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기

어제 예현이 학교 엄마들과 하는 책모임에서

'생각의 탄생'을 읽고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과학교육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얘기나눴다.

 

새로 들어온 엄마 두 명이 함께 했는데

각자 살아온 삶에 대해 짧게 나눴다.

아이를 넷 낳고 두 명을 학교에 보내게 된 엄마는

대안학교에 와서 본인도 안정을 좀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이 의사인데 요구 많은 시댁식구들과의 한 집 살림에서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마음이 짠했다.

 

나머지 엄마는 중학교까지 양궁선수였는데

고등학교때부터 공부를 해서 영어선생님이 되었다고 한다.

양궁의 집중력과 목적의식적인 사고방식이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일중심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 책모임 주제는 ' 죽음'으로 하자고 했다.

 

다들 마흔을 앞두거나 한 두해 넘긴 나이이기에

'죽음'이란 주제를

생활하면서, 혹은 갑작스런 사건으로 맞닥뜨린 경험들이 있었다.

나 또한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절박함에 매어 있기도 했다.

 

보고 싶었지만 바쁘다고 못  본 사람들을 만났고

안 보면 정말 후회 할 것 같은 사람들,

자주 보지만 가깝기에 사랑한다는 말과 느낌을 잘 전하지 못하는 가족과 형제,자매들에게도

적지만 눈길과 마음을 보냈다.

아직 미처 다 전하지 못했지만 ...

 

내 삶의 출발이었던 엄마.

엄마에겐 지난 달 월급의 일부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돈을 드렸다.

엄청 좋아하셨다.

내마음에서  물기가 배나오는 것 같았다.

진작 드릴 걸......그래도 한 번은 꼭 드리는 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작년에 종이상자를 하나 샀다.

혹시 내가 죽게 되거든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해왔던 생각,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 마음을 남기도 싶었다.

느닷없이 사라지더라도

내 마음은 정갈하게 남기고 가고 싶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의 사랑을 따스한 도시락처럼

예쁘게 싸서 전해주고 싶었다.

 

안에 무엇을 넣을 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이제 겨우 두 권의 일기장을 넣기로 결정했다. ㅎㅎ

 

내가 했던 생각,

내가 썼던 글(블로그, 원고, 팜플릿. 유인물..)

내가 그렸던 그림,

내가 만들었던 조형물들,

내 악기들,

내가 아꼈던 옷들, 장신구

 

그리고 내 몸의 정리.

 

생각보다

정갈한 마무리 준비는 간단치 않다.

 

하지만

마음은 가을바람처럼 맑아지고, 가벼워지고, 넉넉해지기까지 한다.

미움이 깃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고

서운했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고마워할 수 있고

가까워서 쓴맛까지 함께 맛봐야 하는 가족들에게는

엎드려 곱게 절하고 싶은 그런 깊은 고마움마저 느낀다.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내 딸이 되어줘서 고마워....

내 남편이 사느라 애썼어,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애쓰고 열심히 사느라 수고 많았어. 사랑하는 나야......

 

 

소풍이라 인생을 노래했던 시인처럼 

고맙다며 작별했던 신부처럼

 

나도

내 안에 흐르는

따스한 그 마음

그대로 전하고 웃으며 마무리 하고 싶다.

 

이 생에 맺었던 모든 인연들에 대해 깊은 절을 올리고

따스한 포옹을 나누고 싶다.

 

얼른 종이상자에 담을 품목을 정하고

 

늘 이런 마음으로

 

넓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사랑하며 살아야지....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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