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내미가 월요일에 제주도로 들살이 가고 드디어 내겐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일주일 전부터 책도 사고 옷도 준비하고 배낭을 싸기 시작했다.
월,화에 있는 강의를 다 듣고 수요일 아침 구국의 결단을 하고 나서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서방두고 가는 미안함에 반찬이랑 밥이랑 국거리,과일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아침 출발을 포기하고 수퍼에서 장을 더 보았다.
두세가지 반찬을 더 만들고 국도 넉넉하게 끓여 놓고 과일을 씻어놓고
10시 30분께 용산역으로 출발했다.
혹시 혼자여행의 두려움에 그냥 주저앉을까봐 한 시라고 빨리 떠나야한다며 KTX를 선택했다.
아침 버스로 갔으면 두번이면 도착할 일이 좀 복잡하게 되었다.
용산 - 익산 - 남원 - 남원시외버스터미날 - 인월 지리산안내센터
거의 처음 싸는 배낭짐이라 별로 넣은 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무거웠다. 한 5 ㎏정도.
기차에서 얼렁덜렁 싼 짐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아직 50% 밖에 파악이 안된 경로와 시간, 교통편을
책을 보며 꼼꼼히 살폈다.
지리산 둘레길 총 300㎞, 현재 갈 수 있게 개방된 코스는 70㎞
산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게 아닌 수평으로 둘레둘레 걸어가는 길.
산이 보이고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지면서
가슴에서 스멀스멀 지나간 여러 일들이 기어올라
꿈을 꾸듯 생각에 잠기곤 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입을 다무니
혀밑으로 말이 고인다.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위액같은 신맛이
제 살을 녹여낸다.
간장같은 쓴맛이
내장까지 검게 물들인다.
토악질 끝, 담즙 쓴맛이
코안까지 비릿하다
아픈 맛, 매운맛이
입안을 통째로 마비시킨다.
애인 혀같은 단맛이
물감퍼지듯 실핏줄까지 번져간다.
단전에 힘을 주고
깊게 흡을 한다.
대지의 바람이
온갖 맛을
손끝으로 날린다.
손은
그저
인생의 이런저런 맛을
활자로 뱉어 내고 있다.
눈은
묻어둔 상처에
가슴이 콕콕 찔려
물방울을 쏙 빼올리고
있다

지리산안내센터 안 생태조형물 전시
지리산안내센터에 4시 30분에 도착. 예상대로 안내원도 걷기에는 조금 있으며 해가 지기에 애매한 시간이라 한다. 2시간 걷기 거리에는 숙박을 할 수 없는 마을이란다.
내 맘은 어두운 길이라도 그저 걸었으면 했지만 하는 수 없이 실상사를 둘러보고 매동마을이라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다 늦은 출발탓이오, 모질지 못한 내 인정탓이오, 그렇게 길들여진 나 때문인것을 어찌하리오.
지리산 실상사, '실상사 작은학교'라는 대안학교도 있는 것으로 아는 데 잘 됐다 싶었다.
큰 다리를 건너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연잎이 가득했고 간간이 하얗고 붉은 연꽃이 전등처럼 있었다. 동네며 절이며 지리산댐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요한 암자 뒤에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공부방이 있었다. 눈이 파란 외국인 남자 선생님도 계셨다.
실상사 앞 큰 하천은 맑고 시원스레 흐르고 있었고 나는 강을 끼고 매동마을로 걷기 시작했다.
여자 둘이서 혹은 남자 혼자서 , 걸어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트럭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당신이 그 마을에 산다며 태워주셨다.
그 분의 안내로 마을 이장님댁에서 민박을 하게됐다. 아들 둘이 다 도회지로 나가고 이장님 부부와 꼬부랑 할머니가 같이 사시는 아담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할머니가 내다 팔 고추를 한 가득 다듬고 계셔서 나는 짐만 놓고 동네 한바퀴 구경한다고 나섰다.
마을 골목길은 참 정겨웠다. 감이 제 무게에 떨어져 터져 있었고 석류가 빨갛게 익었다.
석류를 좋아하는 미인, 우리 딸 떡순이가 생각났다. 제주도에서 잘 있겠지...뭐...
어느 대문을 지나치는데 대학생같은 처녀가 바닥에서 뭘 줍고 있기에 봤더니 눈이 마주쳤다.
나같은 여행자냐고 물었더니 실상사 작은학교 선생님이라며 그곳이 선생님들 기숙사라고 했다.
줍고 있던 대추 열알 정도를 주고 먹으라 했다. 얼굴이 말고 천진해 보였다.
뒷산 쪽으로 올라가니 마을도 훤히 보이고 앞에 지리산도 보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바람소리가 시원했다. 노을빛이 구름에 퍼져 장관이었다.
더 어둡기전에 숙소로 돌아가려고 서둘러 도착하니 이장님 내외가 계셨다. 내외분도 내가 여자 (그것도 나이 좀 든) 혼자라 좀 놀라시는 것 같았다. 특히 사모님이^^
얼른 씻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40맞이 혼자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소박하고 정갈한 시골밥상은 참 담백했다.
한참만에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더니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 나는 말을 좀 하고 살아야 기운이 도는 성격유형인감???
내일 계획을 짜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낯선 곳에서 난생 처음 이렇게 혼자 자게 된 것을
대견해 하면서 한 편 신기해 하면서, 사실 좀 무서워하면서 잠을 청했다.
아, 정말 나 떠났구나. 이렇게 ~~
![]() 선운사 풍경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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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답글삭제40살 맞이 홀로여행이요? :)
무섭지만 한번 해 볼만하겠네요. 저도 해보고 싶어졌어요. ^^
@회색웃음 - 2009/09/13 13:16
답글삭제일단 해보니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듯. 지리산 참 좋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