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 나는 깊은 바다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 마법의 원
- 어떤 사랑
- 대답해 주세요
- 천사의 간지럼
- 마음가는 대로
- 마법의 공원
- 아니마문디
- 뚱뚱보 미켈레
- 러브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 나는 깊은 바다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 마법의 원
- 어떤 사랑
- 대답해 주세요
- 천사의 간지럼
- 마음가는 대로
- 마법의 공원
- 아니마문디
- 뚱뚱보 미켈레
- 러브
펼쳐두기..
![]() | ![]() | ![]() |
제 2의 사춘기인가?
즐거운 나의 집(07)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08.3) - 괜찮다,다 괜찮다(08.8)
이른 바 공지영 작가의 위로 3부작이다.
오십대를 앞둔 공지영 작가, 사십을 앞둔 나.
그와 나는 90년에 만났다. 과 학회지에 광주민주항쟁 10주기 기념대회를 다녀온 기행문 마무리가 '더 이상 아름다운 경험은 없었다.'라고 돼 있다. 그건 공지영 작가의 초기 작품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읽고 빗댄 것이다. 중산층 집안의 딸로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글재주도 있고 예쁜 작가는 386세대가 맞아야 했던 역사적 사명을 겪어 내며 느낀 희망과 절망을 담고 있었던 소설이었다. 한창 절체절명의 역사의식과 신앙을 갖고 있었던 나는 이해는 하지만 운동의 끈을 놓아버린 그가 탐탁지 않았고 두려웠다. 내 안에도 그런 생각이 느낌이 고일까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솔직하고 쉬운 문체와 그의 독특한 감성들이 인상에 남았다.
세 번의 이혼과 각기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혼자 사는 여인 공지영. 세상을 올바로 바꾸려고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운동 현장으로 들어가고 다시 나오고 그 이후 겪은 온갖 인생의 풍랑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 그것을 치유하는 내면작업을 담고 있는 치유와 성찰의 글들이다.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된 딸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치유해 가는 소통의 글들이다.
말 그대로 위로가 되었고 동병상련의 대목들을 찾아 밑줄을 긋고 같이 아파하며 치유를 갈망했다. 나 또한 어린 딸이 있는 처지라. 자존감은 대물림 된다는 연구를 보고 끔찍하고 잔인하고 무서웠다. 아무리 발랄과 유쾌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대해도 아픔과 사상처가 풍기는 습습한 기운, 칙칙한 어둠은 드러나게 돼 있는 것 같다. 우리 삶의 90%는 무의식이 지배한다고 한다. 방법은 무의식이라는 어둠의 영역을 의식성찰을 통해 밝은 세상으로 드러내 성숙하게 해결해 가는 것이다.
작가랑 정서나 감성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아, 나도 글을 통해 내면 성찰 작업을 해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아, 내가 글을 쓰면 비슷하게 돼겠구나. 싫다. 늦었다....'하는 생각도 들어 씨익 웃었다. 그러나 글이 꼭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또한 글쓰는 과정이 내 아픔과 상처를 직면하고 명료하게 하는 과정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작가는 엄청난 독서를 통해 세상을 만나왔고 자신을 성찰해 왔다. 수 많은 책 속의 구절 구절에 담긴 이마를 치고 가슴을 울리는 지혜와 감동의 말씀으로 작가는 성장해왔다.
나또한 책처럼 훌륭한 친구가 없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아니, 몰랐던게 아니라 참아왔던 것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며.....
가문 논바닥처럼 물기 한 방울 찾을 수 없이 쩍쩍 갈라진 마음, 바짝 마른 가을 낙엽처럼 만지면 부숴질 것 같은 상태에 공감과 위로, 소통라는 치유의 물기를 대주고 있다.
머리를 맑게 하는 허브향 기름을 이마에서부터 천천히 흘려 내리는 듯 삶의 짐을 내려 놓고 앉아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내다보게 한다.
*밑줄 친 것 들
<즐거운 나의 집>
- 비록 이 세상에 큰일은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올바른 쪽에 서려고 했고 자신엑 부끄럽지 않으려고 했다.
-죽는다는 것도 삶의 일부야. 잘 사는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는 거지. 누구나 한 번은 죽으니까....
- 누가 누구에게 행복을 주고 말고 할게 없다는 걸 말이지요.
- 내가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리고 이 사랑의 이름으로 아빠에게 강요하고 있었고, 그리고 내 마음대로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날 사랑하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며 또 그 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엄마는 아저씨때문에 사랑이란 꼭 아픈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거야. 맙소사, 아저씨는 말한다...... 예전에는 나도 여자들에게 많은 아픔을 준 사람이었다고
- 두 사람은 커다랗고 노란 한 덩이의 전구처럼 느껴졌다. 따뜻한 빛과 열을 사방에 뿌리며 스스로도 밝고 따뜻한 그런 빛 말이다.
