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딸의 질문, 때가 오고 있느니라.....

아침에 밥을 먹이고  딸을 태우러 올 이웃집 차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보라 했다.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학교의 방학교실에 딸이 가기 때문이다.

나도 심리학공부 스터디 숙제땜시 같이 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 난 왜 포경 안 해?"

 

앗, 이게 무슨 상황?

딸은 초등학교 2학년, 9살이다.

 

쳐다보니 WHY 시리즈 사춘기 편을 보고 있었다. 벌써 몇 번 째 보는 것 같다.

 

"응 그건 남자들이 하는 거야. 고추, 아니 음경 있는 남자들이."

"왜 해?"

 

처음에는 말로 설명하다가 옷소매를 가르키며 옷과 팔을 빗대어 꼬매는 것까지 설명했다.

딸이 펼쳐 준 페이지에 포경 과정의 그림이 설명되어 있었는데 거의 비슷하게 설명한 것 같다.

 

나름 객관적으로 설명했다고 안심하고 내 책을 보는데

 

"엄마,자위가 뭐야?"

 

이건 좀 높은 수위의 질문이다. 어쩌나.... 성교육 강의를 몇 번 듣긴 들었는데 어떻게 설명하라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강사강의를 듣는 것인데....

 

"응, 자기 음경이나 음순을 만지는 거야. 긁거나."

 

막판에 긁거나는 왜 만지냐는 질문을 피하기 위한 쑥스러운, 준비 안 된 엄마의 면피용 회피용 설명이었다. 뭘 긁거나야.

 

준비해야 할 때이다. 딸은 커가고 있고 보고 있고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키스할 때 서로 얼굴 방향을 어긋나게 한다는 거.

어느 영화에서 연인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 혀로 꺼내 주는 거 (나 한테 자꾸 해보려고 해서  내가 엄만 눈꼽 자주 낀다, 하며 혐오감을 줬다 ^^)

서로 끌어 안는 거

이불 속에 들어가는 거

그리고 요즘 나오는 야한 광고들....

 

조금 크면 질문을 안하거나 다시 하겠지.

오히려 지금 이렇게 질문해 주니 고맙다.

커서도 질문을 받는 엄마가 되야 할텐데

 

자유롭고 건강하고 즐기는

그런 아름다운 성을 배워갔으면 좋겠다.

이 복잡한 영역은 나또한 배워가야지.

물론 어두운 성의 부분도 알아가야지.

균형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려면

 

불량엄마가 우량엄마, 친구같은 엄마, 인생의 선배여성이 되는 그 날까지~~~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불혹의 여인이 부르는 구직애사(求職哀詞),취업비가(就業悲歌)~~

지난 11월 중순 어느 날부터 학업을 염두에 둔 취직 결심을 했다.

평생에 한 번은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이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4대보험에 소득공제도 되는 그런 회사에 다녀보리라 결심을 했다.

애시당초 젊은 청년의 시기때부터 여러 직업중에서도 회사에 다니는 일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터라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이었다.

 

대체로 살짝 대책없을 수준으로 낙관적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것 같이 생각해온 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내가 원래 그런 편이다.

물론 이런 내 상태는 커다란 빙산의 의식의 일각이고 그아래는  수치감과 불안, 두려움의 어마어마한 덩어리가 있다.

 

철들고 한 세번째 정도로 이력서라는 걸 썼다.

오래전 26살인가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은 독서논술회사에 이력서를 손으로 써서 내고

그 뒤 지역사업차원에서 복지위원인가를 하게 되었을 때 내고는

 

정식으로 취업을 향해 쓴 이력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포맷도 다양하고 자기소개서까지 써야했다.

이력없이도 잘 살던 나인데

전혀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력을 통해 나를 알아봐 달라고 뭔가를 써야 했고 내 각오를 피력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대학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처럼 좀 어리둥절도 하고 이런생각, 저런 궁리를 했다.

 

이력서를 보내야 할 곳을 살펴보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열심히 20년 살아왔는데 막상 주먹쥐고 달려온 손이 펴보니 허전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아, 스펙이 없구나. 내가.

경험은 있고 꿋꿋이는 살아왔으나 그것은 내가 있던 공동체에서 통하는 이력이고

이 사회가 원하는 능력과 기술과 지식은 별로 없구나, 내가......

 

하지만 이력서를 쓰면서 나는 떨어질 생각은 추호도 안했다. 안든다 그런 생각이. ^^

이게 나다. ㅎㅎ

지원처는 사회복지 기관이나 상담기관, 복지관으로 잡고 인천과 서울, 부천을 중심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이력서와 소개서, 기타 자격증 사본을 첨부해서 지원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거의 10곳에 전자우편 접수를 했고 2곳에 우편접수를 했고 2곳에 방문접수를 했다.

그리고 서류전형을 거쳐 면접을 본 곳은 4곳.

한 곳은 성매매 청소녀들의 쉼터였는데  일주일에 2번 숙직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결정을 주춤했고

한 곳은 상담을 하고 싶어 지원했는데 사회적 기업을 해 볼 것을 권유해서 거절했고

한 곳은 정신건강증진센타인데 단순 사례관리를 하기에는 내 열정이 넘치는 듯한 답신을 줬다.

뭐 어쨌든 면접을 봤는데도 안된 곳은 현재까지 3곳.

내일 한 곳 발표가 난다. 명찰까지 달고 면접관 4명이 면접을 본 청소년지원센터이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남자와 나, 이렇게 단 둘이 면접을 봤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 일하다 보면 6시 퇴근인데도 더 늦게 끝나기도 한다. 어떻게 하겠나?

*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가? 칼퇴근 직장이 도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가 기분이 안좋았다.

 

- 약속이 있는데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그래도 약속을 나가겠는가?

* 속으로 열받고 기가막혔다. 위기청소년에 대한 긴급상황이면 당연히 절차를 밟아 긴급하게 움직이는 것이고, 그러면 약속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인지, 조정해 보는 것이고, 또 다른 직원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으면 협조를 구하는 것이고, 이도저도 안되면 긴급하게 일을 하는 것 아닌가? 뭘 듣고 싶었을까나?

 

- 경력을 살펴보면 팀원이 아니라 팀장을 해야 맞는데 팀장이 어려도 잘 일할 수 있겠는가?

* 그래, 이 걱정이 솔직한 것이지. 그리고 이 점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며 그들의 고민지점이자

내 결정적 약점이다.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각오한 일이고 그래서 지원한 것이기에 나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원 기관과 면접관들은 이 점이 결정적으로 힘든 것이겠지.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듣고 난 나는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비우고 있다. 그래서

면접 끝나고 오는 길에 근처 다른 기관에 이력서를 한 부  더 넣고 왔다.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문제, 재취업의 벽이 이런 줄 몰랐다고 고백하면

내가 너무 철없고 세상을 모르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겠지.

근데 정말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올 한해 1년 정도의 휴가 말고는 경력이 단절된 적 없이 활동하고 일해온 나인데

느낌은 다리가 끊겨진 절벽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력서에 지나온 경력을 쓰는 부분에 연봉을 적는 란 앞에서

참 막막했다.

한 곳은 연봉 360, 한 곳은 너무 없어 보여서 연봉 720으로 올렸다.

언제쯤 NGO단체들도 4대 보험에 연봉 1200~ 1500은 적게 될 것인가?

우리 동네에만 그런가? ^^

 

나와 잘 맞고 내가 어울리는 곳인데 미처 내가 정보를 갖지 못해서, 내 이력서가 가지 않아서

인연이 안 닿을까봐 수시로 검색을 해 보고 있다. 요즘.

그런데 딸내미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컴퓨터만 한다고.

아, 어쩌란 말이냐 우리 딸아. 엄마를 이해해 주렴.

 

난 일하고 있는데 우리 딸에게 컴퓨터는 노는 것, 자기가 텔레비젼 보는 것과 같은 격으로 안다.

딸내미의 겨울방학은 시작되었고 이제 긴 시간 딸을 보살펴야 할 때이다.

취직이 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4학년까지는, 혹은 초등학교까지는 곁에서 돌봐야 할 것 같고

한편으론 초등학교 졸업까지는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 잡혀야 할 것 같은데.

딸이 6학년이면 난 43살이다. 딸이 20살이면 난 50살이다.

인생 100년이면 난 절반의 허리가 휙 꺾인 나이이다.

 

내 50살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게될까?

그러기에 이 10년이 나에겐 참 중요하고

앞으로 2-4년이 참 중요하다. 근데 딸도 중요하고.

 

어렵다. 복잡하고. 인생.

 

안놀아 준다고 불량엄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다.

근데 난 사실 어떻게 놀아줘야 할 지 어떻게 사랑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난 그냥 나 혼자 알아서 자랐는데.

못받은 사람이 잘 줄 지도 모르는 걸까?

이게 또한 무서운 대물림일까?

 

그러나 난 딸을 사랑한다. 외롭게 하고 싶지 않다. 서럽게 쓸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야기가 딴 곳으로 가고 있네.

 

다시, 다시...

 

어제 김형경에 '좋은 이별'을 읽었다.

그 책을 보면 내 상태는 '애도의 중간' 정도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지나온 삶의 켜켜에 묻혀 있던 사건들 속에 감정들을 다시 다 느껴보는

그런 애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고 춤을 췄던 것이다.

나 나름대로 애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지나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주 말짱한 상태는 아니고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게 모여있다.

그리고 아직은 나를 안아줘야 한다.

 

이 구직과정이 나를 상처내게 하고 싶진 않다.

열심히 살았고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 것이고

그런 내가 대견하고 살아줘서 고맙다.

 

설거지를 하다가 가슴이 먹먹하고 걱정이 아스라히 안개처럼 깔려오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바람이 되어 이 모든 것들을 날려보낸다.

 

선덕여왕 마지막회에서 아주 철학적인 대사가 나왔다.

나를 망치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내가 나를 지켜줘야 할 때이다.

 

지금 이순간 , 지금 여기, ......

간절한 소원, 절실한 기도 ....

신이여 허락하소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THIIS IS JUST MOMENT 인가 하는 노래가 흥얼거린다.

 

눈을 감고 이적의 '다행이다'를 샤워기의 따스한 물줄기처럼

내 머리와 온몸에 흘려보내고 싶다.

 

돌봄노동의 고된 세월을 보내고  경력단절의 벽 앞에 망연자실하게 있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과

그 와중에서도 공헌을 위해, 자신을 위해 원형탈모를 무릎쓰며 공부를 하고 있는 또순이 여성들과

경력없는 경력속에서 고된 사회적 노동을 하고 있는 진보와 개혁의 젊은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듣고 싶다.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예수님탄생과 술한잔

서방이 출근 12시간만에 들어왔다.

저녁이 좀 걱정돼서 딸내미를 통해 전화를 시켰더니 바꿔달라며 회 한 접시 하자고 한다.

 

오늘 아침밥 차려주며 돈 없다고  차비없다고 서운한 소리를 해서 보내서 내 맘도 안좋았다.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을 왜 이리 얘기하는 지, 그 핵심은 '너는 나를 생각하니?' 이다. 한마디로.

 

소주 한 잔 하며 얘기를 모처럼  했다.

3개월 작정으로 지금 나가는 장애인 세탁공장에 관리인으로 나가기로 했다.

원래는 내가 다닐뻔 했는데 조건이 안맞아 거절하고 남편을 추천했으나 남편도 거절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마 밑천이 다 떨어진 집안상황이기 때문이리라. 고마웠다.

그 뒤로 새벽밥을 차려주고 있다.

 

승리하고 싶단다. 남편이.

90학번으로 만난 우리는 이제 마흔에 접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아래서 용케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좀 더 세밀한 꿈과 비젼을 준비해야 하고

엄연한 자본의 논리인 이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재정토대와 구조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내가 말했다.

"우리 세대에는 승리할 수 없어. 다만 우리가 구상했던 사회, 꿈꿨던 그 진실을 아이들이

이어 갈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이 말도 다 마저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남편의 말을 든는 날로 해야 했다.

 

솔직히 나보다 두 살 어린 남편, 공식적으로는 한 살 어린 남편이

중년 마흔 살의 고비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렇게 예민한 여편을 둔 남편으로서는.....,.

 

 

후회없다. 내 삶에

아니, 후회 있다면 좀 더 내가 하고 싶던 꿈을, 소망을 실현 시킬 수 있다는 그 한 줄기는 좀 잡고

올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밤잠이든 새벽잠을 설칠지라도 .

.

그러나 '인자가 머리둘 곳이 없다'는 그 분의 말씀과 ' 내가 나를 따르려면 집과 부모를 버려라'했던

그 말씀처럼 사실은 다 버렸다. 버리기 어려웠지만 버렸다. 이 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후대를 위해서라면 내가 그 어떤 시인처럼 그저 모래 알갱이로 큰 담벼락에 상처를 내고 가는 그 역할이라나마 하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그것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다하고 싶었다.

그게 청년 예수, 역사속의 예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한 치도 내가 다른 구멍을 만들어놓고 싶지 않았다.

두 발에 칼을 꽂아 쓰러지더라도 꿋꿋이 서서 죽고 싶었다.

한자말처럼 더 이상 도망갈 곳 없이 배수진을 쳐서라도 내 안의 욕망을, 갖가지 욕망을 누르고 싶었다.

 

숨이 끊기는 그 날, 심장에서 마지막 숨이 다하도록 벌떡이며  심장의 피가 솟아오르더라도

차마 눈감지 못하고 죽더라도 지키고 싶은 만들고 싶은 새세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회, 이 자본주의는 그리 만만치 않고 인간의 마음은 내마음을 비롯해 참 다양하다.

 

나는 말했다.

 

"승리할 수 없을 수 있어. 우리 대에. 다음 세대가 중요해."

 

정말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날은 오지 않으려는가?

 

다 괜찮다고 하시는 하느님과

어제도 오늘도 용산의 참혹한 죽음을 구명하려는 신부님들과

승리를 위해 내딛는 사람들과

인간의 존엄과 자존을 위해 가는 사람들

 

 

세상은 참으로 만만치 않다.

 

 

남편이 일하는 곳은 지적 장애인들이 일하는 세탁소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감이 더 많아진 모텔과 호텔의 세탁물을 세탁하는 세탁공장이다.

 

술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새세상에 대한 꿈을 꾸되 세상을 잘 몰라서 겪는 수업료로 지난번 했던 '가게의 청산'여긴다고.

학생운동하면서 장애인이 돼서 민주화보상법으로 받은 돈은 기부했다가 이래저래 해서 가게를 끝으로 다 바닥난 밑천.

그래, 생각지도 않은 돈, 그저 인생의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꿈을 꾸는 남편이 '괜찮다고 말했다.

나도 괜찮다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해. 나도 그럴게. 하지만 딸은 잘 기르자. 그래야 우리의 뜻을 알겠지."

 

술을 걸치며 말을 하며 텔레비젼도 시청했다. 션과 탤런트 부부가 나왔다. 평상시 기부를 많이 하는 부부이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기부를 많이 할까?"

 

"돈이 많아서겠지?"

