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일 수요일

솔직하게 산다는 것.

만약, 딸내미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솔직히 난 바로 찬성은 못하겠다.

물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 하겠지만

감수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말하는 것일까

차분히 얘기 할 것 같다.

아니, 어쩜 그 전에 다행히 대부분 중요한 핵심사안들을 공유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이라는 것,

결혼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산다는 것에 대해

 

뭔가 내가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마흔을 넘겨도 혼란스럽다.

마흔 언저리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 언젠가 작가 공지영이 한 출판회에서

이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사랑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준 것이 있는가,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난 사랑조차 가르쳐 줄 자신이 없다.

내가 아직도 사랑에 대해

생각으로 갖는 사랑과

내가 생각한 사랑과

현실과

건강한 사랑에 대해

많이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지상에서 발이 떨어져 있거나 너무 묶여 있거나

이러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딸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진 말기를.

사랑보다 자신을 더욱 온전히 느껴볼 기회는 없다는 것을

상처받아도 사랑은 값진 것이며 사랑을 통해 발전해 간다는 것은

꼭 알려주고 싶다.

 

모두 자기 안경으로, 자기 필터로 사랑을 느낀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은 비숫하리라.

 

사랑하고

사랑받고

소통하고

공감하고

그러므로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어린 것들,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까지

사랑으로 인간은 성장해 가는 것.

 

사십이 넘어도

사랑은 이렇게 푸른 빛으로

내 안에 너울 거린다.

 

요즘은

체온을 느끼며

촉감이 살아있는

그런 에너지장이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이제는 형이상학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온전히 사는 것이 아니다.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가슴이 얘기하는 대로 살고 싶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나누는 사랑.

존재 자체로 나누는 사랑.

 

그런 사랑이 아직 있다고 여기는 한

난 결코 늙지 않으리.

 

팔과 다리가 아니라

이젠 몸통으로 느끼고 싶다.

오늘 춤테라피를 하면서

팔과 다리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일했는데

정작 호흡의 중심인 몸통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땅에 발을 딛고

꼬리뼈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이어진 자신감의 축을 바로 세우고

나는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를 보호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리라.

 

내 몸을 사랑하지 않은 시간들은

온전히 내 이웃을 사랑한 시간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진정 인류와 함께 하는 길이라고 여기며

 

찬바람을 맞으며

안개숲을 지나며

나는 오늘도 춤을 추러 갔다 왔다.

 

나는 몸으로 맞짱을 뜨고 있다.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

2010년 10월 1일 금요일

장애청소년 미술 수업

발도로프 교육을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중에  언어치료소를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

8월부터 다시 내가 백조부인이 된 것을 아시고는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습식수채화 수업을 도와

달라고 하셨다.

원래 백수가 더 바쁜 것이지만 장애청소년( 특히 자폐나 지적장애인)을 만나본 경험은 전무하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늘 뭔가를 배우기만 하는 것 같아서 '배워서 남주자'라는 공유,연대의식으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습식수채화란 도화지를 물에 적셔서 삼원색(파,노,빨)으로 색의 섞임과 번짐, 농도의 차이를

미묘하게 느끼는 그런 수채화 방식이다.

아직 관련 논문이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격주 일요일에 가는 발도로프 교육에서 자주 해 온 것이다.

 

어제가 세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 아이가 (고2?) 화장실에 똥을 쌌다.  

통 없던 일인데 뭔가 아이에게 일이 있었거나 심리적인 충격이 있었거나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고등학교 4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들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게 잘 생겼다. 중학생 한 명은 키가 185에 몸무게가 90킬로 정도

나간다.

겉으로 보면 듬직하기도 하고 곱기도 하고 준수해 보이는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지적, 감성적 수준은 초등 저학년 정도이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다 확인해주고 가르쳐주기도 해야한다.

색을 칠하는 중간중간에도 잠깐씩 다른 곳에서 오는 텔레파시와 교신을 하기도 한다.

눈빛과 몸짓이 다른 세계에 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 이 아이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 나가서 생활을 할 것인가?

하는 자문이 문득문득 든다.

 

몸은 멀쩡한 성인수준으로 자라고 있고

또한 성적인 감성도 약간식 드러나고 있는 사춘기인데

인지와 정서가 초등학생 수준이 이 아이들이

부모님없이 창창한 앞날을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나...

 

한편에선 '쓸모, 효율, 가치' 라는 단어들이 머리속을 맴돌고

한편에선 '인간, 인권, 존재자체, 생명, 다양성'이라는 낱말들이 앞선 단어들과 충돌한다.

 

칠해놓은 색들이 참 곱고 예뻐서 칭찬을 해주면

조금 뒤에 기뻐한다. 은근히 기뻐하며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느리게 반응하지만.

