청난 득도의 경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식탁에서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보고

( 딸내미에게 엄마도 숙제해야 한다고 했다. 안그러면 본인이

텔레비젼 보는 것과 똑같이 취급을 한다. 그럼 난 화가 난다. 억울해서. 난 게임도 거의 전혀 안하는데...^^)

 

딸은 숙제를 했다. 우선 수학 숙제.

나눗셈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눗셈의 개념을 이해했는 지 알아보기 위한 주관식 문제가 여러개 반복적으로 나왔다.

'몫'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서.

교과서이기에 답안지를 볼 수 없어 내가 대답한 것이 맞았는지, 그 문제가 원하는 정확한 답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나눗셈에 대해 몇가지 예를 들었다. 나는 예를 들어야 이해가 되는 스타일이라....

그랬더니 딸도 예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답으로 적기 시작했다.

그냥 뒀다.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데...답이 원하는 것은 뭔지 모르겠다. 나중에 살짝 어디다 물어봐야지.

 

그 다음은 영어숙제.

노래로 부르는 영어 단어들이다.

팝콘, 소다팝, 피자, 케잌의 단어를 이용해서 '더 달라고 하기'도 하고 '여기 있다고 대답하기'도 하는 내용이다.

 

딸아이는 이 노래를 10가지 버전으로 나름 여러가지 춤을 추며 불렀다.

그 때마다 나는 박수를 쳐야 했다. 엄연한 공연이므로..........

본인이 공연을 시작하겠다고 사회를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난 버전, 슬픈 버전, 도도한 버전, 노예취급을 하는 버전, 수줍은버전....기억은 다 안난다.

약간 비슷비슷하게 표현해서.

 

덩달아 나도 그 노래를 다 외우다시피 됐다.

 

내가 아는 그 어떤 학습방법보다 뛰어난 방법을 우리 딸은 알고 있었다.

시각, 청각, 촉각, 동작, 역할, 감성까지.........ㅎㅎㅎㅎㅎ

 

재밌다.

괜찮은 방법이다. 근데 분량이 많아지면 영어숙제하다가

걍 잠들 것 같다. 힘들어서.

 

나름 연예인이 되겠다는 강한 소망을 가진 딸은

드라마도 예사로 안본다.

모니터링 하면서 본다.

230짜리 신발을 신기 시작한 딸은

서울 이모에게 얻은 230짜리 뾰족 구두를

아침 등교때 아빠차로 들고 나간다.

 

왜냐고?

 

연예인은 뾰족구두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집에 올 때 차에서 운동화를 뾰족구두로 갈아신고

아파트 입구부터 집까지 온다.

훈련하고 있다. 우리딸.

 

내 피가 많이 흐르는 것일까나....... ^^  ^^   ^^

 

2010년 3월 29일 월요일

죽음과 죽어감.






딸내미 학교 엄마들과 하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나눴다.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를 공부하고 있는 한 엄마가 앞풀이로

촛불을 켜고 죽음과 관련된 것 중 표현하고 싶거나 말하고 싶은 것들을

종이에 적어 보라고 했다.

음악이 흐르고 촛불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공기에 스며드는 듯한 빛을 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들,

얕은 한 숨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어찌됐던 죽음과 관련된 사연들이 하나 둘씩 가슴으로 머리로 몸으로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았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 죽을 수 있게 해주는 환경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해 보는 자리였다.

 

   나는  죽음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 메리(교통사고로 죽은 내 강아지), 삼촌, 외할머니, 예수님, 1학년때 아이 낳다가 돌아가신 담임, 이모, 아빠, 5.18 희생자, 이철규열사, 김귀정열사, 강경대열사, 우리 조카 준호, 과로로 돌아가신  선배 두 분, 그리고 내 친구 정훈이.

 

정훈이가 떠올랐다. 아빠나 이모 얘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기에...

정훈이에게 편지를 썼다.

정훈이는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골수암을 얻어 일찍 지구별을 떠났다. 5년전에....

 

....................................................................

 

정훈이에게

 

참, 좋구나 이런 시간, 촛불, 음악.....

마음속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생기는 듯,

큰 나무그늘 밑 빈 벤치가 있어 그리로 가서 앉은 듯.

 

죽음이란 말을 떠올리면 네가 빠지지 않는구나.

그래도 다른 어떤 동기들보다도 잘 통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어느날 네가 그렇게 가 버려서

아니, 그렇게 아팠던 널 그렇게 가게 내버려둬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미안하구 미안하다.

 

하나의 행사처럼 널 보내고 그냥 그냥 그렇게 네가 마치 살아있는 듯 그렇게 살다가

네 기일이 되면 널 생각하게 되는구나.

 

나비,

흰 나비를 보면 너라고 생각해.

네가 재가 되어 항아리에 담기던 그 날,

흰 나비를 봤어.

네가 나비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네가 아주 안좋은 낯빛으로 꿈에 나타났을 때

예감이 안좋았지면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 피일 만나러 갈 일을 미뤘었지.

나중에 네 엄마한테

네가 우리들을 그리 보고 싶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미안해 꺼이꺼이 울었다.

 

외롭게 보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게 미안해서

꿈속에도 나타났던

우리들을 기다렸던

널 생각하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 보고싶은 사람들,

바쁘다거나 이러저러해서 못보는 일은

절대 않겠다고 결심했어.

 

네가 뉴질랜드로 떠날때도

네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해.

 

봄이 온다.

산수유가 노랗게 다섯손가락을 쫙 핀 듯 피었어.

곧 흰나비들도 날아다니겠지.

 

또 보자. 친구야.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이런 마음으로 남은 삶을....


“달라이 라마는 30분 동안 가만히 그 여성 환자의 맥을 짚고 있었다. 마치 이상한 색깔의 새가 날개를 접고 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맥을 짚는다는 단 한 가지 일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지금까지 수천 명의 환자의 맥을 짚어 왔지만, 진실로 맥을 짚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 칼 사이몬튼의 <마음의 의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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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수행을 마친 승려가 스승의 암자에 도착합니다. 승려의 얼굴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모두 깨달았다는 자신감과 희열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문을 열고 스승의 거처로 들어선 승려는 스승에게 예를 올리고, 어떤 질문을 해도 모두 대답할 수 있다는 자신에 찬 자세로 앉았습니다. “딱 하나만 묻겠다.” 나지막한 스승의 말에 승려가 대답합니다. “네. 스승님!” 스승이 다시 묻습니다. “들어올 때 꽃이 문간에 세워둔 우산 오른쪽에 있더냐? 왼쪽에 있더냐?” 입도 벙긋할 수 없던 승려는 그대로 물러나 다시 3년의 수행을 시작합니다.