 

"아니야, 돈 많은 연예인이 한 둘이니?. 뭔가 사연이 있을 거야"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나도 입양하고싶어. 돈 있으면"

 

"그래, 그러면 좋지. 그래야지."

 

내가 말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 너무나 중요해 "

 

"그래"

 

남편은 그냥 괜찮은 사람이다.

다만 내 결핍과 내 트라우마가 그에게 간 것이겠지.

 

언젠가는 얘기하리라.

"너 자체로 안보고 내 아버지이길 원했던 것 같고 내 결핍을 채워주길 바랬던 것 같다고. 그래서

더 서운했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애쓰고 사는 사람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예수님 탄생한  이 날.

 

우리도 다시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 했다.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공책정리하다가 ...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이......

 

 


그대, 내가 시인도 아닌데

시를 쓰게 하는 그대.

부끄러워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한 말,

집게로 건져내서 마음 밖으로 내어 두고

식혀야 할 너무 뜨거운 그 말.

 

가나다라마바사......


 

내가 또 한없이

어린아이같이 되게 해 준 그대.

고맙기만 하네요.


이래서 사랑을 유치하다 그러나요?

뭐 유치한게 나쁜가요?

어린아이와 같다는 거

그냥 인간 그 자체라는 거겠지요.


언제 다시

이런 느낌

이런 눈부심

이런 따스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겠어요?

있는 그대로 말하겠어요?


다 당신을 만난 까닭이고

당신과 내 가슴속

그 오래된 거울 반쪽 맞춰 본 탓이죠.


거울 귀퉁이가 딱 들어맞지 않으면

또 어쩌겠습니까?

 

그저 맞는 만큼

솟아오르고

차오르는

사랑


 

그대로 느끼겠습니다.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떨리고 설레고 두렵고....

 

올해 2월 4일 시작한 내 휴가는 이제 4분기에 들어가고 있다.

 

1분기 -  쉬어야 한다, 놀아야 한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난 휴가중이라고 각성에 각성을 덧붙이며

            휴가의 의식화, 신체화에 주력했던 시기.

            실천으로 그냥 마냥 누워있기, 아무생각 없이 만화보기, 해 보려고 애쓴 시기.

           그러나 이미 번역강좌 3개월짜리와 국선도, 에니어그램 지도자과정을  시작한 시기.^^

 

2분기 -  서방의 사업정리와 갑작스런 발목뼈 이상으로  부부가 손가락 빨며 백수커플이 된  묘한 시기.

            연애 6년, 결혼 10년만에 처음 얼굴 맞대고 집에서 어슬렁거렸던 시간들. 활동하느라 사느라

            바빴던 것들, 소홀했던 것, 스쳐갔던 것들을 차분히 살펴보고자 노력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다

            는 걸 절감했던 시기.

            실천으로 한 3주 정도는 사이 좋게 지내려고 애썼고 밀린 숙제(?) 를 매일 열심히  했던 시기

                       

여름방학 - 모든 것을 멈추고 가족 셋이 친하게 지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자 계획했던 시기.

                그러나 가장 무력하고 힘들었던 시간.

 

3분기 -  1년이 얼마 안남았다고 화들짝 놀라며 이것저것 또 강의를 듣고 배우러 다니느라 바빴던 시기.

             무료동화강의, 글쓰기 공작소, 시민영화학교..... 정신이 좀 없당.

             드디어 거의 1년에 걸친 에니어그램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자축함.

             시민영화학교 분반에서 단편영화를 찍음( 드디어 출연. 한장면 -.-;;)

             창작활동이 아직은 내 단계가 아닌 듯. 발산, 퍼냄, 분출의 글을 써야 할 듯.....

            

아직도 내년 2월까지 4분기가 남았지만 여러 상황이나 내 전망,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얼추 갈 길을 정한 듯하다. 이게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열정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나 자신으로 사는 삶, 나답게 꽃피는 삶. 그 삶이 어떤 것일까? 어떤 길일까?

 

사회복지사를 기반으로 직장을 구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상담심리 대학원에 진학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

 

이런 대략의 계획을 세워보자마자, 내 가슴은 좀 죄어오고 내 머리는 뜨거워지고 있다.

출발선에서 신발끈도 제대로 묶지 않은 채 결승점을 노려보고 주먹을 불끈 쥐려고 한다.

내가.

지리산둘레길에서도 다음 도착점이 정해지면 둘레둘레 둘러보며 가기로 했던 생각과는 달리 무의식적으로 나는 앞을 향해 마냥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물론 시간은 없고 알아본 대학원은 모두 필기시험을 친다. 내년 봄에 시험이 있다. 시험없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학부전공과 다른 것이니 남은 기간 공부를 해야한다. 와우, 책값도 만만치 않구나.

 

엄마한테 야단맞아서 더 시무룩해졌다. 아빠가 가라고 할 땐 안 가고 돌아가시고 나서 둘다 놀면서 무슨 대학원이냐고 , 자식들 대학원까지 가르쳐놔도 용돈 10만원 주는 자식 없다며 호통이셨다.

그렇다.

대학교 4학년때 대학원가라고 아빠가 얘기했는데 나도 사실은 가고 싶었는데 사학비리로 얼룩진 학교상황이 만만치 않았고, 다들 노동현장에 투신하는 분위기에서  나혼자 대학원 간다고 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2학점을 펑크내고 학교에 남아 학생운동을 했다. 5학년, 6학년, 그리고 재야단체 상근자로

사회진출...

 

나름 내 종교적 신념과 청년의 양심으로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약간 아쉬움은 있다. 마흔인 지금 시점에서 보니 한 5년만 젊었어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겠다 싶다. 하지만 5년전이나 지금이나 뭐가 크게 다르단 말인가? 

그러니까 지금도 할 수 있다. 충분히. 문제는 정말 간절히 원하는 가, 끈기있게 공부할 의지가 있는가, 직장생활과 학업을 잘 병행할 수 있는 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물음에 어떻게 구체적인 답을 해가며 실천을 해 갈 것인가이다.

 

답답....막막.....

 

하지만 지금 결심하지 않으면 다시 5년 뒤에나 10년 뒤에 후회하겠지. 5년만 더 젊었으면 하고.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라는 것을 쓰면서 떨리고 설레고 두렵다.

아마, 막상 직장이라는 현장에 가면 더 두렵고 떨리겠지.

이력서, 자기소개서 없이도 내 자신이, 내가 살아온 삶이 신용 자체인 사회단체나 시민운동계가 아닌

일반 직장인으로 나를 써달라고 하는 것이 어떨 것인지 약간 우울감도 온다.

 

괜찮다. 괜찮다. 좌절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인생에서.

다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우선 대학원 진학을 해 놓고 뭐 나름 나도  애썼다고 말할 수 있겠지.

경제적 문제는 정 안되면 집  평수 좀 줄여서 이사가고

 

4분기 -  3분기를 잘 마무리 하고 취업과 대학원 시험공부에 일로매진하는 시간.

            딸내미 겨울방학이 최대 고비겠지. 두달 통째로 쉬는 대안학교의 장점이자 단점.^^

            마음속에 모든 것을 철회하고 눈 딱감고 남은 이 4분기를 제대로 쉴까? 하는 생각이

            유혹처럼 손짓을 한다. 근데 왜 자꾸 서방얼굴이 떠오르지?

           같이 쉬어도 왜 난 뭔가 미안함, 쪼여옴의 느낌이 드는 걸까? 어디에서 올라오는 감정일까?  

           

            대학원 5학기면 대충 3년 흐르고, 수퍼비전 받고 그러면 대충 5년 되겠지.

            45살. 그리고 공부 더 하면 10년, 50살. 50살, 50살, 50살이라....

            내 청춘은 가고 우리 딸도 19살 꽃다운 나이

 

            이 때쯤 내 꽃은 무슨 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나리오대로 갈 수 있을까?

 

            떨리고 설레고 두렵고......            

 

그 사이 글도 쓰고 동화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춤도 추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맘껏 만날 수 있을까?

 

그 사이 죽지는 말아야 할텐데.....^^

 

 

 

 

 

 

나에게...그리고 모든이에게

기다리는 믿음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느긋한 움직임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본래, 지체 없이 목적에 다다르려고
모든 일에 안달합니다.
거쳐야 할 단계들을 건너뛰고 싶어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 새로운 무언가에
이르려고 안달하지요.
하지만 불안정한 단계들을 거쳐야만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은
모든 진보의 법칙이랍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당신과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생각들은 서서히 성숙해갈테니,
그것들이 자라도록 쓸데없이 서두르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 꼴을 갖추도록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선한 의지 위에 활동하는 은총과 상황들이
당신에게 내일 이루어 질 것을,
오늘 할 수 있는 듯 강요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느님의 새로운 영(靈)이
서서히 당신 안에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주님께, 그분의 손길이 당신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믿음을 드리세요.
그리고 모호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당신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받아드리십시오.

- 떼이야르 데 샤르뎅(예수회 신부)

Patient Trust

Above all, trust in the slow work of God.
We are quite naturally impatient in
everything.
To reach the end without delay.
We should like to skip the intermediate stages.
We are impatient of being on the way
To something unknown,
Something new,
And yet it is the law of all progress
That it is made by passing through some stages of instability
And that it may take a long time.

And so I think it is with you.
Your ideas mature gradually
Let them grow,
Let them shape themselves,
Without undue haste.
Don't try to force them on,
As though you could be today what
time(that is to say, grace and
circumstances acting on your own
goodwill) will make of you tomorrow.

Only God could say what this new spirit
Gradually forming within you will be.
Give Our Lord the benefit of believing
That his hand is leading you,
And accept the anxiety of feeling yourself in suspense
And complete.

Pierre Teilhard de Chardin, SJ.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실랑이와 실갱이 (펌)

실랑이와 실갱이 : 자주 헛갈리는 낱말

세 번만 힘써 말하면, 헛갈리지 않는다.
세 번만 힘써 말하면, 또렷하게 새긴다.

 

실랑이는 실랑이질의 줄임말이다. 실랑이질은 남을 시달리는 짓을 가리킨다. 남을 시달리는 짓이란,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가리킨다.

  실강이라는 말은 없다. 실랑이를 헛갈려 실강이 또는 실갱이로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갱이살쾡이의 사투리이다. 실랑이와 아주 다른 말이다.
 
실래이라는 말이 있다. 실래이는 실랑이의 사투리이다. 실래이와 실갱이는 모두 경상남도에서 쓰는 사투리이다.

 
승강(昇降)이라는 말이 있다. 실랑이와 비슷한 낱말로서, 서로 제 생각과 말을 내세우며 굽히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서로 자기 생각을 내세워 굽히지 않으며 옥신각신하는 일이다. 승강이질도 같은 말이다.
 
싱갱이라는 말이 있다. 승강이를 북한에서 싱갱이라고 한다. 싱갱이는 다툼이나 겨룸에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힘쓰는 일을 가리킨다.
 
옥신각신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다투는 일을 가리킨다. 그 뜻이 실랑이와 비슷하다.
  시애(撕捱)라는 말이 있다. 서로 자기 생각만을 내세워 뜸을 들이며 늦잡도리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일을 결정하지 못한다.

  실랑이, 실래이, 다툼질, 말싸움, 승강이, 싱갱이, 시시비비, 설전, 시애가 모두 비슷하면서 달리 쓰는 말들이다. 하지만 실강이는 없는 말이고, 실갱이는 다른 말이다. 헛갈려 쓰지 말자.

  실랑이를 잘 알았으면, 오늘은 아래의 <
>도 새기자. 처음만 쑥스럽지 자꾸 쓰면 쉽다.

  손수짜기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가 재료, 부품을 사서 손수 만드는 일을 뜻하는 외래어인 다이(DIY, Do it yourself.)의 다듬은 낱말.(국립국어원)
  손수굽기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가 빵, 과자의 재료로 집에서 손수 구워 먹는 일을 뜻하는 홈베이킹(home baking)의 다듬은 낱말.(국립국어원)
  바특이라는 말이 있다.

바특하다로도 쓴다. 두 대상 또는 물체 사이가 조금 가깝거나, 시간 또는 길이가 조금 짧거나, 국물이 적어 톡톡할 때, 쓰는 말이다.

  세 번만 힘써 말하면, 헛갈리지 않는다.
  세 번만 힘써 말하면, 또렷하게 새긴다.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눈에 들어오는 그림과 글(펌)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낙원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에로스는 이런 방식으로 프쉬케를 통제했다.

여성은 일정 시간 동안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 혹은 내면의 신 아니무스의 지배하에 살아간다.

에로스가 만든 낙원에서 의식적 깨달음에 대한 욕구는 침묵한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마침내 여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의 지배에 도전하여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지켜보겠다"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은 한 여성의 내면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기가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런 선포를 한 결과로 여성은 견디기 어려운 심한 외로움에 빠진다.

이 외로움이 두려워 통제상태, 낙원에서의 삶이 오래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알고 나면 아니무스는 더 이상 그 여성의 심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아니무스와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단 관계를 시작하면 더 이상 아니무스에게 끌려가지만은 않는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에로스의 본 모습을 궁금해하는 의식의 등불을 켜지 않는다면

프쉬케는 완전한 무의식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무의식 상태'란 불가능하다.

 

프쉬케의 두 언니가 제안한 등불과 칼의 상징에 주목하자.

만일 여성이 자기 안의 빛과 칼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깨닫는다면 살아가는 동안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여기서 심오한 법칙 하나가 있다.

여성은 등불은 사용하되 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칼은 개인적인 용도로 써야한다.

명쾌한 식별을 위해서나, 애매모호한 것을 잘라낼 때만 사용해야 한다.

칼은 단절을 가져올 뿐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등불은 이용하되 칼은 사용하지 말라는 법칙은

남성의 아니마에게도, 그리고 남성이 만나는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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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들어왔다. 그림이

그림.

많이 보고싶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를 읽고

 

우연히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제목이 눈에 쏘옥 들어왔고  나오는 여인들이 무지 궁금해서 덥석 집었다.

 

내 수첩 한 귀퉁이에 적힌 글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읽는 내내 내 안에 미친년들이 어슬렁 거리는 느낌이 든다.

떼로 몰려 오려고도 한다.

