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2일 수요일

가족을 느끼게 한 여름휴가 - 시댁 ^^

ktx를 타고 전라남도 광주 시댁에 갔다.

가게를 정리한 큰 아들도 궁금하셨을 것이고

여름방학을 맞은 손녀딸도 많이 보고싶으셨기에

벌써부터 내려오라고, 아니면 딸내미만 보내라고 시아버님이 전화를 몇 번 하셨다.

 

서방이 자기는 카드가 없다며 내 카드로 기차표를 샀다. -.-;;

와우, ktx 비싸네...

염증때문에 여전히 다리가 불편한 상태이니 운전을 하기엔 무리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차여행에 대한 향수나 기대가 덤으로 오고

화장실도 있으니 뭐 딸내미 생각하면 안심이니 됐지. 좋아 출발.

근데 의외로 좌석이 좁아서 불편하고 중요한 것은 달걀도 안팔고 식당칸도 없고 그렇다는 거. 그저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승무원들이 오고가며 깍듯하게 인사한다는 거 말고는

별 장점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빠르다는 것이 결정적 장점이기는 하나)

 

조카를 눈빠지게 기디라고 있던 또 한사람, 삼촌(강아지 사라고 돈도 부쳐준)이

마중을 나와 바로 간 곳은 큰집 제일 큰 고모네 식당. (참고로 큰집 고모는 6명)

사랑하는 동생이자 장손이 온다고하니

말로만 듣던 염소고기를 수육으로 해서 한 상 차려주셨다.

고기를 안 먹는 나는 양념 범벅인 전라도 김치만 속쓰리게 먹었다.

염소는 여자한테 좋다던데..... 다행히 딸이 먹었으니 ...뭐......

 

다음날은 근처에 사는 고모 세 명의 가족과 아버님과 우리 삼촌 둘과

다같이 곡성 어느 계곡으로 이른바 가족피서를 갔다.

그 근처에서 식당을 하시는 세째고모가 큰 음식들은 다해오셨다.

물이 참 맑아서 다들 좋아라하고 어린아이처럼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아버님도 ^^

우리 시댁 큰집 작은집 식구들은 모두 목소리가 크고 화통한 편이다.

사위들이나 아직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 나 빼고는 삼촌, 고모들, 아버님, 큰어머님 모두들 엄청 목소리가 크고 소리도 잘 지르신다. (사실 난 적응이 안된다. 아직도....ㅎㅎ)

 

맑고 힘차게 흐르는 섬진강 상류계곡의 한 낮은 술과 기름진 안주와 과일로 풍성하게 흘러갔다. 좀 얼큰해지신 아버님이 한 말씀하셨다. 내게.

나를 딸처럼 생각하는데 왜 연락도 잘 안하고 그러느냐하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렇다 아버님은 기분파이시고 호방하시다. 풍류를 즐기실 줄도 알고 큰집 작은집

일가친척 두루두룩 챙기시는 청년이시다. (완도에 사실때도 줄 곧 청년회장을 하심^^)

아버님은 날 딸처럼 생각하신다고 결혼 전부터 얘기하셨고

떡두꺼비같은 아들 셋을 두신 든든함이 허전함으로 바뀌면서

살가운 정을 느끼게 하는 딸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셨다.

그래서 무덤덤하고 표현없는 (그리고 당신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형편들인) 아들들을

뒤로하고 큰 집 딸들의 유머와 정겨운 관심을 좇아 가셨다. ㅎㅎ

근데도 정작 자신의 직계 핏줄인 아들과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며느리인 내게도 살가운 사랑과 표현 관심을 원하신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비가 오는 날이면 택시운전을 하시는 아버님이 걱정된다.

문자라도 넣을까 싶지만 잘 안된다. 왜 마음처럼 안될까 생각해보니

내 친정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 살갑지 않았고 관계형성이 잘 되지 않아서 것 같다.

더 깊게는 난 남자 어른들을 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난 내가 볼때 정도 많은 사람인데 표현도 잘 하는 사람인데

목소리가 크거나 소리를 잘 지르거나 직설적인 사람들에게는 적응이 안된다.

다소곳하게 아버님께 이런 얘기를 했다. 남자어른이 좀 어렵다고.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도 좀 어려워해서 연락을 많이  안드렸다고 .

 

그렇다. 소위 운동한다고 돈도 제대로 못벌고 멋도 부리지 않고 선머스매처럼 사는 딸이 아빠는 못마땅하셨고 늘 걱정이셨다. 돼도 않는 꿈을 꾸는 철없는 딸, 그렇게 사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길이라며 고집을 부리는 딸.