- 혁명, 이라니. 누가 이런 꿈꾸는 듯한 단어를 가르쳐준 일이 있었던가. 스물의 엄마에게 그것은 생을 걸고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낭만의 극한, 정의의 결정체, 혹은 박해받는 진리의 표상이었어. 나는 그를 존경했고 그리고 숭배했다.
- 우리에게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터질듯한 자부심이 있었다.
- 혁명의 환상이 깨어지던 순간부터 혁명보다 더 지독한 일상이 우리에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 우리는 그제야 연애하는 동안 겪어내야 할 갈등을 비로소 겪게 된 거야.
- 엄마가 그를 더 이상 존경하지도 않는 다는 것을.
- 우리가 함께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였지만, 증오의 대상이 스스로 항복하고 나자, 그 증오는 이제 미숙한 서로를 향해 겨누어지게 된 것이지.
- 그녀가 존경을 받을 이유는 그녀가 그 아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그냥, 놔두었다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모성의 완성은 품었던 자식을 보내주는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실에 엎디어서 엄마는 깨달았지.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은총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사랑한다고 해서 그걸 꼭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란 걸 나는 이제 알았기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해 존재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엄마가 내가 준 사랑의 열쇠는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 말이다.
- 그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 나는 내 모든 이런 운명들을 처음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 그러나 나는 엄마였고 엄마로서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서 있어야 했다.
08-08
혜연, 재형, 복도
나, 어떤 새로운 물질 -- 상품 - 신기하다
두사람이 고민
가형 나형 - 내가 만난다 - 방법이 있다
한가지 (결국 문제의 원인은 같은것) 이유 이기에 해답이 하나임을 안다
08-22
도서관에 사람들이 꼭찼다. 그날따라 꽉
엄마, 아빠 중학생, 아이들 갑자기 불이 났다는 생각이 들고
천장이 무너진다. 조금씩 그러더니 천장이 떨어져 사람들에게 쏟아지고 덮친다
천장은 콘크리드는 아니고 진흙과 타일로 되어있다
나는 침착하게 대피하라고 얘기한다. 우선 자기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긴급하게 얘기한다.
그러다 안되면 자기 아이들만이라도 데리고 나가라고 빨리 나가라고
꿈속에서 꾼 꿈이다
----------
아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회인듯
사무처장한테 여성회 모임에 나오지 못한 이유를 미안스럽게 어색하게 한다.
어느 박사님이 개발한 약을 먹었다. 예현이랑 같이 갔던 것 같다. 그 옆 술집인지 모임자리에서 딸과 있는데 박사님이 지나가다 나를 아는척한다.
옆에 *가 그럼 그렇지 (발도 넓군)하는 뜻을 지닌듯한 웃음을 짓는다
--
오락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 딸아이와 나는 남들이 다하는 게임을 이상하게 하는지 못하는지 그렇다
가족의 사회학적 이해 / 학지사
정자전쟁 / 로빈 베이커 / 까치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 / 마르티렐린 / 마음산책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 / 볼프강 라트 / 이끌리오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즘 / 새물결 / 앤서니 기든스
사랑은 지독한 혼란,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울리히 벡/ 새물결
가족사회학 / 아카넷
쾌락의 권리 / 테리굴드 / 영미디어
커풀의 재발견 / 필리프부르노 / 에코리브로
kbs 다큐멘타리 {사랑}
고3 담임, 반 발표 내가 못들음
다시 알려달라고 함
왜 안왔냐?
왔다
왜 못들었냐?
젖먹인다고 뭐 그러더니 공부는 안하고 ...
** 오라버니 만남 우연하게
고3담임이 내가 기독교라서 세상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누가 앞에서 공동체놀이 진행
난 뒤에 앉아있음
약간 소외감느낌 내 시대는 지나감을 느끼기도
난 안시킬거야 라고 생각
여차저차해서 마련한 화상캠
이름은 QuickCam cool 이당
태어나서 처음 용산 전자상가도 가보고
와 그렇게 많은 전자기기들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왜 용산이 그런 전자용품의 중심이 되었을까? 지리적조건? 목적의식적인 조성?
하여튼 이유가 있겠지
울 도서관 정보관리를 맡고 있는 후배가 문자로 찍어준 곳으로 갔당
안그랬으면 난 오늘 안으로 집에 못왔을거다. 하도 많아서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담번에 남편데리고 가야지. 세상구경좀 시켜줘야지
근데 얘가 참 웃기다
글자를 치면 화면이 없어진다.
뭔가 문제가 있남?