어떤 녀 ㄴ 은 쭈그려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 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책소개 )

 

이 책은 여성문화운동 1세대인 사진작가 박영숙, 여성운동가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 실리콘밸리의 작은 거인 CEO 김태연,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만든 극작가 이브 엔슬러, 신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현경,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가톨릭 사제 빅토리아 루, 뉴욕 맨해튼에서 한국 불교를 포교하는 묘지 스님, 캐나다 이민세대인 설치미술가 윤진미, <이프>를 창간한 언론인이자 시인 유숙렬 등과 같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국내외 여성 멘토 아홉 명의 인생 편력과 그녀들이 전하는 행복한 인생을 위한 지혜와 철학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국내외 여성 유명 인사들의 인생 역정과 인생 철학,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한 권의 책에 모았다. 그녀들은 모두 다른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고 다른 인생길을 걸어왔으며 다른 인생관을 갖고 있지만 한결같이 인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건강한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끝까지 간직한 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생에 대한 한 여성의 진지하고 절실한 질문의식이 단초가 된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우리 모두의 실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지닌 여성 멘토들의 전언, 그러나 어렵지 않고 평범하여 도리어 특별한 힘과 깊이로 가슴에 와 닿는 가르침들, 밑줄을 그어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픈 보석 같은 문장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황당한 경우와 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가 성격이 거칠면 남자답다 격려 받지만 여자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성격이상’으로 낙인찍힌다. 남자들이 조리있게 한 문장씩 분석하면 논리적이라고 말하지만 여자가 그럴 때면 ‘따박따박 따지기 좋아하는 피곤한 여자’로 손가락질 받는다.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 마녀, 나쁜 여자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날 때부터 미친년은 아무도 없다. 페미니즘의 필요성은 미친년으로 몰려보면 안다.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 소리를 듣는다는 건 자신의 길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진화의 증거이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친년이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현실과 맞장을 뜨며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올라갔다 추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오직 하나고, 나는 오직 나’일 수 있는 정체성이 있다면 미친년 소리는 축복의 메시지다. 내가 누군가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면, 멈추지 말고 그 길을 가도 좋다. 문제는 미칠 수 있는 열정과 용기가 우리에게 있느냐이다.(프롤로그 중에서) “인생에서 한 번쯤 미친년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

2009년 11월 28일 토요일

숙녀보내기

어제 집에 오는데 내 안에서 누군가가 느껴졌다.

웅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흐느끼고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실은 얼마 전부터 느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멀리 그 여자가 보인다.

서 있다. 그 여자.

땅을 찾듯 축 늘어진 수양버드 나무아래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 여자,

 

 

 

 

 

 

 

혹시 잃어버린 걸까? 아주 큰쪽지로 줄 것을.

 

시간이 한 참을 더 지나갔다.

 

이건 하나님의 뜻? 스무살 처녀는 어떻게 할 지 몰랐다.

가슴구멍엔 슬픔이 차오르고 머리엔 익숙한 메세지들이 떠 다녔다.

존재감 없음, 넌 이래도 되는 사람. 뭔가 많이 부족한 사람. 함량미달.....

수양버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괜찮아, 내가 왔어. 나야, 나. 너인 나. 마흔의 나.

많이 기다렸어? 슬펐어? 외로왔어?

 

괜찮아. 스무살땐 이럴 수도 있는 거야. 다 어린 거야. 미숙하고.

네 탓이 아니야. 이제 알았잖아.

 

너 괜찮은 아이야. 매력있는 숙녀야. 지금 있는 그대로 괜찮아.

이리와 안아줄게. 울고 싶으면 울어. 하지만 이젠 너에게 뭐라고 하지마. 사느라고 애썼어.

 

이렇게 괜찮은 숙녀로 커준 것도 고마워.

네 안에 있는 그 꼬맹이가 더 슬퍼해서 그래. 이제 집에 가자.

 

 

 

 

 

 

 

 

 

마음껏 춤을 춰봐.

입을 크게 벌리고 목을 길게 빼고 오선지처럼 길게 노래를 불러봐

 

있는 그대로 너는 괜찮아.

네 빛깔대로 네 꽃을 피워.

너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스런 존재야

 

사랑해.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기도

 

기도

하느님안에 머무르는 시간. 나와 내 어린시절 나와 하느님이 만나는 시간.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이 상처들을 값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받은 그곳에서 나 자신의 마음을, 나의 진정한 본질을 만난다.

 

내가 상처를 받은 그곳에는 나의 보물도 있다. 그곳에서 나는 진정한 자아와 나의 소명을 만나고 나의 능력도 발견한다. 상처가 있는 의사는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기'가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에게 상처란 하느님을 경험하는 본질적인 장소이다.

 

불안의 밑바닥에서 오히려 나는 내적인 평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다.

거기서 불안과 함께 나를 만나 주시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나와 불안은 그분의 선한 손안에 함께 있다.

 

 

"나는 네 곁에 있다. 강해지려 너무 애쓰지 마라.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 너는 나에게 소중하다. 그런 너를 나는 사랑한다."

 

아멘

 

- 안셀름 그륀 <삶의 기술> 중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켜라'중 일부 -    

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아이들의 사생활Ⅱ- <sex talk, 미디어, 형제>편을 보고

아이 학교의 부모 책모임에서 '아이들의 사생활 2부'를  전체부모가 숙제로 보기로 제안해서

오늘 봤다. (숙제로 한 것은 자칫 아빠들이 이런 교육에 빠지기 쉬워 틈새를 강력하게 메우기 위한 전술)

 

1부의 내용도 충격적이고 유익했지만 2부의내용 또한 고맙기까지 한 우리 아이들의 얘기이자 부모의 얘기였다.

 

<형제> <게임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중독><성교육 -sex talk>

 

<미디어>편은  딸과 서방, 나 이렇게 셋이 보고 <형제>편은 그 사이 술약속인듯한 전화를 받고 나간 서방땜시 딸과 내가 보고 <성교육 - sex talk> 는 고맙게도 딸이 잠이들어서 나만 혼자 봤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이렇게 부모가 크는 과정인 것 같다. 부모인 우리 안에도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와 내 아이가 부딪치기도 하는게 가족이고 양육인 것이다.

 

진작 이런 교육을 받고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부모가 서로를 대했다면

좀 더 우리 모두가 한 발짝씩은 자유롭고 깊이있는 소통과 공감을 했으련만

 

지금이라도 괜찮고 늦지 않았다.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말처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순위 맨 꼴찌인 부모가 다시 아이들에게 언제라도 가슴에 안겨

맘껏 울수 있는 그런 보금자리이자 비빌언덕이자 쉼터가 되야 할 것 같다.

 

부모는 부모대로 경쟁의 세상에 떠 밀려 외롭게 뛰고 있고

아이는 아이들대로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경쟁의 전쟁터에 내몰려 있다.

 

아직은 어린 2학년이라 그런 지 몰라도

가끔 내가 처음 아이를 낳고 가슴에 안았을때 그 마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는  아이가 존재 그 자체로 선물이라는 기뻐했던 그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지 않나 반문해본다.

 

최소한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 얘기 나눌 그 단 한사람'이 없어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가치있다라고 여기는 자존감만은 꼭 키워줘야 한다.

 

토요일 아이 학교 총회가 있어 갔는데

운영위원장 말씀이 한 해 2000명의 아이들이 자살을 한다고 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충격이다.

끝없는 경쟁의 끝은 결국 목숨줄을 내놓는 지경까지 가는 것인가.

못나서 죽은 거라고 하기엔 그 푸릇한 청춘이, 생명이 너무 귀하고

우리 어른들이 너무 비겁하고 잔인하고 무책임하다.

 

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 지 '태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우리들 태도를 성찰하지 못하고 태도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없다.

먼저 깨닫고 알게 된 부모들이 소박한 공동체든 가족모임이든 부모모임이든

아님 부부사이라도 이런 내용을 나누고 함께 교육을 받고

뭐 그래야 하지 않을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영상자료였다.

진작 알았으면 내 삶 또한 좀 더 자유롭고 건강하게 열려있었을텐데 아쉽기도 하다.

 

한 번 보시라.

아이들에 대한 믿음도 우리 안에서 함께 자란다.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올 한 해동안 만난 매력남들...

이러저러한 강의를 들으며

이러저러한 책들과 만나며

알게되고 매력을 느낀 남자들이 있다.

 

거침없는 생명력, 신성을 향한 숭고함, 진리와 호기심에 대한 몰입, 에로티즘의 미학,

소박한 평화, 행동하는 만년 청년의 신앙, 가슴을 뚫는 눈빛과 섹시함,

바람이 느껴지는 고독함과 조각같은 옆얼굴선....

 

니체, 융, 구스타프 클림트, 안셀름 그린 신부님, 문정현신부님,

아인쉬타인, 이병헌, 소지섭.... ㅎㅎ

 

니체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변주, 하늘에 삿대질하는 열정, 속살을 헤집는 독설같은 말...

 

인간의 내면을 살피고 무의식의 커다란 빙산밑 부피를 감지했고 중년의 변화와 영성으로 이어지는

따스한 심리학자 융.

 

90도로 꺾인 고개가 파르르 떨리는 성적 환희를 느끼해 하는 고혹적인 에로티시즘의 미학, 클림트.

 

해명되지 않는 절대적 인간고독의 지점이 바로 신성이며 그곳이 하느님과 만나는 곳이라고, 그래서 마음의 한 방을 고요하게 비우고 침묵속에서 신을 만나는 시간을 마련하라고 알려준 신부님들....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없는듯, 사람으로 안보고 철거물로 보는 토건주의 정부의 만행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과 자식들과 함께 한 예수님같은 용산의 문정현 신부님.

 

유머와 진리, 해학과 과학의 연결을 느낄 수 있는 귀여운 백발의 아인쉬타인, 그의 상상의  세계

 

스치면서 느끼는 이병헌의 숨막히는 초콜릿근육과 레이저처러 내 눈을 뚫는 눈빛,

 

긴 여행을 함께 하고픈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다니고 싶은, 바람이 느껴지는 소지섭의 얼굴, 그 옆선.

 

올해 내 가슴을 울리고  내 눈에 남았고 내 머리를 작동시켰던 남자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났던 남자들...ㅎㅎ

 

한 해를 마감하는 계절인 만큼 요즘 만난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글 한 대목을 적는다.

 

 

- 너의 길을 만들어라 -

 

우리는 이렇게 자문한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너의 뿌리는 무엇인가?  너의 생각과 감정에는 무엇이 각인되어 있는가?

 

이런 긍정적인 자극은  계속해서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앞서 간 사람들에게서 얻은 것을,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생각들에서 얻은 것을 돌아보아라, 마찬가지로 너 자신을 통해서도 새로운 가르침이 빛을 발할 것이다.

하느님은 영원히 새로우신 분이다. 그분도 너와 함께 새로 시작하셨다.

그분은 너를 통해서 새로운 말, 새로운 생각, 새로운 해답을 이 세상에 보내기를 원하신다.

영원히 새로우신 하느님이 너에게 삶을 주셨듯이, 그렇게 새로이 너의 삶을 만들어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근원이 되도록 하여라.

자신의 삶을 살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너의 삶은 쳇바퀴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네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하기위해서, 천사들도 너의 정형화된 쳇바퀴를 부수어 줄 것이다.

 

너는 상처투성이의 어린 시절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바퀴는 부서졌고 너는 자유다.

이제 하느님이 너에게선사하신 지혜로 새롭게 살아라.

 

                                                                                                                              아멘.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느닷없는 선물의 기쁨 ^^

내 이성의 판단기능이 주로 회사의 상업전략으로만 여겨오게 한   '~~데이, ~~ 날 기념 선물'

발렌타인데이하고 약간 헷갈리는 빼빼로데이.

 

난생처음 내가 받고 보니 이성은 어디가고  감성만  화알짝 핀 해바라기 되더이다.

해바라기 둥그런 얼굴에 노란 꽃잎이 일순간 뚜르르르 돌아가며 돋아나며 피는 느낌 ^^

해바라기 물관에는 사이다 탄산 알갱이들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캬~

 

고급스럽고 예쁜 초코렛 상자.

이래서 갑작스런 선물, 이벤트을 하는 구나.

주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받는 기쁨은 존재감의 충일.

아, 이리 선물하나에도 존재감까지 가는 구나. ㅎㅎ

 

선물의 종류와 상관없이

내가 상대방의 관심안에 있다는 것,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충만감이 두 손 두 팔에 풍선을 묶어 주는 것이겠지.

더구나 코드가 맞는 상대방이라면 한 참 흔들어 놓은 사이다 상태로 까지 ^^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내가 한 개 먹고 우리 딸내미가  한 개 먹었는데 

'맛있다. 이거 나머지 전부 내꺼' 한다.

 

두 여인이 맛있게 먹은 초콜릿.

어찌 달콤하기만 하랴, 사이다 맛이더이다.

잊지못할 빼빼로데이...

 

 

 

 

2009년 11월 9일 월요일

새식구 예돌이, 예순이 (울딸은 예현이^^)

바다속을 탐사하는 일을 하는 친구의 남편이자 친구인  박박사가 출장을 마치고 왔다. 언제 또 태평양 건너갈 지 모르기에 그 집 가족이랑, 아는 언니네 가족이랑 우리 가족이랑 토요일날 하루 강화도로 소풍을 갔다.

원래 토요일날은 글쓰기 꼬뮨에 가서 하루 웬종일 공부해야 하는데 마침 교수님이 못온다고 오래전에 공지를 해서 나도 맘편히 소풍길에 나섰다. (알고보니 이 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빠졌다고 한다. 담주 토요일이 좀 겁난다. 숨죽이고 모른척 하고 티안내고 있어야지)

 

금요일날  에니어그램 연구소에서 발송작업을 도와주고 뒤풀이까지 하고 오느라 집에 늦게 들어갔더니  서방이 삐쪄있었다. 그래서 토요일날 아침에 소풍가자고 하니 자기는 못들었다고 하면서 안간다고 했다.

분명 지난주에 내가 얘기를 했는데 전혀 못들었다고 한다.

내가 소풍가는 것과 나에게 화난 것을 분리했으면 좋겠다고 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얘기했지만 역시나 안간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딸과 나만 가려고 간식준비를 해서  우리를 태우려 온 다른 집 식구들을 맞으러 주차장으로 나갔다.

남편과 동갑인 박박사와 아는 언니가 소풍 같이 가자고 자꾸 설득을 했다.

그랬더니 밤 8시까지 오기로 했다며  남편이 차에 탔다.

확실히 남자들은 이른바 '똥꼬 살살 간지럽히기' 전술이  '맞짱뜨기' 전술보다 잘 먹히는 것 같다.

 

날이 환하지는 않았지만 나들이는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어른 6명에 아이 5명이 카렌스 한 대에 찡겨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바람도 맞으며 소풍을 떠났다.

강화도에 도착하니 5일장이 열렸다. 시골의 재래시장은 처음이었다. 강화의 명물인 밴댕이를 늦은 점심으로 먹고 시장구경을 했다.

아 그런데 강아지, 고양이, 토끼를 팔고 있었다.

박박사네 토끼 한 마리가 강아지에게 머리를 먹혔다고 했다. 헉! 그래서 다시 토끼 한쌍을 사야 겠다고.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하는 우리 딸은 꿩대신 닭이라고 토끼를 사자고 했고 나도 토끼를 직접 보니 너무 귀여워서 그러자고 했다. 남편은 반대했지만 다른 집 식구들도 있고 그래서인지 아주 강력하게 막아서지는 않았다. 다만 토끼 키우는 몫이 자기일이 될 것이라며 걱정을 했다.