함께 해주는 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사춘기 고등학생의 호기심인지 내 손을 슬며지 잡아본다.

눈물이 날 것 같고 맘이 아프기까지 하다.

'이렇게 똑같이 느끼고 있구나. 청소년이고 남자아이이고...'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고 몸을 느끼는 생명인데

이 속도빠른 첨단의 세상에

달팽이처럼 느린 이 아이들이 잘 적응해 살 수 있을까?

지금은 괜찮지만 세월의 힘으로 이 세상에 이 아이들을 두고 가야 할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나마 이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런 치료센터에 아주 어려서부터

다니고 또 다른 센터로 체육관으로 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의 장애아들은 얼마나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까 싶다.

 

그래서 여기 선생님은

독일의 '캠프힐' 같은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하신다.

작업장이 있어서 비누나, 빵, 기타 장애인들의 노동으로 가능한 생산품들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며 결혼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그런 삶의 공동체.

 

어마어마한 일이다.

땅이 필요하고 작업장이 필요하고 선생님들이 필요하고 학교가 필요하고.......

물론 문제는 '돈'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이 자폐아들은, 장애인들은 어디가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효율의 눈으로

속도의 잣대로

생산력의 크기로

측정해서는 안되는

인간이고 사람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안에 이미 오래전부터 박혀있던 효율과 속도와 생산력이라는 절대 기준들을

내가 붙잡고 있어서 그게 아니라고

내게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칠한 색깔들로

예쁜 옷이나 가방을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벌써 생각이 앞서 나가고 있다.

 

내게 생명과 겸손과 다양함, 존재자체의 경건함을 가르쳐 주는 시간들, 아이들에게

두손 모아 감사를....

 

 

 

 

2010년 9월 10일 금요일

사랑하면 춤을 춰라(뮤지컬)

어제 아주아주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사랑하면 춤을 춰라'

4만원하는 공연인데 가입해 있는 문화단체에서 1만원 할인티켓을 구해줬다.

요즘 춤에 feel이 꽂혀있는 나이기에

딸내미와 뮤지컬 배우가 꿈인 5학년 재혁이를 델꼬가려고 했다.

근데 학교카페에 올려서 여럿이 신청해서 함께 갔다.

 

중간에 '선정성'을 우려한 한 부모는 취소를 하고

어른 3, 아이들 5명이 폭우를 뚫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하지 않으면 어찌 갔으랴.

 

공연 내내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입을 다물줄 모르고

손을 걍 놔두지 않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비트에 맞춰 손뼉을 쳤다.

 

춤으로 구성된 뮤지컬이라 그런지

어쩜 그리 춤도 잘추고

몸매들도 좋던지.

거의 구경할 길 없는

남자들의 초콜릿 복근을 아주 실컷 봤다. 나름 아름다웠다.

얼마나 연습을 해서 저런 근육을 만들었을까나...

화려함속에 감춰진 연습의 고통도 슬쩍 엿보이기도 했거

비보이춤은 정말 멋졌다. 근데 근육통이나 골절이 우려되기도 했다. 인대 늘어나는 것도..

(걱정도 팔자)

 

여배우들은 젊고 섹시했다.

요즘들어 섹시하단 말이 거북하지 않다.

아름다운, 인간이 갖고 있는 또하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인데

지나친 것들이 천박한 것이나 외설적인 것으로 치우치게 만든 단어인 듯.

딸내미가 '와우  가슴이 엄청 크고 올라갔다' 했다. ㅎㅎㅎㅎ

요즘 우리 딸도 외모나 성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성형수술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조막만한 얼굴에 날씬한 허리에

내가 봐도 그런 풍만한 가슴은 타고난 복이던가, 과학의 힘이든가

뭐 그럴 것 같았다.

보기 좋았다. 건강해보였다.

인간의 모든 몸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뭔가 필요에 의해 기준을 만들어서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해서 문제이지

원래 다 아름다운 것 같고 나름 고유한 멋이 있다.

 

유머가 있는 공연이라 더 재미있었고

관객과 경계가 없이 스며드는 면이 있어

자연스러웠다.

 

열정의 몸짓, 탄생과 성장의 인생을 담은 내용

 

암튼

어른들도 가슴후련하게 뜨겁게 보고

아이들은 신나게 느꼈던

댄스뮤지컬이었다.

 

와우~~~~~

2010년 9월 1일 수요일

늦더위 물러가라~~

오랜만에 펜마우스를 들었다. 딸내미가 구미호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다.

근데 컴퓨터로 그리지 말고 종이에다 그리란다. 학교 가져가야 한다며.

