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8일 금요일

월드컵...

오늘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봤다.

요즈 내가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친구인 원장이 낮에 긴급회의를 하지 않았으면

사실 돌 맞을 일이지만 난 경기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리라.

원장의 말인 즉슨, 아이들 정신이 몽땅 축구에 가 있으니 아예 1시간만 공부하고

같이 시청하는 걸로 하자. 다른 학원처럼 아예 수업을 안하면 길거리에서 배회할 것이므로

학원에 묶어두자, 그리고 시청전에 막무가내식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겠다 였다.

뭐, 원장님 말씀 틀린 것 없어서 그닥 반대하지 않았다.

 

요즘 많이 더워 더욱 비지땀을 흘리는 서방이 일때문에 힘들다며 경기 앞두고 맥주랑 안주를 사오라고 해서  탈레탈레 슈퍼에 가서 맥주랑 과자를 좀 사서 왔다.

남편은 정말 진지하게 경기를 관전했다.

 

사실 난 별 관심은 크게 없고 질수도 있고 이길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골이 많이 들어가면서 그래도 한 골이라도 넣었으면 싶었다. 한가닥 기가 죽지 않게

청룡씨가 한 골을 넣어줘서  참 기뻤다. 정말 기뻤다. 그리고 자살골인 박주영 선수가 계속 염려되었다.

잘 모르지만 아르헨티나가 축구를 꽤나 잘하는 팀이니 동점이나 약간 차이로 져도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리이스전에서 너무 잘해서 기대를 했다고 한다.

나는 너무 큰 기대는 선수들 죽이는 거다. 하고 말했다.

 

학생시절 선배들에게 댓거리를 받으며 전두환과 독재권력의 3s정책에 대해 배웠다.(스크린,스포츠,섹스 일거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고 영화는 마음과는 달리 볼 수가 없었고 섹스는 꿈도 못꾸는(아마 이건 기독교적 사관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크게 작용) 사람으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시점부터 영화를 안보면 삶을 이해 못하는 문화문외인이 되었고 스포츠는 대중화되어 흘러갔고 섹스는 뭐 별 영향없이 그냥 섹시하다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게 들리게 되었다. 나름 매력있다로...^^

 

여하튼 당장 눈 앞에서 보면 몰라도 일일이 챙겨서 보게 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스포츠.

특히 월드컵은 효순이 미선이의 미군탱크 압사사건과 겹치면서 약간의 거부감도 있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 최전선에 있던 남편이 사실 스포츠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물어보니 화를 내며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내가 너무 우리 남편을 선배,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게 아직 분명하다.

이 꿈은, 허상은 언제나 깨지려나.

 

나는 오늘까지 이번 월드컵에서 제일 남는것은 '정대세의 눈물'이다

3년전 내가 일하던 어린이도서관 사업에서 민족교류사업으로 '재일민족학교 책보내기 사업'차

일본에 갔었다. 거기엔 소위 말하는 조총련계 조선학교들이 있었다. 국적이 북녘인 재일동포 아이들이 다니는 초, 중, 고등학교 였다. 영화 '우리학교'로 알려진 재일동포의 자치학교 이야기이다.

 

이 민족학교는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있었다. 같은 외국인 학교인 프랑스,미국 등의 학교에는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유독 북녘에 적을 둔 조선학교에는 지원금을 거의 주지 않고 미용학원, 기술학원 취급을 한다. 그래서 여기 졸업생들은 정규 학력이 인정이 안된다.

일본대학에 들어가려면 검정고시 같은 것을 다시 봐야한다.

 

일제강점하에 강제징요되어 끌려간 동포들이 제나라 말을 잊지 말자며 세운 학교인데

수 차례 일본정부의 해산 명령에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지만 김치를 팔고 장사한 재산 전부를 기증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세운 학교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통학버스 이름이 어머니 차, 아버지 차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적 자부심 하나로 지켜온 학교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북쪽도 남쪽도, 게다가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으로만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은

짐작할 수 없을만큼 큰것이리.

 

내가 시범 수업을 했던 학교도 한 학년에 많게는 8, 적게는 5명 정도 였다. 그나마 유치원이 많았다.

나는 유치원을 맡아  우리말 수업을 했는데 유치원생들은 일본말을 한다. 초등학교 이상 학생들도 집에선 일본말을 더 많이 한다.

 

보이는 차별고 보이지 않는 차별속에서 재일조선동포의 아이들은 자란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몰아치기도 하고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테러로도

온다. 그 속에서 자란다.

 

민족학교가 북한에 기반한 것은 전후 그나마 북쪽이 잘 살았을 시기 (60,70년대정도) 엄청난 교육비 지원을 재일 조선학교에 한 것이다. 가보니 조국의 돌이라면서 지구과학시간에 해당할 수업에 쓰라고 북녘의 돌들을 종류별로 보냈고 식물표본도 보내고 책과 교육자료를 보냈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북쪽에서 그들을 챙겼던 것이다. 역사의 피해자이자 민족의 구성원이고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기에. 남쪽은 반공때문인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북쪽과 남쪽이 모두 조선이라는 조국이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조국.

 

정대세의 눈물엔 그 조국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재일동포들의 민족학교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아이들을 한 판 이길 수 있는것은

바로 축구인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족학교의 축구 열풍은 실로 대단하다.

 

아마 정대세도 그 속에서 자란 것 같다. 아버지는 한국적, 어머니는 북한적, 본인은.....

 

이 복잡한 자기정체성과 월드컵.

 

그 안에 켜켜이 담겨있는 사연과 설움과 눈물.

 

그것이 그날 그의 눈물이리라.

 

역사의 아픔은 오늘 2010년 푸른 청춘의 날랜 청년의 눈에서 정말 뜨거운, 멈출수 없는 눈물을

뿜어내게 하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 아니 이 지구상에 억압과, 강점과, 살육과 전쟁의 아픔을 드리우지 않았으면 싶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야만의 굴레. 아무리 고고한 사람도 그저 한 동물로 사라지는 무악한 인간의 욕망.

 

나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정대세의 눈물을 봤고 그래서 나도 그냥 울었다.

 

3년전 갔던 그 학교 아이들, 그리고 일본과의 축구로 들떠 있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속에서 자라났을 정대세를 생각하고 그저 울음이 계속 났다. 그것도 학원에서....^^

 

잘했다.

모두 잘했다.

 

그나마 이 축구라는 것이 권투같이 누굴 모질게 패서(때로는 죽도록) 이기는 야만의 경기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경기는 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싫어할 사람도 많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다.

 

축구처럼 팀플레이와 운, 응원, 같이 통합적인 전랴과 전술이 어우러진 인간활동의 총제적인 움직임이 있거나 개인의 극도의 훈련을 통해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던가, 여하튼 그런게 스포츠였으면 싶다.

 

승패를 떠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을 줄 아는 우리 관람자들의 자세도 정말 중요하다.

 

그냥 맥주 두 잔에 드는 생각이당.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