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불혹의 여인이 부르는 구직애사(求職哀詞),취업비가(就業悲歌)~~

지난 11월 중순 어느 날부터 학업을 염두에 둔 취직 결심을 했다.

평생에 한 번은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이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4대보험에 소득공제도 되는 그런 회사에 다녀보리라 결심을 했다.

애시당초 젊은 청년의 시기때부터 여러 직업중에서도 회사에 다니는 일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터라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이었다.

 

대체로 살짝 대책없을 수준으로 낙관적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것 같이 생각해온 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내가 원래 그런 편이다.

물론 이런 내 상태는 커다란 빙산의 의식의 일각이고 그아래는  수치감과 불안, 두려움의 어마어마한 덩어리가 있다.

 

철들고 한 세번째 정도로 이력서라는 걸 썼다.

오래전 26살인가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은 독서논술회사에 이력서를 손으로 써서 내고

그 뒤 지역사업차원에서 복지위원인가를 하게 되었을 때 내고는

 

정식으로 취업을 향해 쓴 이력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포맷도 다양하고 자기소개서까지 써야했다.

이력없이도 잘 살던 나인데

전혀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력을 통해 나를 알아봐 달라고 뭔가를 써야 했고 내 각오를 피력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대학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처럼 좀 어리둥절도 하고 이런생각, 저런 궁리를 했다.

 

이력서를 보내야 할 곳을 살펴보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열심히 20년 살아왔는데 막상 주먹쥐고 달려온 손이 펴보니 허전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아, 스펙이 없구나. 내가.

경험은 있고 꿋꿋이는 살아왔으나 그것은 내가 있던 공동체에서 통하는 이력이고

이 사회가 원하는 능력과 기술과 지식은 별로 없구나, 내가......

 

하지만 이력서를 쓰면서 나는 떨어질 생각은 추호도 안했다. 안든다 그런 생각이. ^^

이게 나다. ㅎㅎ

지원처는 사회복지 기관이나 상담기관, 복지관으로 잡고 인천과 서울, 부천을 중심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이력서와 소개서, 기타 자격증 사본을 첨부해서 지원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거의 10곳에 전자우편 접수를 했고 2곳에 우편접수를 했고 2곳에 방문접수를 했다.

그리고 서류전형을 거쳐 면접을 본 곳은 4곳.

한 곳은 성매매 청소녀들의 쉼터였는데  일주일에 2번 숙직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결정을 주춤했고

한 곳은 상담을 하고 싶어 지원했는데 사회적 기업을 해 볼 것을 권유해서 거절했고

한 곳은 정신건강증진센타인데 단순 사례관리를 하기에는 내 열정이 넘치는 듯한 답신을 줬다.

뭐 어쨌든 면접을 봤는데도 안된 곳은 현재까지 3곳.

내일 한 곳 발표가 난다. 명찰까지 달고 면접관 4명이 면접을 본 청소년지원센터이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남자와 나, 이렇게 단 둘이 면접을 봤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 일하다 보면 6시 퇴근인데도 더 늦게 끝나기도 한다. 어떻게 하겠나?

*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가? 칼퇴근 직장이 도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가 기분이 안좋았다.

 

- 약속이 있는데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그래도 약속을 나가겠는가?

* 속으로 열받고 기가막혔다. 위기청소년에 대한 긴급상황이면 당연히 절차를 밟아 긴급하게 움직이는 것이고, 그러면 약속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인지, 조정해 보는 것이고, 또 다른 직원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으면 협조를 구하는 것이고, 이도저도 안되면 긴급하게 일을 하는 것 아닌가? 뭘 듣고 싶었을까나?

 

- 경력을 살펴보면 팀원이 아니라 팀장을 해야 맞는데 팀장이 어려도 잘 일할 수 있겠는가?

* 그래, 이 걱정이 솔직한 것이지. 그리고 이 점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며 그들의 고민지점이자

내 결정적 약점이다.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각오한 일이고 그래서 지원한 것이기에 나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원 기관과 면접관들은 이 점이 결정적으로 힘든 것이겠지.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듣고 난 나는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비우고 있다. 그래서

면접 끝나고 오는 길에 근처 다른 기관에 이력서를 한 부  더 넣고 왔다.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문제, 재취업의 벽이 이런 줄 몰랐다고 고백하면

내가 너무 철없고 세상을 모르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겠지.

