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이 출근 12시간만에 들어왔다.
저녁이 좀 걱정돼서 딸내미를 통해 전화를 시켰더니 바꿔달라며 회 한 접시 하자고 한다.
오늘 아침밥 차려주며 돈 없다고 차비없다고 서운한 소리를 해서 보내서 내 맘도 안좋았다.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을 왜 이리 얘기하는 지, 그 핵심은 '너는 나를 생각하니?' 이다. 한마디로.
소주 한 잔 하며 얘기를 모처럼 했다.
3개월 작정으로 지금 나가는 장애인 세탁공장에 관리인으로 나가기로 했다.
원래는 내가 다닐뻔 했는데 조건이 안맞아 거절하고 남편을 추천했으나 남편도 거절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마 밑천이 다 떨어진 집안상황이기 때문이리라. 고마웠다.
그 뒤로 새벽밥을 차려주고 있다.
승리하고 싶단다. 남편이.
90학번으로 만난 우리는 이제 마흔에 접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아래서 용케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좀 더 세밀한 꿈과 비젼을 준비해야 하고
엄연한 자본의 논리인 이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재정토대와 구조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내가 말했다.
"우리 세대에는 승리할 수 없어. 다만 우리가 구상했던 사회, 꿈꿨던 그 진실을 아이들이
이어 갈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이 말도 다 마저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남편의 말을 든는 날로 해야 했다.
솔직히 나보다 두 살 어린 남편, 공식적으로는 한 살 어린 남편이
중년 마흔 살의 고비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렇게 예민한 여편을 둔 남편으로서는.....,.
후회없다. 내 삶에
아니, 후회 있다면 좀 더 내가 하고 싶던 꿈을, 소망을 실현 시킬 수 있다는 그 한 줄기는 좀 잡고
올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밤잠이든 새벽잠을 설칠지라도 .
.
그러나 '인자가 머리둘 곳이 없다'는 그 분의 말씀과 ' 내가 나를 따르려면 집과 부모를 버려라'했던
그 말씀처럼 사실은 다 버렸다. 버리기 어려웠지만 버렸다. 이 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후대를 위해서라면 내가 그 어떤 시인처럼 그저 모래 알갱이로 큰 담벼락에 상처를 내고 가는 그 역할이라나마 하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그것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다하고 싶었다.
그게 청년 예수, 역사속의 예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한 치도 내가 다른 구멍을 만들어놓고 싶지 않았다.
두 발에 칼을 꽂아 쓰러지더라도 꿋꿋이 서서 죽고 싶었다.
한자말처럼 더 이상 도망갈 곳 없이 배수진을 쳐서라도 내 안의 욕망을, 갖가지 욕망을 누르고 싶었다.
숨이 끊기는 그 날, 심장에서 마지막 숨이 다하도록 벌떡이며 심장의 피가 솟아오르더라도
차마 눈감지 못하고 죽더라도 지키고 싶은 만들고 싶은 새세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회, 이 자본주의는 그리 만만치 않고 인간의 마음은 내마음을 비롯해 참 다양하다.
나는 말했다.
"승리할 수 없을 수 있어. 우리 대에. 다음 세대가 중요해."
정말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날은 오지 않으려는가?
다 괜찮다고 하시는 하느님과
어제도 오늘도 용산의 참혹한 죽음을 구명하려는 신부님들과
승리를 위해 내딛는 사람들과
인간의 존엄과 자존을 위해 가는 사람들
세상은 참으로 만만치 않다.
남편이 일하는 곳은 지적 장애인들이 일하는 세탁소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감이 더 많아진 모텔과 호텔의 세탁물을 세탁하는 세탁공장이다.
술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새세상에 대한 꿈을 꾸되 세상을 잘 몰라서 겪는 수업료로 지난번 했던 '가게의 청산'여긴다고.
학생운동하면서 장애인이 돼서 민주화보상법으로 받은 돈은 기부했다가 이래저래 해서 가게를 끝으로 다 바닥난 밑천.
그래, 생각지도 않은 돈, 그저 인생의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꿈을 꾸는 남편이 '괜찮다고 말했다.
나도 괜찮다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해. 나도 그럴게. 하지만 딸은 잘 기르자. 그래야 우리의 뜻을 알겠지."
술을 걸치며 말을 하며 텔레비젼도 시청했다. 션과 탤런트 부부가 나왔다. 평상시 기부를 많이 하는 부부이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기부를 많이 할까?"
"돈이 많아서겠지?"
"아니야, 돈 많은 연예인이 한 둘이니?. 뭔가 사연이 있을 거야"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나도 입양하고싶어. 돈 있으면"
"그래, 그러면 좋지. 그래야지."
내가 말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 너무나 중요해 "
"그래"
남편은 그냥 괜찮은 사람이다.
다만 내 결핍과 내 트라우마가 그에게 간 것이겠지.
언젠가는 얘기하리라.
"너 자체로 안보고 내 아버지이길 원했던 것 같고 내 결핍을 채워주길 바랬던 것 같다고. 그래서
더 서운했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애쓰고 사는 사람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예수님 탄생한 이 날.
우리도 다시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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