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는 프쉬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낙원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에로스는 이런 방식으로 프쉬케를 통제했다. 여성은 일정 시간 동안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 혹은 내면의 신 아니무스의 지배하에 살아간다. 에로스가 만든 낙원에서 의식적 깨달음에 대한 욕구는 침묵한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마침내 여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의 지배에 도전하여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지켜보겠다"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은 한 여성의 내면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기가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런 선포를 한 결과로 여성은 견디기 어려운 심한 외로움에 빠진다. 이 외로움이 두려워 통제상태, 낙원에서의 삶이 오래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알고 나면 아니무스는 더 이상 그 여성의 심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아니무스와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단 관계를 시작하면 더 이상 아니무스에게 끌려가지만은 않는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에로스의 본 모습을 궁금해하는 의식의 등불을 켜지 않는다면 프쉬케는 완전한 무의식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무의식 상태'란 불가능하다.
프쉬케의 두 언니가 제안한 등불과 칼의 상징에 주목하자. 만일 여성이 자기 안의 빛과 칼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깨닫는다면 살아가는 동안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여기서 심오한 법칙 하나가 있다. 여성은 등불은 사용하되 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칼은 개인적인 용도로 써야한다. 명쾌한 식별을 위해서나, 애매모호한 것을 잘라낼 때만 사용해야 한다. 칼은 단절을 가져올 뿐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등불은 이용하되 칼은 사용하지 말라는 법칙은 남성의 아니마에게도, 그리고 남성이 만나는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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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들어왔다. 그림이 그림.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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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일 수요일
눈에 들어오는 그림과 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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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격정적(?)인 그림은 없지만 가끔씩 현대미술관에 가서 유화를 보고 오곤 해요. 넓은 잔디에 자리잡고 있는 설치미술도 보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구불 구불 숲속 길도 드라이브하고요.. 유화가 주는 풍족함이 좋아서 혼자서 가기도 했어요.. 안 가본 지가 좀 되었네요..^^
답글삭제@회색웃음 - 2009/12/03 01:16
답글삭제이 그림 좋죠? 내 안의 무엇을 움직인 것일까요? 아니무스, 아니마? **녀 *정? ^^ 오래간만이에요 울 회색웃음님~~
@괜찮아 - 2009/12/03 09:22
답글삭제"**녀 *정" => 이거 한참 노려봤네요 ㅋㅋ
괜찮아님이 말씀하셔서 그런지, 한동안 휴지기였는데 오늘 오랜만에 유입되었네요. 책임지세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