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딸의 질문, 때가 오고 있느니라.....

아침에 밥을 먹이고  딸을 태우러 올 이웃집 차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보라 했다.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학교의 방학교실에 딸이 가기 때문이다.

나도 심리학공부 스터디 숙제땜시 같이 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 난 왜 포경 안 해?"

 

앗, 이게 무슨 상황?

딸은 초등학교 2학년, 9살이다.

 

쳐다보니 WHY 시리즈 사춘기 편을 보고 있었다. 벌써 몇 번 째 보는 것 같다.

 

"응 그건 남자들이 하는 거야. 고추, 아니 음경 있는 남자들이."

"왜 해?"

 

처음에는 말로 설명하다가 옷소매를 가르키며 옷과 팔을 빗대어 꼬매는 것까지 설명했다.

딸이 펼쳐 준 페이지에 포경 과정의 그림이 설명되어 있었는데 거의 비슷하게 설명한 것 같다.

 

나름 객관적으로 설명했다고 안심하고 내 책을 보는데

 

"엄마,자위가 뭐야?"

 

이건 좀 높은 수위의 질문이다. 어쩌나.... 성교육 강의를 몇 번 듣긴 들었는데 어떻게 설명하라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강사강의를 듣는 것인데....

 

"응, 자기 음경이나 음순을 만지는 거야. 긁거나."

 

막판에 긁거나는 왜 만지냐는 질문을 피하기 위한 쑥스러운, 준비 안 된 엄마의 면피용 회피용 설명이었다. 뭘 긁거나야.

 

준비해야 할 때이다. 딸은 커가고 있고 보고 있고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키스할 때 서로 얼굴 방향을 어긋나게 한다는 거.

어느 영화에서 연인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 혀로 꺼내 주는 거 (나 한테 자꾸 해보려고 해서  내가 엄만 눈꼽 자주 낀다, 하며 혐오감을 줬다 ^^)

서로 끌어 안는 거

이불 속에 들어가는 거

그리고 요즘 나오는 야한 광고들....

 

조금 크면 질문을 안하거나 다시 하겠지.

오히려 지금 이렇게 질문해 주니 고맙다.

커서도 질문을 받는 엄마가 되야 할텐데

 

자유롭고 건강하고 즐기는

그런 아름다운 성을 배워갔으면 좋겠다.

이 복잡한 영역은 나또한 배워가야지.

물론 어두운 성의 부분도 알아가야지.

균형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려면

 

불량엄마가 우량엄마, 친구같은 엄마, 인생의 선배여성이 되는 그 날까지~~~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불혹의 여인이 부르는 구직애사(求職哀詞),취업비가(就業悲歌)~~

지난 11월 중순 어느 날부터 학업을 염두에 둔 취직 결심을 했다.

평생에 한 번은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이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4대보험에 소득공제도 되는 그런 회사에 다녀보리라 결심을 했다.

애시당초 젊은 청년의 시기때부터 여러 직업중에서도 회사에 다니는 일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터라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이었다.

 

대체로 살짝 대책없을 수준으로 낙관적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것 같이 생각해온 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내가 원래 그런 편이다.

물론 이런 내 상태는 커다란 빙산의 의식의 일각이고 그아래는  수치감과 불안, 두려움의 어마어마한 덩어리가 있다.

 

철들고 한 세번째 정도로 이력서라는 걸 썼다.

오래전 26살인가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은 독서논술회사에 이력서를 손으로 써서 내고

그 뒤 지역사업차원에서 복지위원인가를 하게 되었을 때 내고는

 

정식으로 취업을 향해 쓴 이력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포맷도 다양하고 자기소개서까지 써야했다.

이력없이도 잘 살던 나인데

전혀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력을 통해 나를 알아봐 달라고 뭔가를 써야 했고 내 각오를 피력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대학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처럼 좀 어리둥절도 하고 이런생각, 저런 궁리를 했다.

 

이력서를 보내야 할 곳을 살펴보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열심히 20년 살아왔는데 막상 주먹쥐고 달려온 손이 펴보니 허전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아, 스펙이 없구나. 내가.

경험은 있고 꿋꿋이는 살아왔으나 그것은 내가 있던 공동체에서 통하는 이력이고

이 사회가 원하는 능력과 기술과 지식은 별로 없구나, 내가......

 

하지만 이력서를 쓰면서 나는 떨어질 생각은 추호도 안했다. 안든다 그런 생각이. ^^

이게 나다. ㅎㅎ

지원처는 사회복지 기관이나 상담기관, 복지관으로 잡고 인천과 서울, 부천을 중심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이력서와 소개서, 기타 자격증 사본을 첨부해서 지원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거의 10곳에 전자우편 접수를 했고 2곳에 우편접수를 했고 2곳에 방문접수를 했다.

그리고 서류전형을 거쳐 면접을 본 곳은 4곳.

한 곳은 성매매 청소녀들의 쉼터였는데  일주일에 2번 숙직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결정을 주춤했고

한 곳은 상담을 하고 싶어 지원했는데 사회적 기업을 해 볼 것을 권유해서 거절했고

한 곳은 정신건강증진센타인데 단순 사례관리를 하기에는 내 열정이 넘치는 듯한 답신을 줬다.

뭐 어쨌든 면접을 봤는데도 안된 곳은 현재까지 3곳.

내일 한 곳 발표가 난다. 명찰까지 달고 면접관 4명이 면접을 본 청소년지원센터이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남자와 나, 이렇게 단 둘이 면접을 봤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 일하다 보면 6시 퇴근인데도 더 늦게 끝나기도 한다. 어떻게 하겠나?

