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1일 목요일

나, 막걸리와 나.

막걸리 한 병하고 한 잔을 더 마시고

나는 목과 볼이 벌개졌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30분 점심밥시간 빼고 나면

난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이를 찾아 집에 빠르게 오면 7시 40분 정도

 

딸아이는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겠다고 하고

나는 딸아이  저녁밥 준비를 한다.

 

파김치같은 몸과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은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하다.

 

그런데 왜 이런 걸까?

 

난 의식적으로는 술을 싫어한다.

술은 내 인생에 고통이란 이름으로 체크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마, 무의식이 술을 찾고 있다.

익숙한 것일까?

몸에 배인것일까?

얼마전 딸아이에게

엄마 간이 너무 쪼그라져 있어서

막걸리 먹으면서 사알살 펴고 싶어

하며 막걸리 한 병을 샀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다.

간이 쪼그라들고

실핏줄이 타는 느낌이 바로

긴박한 직장의 느낌이다.

 

왜 이럴까,나는

왜 이럴까, 나는

 

오늘 딸내미를 찾아 오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태어난서

강한 충격이 있었던 3살부터

철들어 가던 10살까지

약  7년간

나는

어린 나는

불안과 공포와 체념, 무기력함과 외로움이

오래오래

가랑비처럼

점점 점점

내 몸에

내 땀구멍을 통해 온몸으로

내 머리위의 머리카락 뿌리를 통해 뇌로

스며 들고 있었던 것 같다.

 

3살부터....

 

여름이면

장마철이면

노점에서 과일을 팔던 엄마는 옥수수를 삶아 함께 팔았다.

그러면 어느 날

어느 비오는 날

아버지는 술이 잔뜩 취해서 와서 엄마의 그 옥수수 통을 발로 차서

길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그리고 줄무늬 초록빛 수박도 발로 차서

버얼건 속이 터진 머리통처럼 드러나게 했다.

 

나는 여름이면 그런 모습을 자주 봐야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네.

 

난 옥수수를 봐도

수박을 봐도

그리고 비를 봐도

그 생각이

그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병든 것일까?

아니, 난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나마, 교회와 그리고 캔디를 닮고 싶었던 귀엽고 야무진 내가, 내가 있어서.

 

하지만

그 슬픔은 내 가슴에, 내 몸에 남아있다.

 

지금,

무의식의 때에

그리고 다시 그 두려움과 불안이 옛 기억을 두드리며 쳐 댈때

나는 그 느낌과 공포로 몸이 긴장하고 움츠러 드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알고 느끼고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된 것이다.

 

눈물이 잠깐 났다.

그 때의 두려움과 불안의 감성이

아직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이리라

 

계속 녹고 있다.

계속 녹아 흐르고 있다.

그 당시의 슬픔이

 

나는  보고 다시 느끼고

 

그리고 떠나보내고 있다.

 

커가고 있다.

 

슬프고 가여운 어린 시절의 나를

어른인 내가

아주 훌륭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구나 하고 떠나보내고 있다.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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