하여튼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근데 조심할 것은 집안이 다 보일 수도 있고 혹여 속옷차림이라면 절대 주의 해야 한다.
특히 바지 벗고 속옷차림으로 편안히 있다가
전화와서 무의식적으로 나가면 남들 좋은 구경 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비디오도 찍을 수 있다니
편리하다.
워낙 감동을 잘하는 나로서는 대견하다. ^^
간단한 CF 한 편 찍을 수 있지 않을까 ? ㅎㅎ
미리 계획되고 그렇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지 추구하는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체로 그런것을 편안해 하는 나도 사실 갑작스런 이벤트나 약속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다.
'할 일 많은데 하면서도 주춤하는 마음도 있지만 숨도 좀 쉬고 문화생활도 좀 하자, 너 스스로는 못가잖아, 못 놀잖아 '하면서 일을 마치고(대충 마무리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갑작스런 지인의 약속, 그것도 영화약속은 스릴과 기대를 준다.
더구나 영화를 거의 다 보는 영화광수준인 사람이 추천하는 영화를 본다는 기대가..
아 그런데 이글아이를 본다고 했는데 어째 200석이 그렇게도 금방 찬단 말인가?
하여튼 못보고 고고 70을 봤당
예고편을 봐서는 저 영화 왜 만들었을까 싶었고 그저 신나는 옛 그룹사운드의 얘기겠다 싶었는데 예상보다는 많은 내용을 갖고 있었다. 아니 영화를 본다는 게 그저 좋았는지도 모르징.
맑은 눈과 피부를 가진 환한 조승우의 타고난 음악성이 연기처럼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빛났다.
알고보니 출연한 사람들 모두 쟁쟁한 뮤지션이거나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내내 데블스라는 소울브라더스의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나보다. 뮤지컬영화인 맘마미아의 가슴 탁트이는 시원함과 사랑의 애절함과는 조금 다른 뭔가 억눌린 것을 폭발해내는 후련함이 있었다. 아마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기지촌출신의 딴따라였다는 역사적 아픔이 영화내내 깔려있어서 그럴 것이다.
치솟는 인기와 일년내내 현충일 하루밖에 못 쉬는 스케줄에 조금씩 지쳐가는 데블스멤버들의 모습들, 그 와중에도 새로운 노래, 변화, 창작을 하고픈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리더 조승우의 모습은 예술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아픔을 담고 있다.
여배우 신민아는 잘 어울리까싶었지만 우려가 됐지만 그냥 무난했다. 많이 성숙한것 같다. 영화배우 참 매력있는 직업이다. ㅎㅎ
도입부분에 나오는 대한늬우스에나 나올만한 70년대의 영상은 '어디서 저런 것을 찾아냈을까?' 싶게 재미있었다. 고고장의 화재로 멤버를 잃은 대왕코너는 바로 우리 친정집 근처라 더욱 친근했당. 74년 대왕코너 화재 참사. 내가 4살때지. 어른들이 그 얘기를 했던 것 같고 그 자리는 불이 잘 나는 자리라고 해서 목욕탕인가 사우나가 들어와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최호 감독이다. 감독의 생각과 의도를 더듬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잘 모르는 감독이나 찾아봐야지. .
하여튼 생각보다 재밌고 시원하고 의미있는 영화였다.
특히 조승우 잠재력이 있는 실력있는 배우다.
꺼내면 꺼낼 수록 새로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
근데 왜 나는 그의 삶의 아픔이 더 다가오는 걸까?
또 나를 투사한다. 그래 그냥 투사해라. 투사하는 줄 알아채면 되지 뭐.
영화 끝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한 따스한 커피 한 잔.
가을 밤의 여유와 정취마저 마시게 해줬당
요즘 난 방어기제중 투사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이라고 잠정정리한 상태이니 이놈의 투사가 가장 많으리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데 투사가 작용한 적은 별로 없는 듯.
아, 이것이 가을의 유혹이고 뒤를 돌아볼 인생의 시점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증상인가?
차라리 그렇다면 성숙의 과정으로 담담히 아니 즐겁게 받아들이리~~
하지만 이것이 안고 있는 이면의 두려움과 불안이 습기를 가득 먹은 새벽공기처럼 서늘하다. 춥다.
예전엔 절대 듣지 못했던, 아니 들을 새도 없고 들어서는 안되는 음악에 자꾸 심취하고 빠져들고 있다. 언제 하루라도 볕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책도 읽고 음악도 한정없이 듣고 싶다. 그러다 해질녘 좋은 사람과 만나 영화도 보고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싶다.(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듯 .. 저지르지 못하는 내가 문제지) 3개월전에 어학공부한다고 산 mp3를 작동해서 다운도 받아서 듣고 있는 진일보하는 생활을 시작했다(남들은 우습겠지만..) 음악을 듣으면서 만나는 세상과 안 그런 세상은 느낌과 빛깔도 다르다. 음악이라는 물속에 잠겨있는 느낌이다. 때로 격정적으로 때론 활력이 넘치게 때론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을듯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음악이 있어서, 음악에 따라서.. 그래서 객관적이기는 어렵기도 할 듯.