 


언젠가 선배 정신과의사가 진행하는 집단 상담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선배는 다양한 수준의 여러 참가자들의 마음에 일일이 공감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상담을 잘 이끌어 갔습니다. 마치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매끄럽게 이끌어내어 훌륭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상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었었던 선배의 마음가짐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선배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나는 상담할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만일 이 분들이 상담 끝나고 집에 가다가 운 나쁘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당장 돌아가시게 생겼다고 해봅시다. 나는 그 때에도 이 분들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시간을 다른 데가 아닌 바로 상담하는데 보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러니 집중할수밖에요."  지금도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한번씩 그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곧추 세워봅니다.      


 


어쩌면 깨달음과 완전함이란 멀리 있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과 대상에 마음을 온전히 기울일 때 일상에 깃드는 것이 아닐까요?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자랑

나를 아껴주시는 분이 노트북을 선물해줬다.

이런 전자제품을 선물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엄청 부담스러우리만큼 고맙지만 실감도가 떨어진다

아직 이런 값나가는  전자제품을 인터넷으로 사본적이 없는 나이기에.....\\

 

딸아이가 얼마냐고 물어봤는데 몰라서 검색해보니

헉 내 한달 월급의 3/5 이다.

 

왕부담스럽고 뭔가 생각해주셔서 사주신만큼 보답해야 하는데 .......

필이 꽂히면 그림을 그리자!!


날 아신지 얼마 안되어도 나를 알고 계신걸까?

 

나는 그 누구에겐가 그 사람을 들여다볼 마음과 눈이 있었나 돌아보게 된다.

지음이라고 하나?

내 마음을 담은 그 음을 읽어주는 사람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해줄 사람, 친구, 스승, 동료가 있다는 것은 복이며 선물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사람만의 아름다움과 달란트를 읽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일까, 관계일까?

 

내 마음을 담은 진정한 글이든 그림이든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다.

 

고마워요. 선배님, 언니 !!

 

나의 지음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이야기로 들려주는 제주도의 바람, 화산 현상....

슈타이너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풍화작용과 화산,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을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해

얘기나눴다. 9살 전 아이들에게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과학과 자연현상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얘기이다. 그러다가 9살 10살때  아이들이 또하나의 루비콘 강(성장을 위해 건너가는 강을 의미하는듯)을 건너면 과학적인 물리학적인 설명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습삼아 하나씩 써오는 숙제를 했다. 재밌었다. 시간이 없어 더 많이 고민하지는 못했지만.

우선 교사가 먼저 느끼고 즐거워해야 아이들에게도 그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들의 상상력과 기운을 함께 끌어 올린다고 한다. 잠자는 아이들의 영혼을 두드리기도 해야 한단다.. 재밌다. 이 공부..

 

 

 

제주도에 왜 바람이 많은 줄 아세요?


 한라아줌마와 보름이 이야기


오늘도 보름(바람의 제주말) 이는 열심히 미끄럼을 열심히 탑니다.

한라아줌마의 어깨와 등, 머리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한라아줌마는 마음이 넓고 몸도 튼튼해서 보름이가 아무리 오르락내리락 해도 가만히 두십니다.

맛있는 자장면 냄새를 물씬 풍기며 주로 겨울에 놀러오는 북쪽이, 남태평양에서 들르는 성질 사나운 태풍이, 여름에 북쪽이랑 엄청나게 물싸움을 하는 오츠크기단이가 아무리 험하게 놀아도 별 야단을 안 치십니다.

그래서 동서남북 사방팔방의 바람친구들이 놀러옵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옛날에 그렇게 놀러왔다가 아예 살게 되셨다네요.

그래서 이 곳은 바람으로 이름난 섬이지요.


해님이 환하게 웃는 아침이면 우리들은 따스해진 한라아줌마 머리쪽으로 마구마구 달려 올라갑니다.

이 계곡 저 계곡에서 자고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올라갑니다.

어른들도 함께 가지요. 온 힘을 모아서 올라갑니다.

해님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면 추워져서 서둘러 서둘러 내려온답니다.

모두들 얼른얼른 집으로 돌아가지요.

이게 바로 우리들의 <곡풍이 산풍이> 놀이랍니다.

계곡에서 올라가고 산위에서 내려오는 우리들의 바람놀이.

 

그런데 한라아줌마에겐 비밀이 있답니다.

맘씨 좋은 아줌마도 아주 가끔씩은 엄청나게 화를 내신답니다.

그 이유는 어른들끼리만 기해서 잘은 모르겠어요.

하여튼 할머니가 들려주셨는데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대요.


한라아줌마는 너무 화가 나면 머리에서 연기가 마구마구 피어오르고 온 몸이 붉게 변할 정도로 열이 난대요.

그러다 울컥하고 아주아주 뜨겁고 시뻘건 물을 토하신대요.

그 뜨거운 물이 온통 사방으로 퍼지고 바닷속까지도 들어간대요.

놀란 바닷물이 얼른 식혀줘서 다행이었지만 바닷물도 정말 뜨거워서 한동안 자기도 뜨듯하대요.

바닷물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이쪽저쪽, 요기조기 제몸으로 쓰다듬고 덮어주고 어루만져 준대요.

지금도 산방산 아래쪽 바위는 물결모양이 그대로 있어요.

덥석 잡은 자리엔 바닷물 손가락 자국도 숭숭 남아 있고요.

그리고 우리 할머니랑 할아버지, 동네분들이랑 바다 건너 놀러오던 어른들이 한참동안 부채질을 해서 열기를 식혀줬대요.

건너마을 조각가바람 아저씨는 바닷물들이 애썼다며 용머리 모양의 바위를 만들어 선물했대요.


지난 주에 엄마랑 산방산에 놀러갔어요.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도는데 바위에 물결모양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마치 우리가 물속을 다니는 것 같았어요.