어떤 모습인지 설명해 줬는데 그냥 흘려 들어서 기억이 안난다.

새벽에 일어났다.

구미호땜시?

아니 그냥 자주 그런다. 누군가 날 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요즘 나는 춤을 추고 싶다.

오랫동안 내 속에 스며든 것들을 털어내고 싶은 것 같다.

오랫동안 맞은 슬픔의 빗물일까나?

 

 

 

 

그리고 종이에 구미호를 그렸다.

내가 아끼는 굵은 심 샤프로 그렸는데 심이 많이 닳았다.

구미호 드라마를 잘 안봐서 검색을 했더니 나온 장면이다.

 

 

 

근데 아침에 보여줬더니 이게 아니란다.

설명할때 뭐 들었냐고 혼났다.

한복 곱게 차려입은 구미호인데 손톱하고 이빨만 드러나고 꼬리 아홉개가 드러나야 한단다.

바로 그려줬다.

마음이 풀린 듯 밥도 잘 먹고 갔다.

 

앞으로는 딸 말을 잘 경청해야지.

 

새벽에 저 구미호 그리느라 무서웠는데.. 잉잉잉

 

저거 보고 늦더위나 물리치시길~~~~~~ * ^^ *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11년된 벗, 세탁기 거름망을 청소하면서...

99년에 결혼했으니 이 세탁기도 벌써 11년이 되었다.

우리딸보다 1살 더 많다.

자취할때 제일 아쉬운 것이 바로 세탁기였다. 23살부터 자취했으니 7년동안은 손으로 빨고

근처 빨래방을 이용했다.

결혼하면서 번쩍 번쩍 10킬로 짜리 세탁기가 '마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며 내게 왔다.

 

요즘 들어 빨래를 하면 옷에서 약간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세탁기 돌려놓고 제 때 꺼내서 얼른 널지 않아서 그럴까나 싶어서

부지런을 떨어 보았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세탁기를 열어 먼지를 모아주는 거름망(?)을 보니 농축된 먼지덩어리가 회색빛을 띠며

곰팡이와 먼지가 결합된 안 좋은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먼지를 꺼내고 다 쓴 칫솔로 망을 긁어낸 뒤 향좋은 비누로 빨았다.

칫솔질을 하면서

'11년 결혼생활에서도 이렇게 찌들고 농축된 삶의 찌꺼기들이 있을 텐데....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찌든  오래된 찌꺼기들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남편은 이 거름망을 청소한 적이 있을까 싶었다.

빨래를 돌리기보다 더 힘든 게 널기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름망도 청소해줘야 한다.

갑자기 딸내미 다니는 학교에 집안의 각종 가전제품이나 생활제품 사용법을 배울 것을

건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 학교에는 복사기 사용 자격증 시험(1.2급) 스캐너 사용 자격증 시험 등이 있다.

이 참에 숙제로 '자기네집 세탁기 기종 알아오고 사용법 익히기, 빨래  5번 이상 하기.'

뭐 이런 과제를 내 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청소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단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하든 안하든 스스로의 삶을 알아서 꾸려갔으면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소홀하기 쉬운 게 일상생활, 집안일 부분이다.

발도로프 학교나 대안학교에서는 그래서 요리나 농사, 수공예(뜨게실, 바느질, 옷만들기,가방만들기..)

를 배운다. 목공도 하고(숟가락, 밥그릇, 책꽂이, 고학년때는 악기도 만든단다. 기타 같은 것을! 헉!)

살림과 지식이 잘 어우러지고 과학과 예술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다.

 

세탁기 거름망 청소를 하면서 든

내 짧은 생각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일기

딸내미 학교 근처로 이사와서

학교 학부모 한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낮에 서울 엄마네 가서 반찬과 먹을 거리를 받아왔다.

김서방 주라고 엄마는 반찬그릇에 곱게 담아서 주셨다.

이웃 학부모 부부는 맥주를 사 가지고 왔다.

밥을  차리는 동안 컴퓨터를 고쳐주었다.

컴퓨터가 더위를 먹었는지 어찌되었는 지 남편이 한 번 손을 봤는데도

다시 안된다.

 

정말 고마웠다.

몸체를 뜯어 내장까지 다 살펴봐줬다.

아직 내가 못하는 수준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영어교육을 비롯한 외국어 교육,

음악교육을 비롯한 예술교육에 대해

우리 학교의 상황을 돌아보는 얘기를 나눴다.

 

오후에 그 집 아들네미와 우리 딸과 나랑 공원에서 실컷 자전거를 탔기에

몇잔 안 먹었는데 거나해졌다.