 

그리하여

애완용 토끼 한 쌍이 우리집에 왔다. 눈화장을 한 것처럼 눈 주변에 까만 테두리가 있다. 한 놈은 코에 점도 있다. (좀 떨리고 무서워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성감별은 안해봤다.)  감귤상자에 신문을 깔아주고 창문도 만들어 줬다.  맨처음에는 서로 몸을 붙이고 움직이지 않더니만  창문으로 나와서 진짜 토끼처럼 깡총깡총뛰어다닌다. 싱크대 밑에랑 소파밑으로 숨어 들어가곤 했다. 손바닥만해서 자칫 집에서도 잃어버리거나 밟을 수 있기에 잘 지켜봐야 한다. 딸내미가 당근과 양배추를 잘라서 줬다. 잘 먹는다. 배추잎도  잘 먹고 .

좀 친해진 것 같다. 눈을 맞추며 나를 알아보기를 바랬다. 내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를 스다듬으면서 전해줬다. 잠깐 앞 발을 들기도 했다. 진짜 토끼같다. 진짜 토끼지만.

이로서 우리집에서 기르는 생명체는 구피가족 열마리, 토끼 두마리, 아 그리고 남자 어른 인간, 새끼 여자인간도 있구나.

나는 이구아나랑 거북이도 기르고 싶다. 거북이는 진짜 크게 길러서 여름 휴가때 튜부 대신 갖고 놀고 싶다. 

자꾸 조그마한 마당이라도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 앵무새도 한 마리 키우면 재미있을 것 같다.

 

토끼는 말이 없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키우기 좋은 동물이라고 한다. 근데 아주 가끔 쥐같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난 이로서 2녀 1남의 엄마가 되었다. 아니 2녀 2남의 엄마이지.

큰 딸이 동생들을 잘 돌보기를 기대한다.

큰 아들이 말을 잘 듣기를 기도한다. 쫌~~~ ^^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느낌

* 누군가 맘에 들고 호감이 가고 좋아지면 드는 여러 느낌들 ^^

 

- 몸안에 사이다가 있어서 탄산수포가 쏴아 하고 올라오기도 하고 뽀글뽀글 한 알씩 올라오기도 하는 듯..

 

- 한떨기로 모여있는 조그마한 꽃들이 바람결에 마구 흔들리는 듯한...

 

- 갑자기 아주아주 환한 노오란 태양빛이 세상을 밝게 해주는 듯한.....

 

- 5월 눈이 시리게 흰 벚꽃잎이 우리들 머리위로 온통 쏟아져 내리는 듯한....

 

- 한참 달궈진 후라이팬에 마아가린을 문질렀을때 지글지글 녹아들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손끝에서 심장까지 녹아서 스며드는 듯한.

 

- 중학교때 고등학교 국어선생님한테 가사시간에 실습했던 핫케익 갖다주면서 엄청 고민했던 것같은

  간이 콩알만 해지고 나는 개미만해지는 듯하....

  (오지랍도 넓지, 한참 왔다갔다 하다가 다 식어빠졌지...드셨기는 하셨을 라나...^^)

 

- 내 몸 테두리에 자기장이 생겨 ET처럼 어디든 손끝이 닿으면 불이 켜질 듯한....

  상대방의 몸테두리에는 야광띠가 생겨 어디에서든 눈에 띄고 열감도 있어 훈훈하기까지 한......

 

-상대방 한마디에 백가지 생각 천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며 마음으론 울고 웃는.....

 

- 마음에 드는 순간 마음에 눈이 하나 생기는 듯한 ...... 내 눈은 다른 곳을 봐도 내 맘의 눈은 상대방을 보고 있는 듯한......

 

- 등에 업혀서 노래를 들으며 집에 가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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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상 : 감성발달 지체

※  진단 : 감성이 중학교 1학년에서 멈춘 듯. 치료요함. 성장프로그램 연수 추천 ^^

 

내 안에 함께 살고 있는 3살, 6살, 9살, 13살, 16살....20살,.....어린아이, 청소녀, 아가씨.

시끄러운 사람들.... 얘기 들어주고 주욱 데리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 ^^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시동생 장가 보내기

둘째 시동생을 추월해서 막내 시동생이 장가를 갔다.

토요일이 예식날이었지만 큰며느리이자  토요일 전까지는 유일한 며느리인 나는

큰댁 큰고모의 언질을 받아 축하손님들 방문과 투숙에 대비한 음식들을 마련하기 위해

목요일 오후 딸내미 학교 마치자마자 금요일날 결석을 무릅쓰고 서방과 함께 KTX에 몸과 짐을 실었다.

 

이 참에 첨으로 바퀴달린 여행가방도 사고 딸내미 예쁜 옷도 몇 벌 사주었다.

서방은 스스로 알아서 구두를 사둔 터라 미안했는지  나보고도 뭘 고르라고 했다.

나는 (자원의 순환을 위해^^) 구제 상품점에 가서 7만원어치 옷과 신발을 샀다. 웃옷 2벌, 부츠 1개, 머플러 1개, 서방 잠바 1개. 더 사고 싶었지만 딸내미 학교 월사금으로 쓰려고 묶어놓은 돈을 헐은 것이라는 걸 알기에 여기까지..... -.-

 

저녁에 도착해서 신접살림 차린 새 집에 가보고 다음날 아버님, 어머님, 장가 안간 시동생, 남편, 딸을 대동하고 재래시장과 농산물 시장, 대형마트를 돌면서 장을 봤다. 시간이 좀 있으면 어머님댁 복잡한 살림을 정리할 수납장까지 사고 싶었으나 이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간단한 세간 살이만 샀다. 확실히 사람은 가까이에서 살아봐야 좀 알 수 있다. 아버님이 그리 성격이 급하시고 목소리가 크신 지 몰랐다. 몇 번 같이 온 일행이 아닌 듯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었다. 어머님이 힘드시겠구나.... 우리 서방이 왜 화통삶아 먹은 소리를 내는 지 알겠구나..... 싶었다.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정신이 없다. 그리고 내 입에서도 남도 사투리가 맴돈다. 나도 흥분하거나 들뜨면 소리가 커지긴 하는데 여기는 일상생활이 그렇다. ^^

 

결혼 축하를 위해 미리 하루 전에 오셔서 주무신 분들은 5명, 방문하신 분들은 3분(아침 7시에도 오셨다. 이날이 뭐 결혼하기 좋은 길일이라 몇 탕씩 참가해야 하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여섯명의 고모와 고모부, 큰어머님, 아이들.

그래서 약 50여명의 식구들이 축하하면서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음식준비야 뭐 별로 없었다. 다만 끼니마다 식사를 차려야 했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는 것. 술상을 봐야 했다는 것.

 

결혼식 당일은 아침 일찍 미장원에 가서 스프레이 범벅의 힘으로 머리를 올렸다. 예전에 스프레이 없었으면 어떻게 머리를 올렸을까나.... 약간 거추장스럽지만 한복을 입고 식장에 도착해서 어머님 옆에서 어른들을 맞이했다. 언뜻 본 적이 있는 어르신과 처음 보는 분들. 어머님 옆에서 살며시 웃으며 서 있는 역할.

 

결혼식이 시작되고 식장에 앉아서 세째 고모랑 잠깐 얘기를 나눴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 하실 거예요?"

"아니, 미쳤어. 결혼 안해"

"그렇죠? ^^"

 

시동생 결혼식날 고모와 며느리가 나눈 얘기로는 좀 씁쓸하지만 대부분 여자들의 공감인 듯. ^^

 

폐백때 신랑신부 절도 받았고 덕담도 해줬다.

'일주일에 하루는 둘이 꼭  시간을 내서 만나요'

 

지금이야 '당근'같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살다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숨결을 느끼고 그 사람의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며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라.

까이고 까이고 또 까여도 마지막까지 얼굴 맞대고 부둥켜 안고 있는 양파 속심처럼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삶이리라.

부족해도 안아줄 수 있는 영원한 내 편을 찾고 싶지만 남편은 많이 남의 편.^^

 

상대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상대의 결핍을 이왕이면 채워줌으로서 그 안에 새로운 속살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음 단계로 성장해 가는 그런 인생을 나누는 부부로 살아가길 기원한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자기의 성장이 없이는 타인으로 채워지는 것은 늘 목마르고 굶주리고 외롭다는 것.

자기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서로 도울 뿐, 내 꽃은 내가 피워내는 것.

 

이 말을 어찌 지금 이해하리. 콩깍지 안경을 쓰고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신랑과 신부랑 있는 것을

인생이란 예습이 별 효과가 없다. 선행학습은 하면 좋지만 참 얄궂게도 일일이 다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과목이다.

 

하지만 결혼이란 지극한 성장의 커리큘럼이고 일면 득도의 과정이며 자아성찰의 결정판이다.

 

싹싹하고 부지런한 우리 도련님, 잘 살 것이다.

 

결혼식장에 데리고 와야 믿어주겠다는 아버님 걱정이 이로써  종식되었다.

좀 화려한 연애경력이 뭔 흠이랴, 오히려 부럽네. 다 시절인연이고 사람공부를 한 것이다.

 

잘 살드라고 막둥이 시동생. 그리고 동서.  

 

 

 

 

     

'정크푸드'는 부실음식(식품) - 펌

정크푸드’는 ‘부실음식(식품)’으로

  국립국어원은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말터, www.malteo.net)’ 누리집을 통해 ‘정크푸드’의 다듬은 우리말로 ‘부실음식(식품)’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정크푸드’란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즉석식(패스트푸드)과 즉석 식품(인스턴트식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즉석식이나 즉석 식품은 별다른 조리가 필요 없이 원할 때 바로바로 먹을 수 있고, 다진 고기나, 치즈, 콜라 등 당분과 나트륨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바쁜 직장인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들은 특히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케이크, 과자, 아이스크림 등 설탕 함유가 높고 영양가가 낮은 음식을 먹을수록 자율신경계를 흥분시켜 통제력을 잃게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물 대신 콜라를 마시는 이른바, 콜라 중독인 아이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즉석식과 즉석 식품에는 지방과 인공 첨가물이 많이 들어 있어 열량은 매우 높은 반면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소 등의 성분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성인병의 주원인을 이와 같은 고열량의 음식들을 섭취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정크푸드에 대한 광고를 규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며, 이러한 이유로 업체들은 정크푸드가 유해한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최근 유기농 채소 및 식물성 지방을 이용하여 제조·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말터 누리집에서는 ‘정크푸드’를 대신할 우리말을 공모하였습니다. 누리꾼이 제안한 말 가운데, 원래 의미를 잘 살리면서 우리말의 단어 구성에 맞는 단어를 대상으로 공모와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부실음식(식품)’, ‘허섭음식(식품)’, ‘허접음식(식품)’, ‘부실먹을거리’, ‘허섭먹을거리’, ‘허접먹을거리’ 등 모두 여섯 개의 단어를 후보로 투표를 벌였는데, 모두 1,763명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투표 결과 ‘부실음식(식품)’이 47%의 지지를 얻어 ‘정크푸드’를 대신할 다듬은 우리말로 결정되었습니다. ‘부실음식(식품)’이 ‘정크푸드’를 대신하는 우리말로 완전히 정착될 수 있도록 널리 써 주시기 바랍니다.

- 자료 정리: 김형배(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2009년 10월 9일 금요일

아직 레일을 탈 시간은 아냐!

어느 문학가인가가 말했다지, 하느님은 새벽 3시부터에 움직이신다나.

근데 오늘은 좀 늦잠을 주무신 것일까, 아님 내 복잡한 맘을 아시고 더 재우신 것일까나.

세상에 정말 한번밖에 없는 것들 중 정말 하나가 바로 '오늘' 이라는 시간.

나는 이 아침에 눈을 떴다.

내 숨은 붙어있고 오늘이라는 아니, 정확히는 지금이라는 시간까지 허락돼고 있다.

이유가 있을테고 난 이 소중한 시간, 사랑해야 할 것들과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향해 진정으로 다가가야 한다. 될 수 있으면 후회없이 언제든 눈감을 수 있도록 사랑하고 열심을 다하고.

아무리 발버둥치며 핏대를 올리고 살아도 바람처럼 숨결을 거둬가시면

낙엽처럼 바람을 따라가야 하리.

 

아직도 충분치 않은 걸까?

내 시선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가 있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허겁지겁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어하고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하고.

 

"시간이 거의 다 돼 간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이 말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이것저것 주머니에 가방에 머리속에 입속에 집어 넣고 있다. 허겁지겁.

 

몸이 쉬고 마음이 쉬고 영혼이 쉬고

내가 누구인지 들여다보고

천금같은 우리딸과 느긋한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시간들.

 

어떠했는가?

 

아직 내 가슴에 얹혀져 있는 얼음은 다 녹지 않았고

이제 마비됐던 감정은 살아나 제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저 구석에 처박힌 욕구들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하고

바지가랑이를 끌고 어디로 가자고 한다.

아직 잠자고 있는, 존재조차도 못 느끼는 내안의 나도 있으리라.

 

그래도 숨을 쉴 수 있고

몸안에 피가 도는 것 같아서 좋고 또 좋다.

 

다만, 내 마음만큼이나 머리속 수 많은 계획만큼이나 실제 함께 하지 못했던

딸내미와의 시간들, 주고픈 사랑이 미안하다.

지진때 흔들리는 유리창처럼

이리저리 옮겨가듯 점멸하는 인터넷단자의 불빛처럼

간절히 양육자의 사랑을 갈망하던 나를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딸아이도 노란 셀로판종이로 세상을 들여다보던 그 아이이지않을까 걱정이 든다.

 

아직 시간은 있고

언제까지라도 나는 그림자처럼 아이를 사랑하리라.

지금은 직접 주는 내 숨결이, 내 손길이, 내 눈빛이

그 아이가 살아갈 에너지와 뱃심, 뜨듯한 아랫목으로 자리잡게 할 때이다.

한번은 이런 충만한 사랑에 잠겨 놀고 누릴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기억하는 따스한 존재.

어렵고 힘들어도

혹은 실재하지 않더라도

힘이되는 의지가 되는 와서 쉴 수있는 그런 존재가

돼 주고 싶다.

 

지금은

그리고 한동안은 그런 시간이, 친밀한 교감이, 직접적인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리라.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사랑하는 그 만큼

그저 사랑하자.

어떤 포장도 필요하지 않아.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나를 믿고

내 안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자.

 

이러라고

늦은 시간이지만

날 깨우셨나보다.

 

그래

 

얼른 밥차리자.

울 딸 학교보내야지.

 

두려움없이 생활이라는 레일을 탈 수 있을 거야.