활자가 주는 깊은 수용과 넓은 상상력의 힘도 있지만 영상이 주는 쾌감 또한 또 다른 맛!
영화적 상상을 남모르게 자주 해 온 나는 실상 남들 다 보는 영화도 제대로 못보고 살았다. 특히나 애 낳고는....좋아하기는 하나 엄두를 못내는, 목적의식적이지 않으면 약속이 안 잡히는... 뭐 그런. 여성주의 공부를 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용기가 생기고 나를 사랑해주고 싶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는 뭔가 힘이 생겼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영화도 만들고 싶고 출연도 하고 싶다는 내 욕구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독립영화 감독인 딸내미 친구 엄마를 꼬시고 있다. 근데 노캐런티라고 해도 영 섭외할 생각을 안하네... 아마추어는 안쓴다고 한다.(이 엄마가 동막골에 출연했다고 하니 더 설득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흐) 얼마전 본 맘마미아의 여자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외롭고 활발하고 또 감상적인 그 아주머니가 바로 나였고 그 딸은 바로 내 딸이었다. 한참이나 그 영화를 보고 몇 몇 장면을 잊을 수 가 없고 대사를 기억하고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게 난 카드를 다 보여줬다는 거.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갖는다는거.....
요근래에는 작가 공지영에게 몰입되고 있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동트는 새벽>은 불타는 청춘,소위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시기에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때는 어여쁘고 똑똑한 여대생이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가 포기하고 그 상처들을 기록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별로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솔직하고 섬세한 표현과 감성들은 마음에 남았다. 그 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인간에 대한 예의><고등어> 같은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 작가와 나는 함께 성장해 간 것인지 늙어간 것인지 그랬던 것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줬다.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 뒤로 여러 좋은 글들을 발표한 작가는 그 사이 깊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것도 요즘 알게 되었다. <즐거운 나의 집>을 읽으면서 말이다. 유명한 책을 썼던 첫번째 남편과 이혼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나 그 뒤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니 얼마나 많은 아픔이 가슴에 박혀있을까 짐작을 하려고 한다. 마치 내 아픔처럼.... 사실 난 비교해보자면 그이 보다 그렇게 큰 아픔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는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인 것같다. 물론 역사적 시대적 아픔은 정말 큰 깊은 아픔이라 또한 누구의 아픔이 아닐수도 있을 만큼 아픈 상처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려운 순간에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점도 비슷하다. 혀짤린 하나님, 바라보기만 하는 하나님이 싫어서 그 와의 소통의 문을 닫았던 18년. 작은 힘이나마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일에 청춘을 걸었다. 힘겹기도 해지만 즐거웠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그러다 사도바울처럼 한 번 크게 꺾인 것 같다. 바깥 것들로 온통 가득찼던 내 내면이 공허하다고 반기를 들면서 자아의 소리를 들으라고 내면을 돌봐달라고 내 발목을 꺾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무의식은 다시 하느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됐다. 하느님을 다시 사귀고 있다. 그의 본래의 모습을. 율법과 정의와 심판의 하느님이 아닌 조건없는 사랑과 치유와 쉼의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 무서운 아버지가 아닌 내가 늘 바라던 자상한 아버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먼저 만났더라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픈 그의 마음과 계획들을 좀 더 쉽게 넉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책 속에서 작가또한 이런 과정을 밟아갔던 게 아닌가 짐작해보게 되는 구절들이 있다. 몇달이고 책만 읽고 보내고 싶다. 사업이고 뭐고 그냥 작은 절간에 가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책만 보고 싶다.
또 하나, 문화유산 답사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천년 고찰이든 명승지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느끼고 싶다. 카페에 가입했지만 아직 참가는 못하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두렵기도 하고 또 익명으로 참가하는 편안함도 느
끼고 싶기도 하고. 내가 리드하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조용히 참가자로 더 깊이 느끼고 싶다.10년전인가 강화도 역사기행을 갔을 때 해설사가 해 준 재미난 이야기들이 역사에 대한 흥미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더 해 주었다. 아 국사를 이렇게 배운다면 아이들이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대하진 않을텐데 싶기도 했다.
이것 말고도 하고싶은 몇가지가 있다. 가을은 이렇게 나를 유혹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못할 것도 없는 소망들이다. 뭘 두려워하나? 50살에 다시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거니?