 

그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고

딸내미에게 일기를 쓰자고 했다.

딸이 은근히 싫어하는 눈치였다.

일기장을 학교에 숙제로 냈다고 했다.

내가 다른 공책에 쓰라고 하면서

"이 다음에 네가 어른이 돼서 '아, 내가 3학년때 이런 생각을 했고, 이렇게 놀았구나

나는 이런 면이 있던 아이였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추억의 선물이 바로 일기야."

애기해줬다.

 

그랬더니 엄마는 쓰냐고 했다.

 

그래서 책방에 가서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책꽂이를 뒤지며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의 그림이 그려진 내 일기장을 기어이 찾았다.

8월 2일까지 썼다.

 

같이 일기를 썼다.

 

시도 썼다.

딸내미에게

오늘 자전거 탔던 기분이나

엄마가 탔던 모습을 시로 써보라고 했다.

 

야호~하고 두 팔을 하늘로 벌리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엄마

 

천하무적

우리엄마

하지만

바람, 공기

앞에선

한업시(없이)

약해짐니다

나도 나만의 자유를

느끼고 싶습니다.

 

라고 썼다.

 

잘썼다.

역시 우리딸이라고 칭찬해줬다.

그림도 잘그렸는뎅..ㅎㅎㅎㅎ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고

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오늘 개학날 학교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자전거를 타니 정말 행복하다.

산 밑이라 kt 밖에 들어오지 않아 인터넷  신청을 했더니

자전거를 선물로 줬다.

 

내 자전거가 되어서

저녁에 많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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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24

 

딸하고 일기를 함께 쓴다.
딸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도 그렸다.

 

며칠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

내가 가질 수 있는 지

가져도 되는지 또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묻고 있다, 답을 구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지못하고

이렇게 주저하고 의심하고 있다.

 

난 이사와서

예현이에게

밥을 해주고

예현이를 도서관에 보내고

예현이가 집에 오는 것을 맞이하고

예현이와 자전거를 탔다.

 

바람이 우리 머리칼을 빗겨주고

바람이 젖은 우리 몸을 말려주고

바람이 싱싱한 산소를 우리 폐로 불어 넣어 주고

나무가 녹색향기로 온 몸을 감싸준다.

 

우린 나무가 되었다

우린 호수가 되었다.

 

난 내가 꿈꾸던, 내가 바라던,

엄마가 된 것 같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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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에서

아프로티데에서

데미테르가 된 것일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 행복.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겠지.

다시 전사로  나서야 하겠지.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지난주 화요일 비를 맞으며 이사를 했다.

딸내미는 4박5일 지리산으로 캠프를 가고

손가락 수술을 받고 아직도 붕대를 감고 다니는 서방이 하루 휴가를 내서

드디어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왔던 이 곳,

결혼생활 11년을 보낸 인천의 북쪽을 떠나

딸내미 학교가 있는 남동쪽으로 옮겼다.

 

불타는 청춘의 사연과 활동이 새록새록 영사기 필름 돌아가듯

머리속을 스친다.

지역 거점, 주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낮고 깊게 지역주민속으로 스미고자 했던 시간들.

일점돌파.

한 곳에 역량을 총집중해서 모델을 만들고 모범으로 승화해서 다른 곳으로 전파하는

그 한 점. 그 한 곳.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공부방, 도서관, 복지시설, 단체들이 많이 형성되고

이제 드디어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정치인들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많은 것들이 움직이는 도심 한 복판에서 살다가

이젠 새소리가 나고 텃밭이 보이고 담장이 낮은 주택들이 있는

조용한 이 곳으로 이사를 오니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오직 딸내미가 학교를 걸어서 가게 되었다는 점.

인천대공원이 바로 옆이라

좁은 집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큰 정원을 갖게 되었다는 점.

청소년수련관이 있어

값싸게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빈약하지만 도서관도 드나들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이사 오면서 얻게 된 행복들이다.

 

새벽에 공원에 나가보니

노부부가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기도 했다.

보기 좋았다.

 

이사 오면서 남편은 떼어 놓고 오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걍 뒀다. ㅎㅎ

남편도 직장이 가까와져서 심리적 육체적 부담도 조금 준 것 같고.

남편에게 있다는 삼재의 기운이 이사로 좀 더 잘 풀려가길 내심 바라고 있다.

 

딸내미 3학년, 4학년,5학년,6학년.

3-4년은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살던 곳보다 작은 집으로 왔고

오래된 가구들을 버리고 와서 알맹이만 있는 셈이라

버리고 정리할 것들이 많다.

언제 이렇게 사들였는지 모르겠는데

버리려니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버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

그닥 많이 새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해본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 갈 것이며

어떤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