딸은 자꾸 막아서고 반대하고 회유하는 아버지에게 연락을 자주 할 수 없었다. 연락하면 부모자식간이라 마음이 약해지게 될까봐 한 손을 내밀면 두손을 다 내어놓으라고 할까봐 연락을 안했다. 가끔 보고싶어 연락을 하면 역시나 걱정반 잔소리반이었다. 보고싶은 마음을 채 전달하지도 못한 채.....^^

 

앞으로는 맘이 들때마다 문자라도 넣어드려야겠다. 친정아버지께 다 전해드리지 못한 사랑을 시아버님께 드는 마음만큼은 전해드려야겠다.

 

사실, 시댁 식구들중에 제일 마음이 쓰이는 분은 바로 시어머님이다.

시어머님은 그림자같은 분이시다.

도통 말이 없으시고 아들 셋과 남편, 이렇게 남자들 세상에서 모든 궂은 일을 다 맡아 해오셨다. 큰소리 한 번 없이 정말 그림자노동을 하셨다.

끊임없이 식당에 나가 일을 하시면서 생활비를 마련해오셨다.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을 하나도 없다. 옷 한 벌 자기를 위해 사 입으신 적이 없다.

내가 딸내미 가졌을때 유산기가 있어서 친정집에 잠시 쉬고 있을때 고속터미널에서

어머니 옷을 십여벌 사서 보내드렸네 여태 입고 계신다. 그때 참 좋아하셨다.

좀 무리해서 화장품을 사드리면 어머님은 아끼고 아껴쓰신다.

이번에 내려가서도 큰아들은 가게 정리하고 다리가 불편해서 쉬고 있고 나도 뭐 쉬고 있다고 하니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걱정을 하신다.

손주딸 피아노 배우는 비용도 보내주고 싶지만 막내아들 가을에

장가보내는 데 돈을 거의 쓰셔서 여유가 없으시다면 미안해하신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이 많다며 나를 위로하신다.

 

오로지 자식과 남편이라는 (이젠 손자들까지) 가족을 위해 사신 분이다.

이제는 환갑도 지나셨으니 여행도 하시고 좋은 것도 누리시면서

당신 삶을 사셨으면 좋겠는데

나도 말뿐이지 해드릴 능력이 별로 없다. 그저 어머님 삶을 사시라는 뻔하고 공허한 말씀만 드렸다. 흑흑

 

일년에 한 번 쌀을 보내주실때면 쌀가마니에 안에 비닐주머니에 돈을 넣어 보내신다.

예현이 옷이라도 사 입히라고. 그걸 꺼내 볼때면 가슴이 찡하다.

이토록 부모란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마를 줄 모르는가 해서...

얼마전 김치를 보내시면서도 큰아들 생일때 쓰라고 비닐에 돈을 넣어 보내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곧 있을 내 생일에 맛있는 거 사먹으라시면 가불해 오신 돈봉투를 주셨다. 내가 드려도, 자식들이 드려도 부족할 판인데 참.....

 

어머니를 보면 이 땅에서 어머니로 산다는 것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그리고 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날 직접 낳아주신 분은 아니지만 우리 친정엄마와도 비슷하고

그리고 대다수 그 시절 어머니들의 삶이 그러한 것 같다.

풍류와 멋은 아시지만 결코 살갑지는 않은 남편과

오로지 아들 셋 키우는 보람과 재미로 모든 고생을 무릎쓰고 사셨지만

어느 새 자기 인생들을 살아가는 성장한 아들들.

 

어머니는 이제 어디에서 아니, 지금껏 어디에서 위로와 충전을 받으시며

살아오셨고 앞으로 살아가실 것인가.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살아 낸다는 것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혹여 수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시어머님께 멋진 옷을 사드리고 싶다.

 

오래전 태풍이 와서 완도 큰댁에 갈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니를 모시고 담양인가 어디인가에 있는 오래된 사찰인 화엄사에 갔었다.

거기서 긴 뜀박질을 마치고 숨을 고르는 듯한 느낌을 어머니에게서 받았다.

사찰의 고요함과 가을 바람과 당신의 자식들과 평화롭게 걸으면서 나무도 바라보고

얘기도 나누는 과정에 어머님의 얼굴표정은 온화하고 편안했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동서라는 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시댁의 관계지형이 어찌 변할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있을 때 우러나는 마음만큼은 이왕이면 표현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살아야겠다.

 

 

 

 

 

 

 

 

 

댓글 4개:

  1. 부모가 되기는 쉬워도 좋은 부모가 되기는 참 어려운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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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북적북적, 다정하고 깊은 마음씨를 지닌 가족분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제 마음까지도 푸근해지는 느낌입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저도 나중에 괜찮아님과 같은 예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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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humah - 2009/08/12 10:20
    반가와요~~, 좋은 부모되기 끝없는 성장의 과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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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히로미 - 2009/08/12 10:34
    네 좀 북적북적함다^^. 예쁘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한 것이 가정이죠~.절대적인 믿음을 배우는 곳이 가정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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