나는 나를 믿어. !!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멘토(또는 멘터)는 - '인생길잡이' 로

‘멘토(또는 멘터)’는 ‘인생길잡이’로

  국립국어원은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말터, www.malteo.net)’ 누리집을 통해 ‘새로운 인생 설계를 위해 도움을 주는 조언자, 또는 후견인’을 가리켜 이르는 ‘멘토(또는 멘터)’의 다듬은 우리말로 ‘인생길잡이’를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공부’란 평생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수험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엄청난 공부량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또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세운 목표치에 도달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더 나은 공부 방법을 원하는 학생들이 멘토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학생들만이 누리는 특권은 아닙니다. 직장 생활에서 개인의 지식 및 지혜가 발달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찾으면 옆에서 사심 없이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멘토입니다.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이지요. 멘토는 그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멘토 또는 멘터(Mentor)란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다고 합니다. 그는 오딧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고,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개인이나 조직 생활에서 조언자, 또는 후견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 대학에서는 배움의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학습·인성·문화 멘터링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방과 후 부족한 부분의 학습을 도와주기도 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미래의 인생 설계를 위해 멘토를 정하기도 하고, 그렇게 멘토로 인해 조언을 받았던 사람들이 또 다른 조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멘토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말터 누리집에서는 ‘멘토(또는 멘터)’를 대신할 우리말을 정하고자, 누리꾼이 제안한 362건 가운데 ‘조언자’, ‘앞길조언자’, ‘인생길잡이’, ‘인생도우미’, ‘삶도우미’ 모두 다섯을 후보로 하여 투표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모두 1,488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50%의 지지를 얻은 ‘인생길잡이’를 ‘멘토(또는 멘터)’의 다듬은 말로 결정하였습니다. ‘인생길잡이’가 ‘멘토(또는 멘터)’를 대신하는 우리말로 완전히 정착될 수 있도록 널리 써 주시기 바랍니다.

- 자료 정리: 김형배(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2009년 9월 28일 월요일

재미지게 사건만드는 기술?

로널드 B. 토비야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풀롯>(풀빛 1997)

1. 긴장이 없으면 풀롯이 없다
2. 대립하는 세력으로 긴장을 창조하라.
3. 대립하는 세력을 키워 긴장을 고조시켜라
4. 등장인물의 성격은 변해야 한다
5. 모든 사건은 중요한 사건이 되게 하라
6. 결정적인 것을 사소하게 보이도록 하라
7. 복권에 당첨될 기회는 남겨둬라
8. 클라이맥스에서는 주인공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하라


풀롯을 발전시키고자 할 때는 다음의 질문을 고려하라

1. 이야기의 기본 아이디어가 무엇인가?
2. 이야기의 중심적 목표는 무엇인가?
3. 주인공의 의도는 무엇인가? 주인공은 무엇을 원하나?
4. 주인공의 동기는 무엇인가? 주인공은 왜? 무엇을 원하나?
5. 주인공은 누구 또는 어떤 편인가?
6. 주인공은 자신의 의도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행동 게획을 가지고 있나?
7. 이야기의 중심 갈등은 무엇인가? 내적인가? 외적인가?
8.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이 겪는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9. 풀롯은 인물 중심인가? 행동 중심인가?
10. 이야기의 시발점은 무엇인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11. 이야기 전체의 긴장은 어덯게 유지할 것인가?
12. 주인공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어떻게 완성하는가?

2009년 9월 26일 토요일

주문걸기

 

1. 나는 신의 창조성의 통로이고, 내 작품은 결국 훌륭해질 것이다.

2. 내 꿈은 신에서 나왔고, 신은 그것을 이루게 할 힘을 갖고 있다.

3. 창조적인 작업을 하며 거기에 귀 기울일 때 나는 창조성으로 인도 될 것이다.

4. 창조성은 나에 대한 창조자의 의지이다.

5. 나의 창조성은 나와 다른 사람을 치유한다.

6. 나는 나 자신의 창조성을 키워야 한다.

7. 몇 가지 간단한 도구들을 사용하다 보면 나의 창조성은 발전할 것이다.

8. 나의 창조성을 이용해서 나는 신을 섬긴다.

9. 나의 창조성은 항상 진실과 사랑으로 날 인도한다.

10. 나의 창조성은 나를 너그럽게 만들고 나 자신도 용서하게 만든다.

11. 나를 위한 신성한 계획이 있다.

12. 내 작업을 위한 신성한 계획이 있다.

13. 내 안에 있는 창조주의 말을 따르면 나는 창조성으로 인도된다.

14. 내 안의 창조성에 귀 기울이면 나는 창조주에게 인도된다.

15. 나는 기꺼이 창조할 것이다.

16. 나는 기꺼이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울 것이다.

17. 나는 기꺼이 신이 나를 통해 창조하도록 할 것이다.

18. 나는 기꺼이 나의 창조성을 통해 봉사할 것이다.

19. 나는 기꺼이 나의 창조적인 힘을 경험할 것이다 .

20. 나는 기꺼이 나의 창조적인 재능을 사용할 것이다.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12주간의 여행 아티스트웨이> 중에서

 

주문을 걸어봐~~~ 내 안의 움직임과 얘기를 들어봐~~

2009년 9월 23일 수요일

누가 나를 깨웠소?

4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쫓기는 꿈을 꿨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배편에서 아는 사람 동생의 협박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배가 닿는 곳에 그의 부하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영화같다. 좀...

 

어젯밤 딸을 재우는데 멧돼지들이 꿈에 나타나 자신과 친구들을 습격하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제 저녁 뉴스에서 요즘 도시 곳곳에서 출몰하는 멧돼지에 대한 영상을 보고 꾼 꿈인것 같다. ㅎㅎ

 

누가 나를 이 새벽에 깨웠는가?

왜?

 

월요일 듣는 한권의 책쓰기 동화강좌에서 내준 숙제때문일까?

돌덩이에서 원료를 뜯어내놓긴 했는데 세공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는 마음일까나?

정말 올해 가기전에 한 편 써보려고 어린이동화강좌 '한권의 책쓰기'를 신청해서

낯설고 먼 상암동, 소설책에서나 봤던 수색이라는 지명도 보이는 곳까지 다니건만

(사실은 무료라서 그럴거야.ㅎㅎ)

 

거친 돌더미에 채취한 아직도 많이 거친 재료들.

이제 막 숲속에서 따온 아직은 잎사귀이며 식물에 불과한 아로마 풀.

 

이것들로 어떻게 소박하더라도 성실함과 진정성이 녹아있는 보석 한 알, 향수 한방울을 만들까나.

 

숙제때문이지만 작심하고 읽기 시작한 어린이 문학의 감동과 웃음, 삶에 녹아 있는 희망이

가슴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던 일요일 오후와 월요일 아침.

내가 맛보지 못하고 진열하고 권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또 약간의 후회로 다가왔지만 이건 바로 걷어냈다.

책과 좀 더 깊이 만나고 친해지면서 정말 친구가 생긴 것 같고 스승이 생긴 것 같다.

친화력있다고 내심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막상 들춰보면 얼마나 직접적인 사람관계에서 서툴고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지.(겉으로는 안그런척 하면서...)

상대의 한마디 말, 한순간의 눈빛, 한동작의 몸짓에서 많은 경우의 수와 생각들을 추론해 내는 복잡하고 미세한 내 생각, 느낌, 감정.

 

그래서 만남보다는 책을 보게 되고, 말보다는 문자나 편지를 보내고 싶은 것일까?

실수하고 미숙할 수 있는 권리.

이제 어른인 내게는 잘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어설픈 어른, 아이와 같은 어른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

 

아, 이 말을 쓰려고 일어난 것일까?

이게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아티스트웨이>에 나오는 모닝페이퍼 작업일까나?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3쪽의 글을 써라, 생각나는 게 없고 쓸 것이 없으면 그렇다고 시작하고 써라.'

 

요즘 자꾸 느껴지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얼마전 얘기한 것 같기도 하다.

쇼생크 탈출때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그 시원한 빗줄기 같은 샤워기.

물에 풀리는 화장지같이 몸을 푹 담그면 녹아질 것 같이 편안하고 충만한 욕조.

 

외롭고 서늘하고 무겁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무가치하다고 느껴질때마다

 

분수처럼 햇살처럼 비단처럼 솜털처럼 폭포처럼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두드리며

충분히 충분히 적셔 줄 물줄기를, 사랑의 물줄기를 뿜어내는 샤워기. 언제나 틀 수 있는 샤워기가.

 

 

 

 

 

목만 내놓고 눈을 감은 채 따스하게 얼굴로 올라오는 수증기를 느끼면서

순간 물속에 수욱하고 들어가 눈을 뜬 채 바라보다가 어푸하고 소리를 내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목을 한껏 져쳐 입을 벌리고 뱃속 깊은 숨을 내마시며

땀구멍 하나하나에 물기가 충분히 충분히 배여 온몸이 적셔지고 물기로 차오르는 그런 충만함을 주는

이왕이면 장미꽃잎도 아로마 차잎도 떠 있는 그런 뜨끈 따스한 욕조가. 언제나 잠길 수 있는 욕조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찜질방이라도 가야하나.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다.^^

 

 

내 속의 무엇이 이렇게 말을 걸고 이미지를 출력해 내는 것일까?

 

내 속의 누가 잠을 깨우고 나를 일으키는 걸까?

 

따스한 노오란 빛을 좋아하는 내면아이가

아무 조건없는, 무조건의 충만한  사랑을 흠뻑 받고 싶다고 내가 아우성인 것 같다.

이리도 절절하게 아이는 사랑이 필요했던 것일까?

애쓰지 않고 그냥 거저 주어지는

마냥 받기만 해도 되는

그런 사랑을 이토록 이토록  바라고 있었나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세공작업과 조제작업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칠흙의 하늘이 남빛으로 환해졌다. 곧 피곤이 몰려오겠지. 울 딸 학교 보내야 하는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첫 등판에 홈런 칠 수 없고

 

그저 아직도 고구마 삶다가 안 태운 적이 없는 것처럼

그저 아직도 단호박 삶다가 호박죽 만들어 온 것처럼

실패해도 모자라도 그게 인생이고 실패하는 방법을 한 가지씩 알아가서

누구처럼 99가지 실패에 1가지 하늘의 보너스를 믹스해서

원하는 것을 해보는, 그것이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을 만드는 기쁨과 후련함을

느끼면 되는 거지.

 

일단 양수기로 내 안에 고인 물을 퍼내고

채굴기로 원석을 떼어 모으는 작업을 해보고.

 

인류의 정신 문화 유산인 좋은 책들을 보면서 세공도구와 절대음감같은 감각을 민감하게 훈련해서

이렇게 고요한 나만의 시간에

이렇게 누군가 깨워주는 소중한 시간에

해보자.

 

이게 오늘 네가 내가 하고픈 말이었니?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지리산둘레길 혼자걷기 마무리 -헥헥

지리산 둘레길 혼자걷기 여행은 2박 3일인데

갔다온 여행후기는 일주일이 넘는다.

묵혀야 할 장도 아니고........

생생한 마음, 생각, 추억 남겨두고 돌아보고 싶은데

이리 부산스러워서리..

 

하여튼

마지막날 아침,

간밤을 얼마나 뒤치락거리며 잠을 설쳤는 지

한쪽 쌍거풀마저 시합끝난 권투선수처럼 부어서 풀린 채

펜션집 할아버님이 말씀해 주신 추모공원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길을 나설 차비를 했다.

12시 30분에는 집으로 가는 차를 타야 했고 집 근처로 가면 일주일동안 제주도에 가 있다 오는

딸내미 마중하러 김포공항으로 가야 했다.

딸내미 난생 처음 하는 긴 여행을 마중해 주고도 싶은 이 에미 마음.

 

방을 정리하고 사무실 같은곳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만 할머니가 계셨다.

풀린 쌍거풀이 신경쓰였지만 깊게 눌러쓴 모자 그림자와 두 배로 칠한 아이라이너로

어찌 돼 보이리라 여기며 인사를 드렸다.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간 밤에 라면도 아직 뱃속에서 묵직하고

원래 아침은 안 먹기에 웬 젊은 남자 여행객까지 나와서 먹고 가라는 권유를 과감히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지리산 둘레길 11.9 ㎞ 동쪽 코스였지만 난 3분의 1 지점인 추모공원까지 가기로 했다.

가는 길 왼쪽으로 엄천교라는 맑디 맑은 지리산 계곡이 함께 해줬다.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가서 옷을 벗고 신나게 놀고 싶었지만

딸내미 마중가야 한다는 고놈의 사명감과 모정이 몸과 마음을 붙잡았다.

지리산은 그냥 길가다가 눌러 앉으면 그곳이 명경지수요 청정녹음인 것 같다.

이 맑은 물이 둥글둥글 가슴아린 조각논인 다랭이 논을 먹여 살리는구나 하고 고마웠다.

전날  잠은 설쳤지만 그래도 일찍 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다리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원기마을을 숲 길에서 나와 마을을 지나는데 할머니 두 어분을 만났다.

다들 여자 혼자 다니냐며 누가 잡아가면 어쩌냐며 걱정 한마디씩을 하셨다. ㅎㅎ

그러시면서도 한 편으로 이렇게 혼자 둘레길을 찾아오는 몇 몇 여성들을 보고

그럴 수도 있구나 하시는 것 같았다.

지리산 둘레길에 사시는 여성들은 시집와서 거의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이 그저

할배가 된 신랑하고 시어르신들하고 농사만 지으시고  자식들을 기르신 분들이 많았다.

사실 매일 보는 산, 매일 보는 논바닥, 풍광보다는 고된 노동이 먼저 떠오를 주민들이기에 동네를 지나는 둘레길 여행객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방곡마을 추모공원은 1951년 설을 쇤 다음 날 700여명이 국군에 의해 몰살당한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사건지역이었다. 하루 이틀사이로 그 당시 설을 맞아 화기애애했을 때에 느닷없이 나타난 군인들이 조직적으로 작전명령을 받아 주민들을 죽인 것이다.

잔인하게도 사망자의 50% 어린아이들이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다며 마을 뒷산 공터나 학교 운동장으로 모두 모이게 하고

땅을 파게 한뒤 기관총을 난사해서 죽였단다. 살아난 사람들은 다시 와서 확인 사살했고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기도 했다는 거다.

인간이 본래 그런 것인가 전쟁이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가까스로 살아난 아이들이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몸에는 갖가지 총상을 안고

숨소리 한 번 못내고 기막힌 세월을 살아오다가 억울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서

추모공원을 세운 것이란다.

 

지리산 곳곳에는 소위 말하는 무장공비의 아지트가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치떨리던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뜨거운 사람들이

활동하다가 이념의 대립, 전쟁으로 묶여 최후를 맞이 한 곳.

나는 둘레길을 돌아본 것이지만 지리산은 능선은 몸을 숨기고 조용하게 움직이기에 알맞게

깊고 깊은 것 같았다.

대학때 비장하게 부르던 '지리산' 이라는 노래가 더 실감나게 기억났다.

추모공원 약간은 한적한 그 공원의 관리소장인 듯한 분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책도 한 권 주셨다. 학살 당시 살아난 어느 분이 쓰신 책이었다. 기막힌 인생내력 탓인지

역술인으로 있으면서  묻혀진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는 추모공원 건립에 애쓴 분 같았다. 한 번 인생상담(?) 하러 가볼까 싶었다.^^

 

공원에서 내려와 이제 버스를 탔다.

2박 3일 걸어온 길을 버스로 바라보며 되짚어 갔다.

터미널에 가니 시간안에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빠른 교통편을 찾아 전주로 갔다.

전주에서 부천행 고속을 타고 부천에서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달렸다.

