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7일 목요일

다시 108계단 앞에서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던 시절

가끔 버스타고 오거나 전철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올라오면

한 번은 멈춰서 올려다보던

108계단

 

속세의 번뇌를 신발털듯 떨치고 들어가야할

사찰의 일주문처럼

세상을 잊고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옷깃도 여미고 경건하기마저 해야 할 다짐의 순간.

사실, 몇 번은 비장했지만

대부분은 막막하기만 회색빛 '일단정지'의 시간이었다.

 

나선형의 시간을 타고 올라

오늘,

108계단 앞에 서 있다.

피자 한 판 같은 인생,

그 한 조각을 먹어치우고

 

여기

다시

멈춰서 올려다 보는

108계단

 

어른도 아이도 아닌

무소속의 회색인간

그래도 낙엽지는 가을의 스산한 바람과

은행잎 노오란 눈물을 볼 줄 알게된

철들어 가던 시절.

 

통일의 꽃 임수경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님

방북소식도

전철역 가던

그 긴 은행나무 길에서 들었지.

친구와 갑론을박 얘기했지만

소리나지 않는 마이크같았지.

재수생은 유언무성

 

힘차게 날아오를 첫 비행에

한쪽 날개가 꺾여

108계단 앞에 불시착한 독수리.

꺽인 뼈는 진액으로 엉켜

더 단단해졌구나.

20년 긴 비행을 마치고

108계단 앞에 내려앉아

제 부리를 부수고

제 발톱을 뽑아

남은 비행을 위한

새로운 차비를 하는 구나.

 

이젠

모두가 날아가는 그곳으로

따라가지 않으리.

내가 가고픈 곳,

내가 하고픈 활개짓으로

바람을 느끼며

바람속에 떠 있으리라.

비를 맞으며

쇼생크탈출처럼 소리를 지르리라.

해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지.

그래, 태양도 한 번 맞짱 뜬 눈으로 보리라.

 

"너는 너 자신을 멸망시킬 태풍을 네 안에 가지고 있는가?"

 

오늘 같은 내일이 아니려면

어제의 나를 밀어버릴 태풍이 있어야 한다.

생성과 소멸

그 과정에 새로운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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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수강하게 된 글쓰기 강좌 장소가

20년전 재수학원 그 자리였다.

학원앞에는 108계단이 있었다.

동네 이름도 해방촌인가 그랬지?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어릴적 철학댓거리에서 배웠는데

개인의 역사 또한 그러한가?

 

20년 그 계단 앞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로웠고

아, 이제 어떤 시절인연이 날 기다리고 있나 싶었다.

 

오감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흠뻑 받아들이고 싶다.

인생아, 내가 간다.

 

 

 

 

 

댓글 2개:

  1. 또 다른 미래 2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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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회색웃음 - 2009/08/27 13:05
    책에 싸인을 넣어서 선물로 드리지 않을까요 ㅎㅎ, 아님 ...시사회에 초대해 드릴지도 와하하하 ~~앞으로의 일은 모르고 오직 오늘만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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