가자 가자 가자
하자 하자 하자
새로움을 좋아하고 상상하기와 창작물을 보며 '작가는 왜 이렇게 했을까 ?' 작가의 의도,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 곁든 사연을 궁금해 하는 나. 글구 아이디어나 예술적 센스가 담긴 여러가지 것들을 만나면 기쁘기까지 하다. 누군가 열심히 이것에 대해 생각해오고 만들어보려고 애써왔겠지 하는 마음에...(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과 마음이 드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살기 힘든 세상에도 인간의 진보와 자아실현, 공공이든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뭔가 개발하고 노력해 간다는 데에 어떤 희망이 느껴진다)
그런데
몸은 내 이런 초록빛 생각과 마음만큼 따라 주질 않는다. 피가 마르기 전에 현장이든 사람이든 그 벌떡이는 이야기와 분위기, 느끼는 감정들, 그리고 생각들을 쓰고 전해야 한다는 것은 늘 소망하고 있으나 그리 쉽지 않다.(이것은 단체에서 오랫동안 홍보일을 해와서 붙어버린 습관일까? 내 안에 두기보다는 전달과 소통, 이를 통한 공감과 실천을 바라는 것?)
걸어가면서 떠오르는 싯구같은 생각과 표현들을 잡아매어 두기도 어렵다. 인간이 직립하면서 생각이 발달한 것처럼 걷다보면 감상적이기도 하고 이성적이기도 한 수많은 생각들이 올라온다. (그래서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놈의 발과 다리가 따라주질 않네. 황당하게도 의사가 무슨 일을 하고 살았기에 이렇게 발목관절과 인대가 늘어나고 복숭아뼈도 주저앉았냐고 한다. 흑흑. 아마 아이낳고 백일 지나 곧바로 독거노인돕기 사랑의 도시락 배달을 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4개에서 8개의 도시락을 들고 매고 높은 곳에 사시는 노인들을 매일 찾아뵈었다. 출산으로 약해지고 물러진 뼈에 무리를 준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땐 몰랐지 뭐. 미안해, 내 몸아~~)
쓰다보니 뭔 사설이 길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3년정도 되지만 실제로 해야지 하고 느낀 것은 올해 봄부터인것 같다. 맨처음부터 내 블로그는 목적의식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정리된 생각, 주장, 의견만을 올리고 싶었고 그 만큼 (펌)도 많아 졌지. 새로운 것을 알고 기억하고 싶고 다시 볼 수 있게 한느 것도 의미있다. 그러네 역시나 블로그의 매력은 그 사람을 느끼게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많은 사건과 사고, 개인사 속에서 그 사람이 했던 생각, 그 사람이 느꼈던 감정들을 만나는 재미가 블러그의 매력이겠지. 뉴스가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공적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 하겠지. 블로그가 갖는 공개적이고 개인적인 그 묘한 좌표가 갖는 어려움이자 장점.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는 그 무엇.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느낀다. 너는 어떠니? 아, 너는 그러니? (아님 말구도 담겨 있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데'에 막혀 글 한 쪽 올리기가 버거울때가 많다. 내가 남의 글을 읽어도 그런 태도가 있는 걸 발견한다. 효율성때문인가? 빨리 결론을 내고 해보고 다음단계로 넘어가야 하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블로그는 민원상담소는 아니지만 자유롭게 표현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 인정해야 하는 곳이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목숨을 다투거나 존폐를 다투는 그런 민감한 사안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닥치는 대로 말하는 곳은 아닌 순간이든, 하루든, 한 주든, 한 달이든 클립에 끼워놓고 싶은 생각이나 감정, 이야기들을 올려놓고 그러면서 자기를 들여다보고 다른 이것을 화두로 다른 이들의 소중한 의견, 마음, 생각도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않을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일요일, 하느님도 쉬시는 주일에 이렇게 일어나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어이, 할 말 다 한 거예요?
그 때, 그 느낌 그 생각 다 담기 힘들다. 담고 싶어도. 담지 못한다.
그리고 다 안담아도 되고 못담아도 괜찮아. 쉽지 않은 일이거든.
편안하게 쓰고, 절실할 때 쓰고, 외로울 때 쓰고, 감동나누고 싶을 때 쓰고, 함께 아파하고플 때 쓰면 되지.
네가 하고 싶을 때.
이 말을 듣고 싶었니?
블로그는 숙제가 아니야....하하
원칙중심의 성공학 3
목표 설정이 성공의 핵심 기술이다.
