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주를 여는 첫 날 월요일 아침.
다행히 딸내미는 어젯밤 천추태후 끝나자마자 머리감기고 샤워도 대충해서
(그리고 천추태후 보는 조건으로 아침에 짜증내지 않고 즐겁게 일어나서 학교가기 약속도 했기에 ㅎㅎ)
다른 날보다 평화롭게 학교에 가리라 생각했던 웬지 마음 가벼운 오늘 아침.
물론 나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부랴부랴 아침준비하랴, 내 준비하랴, 분주하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대충 식탁을 차리고 밥을 먹는데 딸내미가
"저거 안 가져 갈 거야." 한다.
딸의 시선은 한 쪽 구석에 보자기꾸러미로 묶여 있는 7종 색깔의 부직포와 그 위에 얹혀있는
유기농 코코아믹스 쪽을 향해 있었다.
내가 뭘 만들어 보려고 얻어놓은 일곱색깔 알록달록 부직포는 많은 것 같아 절반씩 잘라서
딸아이 다니는 학교에 보내려고 보자기에 묶어 놓은 것.
유기농 코코아 믹스 1통은 딸내미가 친구들과 나눠 먹겠다고 아빠에게 부탁해서 받은 것이고.
우리 부부는 안가져 간다고 한 것이 당연히 '유기농 코코아 믹스'라고 생각했다.
'가져가겠다고 한 적은 언제고 이젠 변심해서 안가져 간다고 하냐. 치사하다. 으이그'
아마 이게 우리 둘 마음에 있던 딸내미에 대한 비난이었을 거다.
그래서 이 속마음을 거의 비슷하게 표현하며 합동작전으로 딸내미를 야단쳤던 게다.
"치사하게 어쩌구 저쩌구.... 네가 아빠에게 부탁했는데 어쩌구 저쩌구.... 왜 친구들과 나눠먹어야지....."
그랬더니 갑자기 운다. 서럽고 억울하다는 듯 제대로 말을 못하고.
"그게 아니고 저거! 으잉잉잉잉"
"그만 울어, 미안해. 그럼 부직포라고 말을 해야지."
"이름을 모르잖아~~ 으잉잉잉.."
"응 그랬구나. 이름 몰랐겠구나. 엄마도 중학교 가서 알았으니까. 미안해. 근데 늦었어. 빨랑가자"
오늘은 같이 다니던 재민네가 점심식사를 맡은 날이라 자가용으로 간다고 해서 우리집에 델러온다했다.
거의 다 왔다기에 사태를 대충 수습하고 수습잘 안된 딸내미를 데리고 주차장에 서 있었다.
딸이 하염없이 저쪽으로 걸어가더니 주차장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걸어가더니 그런다.
속으로 ' 얘가 왜 이러나? 으이그' 그러나 미안함이 있으니 삭이고 있었다.
차를 탔다. 눈물이 아직 덜 마른 딸아이.
내가 재민엄마에게 아침에 딸애가 울었다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순간 딸내미가 거의 동물소리를 내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외롭다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내가 차안에 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줬더니 앞자리에 탄 딸 친구 재민이가 남자녀석인데도
"예현이 속상했겠구나" 하더니 자기도 아침에 엄마때문에 속상했는데 엄마가 바쁜 것 같아서
성질 안냈다고 하며 눈물을 비쳤다.
우왓, 이런 일이.
아이들에게 특히, 남자아이인 재민에게 이런 감성 공감능력이 있다니.
친구의 슬픔과 억울함을 같이 느끼고 눈물 흘려주다니.
나 감동 먹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 맑은 영혼과 따스한 마음에 내 맘도 따땃해졌다.
글구 어린 녀석이 엄마를 위해 짜증을 참고 있었다니 대견하고 고맙고 그랬다.
가면서 한 참을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서 그리고 몰라줘서 마음을 다해 사과했다.
그랬더니 학교 들어갈 때 얼굴이 환해졌다. 일찍오라며 인사도 한다. 고마웠다.
그렇구나.
아이들은 그렇다. 이 맑고 천진한 영혼들을 어떻게 잘 키워야 하나.
미안, 엄마가 믿어주지 못하고, 천천히 들어주지 못해서
맘대로 생각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도 크고 있어. 미안해.
남편에게도 딸내미에게 문자나 전화하라고 했당.
아이들은 거울이다.
쉽지가 않네요.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T.T
답글삭제@회색웃음 - 2009/03/16 23:25
답글삭제네 괜찮은 부모되기 힘들어요.또하나의 학교가 양육입니다.엄청시리 중요하죠.한 인격체의 미래가 달려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