엄마랑 나랑 이 바위 저 바위를 만지며 신나게 돌아다녔지요.

놀러온 사람들 머리카락도 빗겨주고 잠바도 들춰보며 철썩거리는 파도도 올라타보고요


곡풍이  산풍이 놀이도 좋지만 

산방산 바위따라돌기도 참 재밌어요.

웅크리고 있는 바위들을 간지럽이고 아주 심심할 때 찰싹찰싹 때리고 도망치는 재미가 아주 그만이랍니다.

다음번엔 친구들이랑 와야겠어요.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딸과 함께 숨결과 손결을 나눴던 시간들....

수채화. 나도 좀 놀랐다.잘 그리는 듯

나랑 같이 만든 그림책.

 

 

 

제일 맘에 드는 사진. 색깔과 분위가가 멋지다.

쉐도우드로잉.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아직도 3장은 가방속에서 색깔옷을 기다리고 있다.

나팔꽃 사진을 보고 그리고 있다. 그럴듯한 작품이 나올듯...

제주도 여행 갔던 일을 그리고 있다.

딸내미 수중분만하던 일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직도 7분의 3정도 남았다.ㅎㅎ

물의 여행이라는 책을 만들고 있다. 수증기, 비, 눈, 구름이 되는 물의 상태변화를 담은 과학책...

사실 아이보다 나 자신이 참 즐거웠다. 그림그리기. 색칠하기..후후후

아니 언제 머리 속이 이렇게 비었다. 아이쿠...ㅎㅎ

 

 

지난 겨울 그림책 만들기하러 같이 다녔던 마지막 활동

우리 다시 만나서 그림그리고 놀아야 하는뎅....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기

어제 예현이 학교 엄마들과 하는 책모임에서

'생각의 탄생'을 읽고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과학교육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얘기나눴다.

 

새로 들어온 엄마 두 명이 함께 했는데

각자 살아온 삶에 대해 짧게 나눴다.

아이를 넷 낳고 두 명을 학교에 보내게 된 엄마는

대안학교에 와서 본인도 안정을 좀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이 의사인데 요구 많은 시댁식구들과의 한 집 살림에서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마음이 짠했다.

 

나머지 엄마는 중학교까지 양궁선수였는데

고등학교때부터 공부를 해서 영어선생님이 되었다고 한다.

양궁의 집중력과 목적의식적인 사고방식이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일중심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 책모임 주제는 ' 죽음'으로 하자고 했다.

 

다들 마흔을 앞두거나 한 두해 넘긴 나이이기에

'죽음'이란 주제를

생활하면서, 혹은 갑작스런 사건으로 맞닥뜨린 경험들이 있었다.

나 또한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절박함에 매어 있기도 했다.

 

보고 싶었지만 바쁘다고 못  본 사람들을 만났고

안 보면 정말 후회 할 것 같은 사람들,

자주 보지만 가깝기에 사랑한다는 말과 느낌을 잘 전하지 못하는 가족과 형제,자매들에게도

적지만 눈길과 마음을 보냈다.

아직 미처 다 전하지 못했지만 ...

 

내 삶의 출발이었던 엄마.

엄마에겐 지난 달 월급의 일부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돈을 드렸다.

엄청 좋아하셨다.

내마음에서  물기가 배나오는 것 같았다.

진작 드릴 걸......그래도 한 번은 꼭 드리는 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작년에 종이상자를 하나 샀다.

혹시 내가 죽게 되거든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해왔던 생각,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 마음을 남기도 싶었다.

느닷없이 사라지더라도

내 마음은 정갈하게 남기고 가고 싶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의 사랑을 따스한 도시락처럼

예쁘게 싸서 전해주고 싶었다.

 

안에 무엇을 넣을 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이제 겨우 두 권의 일기장을 넣기로 결정했다. ㅎㅎ

 

내가 했던 생각,

내가 썼던 글(블로그, 원고, 팜플릿. 유인물..)

내가 그렸던 그림,

내가 만들었던 조형물들,

내 악기들,

내가 아꼈던 옷들, 장신구

 

그리고 내 몸의 정리.

 

생각보다

정갈한 마무리 준비는 간단치 않다.

 

하지만

마음은 가을바람처럼 맑아지고, 가벼워지고, 넉넉해지기까지 한다.

미움이 깃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고

서운했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고마워할 수 있고

가까워서 쓴맛까지 함께 맛봐야 하는 가족들에게는

엎드려 곱게 절하고 싶은 그런 깊은 고마움마저 느낀다.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내 딸이 되어줘서 고마워....

내 남편이 사느라 애썼어,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애쓰고 열심히 사느라 수고 많았어. 사랑하는 나야......

 

 

소풍이라 인생을 노래했던 시인처럼 

고맙다며 작별했던 신부처럼

 

나도

내 안에 흐르는

따스한 그 마음

그대로 전하고 웃으며 마무리 하고 싶다.

 

이 생에 맺었던 모든 인연들에 대해 깊은 절을 올리고

따스한 포옹을 나누고 싶다.

 

얼른 종이상자에 담을 품목을 정하고

 

늘 이런 마음으로

 

넓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사랑하며 살아야지....그래, 그래,

 

 

2010년 3월 1일 월요일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화를 위한 교육

지지난달 1월에 딸내미와 그림책 만들기 작업을 일주일간 다녔다.

그 다음주에 직장을 나가게 되었다.

이 그림책 작업이 평일에 함께 한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이 때 슈타이너 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발도로프 학교를 만들기 위한 교사공부 3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작년엔 니체를 알게 되어 고정관념과 관습에 대한 발차기와 대들기, 꼬치꼬치 따져 묻기를 약간 배웠고 그 시원함에 가슴후련했는데

올해엔 슈타이너를 만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화를 함께 일궈가는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슈타이너....

책도 무지무지 많이 썼다. 이걸 언제 다 공부하나...

이 사람, 아니 이 분 천재인것 같다.

원래 자연과학자였다는데 음악, 미술, 조형, 건축, 동작(오이리트미).. 안 다룬 과목이 없다. 게다가 농사와 천문학까지.

슈타이너는 세계 인지학을 이끌어 온 학자이고 몸소 발도르프 학교를 만들어 운영했다.

 

언제 이 많은 것을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실험하고 스스로 현실에 적용해보았을까나.