성공학의 대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그의 책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바로 ‘성공의 핵심 기술(master skill of success)’”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의 말처럼 강렬한 목표 지향성이 성공한 사람들의 필수적인 특징이라는 사실이 각종 연구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의 두뇌에는 목표 성취를 향해 착오 없이 우리를 안내해주는 성공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동 항법 장치와 유사해서 목표로부터 계속해서 피드백을 받아 자동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정해 줍니다. 두뇌의 이런 메커니즘 덕택에 우리가 목표를 명확히 하고 끈기 있게 계속 집중하기만 하면 어떤 목표라도 거의 대부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선 목표를 잘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공을 위한 핵심 기술인 ‘목표 설정’과 관련하여 제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원칙들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최고의 성과를 내려면 목표가 우리의 사명, 비전, 가치와 한 방향으로 잘 정렬되어야 합니다. 목표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그림’ 그리고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조화를 이룰 때 높은 성과와 자부심을 얻을 수 있으며, 지속적인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 비전, 가치에 기반하지 않은 목표 설정은 상황에 따른 즉흥적인 목표, 혹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수준의 평범한 목표밖에 세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새 해가 되면 매번 백지 위에 새해 이루고 싶은 소망을 적은 수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 해에는 인생이라는 건물의 기초공사에 해당하는 자신의 사명, 비전, 가치를 찾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한 해의 목표라는 기둥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둘째, 자신의 사명, 비전, 가치를 이룰 수 있는 일 중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파악해서 그 영역에서 탁월한 수준의 성과를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것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모든 것을 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에너지와 역량을 집중하면 최단 기간에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목표의 수준은 매우 도전적이어야 합니다. 목표에 압도당하는 수준은 안되겠지만 동시에 목표가 너무 쉽게 느껴져서도 안됩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까스로 달성할 수 있을 정도의 목표여야 합니다. 처음 시도해보는 분야의 목표를 세울 때는 달성 가능성이 50퍼센트 정도 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중에 목표 설정에 대한 내공이 생기면 40퍼센트 혹은 30퍼센트의 성공 가능성밖에 없는 목표를 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셋째,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소중한 것은 대부분 우리 옆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재능, 흥미, 교육, 배경과 경험, 일하고 있는 분야, 살고 있는 도시, 알 고 있는 사람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 소속되어 있는 교회나 커뮤니티 안에 우리가 찾고 있는 보물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시간과 관심을 들여서 우리 주변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고 그 부분에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쏟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외견상 기회로 보이지 않지만 대부분 우리 옆에 아주 가까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건이 충족되기를 바라기만 하며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작게 시작하여 점점 크게 만들어 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넷째, 인생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각 역할에서의 목표들이 균형을 이루도록 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정과 개인생활에 대한 목표도 필요하고,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영적 생활의 목표도 필요합니다. 더불어서 직장과 일에 대한 목표도 필요하고,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목표도 필요합니다. 어느 한 가지 역할에서의 목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소홀하게 되면 언젠가 소홀했던 역할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직장에서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건강을 잃게 되거나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조건으로 ‘Work & Life Balance’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인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인생의 각 역할별로 균형 있게 목표를 세우셔서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의 조화를 이루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더욱 자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목표(Main Goal)를 한 가지(혹은 두 가지) 결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란 해당 기간에 다른 목표들 보다 영향력이 크고 더 중요한 목표를 의미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가 많아질수록 탁월하게 성취되는 목표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해당 기간의 가장 중요한 목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에 집중할 때, 그 목표를 탁월하게 성취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가 세 가지 이상으로 많아지면 에너지의 분산으로 탁월하게 성취되는 목표가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목표를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전체적인 실패를 가져올 만큼 영향력이 큰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한가지 혹은 두 가지 정도 정해야 합니다. 다른 각도로는 다른 목표들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가장 도움이 되는 목표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을 때 해당 기간에 전체적으로 탁월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 단기적인 목표와 중장기적인 목표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1년에 대한 단기적인 목표와 더불어 비전을 이루기 위한 3년, 5년, 10년 후의 중장기적인 목표도 필요합니다. 10년 후의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5년 후까지 내가 성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년 뒤의 성과를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10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 같지만 계획 없이 살면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든 10년 목표를 세우고 집중해서 학습하면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기간을 가지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10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중기 목표가 바로 5년 목표입니다. 5년 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성취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5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3년 목표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언어 습득, 학위 취득 등의 뭔가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기 위한 시간으로는 뭔가 아쉬운 기간입니다. 하지만 3년이면 가능합니다. 