 

겨우겨우 도착해서 공항문 밖으로 나오는 딸을 힘껏  안아 줄 수 있었다.

아이들도 긴 여행에 약간은 지쳐있었지만 선생님들은 얼굴과 몸이 수척해지기까지 했다.

십여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나...

 

혼자 다녀왔냐는 다른 엄마들의 질문에 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한 사람 혼자 있던 서방이 반겨주었다.

미안한 마음 반, 여행으로 충만한 마음 반으로 인사를 하고 두 여자는 집을 풀었다.

 

일요일 날 딸은 내게 상을 주었다.

' 너무 용감해서 주는 상 '

부상으로 딸이 아끼는 (내가 눈독들이고 있던) 2B 샤프연필도 줬다.

 

지리산둘레길

천천히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싶었다.

말없이 걸으며 내 안에서 올라오는, 내 안에서 출렁이는, 내안에서 비추는

생각, 느낌,  이미지들을 그대로 들여다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낯섬이 발걸음을 재촉했고 어디까지 가야지 하는 목표설정이 또한

마음을 서두르게 했다.

몇번이고 나도 모르게 가야할 곳으로 막 가고 있는 나를 보고 속도를 늦췄다.

나도 모르게 마구 가는 것, 목표가 정해지면 100m  달리기 버전으로 달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살아서,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성실하지 않거나 애쓰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스스로도 비난하는데 참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다시는 오지 않고

가장 확실하게 내가 만지고 느끼고 가질 수 있는 시간.

지금 이순간 지금 여기서 만나는 인연들에 마음과 몸과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깊게 든다.

 

내 안의 유목민 기질. 노마드.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바람처럼 인연을 따라 왔다가

또 새로운 인연을 따라 풀씨처럼 날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생각.

 

조금 가난하거나 부족하더라도

몸과 마음과 영혼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느낌이 살아있는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젊은 청춘에 막연한 애국심으로 통째로 사랑했던 이 땅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니

구체적인 정이 들고 새롭고 새롭다.

 

기회가 닿으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남은 걷기여행을 하고

이 땅을 딸과 함께 돌아보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도전해 보고 싶다.

 

이젠 뭘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버스 운전을 하든 샐러리맨을 하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든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지만

그 밑에 겨울 강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있는

꿈이나 희망이 있어야

사는 맛이 있을 것 같다.

자식키우는 맛도 한 맛이기는 하지만

내가 행복한 어떤 맛, 내가 살아있는 어떤 맛을

잊지 말고 살려가며 살아야 진짜 사는 맛이 나고

눈빛도 얼굴색도 생글생글 윤기가 날 것 같다.

 

외로움과 친구가 된 길.

아직도 무조건적인 사랑이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샤워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나이긴 하지만

뚜벅뚜벅 나를 만나고 세상을 느끼는 길을 혼자서 갈 수 있는

자신을 얻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009년 9월 17일 목요일

내 집중시간은?

아침 5시 20분,

우선 정신이 깨고 판단을 한다. 잠이 다시 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면 일어난다.

뒤척이며 자는 딸내미를 위해 옆에서 책을 읽을까싶기도 하지만 불을 켜야하니

아이의 숙면에 안좋을 것 같아 방을 나와 책방으로(여긴 내방이야, 내방!!) 옮겨와서 컴을 켠다.

 

영혼이나 의식이나 제일 맑을 시간.

책을 읽기도 하고 뭔가 쓰고 싶은 시간.

 

저녁에 아이랑 함께 있을 때 컴퓨터를 쓰는게 여간 쉽지가 않다. 차라리 책을 읽으면 이해해주는데

딸은 컴퓨터를 제 수준에서(영상음향으로 노는 기계- 선덕여왕 다운 받아서 보는 것, 소녀시대 동영상 보는 것) 이해하고 있기에 내가 컴퓨터를 하는게 자기가 텔레비젼을 보는 것과 동격으로 생각한다.

'엄마가 일기도 쓰고 사전도 찾고, 그림도 그리는 거야' 하고 설명해도

자기는 일기를 손으로 쓰는데 왜 엄마는 컴퓨터로 하냐며 손으로 쓰라고 한다. 헉!

그래서 내가 컴퓨터를 쓰는 시간을 아이가 자는 시간으로 조정해야 할 것 같다.

일찍 재우고 새벽에?

 

원래 좀 일찍 자거나 뭔가 고민거리가 있으면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나곤 했다.

그러고 나면 아침 6시나 7시께에 피곤이 몰려온다.

이 버릇은 초등학교 6학년때 몸에 밴 것 같다. 그때에 밤 10시 정도에 자서 새벽 2시께 일어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5시경에 다시 잠을 잤다.(이 때만 그랬다. 중학교 가서는...잠귀신이 붙어서..도저히..-.-)

 

이 시간이 내겐 집중이나 몰입이 가장 잘 되는 시간일까나?

 

밤 10시부터 2시까지도 집중은 잘 될 시간인데 내가 안자면 딸도 안잔다.

딸을 일찍 재우려면 내가 먼저 누워서 팔베게를 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쮸쮸도 주고 그래야 한다. 아빠랑은 내가 어디 가거나 늦을 때만 어쩔 수 없이 잔다. 아침에 눈 뜰때 내가 없으면 "엄마~~"하고 부른다. 그 때 내가 식사준비나 컴퓨터 쓰느라 못들으면 엄청 서운해하고 화도 낸다.

힘들다. 몇 번씩 들여다 봐야 한다. 이불도 걷어차고 자니까.

 

하루에 3시간씩

온전히 어떤 것에 몰입해서

글을 쓰든 책을 읽든 공부를 하든

꾸준히 해가는 거.

 

구슬이 서말이라도 하나씩 꿰어야 하는 작업,

비단천, 모시천, 아무리 많아도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해야 멋스런 조각보가 된다는 것.

빨주노초파남보 오색 칠색 실꾸러미가 한 광주리라도 한코 한코 뜨개질을 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포근한 털목도리 된다는 거.

 

하루가 변하지 않으면

일주일이 변하지 않고

한 달이 달라지지 않고

석달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

 

글쓰기 선생님 말씀처럼

석달씩만 계획하고 실행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석달이라...

체질개선 같은 몸세포의 재생주기도 한 석달정도 된다는데

뭔가 새로워 지려면 석달간의 지긋한 훈련이 필요한 듯.

 

컴퓨터를 켜고 앉으면

확인해야 할 이메일과

보고픈 여러 소식들,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들,

놓치고 싶지 않은 자잘한 이벤트들의 유혹이 만만치 않다.

 

가슴이나 머리에 차올라 출렁이는  생각과 느낌이 채 부어지기전에

뉴런의 세포돌기가 뻗어나가듯

다른 안테나가 활동을 시작하곤 한다.

 

산소통을 메고

심연의 바다속을 잠영하는

그런 밀도 높은 절대시간을 확보해 가고

그런 작업을 몸에 배게 해 가는 일.

 

몸세포들이 새로운 생체리듬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

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원하는 것을 향해 가려면

농부의 마음과 농부의 발걸음, 농부의 손길같은

성실함이 기본이다.

방향없는,통찰없는 성실함의 걷잡을 수 없는 맹독성도 문제지만

꿈을 찾고 꿈을 일궈가는 고통스러울 수조차 있는 과정의 냉엄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가을이다.

선선하고 팔뚝이 시리기도 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이래저래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한가닥 두가닥 실타래로 잘 정리해야 할

이를테면 결실의 계절.

 

딸내미 잘 돌보고 편안하게 잘 놀고 마음가는 대로 해보고 살아보는 게 목표였던 올 한해.

 

어째, 이 기조에 안맞는 생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아니, 맞는 거야. 몰입의 시간. 집중의 시간. 내가 원했던 것이야.

 

해야 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차이.

그 질적 변환을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하는 걸까?

 

우선 양적 축적을 해보고.

 

해가 뜨고 아침상 차릴  시간이 되니 집중력이 급격 떨어지는 느낌.

산소통에 산소가 다 떨어졌나?

.

.

.

혹,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 ^^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지리산둘레길 혼자걷기 ②

드디어 내치고 싶고 멀리하고 도망다녔던 외로움과 친구가 됐다.

 

외로움에 밥말아먹고

외로움과 차를 마시고

외로움을 둘둘말아 베개 삼고

외로움을 덮고 잤다

외로움과 친구가 됐다.

이젠 별로 두렵지 않다.

 

이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동행해준 고마운 나

 

잠이 안와서 뒤척였는데도 눈을 뜨니 6시.

닭도 울고 동네가 깨어나는 소리가 점점 들려온다.

아직은 더워서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시고 낮에 쉬었다가 오후 해질녘에 또 일을 하실 것이다.

나도 일찍 출발해서 덜 더울때 많이 걸으리라.

이장님은 먼저 나가시고 사모님은 나만 아침상을 차려주시고 이따 이장님과 드신다고 했다.

원래 아침밥은 안 먹지만 그래도 초면의 어르신이 차려주시니 맛있게 먹었다.

숙박비는 3만원. 장부에 다녀간 기념 인사도 적었다.

할머니도 다음에 또 오라고 문앞까지 배웅오시고 사모님은 일터 가는 길이라며 내가 가야 할 방향까지 동행해 주셨다.

가면서 먹으라고 직접 농사지으신 사과 두 개를 주시고 호두도 주셨다.

뒷산으로 넘어가는 길로 올라가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혼자 왔느냐며 늙은 오이를 주신다. 호박이나 수세미인줄 알았는데 오이였다.

 

사모님과 헤어지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숲길을 가는데 길섶이라는 지리산 사진 갤러리가 안내돼 있었다.

갑자기 사진이 보고 싶어서 그쪽으로 찾아가려고 길을 들었다.

생각보다 좀 멀었는데 황토로 지은 버섯 모양의 집이 세 채 정도 보였다.

개량 한복을 입은 여인이 맞아 주었다.

지리산에 들어와 10년동안 지리산을 찍은 사진작가의 작품을 둘러보고 차 마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민박도 하고 차도 마시는 그런 곳이어서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 두 명이 왔는데 모두 임신 3개월, 4개월의 임산부였다. 대단하는 생각과 더불어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생각해보니 나도 임신했을 때 보성 차밭에 그리도 가고 싶었는데 못가고 딸내미 6살때나 가게 된 것 같다.

차를 따라주는 여자분은 사진작가가 전시회땜시 서울에 가야돼서 잠깐 집을 지켜주게 된 손님이었다. 얼마전 회사에서 짤리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시원시원한 모습, 조근조근한 말씨가 지리산 황토집과 참 잘 어울렸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드디어 다랭이논이 나왔다. 산을 깎아 층계모양으로 만든 논. 단칸방처럼 작디 작은 논.

그 손바닥만한 논을 만드느라 온 식구가 얼마나 이 산골에서 고생고생을 했을까나....

삶이란 노동이란, 생존이란 참으로 대단하고 눈물나는 일이다.

호남의 너른 평야를 보다가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산을 헐고 돌을 골라 만든 이 퍼즐같은 논을 보니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인간은 참 위대하고 산은 참 고마웠다. 제 몸을 헐어 생명을 부지하고 낳고 살고 기르게 해주니 말이다.

 

땡볕에 둥글둥글 논을 지나 숲으로 다시 접어드니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 쉼터가 있었다.

노부부 한 쌍이 평상에 앉아 먼저 땀을 식히고 있는데 나보고 쉬었다 가라고 하시며 막걸리 잔을 주셨다. 시원하게 한 잔 먹고 나도 땀을 식혔다. 채소밭쪽에 나홀로 다방이라는 화살표가 있었는데 화장실을 말하는 것이다. 야외화장실이었는데도 깔끔하고 분뇨도 겨로 덮어놔서 냄새가 거의 없었다.

노부부가 숲을 넘어가면 금계까지 쉴 곳이 없다시며 아예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셔서 그 집에서 담근 된장으로 만든 국에 지리산 나물에 칡잎지짐이, 고추지짐이에 밥을 먹었다.

바로 앞에 있는 밭에서 따온 채소들이라 부드럽고 싱그러웠다. 난생 처음 칡잎지짐이를 먹었다.

 

배가 부르니 숲길이 좀 힘들었다. 오전에는 두루두루 보면서 여유있게 가자 싶었는데 정오가 지나니 마음이 좀 바빠졌다. 2코스 중간까지는 가고 싶었다. 오후 2시께가 되니 다리도 조금씩 후들후들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운동도 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많이 걸으니 다리가 웬일이냐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해도 무척 강해서 땀도 많이 흘렸고 배낭도 무겁게 느꼈졌다. 산길을 거의 내려오니 1코스 마지막 지점인 나마스테 산장이 나왔다. 솔잎산야초 차를 시원하게 마시며 환하게 트인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풍광이 정말 끝내주는 곳이다. 주인장께 풍수지리 공부를 하고 자리를 잡았냐고 물어봤다.  

2코스까지 가고 싶다고 하니 서둘러야 한다며 2코스 중간에 있는 사유지 길을 주인이 막아서 그 다음 지점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고 알려줬다.

 

다니다 보면 눈으로만 보고 농작물을 만지지 말라고 하는 안내문이 자주 눈에 띈다. 도대체 누가 얼마나 더 먹겠다고 농민들의 것에 손을 댄단 말인가 싶었다.

사유지 길을 막은 것도 그 때문은 아닐까 걱정도 됐다. 곳곳에 전기가 흐르는 철망도 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서암 굴법당과 벽송사에 올라갔다 왔다. 굴을 파서 법당을 만들고 벽에 불상조각을 한 서암정사는 장관이었다. 대단한 불심아니면 어찌 예술품이 나오랴 싶었다. 벽송사는 남과 북 이념대립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었다. 6.25 전쟁때 인민군 야전 병원으로 사용돼서 국군에 의해 불에 타버려 다시 만들었던 것이다. 미인송과 도인송이라는 키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더 예뻐지라고 미인송을  한 참 쳐다봤다. 키가 자라서 자꾸 구부러져 받침대로 중간을 받쳐 놓았다. 가뿐 숨을 돌리며 일상의 번뇌를 덜어내고자 두 팔 높이 들어 천천히 큰 절을 하고 내려왔다. 힘이 급격히 없어지고 볼 것이 많아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2코스의 나머지는 내일 아침 일찍 도전하기로 하고 막힌 둘레길을 버스로 이동해서 걸을 수 있는 곳에 펜션을 잡았다. 책을 보고 전화를 했다.

