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싸이코드라마

생일날 미역국도 못얻어먹고 정신없이 서둘러 딸내미 들살이(방학캠프?) 보내고

드라마치료 연수를 하러 전철을 탔다.

 

싸이코드라마.

 

올해 6월에 처음 맛 본 이 '드라마치료'는 그 에너지와 영향력이 10점 만점에 9점이다.

MBTI, 에니어그램, 꿈작업, 춤테라피, 색채치료, 미술치료, 현실요법등 그 동안

공부하고 들어 본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여타의 것들은 따스한 공감을 통한 치유,

마치 따스한 차와 푸근한 포옹,그리고 경청이라면

싸이코드라마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응시하면서 맞짱을 뜨는

냉정한, 막다른 골목에서 상처를 직면하는 것 같다.

이것또한 다 내 투사이지만.

 

먹고 살고,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마음은 있겠지만 방법도 잘 몰랐던

그저 사랑하고 기죽지 않게 가르쳐야겠다고 아둥바둥 악착같이 사셨던 부모밑에서

그래도 좀 따스하게 안아주지, 그래도 좀 내 말을 들어보지, 그래도 좀 내가 얼마나 두렵고 외롭고 슬픈지 한번이라도 쳐다보지 그랬어 하는 아쉬움이

몸속, 맘속에 슬픔의 항아리가 돼서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것 같은 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 다 잘돼라는 마음으로

자식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고 손도 묶고 다리도 묶어

오직 부모가 하라는대로 로봇처럼 움직이게 하는

가슴과 생각은 없애버려야 하고 오직

지식과 부모의 지시를 인식하는 센서만 있는 그런 표정없는 피가 식은

서른살이나 먹어 독립을 갈구하는 어른아이를 만났다.

 

결핍도 과잉도 모두 상처구나, 하면서 내 결핍이 위로를 받았다.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 엄마를 떠날 거라고, 엄마가 너무 부담스럽다고하는

오열, 그 진동과 파장이 공간 전체를 흔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눈물이 흘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속박이 한 영혼을 질식사시킬 수 있다는 엄청난 파괴력을 잔인함을 느꼈다.

부모는 전혀, 한번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리라, 오직 사랑했고 걱정했다.

 

나는 00000라고 생각해. 나는 0000 했으면 좋겠어.

아이는 수도 없이 얘기했겠지만 다 거절당하고 금지당했다. 오직 엄마의 뜻대로만 살아야했다.

내가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친구와의 대화, 나랑 똑같이 엄청난 사랑의 무게에 눌린 친구, 내 맘 깊숙한 얘기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줬던 그 아이를 엄마는 사귀지 말라고 했다. 몰래 내 일기장을 훔쳐봤고 하루에도 수 없이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보고

서른 가까운 지금에도 전화를 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한다.

난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엄마는 내가 할 수 없다고 한다. 엄마없이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난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 왔고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독립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대로 내 맘대로 해보고 싶다.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여행도 가보고 싶다. 일곱살때 좋아하는 친구보러 가려고 했는데 버스타고 간다고 안된다고 해서 못갔다. 엄마는 그랬다.

 

그런데 사실 두렵다. 솔직히 편하고 익숙하다.

엄마 곁에서 엄마가 해주는 것을 받아먹고 사는게.

그냥 엄마 곁에서 엄마 말씀대로 사는게 편할 것 같다.

그리고 내 힘으로 사는 것은 힘들것 같기도 하다.

 

내 삶을 살고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엄마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진정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원하는대로 하면 된다.

엄청난 거부의 액션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막상 독립의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다.

멈춰서 있었다. 한참을.

 

다시 엄마한테 가라고 했다.

 

드라마가 길어져간다.

엄마랑 그대로 살게 되었을때, 독립했을 때 두 가지를 설정하고 그 이후 10년까지 상상해보는 장면을 배치했다.

리얼했다. 끔찍했다. 선명했다. 나는.

 

결국 아이는 독립했고 그때부터 스물일곱 어른으로 자리를 찾게 되었다.

모두들 독립만세를 외치며 축하해줬다.

 

처음을 연인과 몸을 열어 사랑을 하고

순결을 잃었기에 다시는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없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처녀인척 연기를 해야 하는것인가 고민하는

어느 학교 선생님.

 

대학원 과정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의 왕따를 견뎌야 했던 상담사,

 

딸을 너무 사랑하는데 자꾸 얽어매게 되는 학교 선생님,

 

아침 일찍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저녁 11시까지 함께 있자고 몇 달을 그렇게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그와 비슷한 남편때문에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정열의 연극배우.

 

삶을 둘러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상황, 그 안에 묻혀있는 내 마음, 그 속에 갖가지 감정들을 뼛속까지 기억해 가는 내 몸.

숨을 막고 표정을 지우고 몸을 허무는 그 무의식의 파괴력.

 

좋고 밝고 우아한 감정들만 예쁜 접시에 담아 내놓고

어둡고 반사회적, 반상식적이고 , 비천하고 노골적인 감정들은

우리 마음 속 저 깊은 지하창고에 처 넣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살아있고

정말 내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느낌이다.

밖으로 꺼내서 얘기를 들어주고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똘똘 뭉쳐

어느날 나를 무찌르려고 쳐들어 온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내 삶, 내 주변사람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독화살을

날리기도 한다.

 

첫날 1차 뒤풀이를 마치고 2차를 가는 길에 디렉터 선생님이 한 말씀하셨다.내게

삶이란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는데 000생님은 주로 천사쪽 삶을 지향하고 그곳에만 살려고 한다. 삶은 통합적이다. 악마쪽 삶도 느껴봐야 통합적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과정에 겪어야 할 고통들, 번민들, 결단과 선택들을 통해서 어른이 돼 가는 것이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것들, 멈춰있는 성장점들.

참만남을 할 용기가 있는가 나?

 

이미 만나가고 있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있다.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만나는 척, 듣는 척, 공감하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또 오고 또 말을 걸고 그런 것 같다.

 

집착과 방치

 

나도 우리 딸을 잘 독립시킬 수 있을까?

아니, 지금 단계는 온전히 사랑하고 있고 무엇을 하든 믿어주는 그 한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이어야 한다는 그 단계인 것 같다.

절대적 믿음과 사랑이라는 목욕탕에 마음껏 놀고 표현하고 잠겨있고 그래야

허허벌판같은 곳에 홀로 내 팽겨쳐지는 느낌이 들 인생 어느 시점에

그래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직면하고 나아갈 그런 자존감을

갖게 할 것 같다.

 

충분히 사랑받아 사랑을 줄 수 있고

충분한 거리밖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랐으면 좋겠다.

 

오직 바라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작업하면서 여성회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년에 한 두번은 살면서 차 올라 있는 독가스들을, 응축돼서 액화돼서 그 무게로 숨을 못쉬게 하는 그것들을 바깥세상으로 풀어주고 걷어내는 굿마당을 펼치면 좋겠다.

 

이번 워크샾에서는 보너스선물로 친구도 사귀었다.

여성성이 많은 동갑내기

나이 서른에 발견한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미국으로 까지 날아가 공부하고 있는 용감한 친구. 사회를 바꿔보려고 꿈궜던 것, 신에 대한 사랑, 파헤침,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얘기가 통할 것 같은 친구.

 

다시 미국가서 한 10년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 연극계와 연극치료 영역에서 좋은 리더가 되길 기원한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과 고통도 함께 이해한다는 것이다.

웃고 있지만 가슴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을 느끼고 볼 줄 아는 것.

그것은 내 안의 눈물과 무의식을 알아가는 작업량 만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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