어떤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한번 꼭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ㅎㅎ.(돌아가셨지만)

 

요즈음은 뭔가 내가 공부해가고 있고 관심있는 것들이 한 줄로 구슬꿰어지듯 엮어지고 통하는 느낌이다.

 

'통하였느냐?'  ^^

 

토론을 위해 읽고 있는 책들은 번역의 문제인지, 문화적 차이때문인지 내용을 반밖에 이해하지 못하겠고 그것도 정확하게 아니라 감으로 이해하고 있다.

 

공부 모임을 이끄시는 김광선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아들을 홈스쿨링 시키셨다.

마흔살 되신 사모님을  독일로  발도르프 교사 공부를 보내시고 말이다.

(사모님은 6년 후에 돌아오셔서 오이리트미라는 동작수업을 대안학교인 과천 자유학교에서 하고 계신다)

 

대단한 남성분이다. 여성성이 많으신 분이신 것 같다.

(속으로 엄청 부러웠다. 남편이 이렇게 자기 부인을 지원하고 전망을 함께 고민해 주는 사례는

우리 나라에서는 흔치 않기때문이리라. ......한 마디로 '아이구 부러워라'이다. 형편이 되셨겠지. 뭐^^)

 

실핏줄이 타들어가고 간이 곶감처럼 오그라드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이주에 한 번씩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몸과 마음과 영혼에 대해서,

교육과 예술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시를 운율에 맞춰 낭독하면서 다야한  몸짓으로 형상화 하는 오이리트미(오이: 아름다운, 리트미:리듬, 춤 == 독일어) 를 하고

흙을 만지며 빚으며, 물감과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나는 살 것 같은 느낌과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내 속의 아이가 행복하다고 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는 듯해서

삶의 대한 통찰의 힘이 자라고  

내 영혼에 기름을 부어져

윤기 있고 촉촉해지는 느낌이다.

 

오이리트미 끝나고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를

과천 자유학교 8학년(16살 ==== 발도르프 학교는  12학년제이다) 남자, 여자 아이들이

그렇게 이쁠수가 없다고 하셨다. 뽀야니 피어난 꽃들 같다고.

(아마 이도령, 성춘향 나이가 되어서 그렇겠지. 자연의 이치인 게야. 가장 꽃피는 나이?)

 

그러나 길가를 다녑보거나 아침 출근시간에 만나는 고딩들을 보면

삶아놓은 시금치같고, 시든 쪽파 같이

다들 힘이 없고 화가 나 있고 .... 대체로 그렇다.

 

입시의 무게, 대학진학을 위해 닭장에서 길러지는 닭처럼

항생제에 성장촉진제에 사료를 먹으며 사육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가장 눈부시게 꽃피울 나이에

몸과 마음과 영혼이 짓눌려져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도 그리 자유롭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점점 물러날 곳이 없이 절벽으로 낭떠러지로 몰리는 것 같다.

 

꼭 배운다는 것은 그리 고통스러운 것이어야 될까?

인내와 끈기는 필요하지만

억눌리고 마구 쫓기고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듯한 교육방식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얼마전 핀란드에 다녀오신 노장 선생님이

그 동안 선생님이 추구해 오신 교육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더 갖게 되셨고

실제 교육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다고 마음 먹으시고

교육부장을 자처하셨다는 얘길 들었다.

 

이상적이라고 했던 교육이 한 국가 차원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고 오신 노장 선생님의

앞으로 남은 생애가 어떠할 지 충분히 가늠하게 된다.

 

교육과 예술,

상상력과 창조,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

스토리가 있는 과학.

 

못할 것도 없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행복하다.

삶의 눈 한 개가 열리는 것 같아서.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왜, 어쩔래!

딸을 재우다가 잠들었다.

 

잠이 깨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속을 휘돌고

 

결국 이럴바에야 일어나자 하고 일어나

 

머리맡에 놓여있는 옛일기장 연도별로 정리하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메일과 블로그를 체크하고 있다가

 

또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100미터 달리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장거리 마라톤. ^^

 

직장인들이 금묘일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몇 등으로 들어오든 역시나 결승점에 도달하고 나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내 뱉고 살 것 같은 휴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온 신경과 몸의 세포가 움켜진 주먹같은 긴장을 풀고

 

잠시 멍하니 그냥 있어도 되기 때문이리라.

 

주말에도 일하고 주중에 하루 쉬는 남편이 토요일, 일요일 쉬는 나보고

 

좋겠다고 했다. 마음이 쬐금 아팠다.

 

손가락 끝이 독하디 독한 세탁세제로 벗겨지고 해졌다.

 

몸무게도 5킬로인가 줄었다. (하지만 아직 적정 체중까지는 약 20킬로는 빼야한다)

 

남에 집에 맡겨둔 딸을 찾아 서방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데 차 안에서 딸내미는 역시나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남편에게 실핏줄이 타들어가고 간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역시나 대답은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일단 참고 경력 쌓는 셈치고 견뎌보라고 했다.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그래. 맞다. 그래서 견디고 있다. 근데 힘들다. 그래서 하소연했다.

 

내가 말했다.

 

현실적인 경제적 문제로 취업은 했지만 이 일은 나랑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내가 잘하고 즐거워하고 할수록 더 잘하고 재밌고

 

열정이 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그냥 그렇다고. 이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남편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열린 창인 것처럼,

 

나는 남편에게 마라톤 뛰고 난 내 가뿐 숨을 내뱉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인 것을 아는 이발사처럼 나는

 

남편이라는 대나무 밭에서의 임금님의 비밀을 고함을 친 것이다.

 

그냥, 여기까지면 됐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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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조금 천천히

그래, 이 현실에서 수천만번 점멸하는 내 자신을 그대로 느껴보자. 만나보자, 바라보자.

그래, 내 무의식의 패턴도 들여다보자.

 

그러나, 날  너무 몰아부치지는 말자.

 

애쓴다고, 긴장하지 말라고, 너무 애닳아 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부딪쳐 보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속삭여주자. 내가 나에게.

 

이 새벽마다의 시간이 육체적으로는 힘들게 할 지라도

내 영혼의 긴장을 풀어주고

내 정신의 공간에 가습기 같은 생명의 물기를 주는

그런 시간인 것 같다.