근데 정말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올 한해 1년 정도의 휴가 말고는 경력이 단절된 적 없이 활동하고 일해온 나인데

느낌은 다리가 끊겨진 절벽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력서에 지나온 경력을 쓰는 부분에 연봉을 적는 란 앞에서

참 막막했다.

한 곳은 연봉 360, 한 곳은 너무 없어 보여서 연봉 720으로 올렸다.

언제쯤 NGO단체들도 4대 보험에 연봉 1200~ 1500은 적게 될 것인가?

우리 동네에만 그런가? ^^

 

나와 잘 맞고 내가 어울리는 곳인데 미처 내가 정보를 갖지 못해서, 내 이력서가 가지 않아서

인연이 안 닿을까봐 수시로 검색을 해 보고 있다. 요즘.

그런데 딸내미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컴퓨터만 한다고.

아, 어쩌란 말이냐 우리 딸아. 엄마를 이해해 주렴.

 

난 일하고 있는데 우리 딸에게 컴퓨터는 노는 것, 자기가 텔레비젼 보는 것과 같은 격으로 안다.

딸내미의 겨울방학은 시작되었고 이제 긴 시간 딸을 보살펴야 할 때이다.

취직이 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4학년까지는, 혹은 초등학교까지는 곁에서 돌봐야 할 것 같고

한편으론 초등학교 졸업까지는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 잡혀야 할 것 같은데.

딸이 6학년이면 난 43살이다. 딸이 20살이면 난 50살이다.

인생 100년이면 난 절반의 허리가 휙 꺾인 나이이다.

 

내 50살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게될까?

그러기에 이 10년이 나에겐 참 중요하고

앞으로 2-4년이 참 중요하다. 근데 딸도 중요하고.

 

어렵다. 복잡하고. 인생.

 

안놀아 준다고 불량엄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다.

근데 난 사실 어떻게 놀아줘야 할 지 어떻게 사랑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난 그냥 나 혼자 알아서 자랐는데.

못받은 사람이 잘 줄 지도 모르는 걸까?

이게 또한 무서운 대물림일까?

 

그러나 난 딸을 사랑한다. 외롭게 하고 싶지 않다. 서럽게 쓸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야기가 딴 곳으로 가고 있네.

 

다시, 다시...

 

어제 김형경에 '좋은 이별'을 읽었다.

그 책을 보면 내 상태는 '애도의 중간' 정도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지나온 삶의 켜켜에 묻혀 있던 사건들 속에 감정들을 다시 다 느껴보는

그런 애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고 춤을 췄던 것이다.

나 나름대로 애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지나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주 말짱한 상태는 아니고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게 모여있다.

그리고 아직은 나를 안아줘야 한다.

 

이 구직과정이 나를 상처내게 하고 싶진 않다.

열심히 살았고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 것이고

그런 내가 대견하고 살아줘서 고맙다.

 

설거지를 하다가 가슴이 먹먹하고 걱정이 아스라히 안개처럼 깔려오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바람이 되어 이 모든 것들을 날려보낸다.

 

선덕여왕 마지막회에서 아주 철학적인 대사가 나왔다.

나를 망치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내가 나를 지켜줘야 할 때이다.

 

지금 이순간 , 지금 여기, ......

간절한 소원, 절실한 기도 ....

신이여 허락하소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THIIS IS JUST MOMENT 인가 하는 노래가 흥얼거린다.

 

눈을 감고 이적의 '다행이다'를 샤워기의 따스한 물줄기처럼

내 머리와 온몸에 흘려보내고 싶다.

 

돌봄노동의 고된 세월을 보내고  경력단절의 벽 앞에 망연자실하게 있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과

그 와중에서도 공헌을 위해, 자신을 위해 원형탈모를 무릎쓰며 공부를 하고 있는 또순이 여성들과

경력없는 경력속에서 고된 사회적 노동을 하고 있는 진보와 개혁의 젊은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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