3년 목표는 물론 5년이라는 중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보다 실천적인 것이어야 하고, 더 나아가 10년 후의 장기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3년 목표를 1년, 3개월 단위로 나누고 다시 월간, 주간, 일일 계획으로 세분해서 최종적으로는 매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장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주요 업무를 계획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일곱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간 외에 재충전과 주위의 필요를 돌아볼 여유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주일 중의 하루를 쉬면서 재충전을 해야 다음 일주일을 다시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쉬는 날을 없애고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했을 때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밝혀진 뒤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주일중의 하루를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여 쉬도록 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휴식과 여유시간을 가져서 자신의 생활에 리듬을 불어 넣어서 항상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서 너무 목표에만 몰입해서 하루 하루를 보낼 경우 주위의 절실한 필요와 도움을 외면하게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지역사회와 같은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 사회의 필요에 대해서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나누어줄 수 있을 때 보다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의 필요에 대해 마음을 열고 우리의 시간과 능력과 재물을 나눌 때 우리가 속한 사회가 훈훈한 온기가 있는 보다 살만한 곳이 되리라 믿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살기 힘들고 오히려 목표가 명확한 사람들을 돕는 보조자 역할만 평생 하게 됩니다. 반면에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날마다 전진하다 보면 자부심이 커지고 자신을 점점 더 좋아하고 존중하게 됩니다. 성격이 밝아지고 좀 더 긍정적이고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또한 항상 열정적으로 살고 몰입을 자주 경험하면서 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로 개발하여 자신이 되고 싶은 수준까지 점점 빠르게 성장하여 결국은 위대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 설정이라는 성공의 핵심 기술을 꼭 여러분의 습관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원칙 중심의 성공학 2
나를 아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오늘 신문을 보다가 눈에 띄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직장인들이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면 제일 하고 싶은 일로 ‘자신의 적성과 진로 파악(41%)’을 1순위로 꼽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욱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학생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적성을 모르면 후회하니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찾아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언이 과연 대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의 벽을 뛰어 넘지 못하고 불안한 현실에 매여 있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이거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러한 삶이 매우 당연하고 성실한 삶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 30대인 당신이 별 다른 고민 없이 주어진 일에 성실하기만 한 삶을 산다면, 40대 이전에 위기에 처할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간의 경쟁이 더 이상 제품 경쟁이 아닌 ‘War of Talent(인재전쟁)’이 되었습니다. 인재를 뽑기 위해서 기업간에 치열한 인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으며, 차세대 임원급들을 조기에 선별하여 그들에게 별도의 교육과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주요 기업들의 인력 선발 및 평가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개인별로 직무 적합도 및 성과 평가 시스템이 매우 정교해 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만약 자신의 재능이나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면 직급의 사다리를 올라가면서 지속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들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는 40대에 접어들면서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워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번 칼럼의 제목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아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아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나를 아는 것은 경력개발의 근본이자 성공적인 자기경영의 기초입니다. 자신을 차별화하여 경쟁력 있는 퍼스널 브랜드로 만드는 길은 바로 나를 아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자신을 아는 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나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광범위한 독서’를 들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 가셔서 마음에 드는 책을 눈에 띄는 대로 집어서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목차와 내용을 훑어 보시고 관심이 가는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본 후 내면에 울림이 있으면 대여를 하거나 구입을 하셔서 찬찬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그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생긴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그 분야의 대가들이 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여러 분야를 섭렵하다 보면 자신이 어느 분야에 열정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를 알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자기주도적인 공부’를 권해드립니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관심 분야를 찾은 후에 학습목표를 세우고 그 분야에 관련된 책, 강의, 워크숍 등을 조사하여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공부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나가면서 자신의 학습 속도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빠르고 자주 몰입을 경험한다면 자신이 그 분야에 강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리더십, 경영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 이 방법을 써서 노력한 결과 경력 10년의 IT 전문가에서 3년 만에 국내 최고의 리더십 교육기관인 한국리더십센터의 전문교수가 될 수 있었고, 주요 기업과 대학의 리더십 강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방법으로는 각종 ‘개인 진단(assessment) 도구’를 활용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자신의 성향이나 기질을 알 수 있는 MBTI 성격유형검사나 자신에게 맞는 직업 탐색을 위한 STRONG 직업흥미검사가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역량진단센터에서 선보인 해리슨 어세스먼트의 경우에는 자신의 현재 직무적합도에 대한 50페이지 가량의 진단 보고서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도구를 활용하면 마치 X-ray로 신체를 촬영하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성향, 기질, 적성,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리더십 유형, 강점, 약점 등)을 촬영한 결과 리포트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개인 진단을 통해서 자신의 적성과 강점에 대해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며, 그에 따라 진로와 자기계발 방향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얻었습니다.