 

아마 이렇게 계속 일어나는 것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내게 차 한 잔 마시는

 

그런 여유를, 대나무 밭을, 밭은 숨쉬기를 할 수 있게

 

내 내면의 내가

 

나를 인도하는 것이리라.

 

고마워. 나의 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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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든, 말을 하든, 생각이 나든 순간순간 떠오르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 그림그리고 싶다.

 

춤추고 싶다. 온 몸을, 사지를 새처럼 펼치고 학의 모가지 처럼 늘이는 멈추기도 하고

 

뛰어오르고 수초처럼 너울거리는 영혼의 춤을 추고 싶다.

 

피리든, 해금이든, 악기의 선율에 긴 머리카락이 오선지 처럼 펼쳐져

어느새 나도 음표가 되어, 가락이 되어 너울 거리고 싶다.

 

아, 나는 정말 공상가, 망상가, 이상주의자인가?

이 비난이 내 한 쪽에서 올라온다.

 

책도 실컷 읽고 싶다.

 

몰라 몰라, 그래그래, 이게 나야, 전부 나야. 왜, 어쩔래!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딸의 독립.

딸내미를  대안학교로 옮기면서

그리고, 학교 끝나고 하는 방과후 교실이랑, 배우고 싶다고 시작한 피아노랑,

또 배우고 싶다고 하는 춤교실이랑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굵직하게 자리잡으면서

'아, 이게 생활이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이구나' 싶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취직도 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학자금융자를 1%로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대학원 진학도 염두에 (많이 !) 두고 걍 눈 딱감고 취업했는데

 

애초 계획한 것들을 거의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 끝나면 (무조건 칼퇴근해서리..) 딸아이와 놀아주거나 그림그리기, 숙제도 좀 봐주기

딸내미 일찍 재우고 새벽에 일어나서 진학을 위한  공부하기.

 

하지만 칼퇴근은  마음뿐,  칼이 무뎌서 잘 잘라지질 않고, 쥐었다 놓았다 하기만 억수..

 

퇴근해서도 아이 찾고 집에 오면 저녁 먹이고 해서 벌써 8시가 훌쩍 넘는다.

눈에 밟히거나 처리해야 할 집안일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뒤 엉키면서

10시가 넘게 되네.

그럼 아이는 잠을 재워야 한다.

 

요즘 딸내미는 독립을 위해 자기방에서 혼자 자는 연습에 들어갔다.

은근히 혼자 자는 것을 소외된다고 느끼는 것 같은 발언과 행동을 하면서

나름 자기자신에게 언니가 되는 과정이라며 받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잠재우는 과정도 침대에 누우라고 하고 불을 끄고

책상 전등만 킨 채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전형적인 잠재우기 엄마의 모습 ^^ 약간 뿌듯~~)

도서관 할 때 참석했던 세미나에서 얻은 세계 민담집(엄청 두껍다)을 두 세편씩 읽어준다

(사실 목 아프다. 하지만 내용이 재미있고 신선하기도 해서 다행이다.)

이래도 안 자면  등을 토닥이며 노래를 불러준다. 자장가.

그리고 다 잠이 들면 방을 나온다.

 

연습 초반 시기엔 가끔 새벽에 날 불렀다. 자기 방에서.

잠결에 못 들을 수도 있는데(당연하지 않은가? 울컥!)

딸내미는  날 부르다가 부르다가 점점 소리가 커지고

내가 알아채고 달려가 보면 화가 나 있다.

(내가 무슨 대기조이냐?)

달래느라 안아주고 노래해주고.....

 

독립시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처음 며칠간은 아니, 지금도

내가 은근 걱정돼서 새벽에 일어나 딸방으로 가 보았다.

이불을 걷어 차서 감기 들까 걱정도 되고

안 자고 울고 있지 않을까 상상도 되고 (어려서 내가 좀 이러기도 한 듯 ^^)

 

사실은 내가 허전해서, 9년 동안 내 왼쪽 오른쪽에서 품고 잤던 딸내미가 없는

허전함이, 웬지 모를 미안함이 새벽에 나를 그 방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딸아이 저쪽 방으로 보내고

서방이랑 달랑 둘이 이불에 있는데

이것도 웬지 낯선 시추에이션. ^^

 

숨죽이고 눈치 살피며 번개같은 신속하게

본론중심, 핵심중심의 사랑을 가뭄에 콩나듯 나눴던 지난 세월이었는데

막상 둘이 있게 되었는데 웬지 서먹하고 내 뉴우런의 촉수들은

딸을 향해, 딸 방을 향해 미역줄기 처럼 하늘 거리고 따라가고 있다.

 

딸의 독립에 내가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설 연휴 마지막날

가족회의를 진행하는 딸아이를 보며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젖을 만지는 딸아이를 보면

아직도 애기구나 싶다.

 

3학년, 4학년, 늦으면 5학년

 

아마 이 이, 삼년의 시간이

딸내미가 나를 찾는, 내 품을 원하는 그런 시간일 것 같다.

또한 내가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면 그것을 마치는 양의 시간이기도 하다.

 

콩나물에 물 주듯 매일 매일 아이에게 쏟아부어줘야 할 관심과 사랑. 그것을 싣고 가는 시간.

그리고 내 인생.

 

그 왼 발, 오른 발 줄타기를 잘 해내야 할텐데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일에, 밥벌이 일만으로도  허겁지겁 대고 있다.

 

딸도 크고

나도 크고 있다.

 

나도 독립을 배우고 있다.

 

삶의 맞바람을 받으면서

서방의 등 뒤에 있지 않고 (좀 있어봤으면 좋겠다 ㅎㅎ)

오늘을 걷고 있다.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는 열정과 느낌, 소망과 여러 이야기들...

 

그것은 어떻게 펼쳐야 할 지, 다시 냉동 보관해야 할 지, 그냥 비둘기처럼 날려 버려야 할 지.

 

주경효독의 자세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새벽에 펼쳐야 할 지.

 

암튼..

암튼...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나, 막걸리와 나.

막걸리 한 병하고 한 잔을 더 마시고

나는 목과 볼이 벌개졌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30분 점심밥시간 빼고 나면

난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이를 찾아 집에 빠르게 오면 7시 40분 정도

 

딸아이는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겠다고 하고

나는 딸아이  저녁밥 준비를 한다.

