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시동생 장가 보내기

둘째 시동생을 추월해서 막내 시동생이 장가를 갔다.

토요일이 예식날이었지만 큰며느리이자  토요일 전까지는 유일한 며느리인 나는

큰댁 큰고모의 언질을 받아 축하손님들 방문과 투숙에 대비한 음식들을 마련하기 위해

목요일 오후 딸내미 학교 마치자마자 금요일날 결석을 무릅쓰고 서방과 함께 KTX에 몸과 짐을 실었다.

 

이 참에 첨으로 바퀴달린 여행가방도 사고 딸내미 예쁜 옷도 몇 벌 사주었다.

서방은 스스로 알아서 구두를 사둔 터라 미안했는지  나보고도 뭘 고르라고 했다.

나는 (자원의 순환을 위해^^) 구제 상품점에 가서 7만원어치 옷과 신발을 샀다. 웃옷 2벌, 부츠 1개, 머플러 1개, 서방 잠바 1개. 더 사고 싶었지만 딸내미 학교 월사금으로 쓰려고 묶어놓은 돈을 헐은 것이라는 걸 알기에 여기까지..... -.-

 

저녁에 도착해서 신접살림 차린 새 집에 가보고 다음날 아버님, 어머님, 장가 안간 시동생, 남편, 딸을 대동하고 재래시장과 농산물 시장, 대형마트를 돌면서 장을 봤다. 시간이 좀 있으면 어머님댁 복잡한 살림을 정리할 수납장까지 사고 싶었으나 이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간단한 세간 살이만 샀다. 확실히 사람은 가까이에서 살아봐야 좀 알 수 있다. 아버님이 그리 성격이 급하시고 목소리가 크신 지 몰랐다. 몇 번 같이 온 일행이 아닌 듯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었다. 어머님이 힘드시겠구나.... 우리 서방이 왜 화통삶아 먹은 소리를 내는 지 알겠구나..... 싶었다.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정신이 없다. 그리고 내 입에서도 남도 사투리가 맴돈다. 나도 흥분하거나 들뜨면 소리가 커지긴 하는데 여기는 일상생활이 그렇다. ^^

 

결혼 축하를 위해 미리 하루 전에 오셔서 주무신 분들은 5명, 방문하신 분들은 3분(아침 7시에도 오셨다. 이날이 뭐 결혼하기 좋은 길일이라 몇 탕씩 참가해야 하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여섯명의 고모와 고모부, 큰어머님, 아이들.

그래서 약 50여명의 식구들이 축하하면서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음식준비야 뭐 별로 없었다. 다만 끼니마다 식사를 차려야 했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는 것. 술상을 봐야 했다는 것.

 

결혼식 당일은 아침 일찍 미장원에 가서 스프레이 범벅의 힘으로 머리를 올렸다. 예전에 스프레이 없었으면 어떻게 머리를 올렸을까나.... 약간 거추장스럽지만 한복을 입고 식장에 도착해서 어머님 옆에서 어른들을 맞이했다. 언뜻 본 적이 있는 어르신과 처음 보는 분들. 어머님 옆에서 살며시 웃으며 서 있는 역할.

 

결혼식이 시작되고 식장에 앉아서 세째 고모랑 잠깐 얘기를 나눴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 하실 거예요?"

"아니, 미쳤어. 결혼 안해"

"그렇죠? ^^"

 

시동생 결혼식날 고모와 며느리가 나눈 얘기로는 좀 씁쓸하지만 대부분 여자들의 공감인 듯. ^^

 

폐백때 신랑신부 절도 받았고 덕담도 해줬다.

'일주일에 하루는 둘이 꼭  시간을 내서 만나요'

 

지금이야 '당근'같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살다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숨결을 느끼고 그 사람의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며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라.

까이고 까이고 또 까여도 마지막까지 얼굴 맞대고 부둥켜 안고 있는 양파 속심처럼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삶이리라.

부족해도 안아줄 수 있는 영원한 내 편을 찾고 싶지만 남편은 많이 남의 편.^^

 

상대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상대의 결핍을 이왕이면 채워줌으로서 그 안에 새로운 속살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음 단계로 성장해 가는 그런 인생을 나누는 부부로 살아가길 기원한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자기의 성장이 없이는 타인으로 채워지는 것은 늘 목마르고 굶주리고 외롭다는 것.

자기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서로 도울 뿐, 내 꽃은 내가 피워내는 것.

 

이 말을 어찌 지금 이해하리. 콩깍지 안경을 쓰고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신랑과 신부랑 있는 것을

인생이란 예습이 별 효과가 없다. 선행학습은 하면 좋지만 참 얄궂게도 일일이 다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과목이다.

 

하지만 결혼이란 지극한 성장의 커리큘럼이고 일면 득도의 과정이며 자아성찰의 결정판이다.

 

싹싹하고 부지런한 우리 도련님, 잘 살 것이다.

 

결혼식장에 데리고 와야 믿어주겠다는 아버님 걱정이 이로써  종식되었다.

좀 화려한 연애경력이 뭔 흠이랴, 오히려 부럽네. 다 시절인연이고 사람공부를 한 것이다.

 

잘 살드라고 막둥이 시동생. 그리고 동서.  

 

 

 

 

     

댓글 4개:

  1. 저도 올해 결혼한 시동생 결혼식에서 애들 델꼬 가느라 늦었다꼬 시어머니께 혼났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네요. 먼 데까지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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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회색웃음 - 2009/11/02 20:15
    반가운 회색웃음님. 잘 지내셔요? 찬바람 부네요.출퇴근길 옷깃 잘 여미고 다니세요.가끔 기분전환을 위해 미니스커드도 입으시고.^^ 한살이라도 젊을때 젊음을 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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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괜찮아 - 2009/11/04 09:51
    저기... 미니스커트.. 그건 쫌... 전 이브닝 드레스 입어 보고 싶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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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럼 우리 내년 미팅 드레스 코드는 이브닝드레스로? 가슴 확파이고 등 훤히 보이는 치렁치렁 공단드레스? 이동이 문제네. 싸가지고 가야 하겠죠. 장소를 잘 물색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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