그밖에 다양한 업무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분야에 열정이 생기고 몰입이 잘 이루어지는지 찾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직접 뛰어들어 해보면서 그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앞으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는지 몸으로 알아가는 방법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현재 직장을 떠나는 것이 불안할 경우에는 커뮤니티 활동이나 취미, 봉사로 시작해서 학습속도를 높여가면서 점차 전문가 수준까지 성장해가다가 확신이 생겼을 경우에 전직을 하거나 독립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경영 분야의 대가인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이 바로 이런 케이스 입니다. 한국IBM에서 20여 년간 변화경영 전문가로 일하던 그가 40대를 맞으면서 내면의 성찰을 통해서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1년에 한 권씩 3년여에 걸쳐서 자기경영에 대한 책을 출간하여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확신을 갖고 독립하여 지금은 최고의 1인 기업가로 왕성하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를 아는 것에서 경쟁력이 생깁니다. 아니 나를 알지 않고는 생존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고 앞으로 더욱 그런 시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면승부를 하고 계신가요? 이것이 생존의 문제로 다가 오기 전에 자신을 힘써 알아가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원칙중심의 성공학 1
가슴을 뛰게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계신가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필자는 대학 초년생 시절의 전공에 대한 회의와 방황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필자도 고교시절 자신의 기호나 의지에 상관없이 부모님의 뜻에 의해 이과 계열을 선택하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실상 그 즈음(80년대 후반)의 남자 인문계 고등학생의 70%가 이과 계열을 선택하였다. 전공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대학에 입학한 후, 대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 네트워크와 같은 전공 교과목이 시작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기생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전공과목 원서를 펴놓고 공부하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신이 나서 이야기 하는데 필자는 도통 전공분야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학과 컴퓨터 스터디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해 보았지만 모임에 참가하면 할수록 더욱 흥미를 잃어갈 뿐이었다.
처음엔 스스로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열등감과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 동기들이 컴퓨터에 대해서 신이 나서 이야기할수록 자신이 더욱 의기소침해지고 작아지는 것을 어쩔 도리 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약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뭔가 흥미와 열정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분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즉시 도서관에서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서관 열람실에서 10여권의 관심이 가는 책들을 책상에 쌓아 놓고 치열하게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공대 도서관에서 전공이나 영어가 아닌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쌓아 놓고 사시 공부 하듯이 하루 종일 파고드는 학생은 필자가 거의 유일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넘게 도서관에 파묻혀서 300여권의 책을 독파하고 나니 자신이 어떤 분야에 열정이 있는지 서서히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안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열정을 다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의 그 환희는 맛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길은 들판의 소 떼처럼 우루루 몰려 가는 백주 대낮의 넓은 대로에 있지 않았다. 진정한 자신의 소명을 찾아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은 나의 속사람 과의 진솔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며, 가슴 뛰는 일을 찾은 사람들의 노하우를 흉내 내어 나만의 방식으로 창작하는 습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내면의 소리를 찾아 꽃처럼 피어난 사람들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성공하는 인생살이에 대한 소중한 지혜를 건질 수 있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지치지 않고 순간 순간 꽃봉오리를 피우며 살아가고 싶다면, 지금 잠깐 멈춰 서서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내면의 속사람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자.
새 아침을 열며 생명활동을 준비하는 신성한 부엌 (사실 정신없는 부엌)
겨우 깨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침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이 두 친구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집안의 다른 식물들보다 잠깐씩이지만 늘 마주치는
덕인지 이 두 친구는 참 잘 자란다. 나는 먹고 남은 물이나 가끔 부어주고 창문 열어주며
잠깐씩 눈 인사하는 정도인데도 이렇게 잘 자라주니 고맙다.
잠깐의 쳐다봄이, 달그닥 거리는 삶의 소리가 이 친구들에게도 사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거실의 식물들은 그닥 건강하지가 않다. 베란다야 햇볕과 매미들이 늘 함께 해주니까
잘자라고 있는 듯 하다.
우리집에서 가장 잘 자라는 애들은 이 둘이다.
한낱 미물이라고 하는 식물들도 이렇게 작은 관심과 사랑이 느껴질때 잘자라는데
무한한 가능성의 싹을 지닌 어린 영혼들은 얼마나 사랑을 줘야 할까? 얼마나 품어 줘야 할까? 아기 낳았을때 엄마가 아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숨결을 먹고 자란다며 3살까지는 데리고 키워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럼 직장인들은 어쩌라고? 하며 백일부터 어린이집에 맡겼지만...흑흑)
살만한 집도 살만하지 못한 집들도 아이들은 마음 붙일데가 없는 경우가 요즈음 더 많다. 특히나 어려운 가정은 부모의 무기력이 자식에게까지 깊게 전염돼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흘려보낼 경우가 많다.
미움과 질투, 부러움, 열등감, 이런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자포자기, 무기력이다.
종종 이런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이 영혼은 어떻게 품어야 하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