 

파김치같은 몸과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은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하다.

 

그런데 왜 이런 걸까?

 

난 의식적으로는 술을 싫어한다.

술은 내 인생에 고통이란 이름으로 체크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마, 무의식이 술을 찾고 있다.

익숙한 것일까?

몸에 배인것일까?

얼마전 딸아이에게

엄마 간이 너무 쪼그라져 있어서

막걸리 먹으면서 사알살 펴고 싶어

하며 막걸리 한 병을 샀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다.

간이 쪼그라들고

실핏줄이 타는 느낌이 바로

긴박한 직장의 느낌이다.

 

왜 이럴까,나는

왜 이럴까, 나는

 

오늘 딸내미를 찾아 오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태어난서

강한 충격이 있었던 3살부터

철들어 가던 10살까지

약  7년간

나는

어린 나는

불안과 공포와 체념, 무기력함과 외로움이

오래오래

가랑비처럼

점점 점점

내 몸에

내 땀구멍을 통해 온몸으로

내 머리위의 머리카락 뿌리를 통해 뇌로

스며 들고 있었던 것 같다.

 

3살부터....

 

여름이면

장마철이면

노점에서 과일을 팔던 엄마는 옥수수를 삶아 함께 팔았다.

그러면 어느 날

어느 비오는 날

아버지는 술이 잔뜩 취해서 와서 엄마의 그 옥수수 통을 발로 차서

길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그리고 줄무늬 초록빛 수박도 발로 차서

버얼건 속이 터진 머리통처럼 드러나게 했다.

 

나는 여름이면 그런 모습을 자주 봐야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네.

 

난 옥수수를 봐도

수박을 봐도

그리고 비를 봐도

그 생각이

그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병든 것일까?

아니, 난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나마, 교회와 그리고 캔디를 닮고 싶었던 귀엽고 야무진 내가, 내가 있어서.

 

하지만

그 슬픔은 내 가슴에, 내 몸에 남아있다.

 

지금,

무의식의 때에

그리고 다시 그 두려움과 불안이 옛 기억을 두드리며 쳐 댈때

나는 그 느낌과 공포로 몸이 긴장하고 움츠러 드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알고 느끼고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된 것이다.

 

눈물이 잠깐 났다.

그 때의 두려움과 불안의 감성이

아직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이리라

 

계속 녹고 있다.

계속 녹아 흐르고 있다.

그 당시의 슬픔이

 

나는  보고 다시 느끼고

 

그리고 떠나보내고 있다.

 

커가고 있다.

 

슬프고 가여운 어린 시절의 나를

어른인 내가

아주 훌륭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구나 하고 떠나보내고 있다.

 

그래.

그래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새벽에 서류와 책을 보다가

10.02.08  05:30

 

내 머리속에 폴더를 만든다.

만들고 싶진 않다.

무수한 폴더가 있기에.

또 무슨 폴더냐고 누군가, 어디에선가 뭐라고 해대고 있다. 초자아?

 

그런데 맘과 생각이 복잡하고 불편해서 만들어야겠다.

이 고요한 시간, 나를 느끼고 내게 올라오는 것들을

그리고 쓰고 싶은데

나는 잠자고 있는 딸 옆에서

정부지침서 400쪽 짜리를 읽고 있다.

 

전체적인 파악이 안되면 ,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완전한 이해가 아닐지라도)

이리 답답하고 불안할까?

내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라 더 그러하겠지. 누군가 피해자가 생길까봐, 책임질 일이 생길까봐?

 

지침서를 읽으면서도 '왜?' '무슨 목적이지?"

하는 의문이 든다.

새로 생성되는 폴더에는 전체뼈대와 내용이 담긴 매뉴얼이 들어가고

이를 토대로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지도map를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폴더는 설 다음부터는 회사에서만 열어 볼 것이다.

집에서는

하고싶은 공부와

딸과의 시간을 (서방도 가능하면....)

보내야지.

 

그림을 같이 그리기로 했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다.

 

회사 적응기라서.

딸이 문자로 '엄마 일 잘해, 사랑해, 홧팅' 하고 보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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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10  05:00

 

아들러.

애쓰고 산 사람이구나. 열등감을 승화시켰구나.

 음악을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좋아했다니

약간 멋도 아는 심리학자였으려나.

산책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지.

그래.... 갑작스런 죽음을 준비해야돼......

 

유언준비

그리고 삶을 좀 정갈하게... 공간도 좀 정갈하게..

살아보니 그닥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잖아.

옷장 가득한 옷.

낡아서 그렇지 아직 10년이상 입을 만하고

내가 갖고 있는 악기 : 해금, 피리, 기타, 하모니카,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오카리나, 전자피아노, 수선맡길 바이올린,

많네, 인생을 즐길만한 것도.

 

그래 준비해놓자.

사랑했다고. 모두들.

 

공부하다가  이게 웬 진중함 ^^

 

왜 이리 새벽에 일어날까?

적정량의 고요함과 들여다보기의 내면의 잔에 채워져야 하는 걸까?

 

2010년 2월 4일 목요일

나 안아주기



유학파 요리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도시 식당 주방은 요리사들이 서열 싸움을 벌이는
살벌한 전쟁터랍니다.
국자로 뒤통수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건 약과고
뜨거운 기름에 침을 뱉어 일부러 튀게 하거나
도마질을 할 때 실수인척 툭 쳐서
손가락을 썰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네요;;
주방장에겐 ‘예스, 셰프’ ‘땡큐, 셰프’만을 외쳐야 하고
동료들과는 약육강식에 가까운 서열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서이겠지요..
30대 초반에 세계적인 요리사의 수제자가 된 한국의 한 젊은이는
셰프가 된 후 자신의 주방에서 금지하는 일 중 하나가
자신에게 질책받은 요리사를 동료들이 위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네요.
강해야만 살아남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의 경험칙이 더없이 착잡하고 좁게 느껴집니다.

살다보면,
사격장 안전수칙처럼 꼭 필요한 통제도 있겠지요.
문제는 20만큼의 통제만 필요한데
습관적으로 50이상의 통제를 요구하면서
불필요한 억압과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방이 전쟁터 같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 수 있다는 식의 지레짐작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미리 포기한 적이 있다면,
괜한 짓 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진보적인 요리사의 말처럼 만든 사람의 마음이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좋은 요리가 나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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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날아오는 정신과의사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이다.

