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쫓기는 꿈을 꿨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배편에서 아는 사람 동생의 협박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배가 닿는 곳에 그의 부하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영화같다. 좀...
어젯밤 딸을 재우는데 멧돼지들이 꿈에 나타나 자신과 친구들을 습격하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제 저녁 뉴스에서 요즘 도시 곳곳에서 출몰하는 멧돼지에 대한 영상을 보고 꾼 꿈인것 같다. ㅎㅎ
누가 나를 이 새벽에 깨웠는가?
왜?
월요일 듣는 한권의 책쓰기 동화강좌에서 내준 숙제때문일까?
돌덩이에서 원료를 뜯어내놓긴 했는데 세공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는 마음일까나?
정말 올해 가기전에 한 편 써보려고 어린이동화강좌 '한권의 책쓰기'를 신청해서
낯설고 먼 상암동, 소설책에서나 봤던 수색이라는 지명도 보이는 곳까지 다니건만
(사실은 무료라서 그럴거야.ㅎㅎ)
거친 돌더미에 채취한 아직도 많이 거친 재료들.
이제 막 숲속에서 따온 아직은 잎사귀이며 식물에 불과한 아로마 풀.
이것들로 어떻게 소박하더라도 성실함과 진정성이 녹아있는 보석 한 알, 향수 한방울을 만들까나.
숙제때문이지만 작심하고 읽기 시작한 어린이 문학의 감동과 웃음, 삶에 녹아 있는 희망이
가슴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던 일요일 오후와 월요일 아침.
내가 맛보지 못하고 진열하고 권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또 약간의 후회로 다가왔지만 이건 바로 걷어냈다.
책과 좀 더 깊이 만나고 친해지면서 정말 친구가 생긴 것 같고 스승이 생긴 것 같다.
친화력있다고 내심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막상 들춰보면 얼마나 직접적인 사람관계에서 서툴고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지.(겉으로는 안그런척 하면서...)
상대의 한마디 말, 한순간의 눈빛, 한동작의 몸짓에서 많은 경우의 수와 생각들을 추론해 내는 복잡하고 미세한 내 생각, 느낌, 감정.
그래서 만남보다는 책을 보게 되고, 말보다는 문자나 편지를 보내고 싶은 것일까?
실수하고 미숙할 수 있는 권리.
이제 어른인 내게는 잘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어설픈 어른, 아이와 같은 어른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
아, 이 말을 쓰려고 일어난 것일까?
이게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아티스트웨이>에 나오는 모닝페이퍼 작업일까나?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3쪽의 글을 써라, 생각나는 게 없고 쓸 것이 없으면 그렇다고 시작하고 써라.'
요즘 자꾸 느껴지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얼마전 얘기한 것 같기도 하다.
쇼생크 탈출때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그 시원한 빗줄기 같은 샤워기.
물에 풀리는 화장지같이 몸을 푹 담그면 녹아질 것 같이 편안하고 충만한 욕조.
외롭고 서늘하고 무겁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무가치하다고 느껴질때마다
분수처럼 햇살처럼 비단처럼 솜털처럼 폭포처럼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두드리며
충분히 충분히 적셔 줄 물줄기를, 사랑의 물줄기를 뿜어내는 샤워기. 언제나 틀 수 있는 샤워기가.

목만 내놓고 눈을 감은 채 따스하게 얼굴로 올라오는 수증기를 느끼면서
순간 물속에 수욱하고 들어가 눈을 뜬 채 바라보다가 어푸하고 소리를 내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목을 한껏 져쳐 입을 벌리고 뱃속 깊은 숨을 내마시며
땀구멍 하나하나에 물기가 충분히 충분히 배여 온몸이 적셔지고 물기로 차오르는 그런 충만함을 주는
이왕이면 장미꽃잎도 아로마 차잎도 떠 있는 그런 뜨끈 따스한 욕조가. 언제나 잠길 수 있는 욕조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찜질방이라도 가야하나.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다.^^
내 속의 무엇이 이렇게 말을 걸고 이미지를 출력해 내는 것일까?
내 속의 누가 잠을 깨우고 나를 일으키는 걸까?
따스한 노오란 빛을 좋아하는 내면아이가
아무 조건없는, 무조건의 충만한 사랑을 흠뻑 받고 싶다고 내가 아우성인 것 같다.
이리도 절절하게 아이는 사랑이 필요했던 것일까?
애쓰지 않고 그냥 거저 주어지는
마냥 받기만 해도 되는
그런 사랑을 이토록 이토록 바라고 있었나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세공작업과 조제작업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칠흙의 하늘이 남빛으로 환해졌다. 곧 피곤이 몰려오겠지. 울 딸 학교 보내야 하는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첫 등판에 홈런 칠 수 없고
그저 아직도 고구마 삶다가 안 태운 적이 없는 것처럼
그저 아직도 단호박 삶다가 호박죽 만들어 온 것처럼
실패해도 모자라도 그게 인생이고 실패하는 방법을 한 가지씩 알아가서
누구처럼 99가지 실패에 1가지 하늘의 보너스를 믹스해서
원하는 것을 해보는, 그것이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을 만드는 기쁨과 후련함을
느끼면 되는 거지.
일단 양수기로 내 안에 고인 물을 퍼내고
채굴기로 원석을 떼어 모으는 작업을 해보고.
인류의 정신 문화 유산인 좋은 책들을 보면서 세공도구와 절대음감같은 감각을 민감하게 훈련해서
이렇게 고요한 나만의 시간에
이렇게 누군가 깨워주는 소중한 시간에
해보자.
이게 오늘 네가 내가 하고픈 말이었니?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