 

버스에 내리니 펜션에서 할아버지가 마중을 오셨다. 정류장에서 펜션까지 약 1.5킬로 걸어가야 하기에. 그곳 근처에는 수퍼도 거의 없는 산촌이었다. 갑작스런 여행과 걷기에 몸이 긴장했는지 달거리를 시작했다. 준비를 못해서 할아버지께 수퍼마켓없냐고 했더니 없을 뿐만 아니고 그런 여성용품은 거의 안판다고 했다. 시내로 나가야 한다고.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화를하더니 며느리에게까지 물어보셔서 다행히 있다고 해서 그냥 펜션으로 갔다. 휴~~ ^^

 

그 펜션에 투숙객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숙박비 3만원. 나라에서 만든 펜션이긴 했지만 비성수기이고 여인네 혼자 왔고 하니 할아버지가 아들하고 상의해서 3만원을 받았다. 먹을 것도 없어서 신라면 천원 주고 사고. 그게 내 저녁이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둘러 볼거리들을 설명해 주시고 내일 아침에 가볼만한 곳을 일러 주셨다. 5-6명 묵을 만한 펜션에 덩그러니 나 혼자 있었다. 문을 단단히 잠그고 씻고서 편안하게 누웠다. 너무 피곤한데 잠은 안오는 상태였다. 책을 보다 텔레비젼을 보다 글을 끄적이다가 잠이 들었다. 어젯밤 민박보다 훨씬 무서웠다. 공개된 펜션이이서. 약간의 스릴도 있었지만 하루종일 걸어서 다리가 딴딴해졌다. 몸이 부웅 뜬 것 같이 얼얼했다.

 

헉,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쌍거풀이 없어졌다.

울고 잔 것도 아닌데 이게 웬일이람.

잠을 못자고 뒤척이고 엎어져서 자서 그런가.

 

첫날, 사진기가 꽉차서 어쩔수 없었다(급하게 여행간 티를.....) 다녀온 다른분들의 사진을 쓴다.양해바래요^^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지리산 둘레길 27㎞- 혼자 걷다①

 

딸내미가 월요일에 제주도로 들살이 가고 드디어 내겐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일주일 전부터 책도 사고 옷도 준비하고 배낭을 싸기 시작했다.

월,화에 있는 강의를 다 듣고 수요일 아침 구국의 결단을 하고 나서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서방두고 가는 미안함에 반찬이랑 밥이랑 국거리,과일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아침 출발을 포기하고  수퍼에서 장을 더 보았다.

두세가지 반찬을 더 만들고 국도 넉넉하게 끓여 놓고 과일을 씻어놓고

10시 30분께 용산역으로 출발했다.

혹시 혼자여행의 두려움에 그냥 주저앉을까봐 한 시라고 빨리 떠나야한다며 KTX를 선택했다.

아침 버스로 갔으면 두번이면 도착할 일이 좀 복잡하게 되었다.

 

용산 - 익산 - 남원 - 남원시외버스터미날 - 인월 지리산안내센터

거의 처음 싸는 배낭짐이라 별로 넣은 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무거웠다. 한 5 ㎏정도.

기차에서 얼렁덜렁 싼 짐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아직 50% 밖에 파악이 안된 경로와 시간, 교통편을

책을 보며 꼼꼼히 살폈다.

 

지리산 둘레길 총 300㎞, 현재 갈 수 있게 개방된 코스는 70㎞

산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게 아닌 수평으로 둘레둘레 걸어가는 길.

 

 

산이 보이고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지면서

가슴에서 스멀스멀 지나간 여러 일들이 기어올라

꿈을 꾸듯 생각에 잠기곤 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입을 다무니

혀밑으로 말이 고인다.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위액같은 신맛이

제 살을 녹여낸다.

 

간장같은 쓴맛이

내장까지 검게 물들인다.

 

토악질 끝, 담즙 쓴맛이

코안까지 비릿하다

 

아픈 맛, 매운맛이

입안을 통째로 마비시킨다. 

 

애인 혀같은 단맛이

물감퍼지듯 실핏줄까지 번져간다.

 

단전에  힘을 주고

깊게 흡을 한다.

 

대지의 바람이

온갖 맛을

손끝으로 날린다.

 

손은

그저

인생의 이런저런 맛을 

활자로 뱉어 내고 있다.

 

눈은

묻어둔 상처에 

가슴이 콕콕 찔려

물방울을 쏙 빼올리고  

있다

 

 

지리산안내센터 안 생태조형물 전시

 

지리산안내센터에 4시 30분에 도착. 예상대로 안내원도 걷기에는 조금 있으며 해가 지기에 애매한 시간이라 한다. 2시간 걷기 거리에는 숙박을 할 수 없는 마을이란다.

내 맘은 어두운 길이라도 그저 걸었으면 했지만 하는 수 없이 실상사를 둘러보고 매동마을이라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다 늦은 출발탓이오, 모질지 못한 내 인정탓이오, 그렇게 길들여진 나 때문인것을 어찌하리오.

 

지리산 실상사, '실상사 작은학교'라는 대안학교도 있는 것으로 아는 데 잘 됐다 싶었다.

큰 다리를 건너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연잎이 가득했고 간간이 하얗고 붉은 연꽃이 전등처럼 있었다. 동네며 절이며 지리산댐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요한 암자 뒤에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공부방이 있었다. 눈이 파란 외국인 남자 선생님도 계셨다.  

실상사 앞 큰 하천은 맑고 시원스레 흐르고 있었고 나는 강을 끼고 매동마을로 걷기 시작했다.

여자 둘이서 혹은 남자 혼자서 , 걸어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트럭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당신이 그 마을에 산다며 태워주셨다.

그 분의 안내로 마을 이장님댁에서 민박을 하게됐다. 아들 둘이 다 도회지로 나가고 이장님 부부와 꼬부랑 할머니가 같이 사시는 아담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할머니가 내다 팔 고추를 한 가득 다듬고 계셔서 나는 짐만 놓고 동네 한바퀴 구경한다고 나섰다.

마을 골목길은 참 정겨웠다. 감이 제 무게에 떨어져 터져 있었고 석류가 빨갛게 익었다.

석류를 좋아하는 미인, 우리 딸 떡순이가 생각났다. 제주도에서 잘 있겠지...뭐...

어느 대문을 지나치는데 대학생같은 처녀가 바닥에서 뭘 줍고 있기에 봤더니 눈이 마주쳤다.

나같은 여행자냐고 물었더니 실상사 작은학교 선생님이라며 그곳이 선생님들 기숙사라고 했다.

줍고 있던 대추 열알 정도를 주고 먹으라 했다. 얼굴이 말고 천진해 보였다.

뒷산 쪽으로 올라가니 마을도 훤히 보이고 앞에 지리산도 보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바람소리가 시원했다. 노을빛이 구름에 퍼져 장관이었다.

더 어둡기전에 숙소로 돌아가려고 서둘러 도착하니 이장님 내외가 계셨다. 내외분도 내가 여자 (그것도 나이 좀 든) 혼자라 좀 놀라시는 것 같았다. 특히 사모님이^^

얼른 씻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40맞이 혼자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소박하고 정갈한 시골밥상은 참 담백했다.

한참만에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더니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 나는 말을 좀 하고 살아야 기운이 도는 성격유형인감???

 

내일 계획을 짜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낯선 곳에서 난생 처음 이렇게 혼자 자게 된 것을

대견해 하면서 한 편 신기해 하면서, 사실 좀 무서워하면서 잠을 청했다.

 

아, 정말 나 떠났구나. 이렇게 ~~

 

선운사 풍경들

 

 

 

 

 

 

2009년 9월 7일 월요일

안식년 2학기

요즘은 블로그에 글쓰는 것도 뜸하고 그림도 뜸하고

사는게 뜸해진 것 같다.

 

8월 한 달 딸내미 방학을 맞아

많이 놀아주려고 국선도도 쉬고

에니어그램지도자 과정도 방학을 하고

꿈모임과 상담도 쉬었더니

정말 뜸해지는 생활이 됐고

몸무게도 좀 늘었다.

 

딸내미는 놀아준 게 없다고 투정을 한다.

방학내내 그래도 같이 있어줬는데

여행도 가고

(우리 가족끼리 간 게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간 것이라며 강력히 항의를 했다)

 

결혼 10주년인 올해

쉬고 있으면 그동안 바빠서 못 본 것 실컷 보고

얘기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실제 생각만큼 그렇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람관계라는 게

소통의 습관이 길들여져 있어야 하는데

그 길을 잘 닦아 놓지 못해서

좋은 기회인데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도 싶다.

 

9월,

에니어그램 지도자과정도 2학기 출발하고

10강짜리 무료문학강좌도 신청하고

다시 배움의 길을 나서야 한다.

설레이기도 하고

뭔가 미로에서 탈출해서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기도 하다.

 

가둬놓은 논에 물길을 트는 것처럼

그 동안 관심있고 호기심 있던 일들에 대해

굶은 사람 밥먹듯이

허겁지겁 달려드는 것 같다.

 

책보는 것, 그림, 심리, 영화, 글쓰기, 악기....

"네 마음껏 먹어봐"

누가 초콜릿이 가득담긴 접시를 주면서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난 반 년, 정확히는 작년부터

한 줄기는 나를 알아가는 내적 여정의 길을 걸어왔고

올해 들어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내가 발현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 과정인 것 같다.

 

이 두 가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글쓰기와 책, 그림 정도 인 것 같다.

그런데 글쓰기 공작소 저자의 5강에 걸친 글쓰기 강좌를 듣고 나서

나는 입도 막히고 손도 막힌 느낌이다.

잘 숙성해서 써야 한다는 무게가

편하게 말하거나 쓰거나 하질 못하게 한다.

선생님은 7년 동안 꾸준히 정진하듯 글을 써왔고 책을 읽어왔단다.

그래서 등단했고.

250여권의 책을 반드시 읽었으면 하고 추천목록도 올렸다.

 

오늘 다녀온 무료 문학강좌의 작가분은

신춘문예에 7번이나 낙방하고

공모작을 보낸 것도 잊고 있을 정도의 무렵,

꼬챙이처럼 바짝 말라가고 있을 무렵

연락이 왔단다.

 

역사속에 좋지 못한 모습의 문인들을 보면서

문학인들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임의 무게에

감히 엄두내지 못했던 글쓰기

 

왜 글을 쓰고 싶은가?

간절히 쓰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내 안에 부글부글 거리는 그 무엇

내 안에 자욱한 안개처럼 깔려 있는 그 무엇

그것을 바깥으로 꺼내고 싶다.

 

살면서 생활하면서

어, 이거!

하는 모티브들을

허공에 날리지 말고

잡아 매서

붙잡고 그 끝을 보고 싶기도 하다.

 

가슴에서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머리에서 계속 뭔가를 하라고 하라고

어수선을 떨고 있다.

 

2학기

가을 바람이 벌써 분다.

 

 

 

2009년 9월 6일 일요일

그래, 존재와 문제는 구별해야 해. 알면서~~~^^홧팅

'나는 세 번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하는 것과 '나는 실패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언어학자, S.I. 하야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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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과 관련된 많은 기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 중의 하나가 문제와 존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신경증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문제와 존재를 동일시하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문제와 존재를 비동일시합니다. 여기에서 말한 비동일시(非同一視)란 엄연히 있는 문제를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되 존재자체로 확대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수능시험에 세 번 떨어졌다면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나는 실패자다’에 가까운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반면, 건강한 사람들은 ‘나는 수능시험에 세 번 실패한 적이 있다.’에 가까운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결과적으로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다른 영역의 시험까지 도전하지 못하게 되지만, 건강한 사람들은 수능에 또 도전하거나 다른 영역의 시험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할 때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거절을 당했을 때 자신의 의견이나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부당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먼저 제안하거나 부탁하는 것을 계속 피하게 되겠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내가 문제를 만났을 뿐, 그 문제가 바로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나를 하늘이라고 비유한다면 그 문제들은 내 앞에 나타난 구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름을 보고 하늘이라고 할 수 없듯이 문제를 보고 ‘나’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부딪힌 문제와 당신의 존재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나요?

- 2009. 9. 3.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321호]-


2009년 9월 2일 수요일

오래만에 만나는 시

kbs 사장이었던 정연주씨가 mbc사장 엄기영씨에게 보낸 편지글을 오마이뉴스에서 봤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글 마지막에 담긴 시였다.

 

청년학도였던 시절, 일기장 한 켠에 적어놓은 시.

사회운동 단체 활동할 때 민중의 힘을 느껴보고 싶은 적마다 꺼내 읽던 시.

 

국민의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입을 틀어막으려고

미친듯이 달려드는 이 정부의 언론완전정복 대작전 앞에서

외롭지만 의연하게 싸우다 물러난 장수가

남아 있는 보루인 성을  끝까지 지켜달라는

눈물어린 격려와 절절한 호소를 화살에 매어 쏘았다.

 

함께 싸우겠다는 병사들과 돕겠다는 주민들과 나서지는 못하지만 성원하고 있는

민초들이 있어 다행스럽지만

시절은 참으로 살벌하다.

정말 정권을 넘겨준 잃어버린 저들의 10년이 그리도 고달팠나보다.

다시는 주지 않겠다는 듯 무소불위로 종횡무진 칼을 휘두르고 있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

먼 이야기이지만 참 가깝게 와 있다.

 

다시 읽는다. 이 시를..........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다시 108계단 앞에서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던 시절

가끔 버스타고 오거나 전철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올라오면

한 번은 멈춰서 올려다보던

108계단

 

속세의 번뇌를 신발털듯 떨치고 들어가야할

사찰의 일주문처럼

세상을 잊고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옷깃도 여미고 경건하기마저 해야 할 다짐의 순간.

사실, 몇 번은 비장했지만

대부분은 막막하기만 회색빛 '일단정지'의 시간이었다.

 

나선형의 시간을 타고 올라

오늘,

108계단 앞에 서 있다.

피자 한 판 같은 인생,

그 한 조각을 먹어치우고

 

여기

다시

멈춰서 올려다 보는

108계단

 

어른도 아이도 아닌

무소속의 회색인간

그래도 낙엽지는 가을의 스산한 바람과

은행잎 노오란 눈물을 볼 줄 알게된

철들어 가던 시절.

 

통일의 꽃 임수경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님

방북소식도

전철역 가던

그 긴 은행나무 길에서 들었지.

친구와 갑론을박 얘기했지만

소리나지 않는 마이크같았지.

재수생은 유언무성

 

힘차게 날아오를 첫 비행에

한쪽 날개가 꺾여

108계단 앞에 불시착한 독수리.

꺽인 뼈는 진액으로 엉켜

더 단단해졌구나.

20년 긴 비행을 마치고

108계단 앞에 내려앉아

제 부리를 부수고

제 발톱을 뽑아

남은 비행을 위한

새로운 차비를 하는 구나.

 

이젠

모두가 날아가는 그곳으로

따라가지 않으리.

내가 가고픈 곳,

내가 하고픈 활개짓으로

바람을 느끼며

바람속에 떠 있으리라.

비를 맞으며

쇼생크탈출처럼 소리를 지르리라.

해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지.

그래, 태양도 한 번 맞짱 뜬 눈으로 보리라.

 

"너는 너 자신을 멸망시킬 태풍을 네 안에 가지고 있는가?"

 

오늘 같은 내일이 아니려면

어제의 나를 밀어버릴 태풍이 있어야 한다.

생성과 소멸

그 과정에 새로운 내가 있다.

 

**********************************************

 

 

우연히 수강하게 된 글쓰기 강좌 장소가

20년전 재수학원 그 자리였다.

학원앞에는 108계단이 있었다.

