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비를 맞으며 이사를 했다.
딸내미는 4박5일 지리산으로 캠프를 가고
손가락 수술을 받고 아직도 붕대를 감고 다니는 서방이 하루 휴가를 내서
드디어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왔던 이 곳,
결혼생활 11년을 보낸 인천의 북쪽을 떠나
딸내미 학교가 있는 남동쪽으로 옮겼다.
불타는 청춘의 사연과 활동이 새록새록 영사기 필름 돌아가듯
머리속을 스친다.
지역 거점, 주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낮고 깊게 지역주민속으로 스미고자 했던 시간들.
일점돌파.
한 곳에 역량을 총집중해서 모델을 만들고 모범으로 승화해서 다른 곳으로 전파하는
그 한 점. 그 한 곳.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공부방, 도서관, 복지시설, 단체들이 많이 형성되고
이제 드디어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정치인들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많은 것들이 움직이는 도심 한 복판에서 살다가
이젠 새소리가 나고 텃밭이 보이고 담장이 낮은 주택들이 있는
조용한 이 곳으로 이사를 오니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오직 딸내미가 학교를 걸어서 가게 되었다는 점.
인천대공원이 바로 옆이라
좁은 집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큰 정원을 갖게 되었다는 점.
청소년수련관이 있어
값싸게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빈약하지만 도서관도 드나들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이사 오면서 얻게 된 행복들이다.
새벽에 공원에 나가보니
노부부가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기도 했다.
보기 좋았다.
이사 오면서 남편은 떼어 놓고 오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걍 뒀다. ㅎㅎ
남편도 직장이 가까와져서 심리적 육체적 부담도 조금 준 것 같고.
남편에게 있다는 삼재의 기운이 이사로 좀 더 잘 풀려가길 내심 바라고 있다.
딸내미 3학년, 4학년,5학년,6학년.
3-4년은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살던 곳보다 작은 집으로 왔고
오래된 가구들을 버리고 와서 알맹이만 있는 셈이라
버리고 정리할 것들이 많다.
언제 이렇게 사들였는지 모르겠는데
버리려니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버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
그닥 많이 새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해본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 갈 것이며
어떤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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