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로프 교육을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중에 언어치료소를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
8월부터 다시 내가 백조부인이 된 것을 아시고는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습식수채화 수업을 도와
달라고 하셨다.
원래 백수가 더 바쁜 것이지만 장애청소년( 특히 자폐나 지적장애인)을 만나본 경험은 전무하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늘 뭔가를 배우기만 하는 것 같아서 '배워서 남주자'라는 공유,연대의식으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습식수채화란 도화지를 물에 적셔서 삼원색(파,노,빨)으로 색의 섞임과 번짐, 농도의 차이를
미묘하게 느끼는 그런 수채화 방식이다.
아직 관련 논문이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격주 일요일에 가는 발도로프 교육에서 자주 해 온 것이다.
어제가 세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 아이가 (고2?) 화장실에 똥을 쌌다.
통 없던 일인데 뭔가 아이에게 일이 있었거나 심리적인 충격이 있었거나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고등학교 4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들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게 잘 생겼다. 중학생 한 명은 키가 185에 몸무게가 90킬로 정도
나간다.
겉으로 보면 듬직하기도 하고 곱기도 하고 준수해 보이는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지적, 감성적 수준은 초등 저학년 정도이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다 확인해주고 가르쳐주기도 해야한다.
색을 칠하는 중간중간에도 잠깐씩 다른 곳에서 오는 텔레파시와 교신을 하기도 한다.
눈빛과 몸짓이 다른 세계에 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 이 아이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 나가서 생활을 할 것인가?
하는 자문이 문득문득 든다.
몸은 멀쩡한 성인수준으로 자라고 있고
또한 성적인 감성도 약간식 드러나고 있는 사춘기인데
인지와 정서가 초등학생 수준이 이 아이들이
부모님없이 창창한 앞날을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나...
한편에선 '쓸모, 효율, 가치' 라는 단어들이 머리속을 맴돌고
한편에선 '인간, 인권, 존재자체, 생명, 다양성'이라는 낱말들이 앞선 단어들과 충돌한다.
칠해놓은 색들이 참 곱고 예뻐서 칭찬을 해주면
조금 뒤에 기뻐한다. 은근히 기뻐하며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느리게 반응하지만.
함께 해주는 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사춘기 고등학생의 호기심인지 내 손을 슬며지 잡아본다.
눈물이 날 것 같고 맘이 아프기까지 하다.
'이렇게 똑같이 느끼고 있구나. 청소년이고 남자아이이고...'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고 몸을 느끼는 생명인데
이 속도빠른 첨단의 세상에
달팽이처럼 느린 이 아이들이 잘 적응해 살 수 있을까?
지금은 괜찮지만 세월의 힘으로 이 세상에 이 아이들을 두고 가야 할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나마 이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런 치료센터에 아주 어려서부터
다니고 또 다른 센터로 체육관으로 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의 장애아들은 얼마나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까 싶다.
그래서 여기 선생님은
독일의 '캠프힐' 같은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하신다.
작업장이 있어서 비누나, 빵, 기타 장애인들의 노동으로 가능한 생산품들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며 결혼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그런 삶의 공동체.
어마어마한 일이다.
땅이 필요하고 작업장이 필요하고 선생님들이 필요하고 학교가 필요하고.......
물론 문제는 '돈'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이 자폐아들은, 장애인들은 어디가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효율의 눈으로
속도의 잣대로
생산력의 크기로
측정해서는 안되는
인간이고 사람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안에 이미 오래전부터 박혀있던 효율과 속도와 생산력이라는 절대 기준들을
내가 붙잡고 있어서 그게 아니라고
내게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칠한 색깔들로
예쁜 옷이나 가방을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벌써 생각이 앞서 나가고 있다.
내게 생명과 겸손과 다양함, 존재자체의 경건함을 가르쳐 주는 시간들, 아이들에게
두손 모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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