동네 이름도 해방촌인가 그랬지?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어릴적 철학댓거리에서 배웠는데

개인의 역사 또한 그러한가?

 

20년 그 계단 앞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로웠고

아, 이제 어떤 시절인연이 날 기다리고 있나 싶었다.

 

오감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흠뻑 받아들이고 싶다.

인생아, 내가 간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우리말편지, 주석을 보고 해석을 해야하네요 -.-;;

언젠가 사랑하는 이에게

곱고 풋풋한 우리말 꽃편지를 보낼날을 기대하며...^^

 

 

 

꽃솜네 편지

 

                                                                       고경희(시인)

 
어제는 온종일 된볕이 하늘과 땅을 달구어 솔개그늘이라도 그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부터 자분자분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작달비가 되고 천둥번개까지 치면서 무슨 일이라도 낼 것처럼 천지가 요란합니다. 마치 호령 끝에 회초리라도 내려칠까 겁먹은 아이처럼 우렛소리에 몸을 웅숭크리게 됩니다.

 이런 여름날 아침 대나무 숲에는 튼실하고
숫접은 새순들이 여기저기 쑥쑥 올라와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껑충 자랄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그러나 감나무 아래는 여기저기 동글동글 파란 채로 떨어진 열매들이 굴러다닙니다.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그렇게 떨어진
감또개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모양도 망가지지 않은 작고 예쁜 열매들. 가끔 그것들이 만들어 왔을 날들과 만들어가고 싶었던 날들을 이어주고 싶은 마음에 하나하나 주워 물기를 닦아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으로부터 가슴 아픈 고백을 들었습니다. "불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고. 난 그녀를 위로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삶은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이며 사랑은 물론 아름다워야 한다고
안다니처럼 왕왕 대던 내 고집도 이제야 슬그머니 아주 조금 물러서는 중인데, 어떻게 그 젊고 하 많은 날을 그 믿음도 없이 살아가라 이를 수 있을까요.


  몇 년 전에 열반하신 성철스님은 동안거에 들어가시면서 뵙기를 청하는 기자들에게 당신은 사기꾼이라고 손을 내저었고, 또 김수환 추기경도, 천상병 시인도, 또 최고의 권좌에서 그렇게 거침없어 보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신을 일컬어 '바보'라고 한 걸 보면, 아무리
야비다리를 부려도 정말 우리네 모두가 '바보들의 행진'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정답이라니요. 허점투성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고작 잘할 수 있는 것이 내 가까이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조차 도무지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맘대로 되지 않아
해찰을 부리며 주니를 내다가 밀쳐놓았던 원고를 꺼내놓고, 나를 존조리 타일러 가며 아퀴나 지어야겠습니다.

                                                                                                                            2009년 7월


된볕
〔명〕: 되게 내리쬐는 햇볕
솔개그늘
〔명〕: 솔개가 햇빛을 가려서 생기는 그늘.
작달비
〔명〕: 굵고 거세게 내리는 비. 장대비.
우렛소리
〔명〕:= 천둥소리
웅숭크리다
[동〕: 춥거나 두려워 몸을 궁상맞게 몹시 웅그리다. 웅숭그리다 보다 거센 느낌.
숫접다
〔형〕: 순박하고 진실하다.
감또개
〔명〕: 꽃과 함께 떨어진 어린 감. 채 익기 전에 떨어진 어린 감
안다니
〔명〕: 무엇이든지 다 잘 아는 체하는 사람.
야비다리
〔명〕: 보잘것없는 사람이 제 딴에는 가장 만족하여 부리는 교만.
해찰
(명) : 집중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쓸데없이 다른 짓.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는 행동.

주니
〔명〕: 싫증 가운데서도 몹시 지루한 싫증.
존조리
〔부〕: 누군가를 나무라고 타이를 때 조리 있고 친절하게 하는 것.
아퀴
〔명〕: 어수선한 일의 갈피를 잡아 마무르는 끝매듭. 어수선한 일의 마무리.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프롤로그 - 글쓰기의 꿈

 

꿈은, 이루어진다.

타르코프스기 감독의 <잠입자>

성철, 몽중일여

어떤 선승 이야기

정직과 자유의 시인, 김수영

도덕적 정직과 실질적 정직

실질적 정직과 산문적 글쓰기

전태일, 타락한 정신

전념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

 

1.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글쓰기란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2. 글쓰기의 입구, 씨앗 문장과 씨앗도서 : 독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양이 우화

글쓰기를 선택하는 세 가지 층위의 동기들

나의 경우

씨앗 문장

사무사

즐거운 필독, 1000권

줄탁동기

읽다 지루하면 접어라

씨앗도서 지도 만들기

뷔페식 독서

열권 이상 펼쳐놓기

집중력 높이기

밑줄의 빈도와 공명의 강도

묵상, 재독, 따라 쓰기, 변주, 암송

운명적인 단 한 권의 책

과정을 즐겨라

 

3. 새로운 창작 강의를 꿈꾸며

습작생들이 경험하는 일반적 과정

지금 여기에서 창작하기

질무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기

 

4. 언치와 언어적 감수성

대부분이 언치다

소설가 지망생들조차 언치가 부지기수다

언어적 감수성, 글쓰기의 필수요건

언어맛보기

언어로 존재하기

 

5. 일상언어와 출판언어

말재주와 글솜씨는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다

일상언어와 출판언어 역시 같으면서 다르다

차이는 사소하지만 울림은 크다

 

6. 일상언어 탈주하기

일상언어를 경계하라

관용구를 피하라

 

7. 주인공 및 화자 되기

표현한 내용과 해석한 내용은 다를 수 있다.

표현한 내용과 표현된 내용은 같아야 한다.

주인공-되기

주인공- 되기, 화자 - 되기, 주인공 및 화자되기

개성적 자아와 성찰적 자아

주인공 및 화자 되기와 또 다른 일례들

문체

개인적 감수성

 

8. 다수언어와 창작언어

감수성이 무디어지면 다수 언어가 된다.

상투적 문장과 평이한 기록문

기성작가들의 창작언어

창작언어, 소수자 되기

 

9. 구현적 글쓰기: 실질적 사실을 보여주기

전달 방식으로서의 구성

스토리와 플롯

구현으로서의 글쓰기

일관된 주제의식

은유와 환유

모티프

강렬한 문제의식으로 글쓰기

 

10. 단계별 글쓰기 : 장르 탐색

탐색과 모험으로서의 글쓰기

장르 이전의 글쓰기

낙서와 메모, 글쓰기의 시작

하이쿠와 아포리즘, 그리고 시

실질적 정직과 산문정신

사생글

산문화

산문

애세이

습작생 산문의 문제점

낯설게 하기와 정직하게 하기

서술방식, 비유와 대구

단락 만들기

생활글

서사적 글쓰기

단락장 만들기

소설

글쓰기와 기본훈련

 

에필로그  본질적 감수성

좌충우돌 글쓰기

호흡지간의 글쓰기

개인적이면서 사무사한 글쓰기

진도몽상의 연쇄작용

본질적 감수성

지금. 여기에서의 글쓰기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포스트 잇에 써 있는 글

사랑하나요 지금나처럼

나와 살던 슬픔 보낸거죠

꽃이 진자리 그 꽃 또 피듯

이젠 기쁨의 차례일테니

그대 사막의 별처럼 나를 비추네요

 

그대를 보면서 삶의 길 찾은 걸요.

미소 가득한 날 봐요.

그대 보다 작은 나를

나를 위로 삼아 외롭지 말아요

 

정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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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인가보다.

다 이유가 있겠지. 적어 놓은 이유가

어디에 feel 이 꽂힌 걸까?

다 사연이 있겠지 ................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싸이코드라마

생일날 미역국도 못얻어먹고 정신없이 서둘러 딸내미 들살이(방학캠프?) 보내고

드라마치료 연수를 하러 전철을 탔다.

 

싸이코드라마.

 

올해 6월에 처음 맛 본 이 '드라마치료'는 그 에너지와 영향력이 10점 만점에 9점이다.

MBTI, 에니어그램, 꿈작업, 춤테라피, 색채치료, 미술치료, 현실요법등 그 동안

공부하고 들어 본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여타의 것들은 따스한 공감을 통한 치유,

마치 따스한 차와 푸근한 포옹,그리고 경청이라면

싸이코드라마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응시하면서 맞짱을 뜨는

냉정한, 막다른 골목에서 상처를 직면하는 것 같다.

이것또한 다 내 투사이지만.

 

먹고 살고,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마음은 있겠지만 방법도 잘 몰랐던

그저 사랑하고 기죽지 않게 가르쳐야겠다고 아둥바둥 악착같이 사셨던 부모밑에서

그래도 좀 따스하게 안아주지, 그래도 좀 내 말을 들어보지, 그래도 좀 내가 얼마나 두렵고 외롭고 슬픈지 한번이라도 쳐다보지 그랬어 하는 아쉬움이

몸속, 맘속에 슬픔의 항아리가 돼서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것 같은 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 다 잘돼라는 마음으로

자식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고 손도 묶고 다리도 묶어

오직 부모가 하라는대로 로봇처럼 움직이게 하는

가슴과 생각은 없애버려야 하고 오직

지식과 부모의 지시를 인식하는 센서만 있는 그런 표정없는 피가 식은

서른살이나 먹어 독립을 갈구하는 어른아이를 만났다.

 

결핍도 과잉도 모두 상처구나, 하면서 내 결핍이 위로를 받았다.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 엄마를 떠날 거라고, 엄마가 너무 부담스럽다고하는

오열, 그 진동과 파장이 공간 전체를 흔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눈물이 흘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속박이 한 영혼을 질식사시킬 수 있다는 엄청난 파괴력을 잔인함을 느꼈다.

부모는 전혀, 한번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리라, 오직 사랑했고 걱정했다.

 

나는 00000라고 생각해. 나는 0000 했으면 좋겠어.

아이는 수도 없이 얘기했겠지만 다 거절당하고 금지당했다. 오직 엄마의 뜻대로만 살아야했다.

내가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친구와의 대화, 나랑 똑같이 엄청난 사랑의 무게에 눌린 친구, 내 맘 깊숙한 얘기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줬던 그 아이를 엄마는 사귀지 말라고 했다. 몰래 내 일기장을 훔쳐봤고 하루에도 수 없이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보고

서른 가까운 지금에도 전화를 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한다.

난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엄마는 내가 할 수 없다고 한다. 엄마없이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난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 왔고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독립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대로 내 맘대로 해보고 싶다.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여행도 가보고 싶다. 일곱살때 좋아하는 친구보러 가려고 했는데 버스타고 간다고 안된다고 해서 못갔다. 엄마는 그랬다.

 

그런데 사실 두렵다. 솔직히 편하고 익숙하다.

엄마 곁에서 엄마가 해주는 것을 받아먹고 사는게.

그냥 엄마 곁에서 엄마 말씀대로 사는게 편할 것 같다.

그리고 내 힘으로 사는 것은 힘들것 같기도 하다.

 

내 삶을 살고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엄마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진정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원하는대로 하면 된다.

엄청난 거부의 액션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막상 독립의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다.

멈춰서 있었다. 한참을.

 

다시 엄마한테 가라고 했다.

 

드라마가 길어져간다.

엄마랑 그대로 살게 되었을때, 독립했을 때 두 가지를 설정하고 그 이후 10년까지 상상해보는 장면을 배치했다.

리얼했다. 끔찍했다. 선명했다. 나는.

 

결국 아이는 독립했고 그때부터 스물일곱 어른으로 자리를 찾게 되었다.

모두들 독립만세를 외치며 축하해줬다.

 

처음을 연인과 몸을 열어 사랑을 하고

순결을 잃었기에 다시는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없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처녀인척 연기를 해야 하는것인가 고민하는

어느 학교 선생님.

 

대학원 과정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의 왕따를 견뎌야 했던 상담사,

 

딸을 너무 사랑하는데 자꾸 얽어매게 되는 학교 선생님,

 

아침 일찍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저녁 11시까지 함께 있자고 몇 달을 그렇게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그와 비슷한 남편때문에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정열의 연극배우.

 

삶을 둘러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상황, 그 안에 묻혀있는 내 마음, 그 속에 갖가지 감정들을 뼛속까지 기억해 가는 내 몸.

숨을 막고 표정을 지우고 몸을 허무는 그 무의식의 파괴력.

 

좋고 밝고 우아한 감정들만 예쁜 접시에 담아 내놓고

어둡고 반사회적, 반상식적이고 , 비천하고 노골적인 감정들은

우리 마음 속 저 깊은 지하창고에 처 넣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살아있고

정말 내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느낌이다.

밖으로 꺼내서 얘기를 들어주고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똘똘 뭉쳐

어느날 나를 무찌르려고 쳐들어 온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내 삶, 내 주변사람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독화살을

날리기도 한다.

 

첫날 1차 뒤풀이를 마치고 2차를 가는 길에 디렉터 선생님이 한 말씀하셨다.내게

삶이란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는데 000생님은 주로 천사쪽 삶을 지향하고 그곳에만 살려고 한다. 삶은 통합적이다. 악마쪽 삶도 느껴봐야 통합적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과정에 겪어야 할 고통들, 번민들, 결단과 선택들을 통해서 어른이 돼 가는 것이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것들, 멈춰있는 성장점들.

참만남을 할 용기가 있는가 나?

 

이미 만나가고 있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있다.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만나는 척, 듣는 척, 공감하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또 오고 또 말을 걸고 그런 것 같다.

 

집착과 방치

 

나도 우리 딸을 잘 독립시킬 수 있을까?

아니, 지금 단계는 온전히 사랑하고 있고 무엇을 하든 믿어주는 그 한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이어야 한다는 그 단계인 것 같다.

절대적 믿음과 사랑이라는 목욕탕에 마음껏 놀고 표현하고 잠겨있고 그래야

허허벌판같은 곳에 홀로 내 팽겨쳐지는 느낌이 들 인생 어느 시점에

그래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직면하고 나아갈 그런 자존감을

갖게 할 것 같다.

 

충분히 사랑받아 사랑을 줄 수 있고

충분한 거리밖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랐으면 좋겠다.

 

오직 바라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작업하면서 여성회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년에 한 두번은 살면서 차 올라 있는 독가스들을, 응축돼서 액화돼서 그 무게로 숨을 못쉬게 하는 그것들을 바깥세상으로 풀어주고 걷어내는 굿마당을 펼치면 좋겠다.

 

이번 워크샾에서는 보너스선물로 친구도 사귀었다.

여성성이 많은 동갑내기

나이 서른에 발견한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미국으로 까지 날아가 공부하고 있는 용감한 친구. 사회를 바꿔보려고 꿈궜던 것, 신에 대한 사랑, 파헤침,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얘기가 통할 것 같은 친구.

 

다시 미국가서 한 10년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 연극계와 연극치료 영역에서 좋은 리더가 되길 기원한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과 고통도 함께 이해한다는 것이다.

웃고 있지만 가슴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을 느끼고 볼 줄 아는 것.

그것은 내 안의 눈물과 무의식을 알아가는 작업량 만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