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방어기제중 투사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이라고 잠정정리한 상태이니 이놈의 투사가 가장 많으리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데 투사가 작용한 적은 별로 없는 듯.
아, 이것이 가을의 유혹이고 뒤를 돌아볼 인생의 시점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증상인가?
차라리 그렇다면 성숙의 과정으로 담담히 아니 즐겁게 받아들이리~~
하지만 이것이 안고 있는 이면의 두려움과 불안이 습기를 가득 먹은 새벽공기처럼 서늘하다. 춥다.
예전엔 절대 듣지 못했던, 아니 들을 새도 없고 들어서는 안되는 음악에 자꾸 심취하고 빠져들고 있다. 언제 하루라도 볕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책도 읽고 음악도 한정없이 듣고 싶다. 그러다 해질녘 좋은 사람과 만나 영화도 보고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싶다.(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듯 .. 저지르지 못하는 내가 문제지) 3개월전에 어학공부한다고 산 mp3를 작동해서 다운도 받아서 듣고 있는 진일보하는 생활을 시작했다(남들은 우습겠지만..) 음악을 듣으면서 만나는 세상과 안 그런 세상은 느낌과 빛깔도 다르다. 음악이라는 물속에 잠겨있는 느낌이다. 때로 격정적으로 때론 활력이 넘치게 때론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을듯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음악이 있어서, 음악에 따라서.. 그래서 객관적이기는 어렵기도 할 듯.
활자가 주는 깊은 수용과 넓은 상상력의 힘도 있지만 영상이 주는 쾌감 또한 또 다른 맛!
영화적 상상을 남모르게 자주 해 온 나는 실상 남들 다 보는 영화도 제대로 못보고 살았다. 특히나 애 낳고는....좋아하기는 하나 엄두를 못내는, 목적의식적이지 않으면 약속이 안 잡히는... 뭐 그런. 여성주의 공부를 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용기가 생기고 나를 사랑해주고 싶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는 뭔가 힘이 생겼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영화도 만들고 싶고 출연도 하고 싶다는 내 욕구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독립영화 감독인 딸내미 친구 엄마를 꼬시고 있다. 근데 노캐런티라고 해도 영 섭외할 생각을 안하네... 아마추어는 안쓴다고 한다.(이 엄마가 동막골에 출연했다고 하니 더 설득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흐) 얼마전 본 맘마미아의 여자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외롭고 활발하고 또 감상적인 그 아주머니가 바로 나였고 그 딸은 바로 내 딸이었다. 한참이나 그 영화를 보고 몇 몇 장면을 잊을 수 가 없고 대사를 기억하고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게 난 카드를 다 보여줬다는 거.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갖는다는거.....
요근래에는 작가 공지영에게 몰입되고 있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동트는 새벽>은 불타는 청춘,소위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시기에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때는 어여쁘고 똑똑한 여대생이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가 포기하고 그 상처들을 기록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별로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솔직하고 섬세한 표현과 감성들은 마음에 남았다. 그 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인간에 대한 예의><고등어> 같은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 작가와 나는 함께 성장해 간 것인지 늙어간 것인지 그랬던 것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줬다.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 뒤로 여러 좋은 글들을 발표한 작가는 그 사이 깊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것도 요즘 알게 되었다. <즐거운 나의 집>을 읽으면서 말이다. 유명한 책을 썼던 첫번째 남편과 이혼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나 그 뒤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니 얼마나 많은 아픔이 가슴에 박혀있을까 짐작을 하려고 한다. 마치 내 아픔처럼.... 사실 난 비교해보자면 그이 보다 그렇게 큰 아픔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는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인 것같다. 물론 역사적 시대적 아픔은 정말 큰 깊은 아픔이라 또한 누구의 아픔이 아닐수도 있을 만큼 아픈 상처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려운 순간에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점도 비슷하다. 혀짤린 하나님, 바라보기만 하는 하나님이 싫어서 그 와의 소통의 문을 닫았던 18년. 작은 힘이나마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일에 청춘을 걸었다. 힘겹기도 해지만 즐거웠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그러다 사도바울처럼 한 번 크게 꺾인 것 같다. 바깥 것들로 온통 가득찼던 내 내면이 공허하다고 반기를 들면서 자아의 소리를 들으라고 내면을 돌봐달라고 내 발목을 꺾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무의식은 다시 하느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됐다. 하느님을 다시 사귀고 있다. 그의 본래의 모습을. 율법과 정의와 심판의 하느님이 아닌 조건없는 사랑과 치유와 쉼의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 무서운 아버지가 아닌 내가 늘 바라던 자상한 아버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먼저 만났더라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픈 그의 마음과 계획들을 좀 더 쉽게 넉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책 속에서 작가또한 이런 과정을 밟아갔던 게 아닌가 짐작해보게 되는 구절들이 있다. 몇달이고 책만 읽고 보내고 싶다. 사업이고 뭐고 그냥 작은 절간에 가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책만 보고 싶다.
또 하나, 문화유산 답사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천년 고찰이든 명승지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느끼고 싶다. 카페에 가입했지만 아직 참가는 못하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두렵기도 하고 또 익명으로 참가하는 편안함도 느
끼고 싶기도 하고. 내가 리드하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조용히 참가자로 더 깊이 느끼고 싶다.10년전인가 강화도 역사기행을 갔을 때 해설사가 해 준 재미난 이야기들이 역사에 대한 흥미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더 해 주었다. 아 국사를 이렇게 배운다면 아이들이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대하진 않을텐데 싶기도 했다.
이것 말고도 하고싶은 몇가지가 있다. 가을은 이렇게 나를 유혹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못할 것도 없는 소망들이다. 뭘 두려워하나? 50살에 다시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거니?
가자 가자 가자
하자 하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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