여러 정신과의사들 중 여자라서 그런 것 아닌 것 같고

이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이 내 코드에 맞는 것 같다.

 

어떨결에 직장에 다니게 되니 순간순간 많은 생각과 느낌이 지나간다.

바빠서 그것을 간단하게라도 적을 시간이 없지만.....

 

사람, 일과 노동, 효율, 책임, 인생..

 

많은 단어들이 회오리바람처럼 휙 왔다가 휙 사라진다.

 

나 끝까지 외치고 싶은 것일까,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앞 글의 끝부분처럼

 

결국 사랑이, 긍정적 수용과 격려, 다양성의 인정과 장점의 발견과 계발이

 

회오리같은 단어들이 답이지 않을까.

 

왜 자꾸 답을 찾는 것일까.

 

칼끝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갑다고 느껴지는 현실에서

 

아파하거나 추워하고 있나?

 

괜찮아, 괜찮아. 사랑해. 사랑해.

 

2010년 2월 2일 화요일

사람을 믿는다는 것...

어제 일하시는  요양사 아주머니들(이하 여사님들) 두 분과 인천구치소에 다녀왔다.

 

젊은 시절 선후배 시국사건으로 인한 빵바라지(책과 기타 필요 물품을 수감자에게 넣어주는 면회 접견의

 

 속어 정도? ^^),   혹은 항의시위를 하러 온 적은 있지만

 

이런 묘한 일로 오기는 처음이다.

 

사연인즉슨, 간질과 장애가 있는 두 대상자에게 돌봄서비스를 해오시던 두 요양사 여사님들이

 

어떤 사건인지는 잘 몰라도 두 대상자가 사건에 연루되어 구치소로 가게 되자

 

돌봄서비스와 각종수발을 구치소로 가서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돌봄서비스는 대상자가 있는 가운데 제공되어야 하는데

 

대상자들이 구치소에 갔는데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느냐며 결제(서비스 제공후 전산시스템으로 결제를 한

 

다)를 한 여사님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도 사회복지관련자들도 여사님들의 구치소 수발 사실을 믿지 않았다. 병원가서 약도 타다 주고

 

없는 집에 가서 집도 치워 주고 한 사실들을 쉽게 믿지 않았다.

 

직업을 넘어선 인정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다.

 

내가 입사하기 전 벌어진 일인데

 

담당자가 되어서 모시고 가게 되었다.

 

면회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나 또한 묘했다. 나 또한 진짜 하셨을까 싶었는데 함께 길을 나서고

 

생각보다 많이 면회를 하고 수발을 하신 사실을 보면서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되돌아 보게 되었다.

 

여사님들 자신들이 어려운 형편에 자식을 길러보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지내셔서 그럴 수있는 것일까?

 

왜 갑자기 마음속에 '민중의 여러 속성'이라는 단어가 스쳐가는 지 모르겠다.

 

다들 대학생, 또는 고등학생 자녀들 둔 절실한 상황의 여사님들이라

 

그런 것일까도 생각해보았다.

 

여하튼

 

노동과 생계와 인정.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모습.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일 마치고 오는 길에 차에 길가에서 갑자기 섰다.

 

기름이 바닥나서 그랬던 것이다.

 

누가 타고 기름을 안넣어뒀어! 화가 났지만 여차저차 긴급출동 부르고

 

사비로 좀 더 넣고 해서 회사로 들어왔다.

 

큰 도로에서 멈췄으면 세 여자가 큰일 날 뻔했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어깨가 아프다.

어깨가 아파서 잠을 못자고 일어났다.

갑자기 두 어깨가 굳은 느낌이다.

어제 회사에서 27명의 여사님(여기서는 그렇게 부른다. 요양보호사분들)과 간담회를 하고 나서

일어나는 증상인 것 같다.

 

갑작스레 바뀐 사회복지서비스 정책과 2월부터 이에 따른 서비스 집행을 해야 하는데

아직 어떤 요양사가 있는 지, 어떤 사람에게 서비스를 나가고 있는 지

연결도 안되고

바뀐 전자결제 시스템과 행정절차가 좀 무섭기까지 하다.

 

그것이 이런 신체화 증상을 나은 것일까?

 

뭘 두려워 할까?

실수없이 하려고?

 

그냥 하자. 하자. 해보자.

 

지방방송을 여전히 하시는 수다장이 아주머니들과 잘 지내야지.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다들 어렵게 사시는 차상위계층의 아주머니들이다.

자식을 위해, 일을 해야하는 분들이다.

연세도 좀 있으시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엄청 두려워하는 나.

혹시 몰라서 뒤통수 맞는 상황이 닥칠까봐 조마조마하는 나.

역시나 평생 이런 나와 만나야 한다.

 

괜찮아, 괜찮아,

상황이 오면 그냥 부딪치면 되고

최대한 잘 파악해서 준비하면 되고.

 

정부의 복지예산이 줄어

장애인, 한부모, 조손가정에 나가던 가사간병을 서비스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정부시책이지만 담당공무원들은 민원이 들어올까봐

우리 회사같은 준공무집행 사회복지 단체에게

이  가슴 아픈 일을 은근히 시키고 있다.

손에 피 안 묻히겠다는 거다.

 

가만 살펴보면 이건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일을

민간에서 그들의 절반의 임금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 창출, 혹은 민간 참여의 이름으로.

 

여하튼 근본줄기를 따져가자면

결국 불판을 갈아야 한다는 결론에 간다.

 

지금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일이 파악이 되면

좀  여유로와지고

좋은 생각도 떠오르겠지.

 

배우는 거다, 인생은 .

 

계속....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자식이 뭐길래.... 친정, 시댁 양가공수

어제 아침에 회의하러 외근 나가 있는데 시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회의 끝나고 전화를 드리니 무슨 회의냐고, 민주노동당 회의냐고 하셔서

대충 얼버무렸다. 왜 직장다닌다는 말이 안나왔을까나? 아직 직장에 맘을 못붙여서 일까?^^

이번에 결혼한 시동생을 시켜 우리에게 쌀을 부치셨는데 시동생이 정확히 나눠서 부쳤을까 싶다고 하셨다. 막내 시동생은 삼형제중에 욕심이 많고 야무져서 아무래도 자기 집 몫을 더 챙길까 걱정스러우셨나?

