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 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 그래 요즘 처절하게 비참하게 느끼고 있는 이 감정 사십대 웬지 모를 허망함, 쓸쓸함, 줄 끊어진 연처럼 아니, 아직 끊어지지 않은 채 끊어지고 싶기도 하고 끊어지면 죽을 것 같은 앞으로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그 엉거주춤한 그 묘한 감정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그래 죽음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생각하고 가족을 그리고 사랑했던 이웃과 동료들을 생각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죽어 누워있는 듯한 죽음의 그림자가 계속 뒤에 따라다니는 듯한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 알지 내 곤한 영혼 누일 내 기쁨과 내 고독, 외로움을 함께 나눌 유일한 사랑인줄 알고 사랑을 달라고 달라고 나를 봐 달라고 품을 달라고 떼쓰고 토라지고 안겨보고 달래보고 그리고 화산같이 청천벽력같이 분노의 불기둥을 뿜어 올렸던 네탓이라며 네탓이라며 너만 변하면 된다고 너는 어쩜 이리 무감각하고 무관심하며 태연하냐고 나는 이리 죽겠는데 죽겠는데... 그러나 그건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내 문제 나의 문제 내 어린시절 내 안의 나 누구에게 그걸 풀어달라고 해? 누가 그걸 풀어줄 수 있어?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맞아야 할 것들 내가 온 가슴을 열어 울어줘야 할 것들 내가 눈물로 씻겨줘야 할 것들 맞아라 맞아라 그 바람 그 세찬 바람 울어라 울어라 하루종일 한달 내내라도 울어라 흘려라 흘려라 눈물의 강으로 씻겨주자 눈물로 뿜어 내자 내안에 차있던 것들 와 있는 인연들은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그러나 소중해. 그냥 그자리에 그렇게 같이 늙어가자고. 이렇게 그저 있자고 내 보속의 거울 바라보기 싫고 두려운 거울 낡은 거울 불쌍한 거울 아니 닦아주자 호호 입김을 불며 애닯은 마음으로 닦아주자 소매를 늘여가며 곱게 곱게 천천히 천천히 씨는 뿌렸나 이십대? 절망으로 거울을 안보던 절대 안가꿨던 삼십대 아주 빠르게는 흘러 거둬야 할 사십대에 이르러 가건만 추수할 것이 없다. 씨앗도 없다. 메마른 젖가슴마냥 나올 것이 없다. 가야 할 길 멀지 않다는 것,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 방황하던 시절, 지루하던 고비 그래, 눈물겹게 그러안자 그러나 인생의 지도는 지금부터야 지금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이제부터는 진짜 내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자 남의 얘기 남의 시선 남의 것들은 그들의 것 못나고 일그러졌어도 이젠 내 몸에서 내 스스로 추수하자 아니, 씨뿌리자.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하잖아 고독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키우는 새벽녘 찬 정화수 고독은 내면의 비우고 채우는 정수리를 치는 깨달음의 죽비 사십대 웃고 우는 무서운 조울의 리듬 사십대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그 무엇 눈을 들어 보자 괜찮아, 괜찮아 아무것도 안해도 너 자체로 좋아. 굳이 노력하고 애쓰려면 그래도 좋아 너는 눈에 넣어도 안아픈 내 딸이다 하느님을 느끼는 나이 사십대 |
2009년 2월 4일 수요일
사십대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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