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7일 금요일

닌텐도와 그 아이

송별식을 했는데도 다니던 방과후 교실을 가겠다는 딸을

어쩔 수 없이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터벅터벅 아파트 주차장을 지날 무렵

태권도장 잠바를 입고 인라인을 탄 남자아이가 발갛게 상기된 채

초초해하면서 차 밑을 들여다보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지 하면서 아이를 지나치자 드디어 남자 아이는

"아이, 짜증나, 씨발!"

하면서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어린 놈이 욕은......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저럴까?

남의 것일까? 엄마가 게임 많이 한다고 던져버렸을까?'

혼자 여러 생각을 하면서 지나쳤다.

 

아파트에 들어서면

오늘은 뭐 쓸만한게 안나왔나 하고 한 번 빙 둘러보는 재활용천막으로

슬슬 걸어갔다.

낡은 도자기 냄비가 있었다.

얼마전 그림을 그려 새것으로 만든 꽃병도자기를 남에게 선물해주고

딸내미한테 혼났다. 맘대로 줬다고

그래서 요걸 갖다 다시 그림을 그려서 딸에게 줘야겠다며 집어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근데 아이는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맘이 안좋았다.

맘이 시키는대로 그 아이에게 갔다. 내가 별 도움은 줄 수없지만 마음을 달래주거나

진정시켜 주고 싶었다.

안타까웠다.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어린시절 힘들어도 돌아봐줄 사람이 없었던 어린 내가 느껴져서일까?

난 아예 부탁같은 것은 잘 안했다. 내가 알아서 했다.

그래서 뭔가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간절히 원하지만 어렵다.

 

아이쪽으로 가서

"얘 얘, 왜 그래? 뭐 잃어버렸어?"

아이는 울음가득한 말로 사연을 얘기했다. 인라인타다가 보도블럭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닌텐도를 놓쳐단다. 칩이 나오고 그 칩안에 더 작은 칩이 없어졌단다.

근데 그 닌텐도가 다른 아이 것이란다.

누구 것이었을까? 형 것 아니었을까? 그렇게 두려워하며 찾는 걸로 미루어 보면?ㅎㅎ

"그럼 우선 너는 저 차 밑을 살펴봐라. 난 이 차를 살펴볼께? 근데 못 찾을 수도 있어.

크기는 얼만하니? 색깔은?"

 

이래서 같이 찾기 시작하고 찾기 시작한 지 2분 정도 지나서

내가 찾았다. 검지 손가락 첫마디 반만한 칩이었다.

"여깄다!"

아이 얼굴이 활짝 폈다. 연신 고맙다고 했다. 나도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개입은 했으니 뭔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학년이냐고 하니 3학년이란다.

"아휴, 3학년인데 애기구나. 울고. 하하"

마음 달래라고 갖고 있던 귤도 하나 주고 헤어졌다.

 

10살짜리가 씨발이라고 욕까지 하면서 씩씩 거리고 울부짖으며 찾을때

약간 무섭기도 했었다. 분노를 잘 다루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 느껴졌고

절박한 그 아이 심정도 느껴졌다.

 

결과가 좋아서 더 다행이었지만 개입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절박하고 어쩔줄 모른 채 한 참이나 그렇게 안타까워했으면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폭발하는 심정, 폭발의 경험을 했겠지.

 

다만, 그 아이가 다음에는 찬찬히 찾으면 찾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는 계기였으면 한다.

 

작은 일인데 괜시리 어린시절 내가 떠올라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ㅎㅎㅎ

댓글 4개:

  1. 흠 겜 많이하면 폭력적이 된다던데...

    그런 심한 욕을 하면 그 아이 엄마에게 알려야하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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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찾아서 다행이네요. 아이들이 게임기보다는 놀이터에서 더 많이 뛰어놀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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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글게요 담에 만나면 알아보고 같이 놀자 해야죠. 시간많으데 ㅎㅎ 그 녀석 귀여운 녀석 제 아들같은 녀석이었어요. 라면이라도 끓요줄수 있는 녀석 진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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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메바21 - 2009/02/27 18:59
    음 한번도 알릴 생각은 못했는뎅??? 욕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게 요즘 아이들임다. '*발'이 뭔뜻인지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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