 

오늘 회사끝나고 방과후 교실에서 딸을 찾아 집앞에 와 보니 네쪽으로 나눠 담은 작은 쌀가마니가 쌓여있고 과일상자도 하나 놓여 있었다.

물론 그 과일상자에는 시어머니가 싸주신 땅고기, 물고기, 김치, 된장, 그리고 하루마다 끓여 먹을 수 있게 담은 국거리들이 있다. 마늘 빻은 비닐봉지도 몇겹 겹쳐있었다.

일년에 몇 번 그렇게 보내신다.

참 고마우신 시어머님. 아침 일찍 식당일을 나가 저녁 열시나 되어서 들어오시는데도

김치랑 반찬을 담아 보내시곤 한다.

 

아들과 손주를 위한 마음일 것이다. 물론 며느리도 생각하실 것이고.

돈 못버는 아들과 살아줘서 고맙게 생각하신다는 멘트를 자주 하신다.

 

어떤 지인이 본인 아버지는 손주를 무척 사랑하는데 엄마는 자기(아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 점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이해가 간다.

아버지, 혹은 생물학적으로는 수컷들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 더 강해서 그럴 것 같다.

게다가  아들손주라면 더 살가울 것 같다.

그런데 엄마들의 경우는 물론 종족 보존의 본능도 강하지만 웬지 손주보다는 자기가 직접 낳은

아들이나 딸을 더 예뻐 할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딸내미가 힘들게 하면

'너 왜 우리 딸 힘들게 하니?'

그러신다. 그럼 그 때 나는 엄마의 어린 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한 편 좋다. 물론 딸을 좀 서운하겠지만. ^^

 

 

뱃속에 담아 금지옥엽 조심하고 기뻐하며 기다리길 10개월,

배아프고 하늘이 다 노래지도록 힘을 들여 낳아 젖물리고 숨결을 불어넣어 기르기를 1년,

옹알거리고 아장거리며 학교 들어가고 신경질부리기도 하지만 소년,소녀가 되고 청년이 되는 모습 십여년.

 

당신 삶의 절반이상을 어린것들,  작은 생명들에게 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른거리는 자식의 모습.

가슴 가운데 복판에 함께 살고 있는 게 자식이지 않을까?

 

어제는 친정엄마가 돈을 부쳐줘서 차를 샀다.

작년에 서방이 가게 할 때 배달가다가 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한 뒤 계속 차 없이 지냈다.

차없이도 그럭저럭 살만하다.

지구도 살리고 건강도 살리고 자전거 도시 만드는 일에 일조한다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폐차한 그 차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10년동안 애지중지하시며 2만킬로미터  타시고 주신 차였다.

 

물론 3녀 1남의 남매 중 가장 지원을 안 받고 살아온 나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서 도움을 받게되니 죄송스럽다.

돈 벌어서 용돈 한 번, 내복 한 벌 제대로 사드린 적도 없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면목이 없다.

 

자식이 뭐길래.....

 

우리 딸을 보면이야 십분 그 마음을 이해하겠지만

정말 고맙다는 마음과 표현도 별로 안하고 사는 것 같다.

올해엔 엄마랑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야겠다.

시댁 어른들도 모시고 온천이라도 가고.

 

건강하시고 사이 좋게 잘 지내시길 빈다.

고맙습니다~~

 

방금 시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쌀이랑 잘 받았냐고.

떡갈비용 고기가  담긴 검은 봉지에

손주딸 예현이 뭐 사먹이라고 5만원 넣었다고 하시며

싸기는 뭐 이것저것 쌌어도  뭐 먹을 것은 없다시며......

 

어떤 때에는 쌀가마니 속에

어떤 때에는 김장김치 비닐 한 귀퉁이에

담겨 있는

예현이 맛있는 거 사주라고 보내시는

아버님 몰래 주시는 쌈지돈.

 

코끝이 찡하다.

 

엄마들은 비슷하다. 친정이나 시댁이나 ^^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삼일이 삼년같다?

수요일부터 출근해서 삼일이 지나고 오늘 토요일 한 숨을 돌리고 있다.

급작스런 취직이라 마음은 아직 공중에 떠 있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도 일이 내게 맞는다, 안맞는다는 생각이 변덕스레 왔다갔다 한다.

 

전임자의 공백으로 두 사람의 직원이 대신 일처리를 하고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해에  정부 시책이 바뀌면서 급작스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다들 엄청 고생했나보다.

업무파악도 채 안된 나는 시간이 갈수록 밀려오는 일이 가늠하고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센터소장의 사람대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거스른다.

면접할때부터 마음이 상했다.

알아보니 원래 그런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네.

 

근데 왜 나는 일하러 나온 것일까?

추천해준 후배의 마음이 고마워서일까? 이력서 쓰고 면접 보는 일에 지쳐서일까?

 

하고 있던 스터디 3개 중 낮에 하는 2개는 정지했고 저녁에 하는 1개는 고민 중이다.

 

20여명의 요양사와 그 분들이 돌보는 90여분의 노인과 장애인, 한부모가정과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관리하고 연결하고 점검하는 일. 기타 회계처리와 방문, 업그레이드를 위한 교육을 해야한다.

사회복지 판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영업도 겸해야 한다며

이용자들이 떨어지면 봉급 다 가져갈 생각은 아니지않냐는 센터장의 말은

일면 이해도 가지만 협박에 가깝게 들리니 왜 그런걸까?

 

센터장이지만 목사님 부인이기도 한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상업적인 언사때문에 그런걸까나?

 

난 아직도 종교인들에 대한 환상이 있나보다.

 

여하튼 배우는 자세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보지만

복잡한 마음은 여전하다.

일단 해보고 지켜보고 파악해가면서

그리고 내 마음도 들어보고

 

옆자리에 있는 나보다 세살 어린 동료도

맘 고생 많이 한듯하다.

 

정말 먹고 사는 일이라는게, 산다는 게, 직장생활한다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인갑다.

 

우야튼

소중한 나! 휘둘리지 말고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