*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가? 칼퇴근 직장이 도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가 기분이 안좋았다.

 

- 약속이 있는데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그래도 약속을 나가겠는가?

* 속으로 열받고 기가막혔다. 위기청소년에 대한 긴급상황이면 당연히 절차를 밟아 긴급하게 움직이는 것이고, 그러면 약속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인지, 조정해 보는 것이고, 또 다른 직원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으면 협조를 구하는 것이고, 이도저도 안되면 긴급하게 일을 하는 것 아닌가? 뭘 듣고 싶었을까나?

 

- 경력을 살펴보면 팀원이 아니라 팀장을 해야 맞는데 팀장이 어려도 잘 일할 수 있겠는가?

* 그래, 이 걱정이 솔직한 것이지. 그리고 이 점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며 그들의 고민지점이자

내 결정적 약점이다.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각오한 일이고 그래서 지원한 것이기에 나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원 기관과 면접관들은 이 점이 결정적으로 힘든 것이겠지.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듣고 난 나는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비우고 있다. 그래서

면접 끝나고 오는 길에 근처 다른 기관에 이력서를 한 부  더 넣고 왔다.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문제, 재취업의 벽이 이런 줄 몰랐다고 고백하면

내가 너무 철없고 세상을 모르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겠지.

근데 정말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올 한해 1년 정도의 휴가 말고는 경력이 단절된 적 없이 활동하고 일해온 나인데

느낌은 다리가 끊겨진 절벽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력서에 지나온 경력을 쓰는 부분에 연봉을 적는 란 앞에서

참 막막했다.

한 곳은 연봉 360, 한 곳은 너무 없어 보여서 연봉 720으로 올렸다.

언제쯤 NGO단체들도 4대 보험에 연봉 1200~ 1500은 적게 될 것인가?

우리 동네에만 그런가? ^^

 

나와 잘 맞고 내가 어울리는 곳인데 미처 내가 정보를 갖지 못해서, 내 이력서가 가지 않아서

인연이 안 닿을까봐 수시로 검색을 해 보고 있다. 요즘.

그런데 딸내미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컴퓨터만 한다고.

아, 어쩌란 말이냐 우리 딸아. 엄마를 이해해 주렴.

 

난 일하고 있는데 우리 딸에게 컴퓨터는 노는 것, 자기가 텔레비젼 보는 것과 같은 격으로 안다.

딸내미의 겨울방학은 시작되었고 이제 긴 시간 딸을 보살펴야 할 때이다.

취직이 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4학년까지는, 혹은 초등학교까지는 곁에서 돌봐야 할 것 같고

한편으론 초등학교 졸업까지는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 잡혀야 할 것 같은데.

딸이 6학년이면 난 43살이다. 딸이 20살이면 난 50살이다.

인생 100년이면 난 절반의 허리가 휙 꺾인 나이이다.

 

내 50살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게될까?

그러기에 이 10년이 나에겐 참 중요하고

앞으로 2-4년이 참 중요하다. 근데 딸도 중요하고.

 

어렵다. 복잡하고. 인생.

 

안놀아 준다고 불량엄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다.

근데 난 사실 어떻게 놀아줘야 할 지 어떻게 사랑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난 그냥 나 혼자 알아서 자랐는데.

못받은 사람이 잘 줄 지도 모르는 걸까?

이게 또한 무서운 대물림일까?

 

그러나 난 딸을 사랑한다. 외롭게 하고 싶지 않다. 서럽게 쓸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야기가 딴 곳으로 가고 있네.

 

다시, 다시...

 

어제 김형경에 '좋은 이별'을 읽었다.

그 책을 보면 내 상태는 '애도의 중간' 정도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지나온 삶의 켜켜에 묻혀 있던 사건들 속에 감정들을 다시 다 느껴보는

그런 애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고 춤을 췄던 것이다.

나 나름대로 애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지나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주 말짱한 상태는 아니고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게 모여있다.

그리고 아직은 나를 안아줘야 한다.

 

이 구직과정이 나를 상처내게 하고 싶진 않다.

열심히 살았고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 것이고

그런 내가 대견하고 살아줘서 고맙다.

 

설거지를 하다가 가슴이 먹먹하고 걱정이 아스라히 안개처럼 깔려오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바람이 되어 이 모든 것들을 날려보낸다.

 

선덕여왕 마지막회에서 아주 철학적인 대사가 나왔다.

나를 망치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내가 나를 지켜줘야 할 때이다.

 

지금 이순간 , 지금 여기, ......

간절한 소원, 절실한 기도 ....

신이여 허락하소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THIIS IS JUST MOMENT 인가 하는 노래가 흥얼거린다.

 

눈을 감고 이적의 '다행이다'를 샤워기의 따스한 물줄기처럼

내 머리와 온몸에 흘려보내고 싶다.

 

돌봄노동의 고된 세월을 보내고  경력단절의 벽 앞에 망연자실하게 있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과

그 와중에서도 공헌을 위해, 자신을 위해 원형탈모를 무릎쓰며 공부를 하고 있는 또순이 여성들과

경력없는 경력속에서 고된 사회적 노동을 하고 있는 진보와 개혁의 젊은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듣고 싶다.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예수님탄생과 술한잔

서방이 출근 12시간만에 들어왔다.

저녁이 좀 걱정돼서 딸내미를 통해 전화를 시켰더니 바꿔달라며 회 한 접시 하자고 한다.

 

오늘 아침밥 차려주며 돈 없다고  차비없다고 서운한 소리를 해서 보내서 내 맘도 안좋았다.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을 왜 이리 얘기하는 지, 그 핵심은 '너는 나를 생각하니?' 이다. 한마디로.

 

소주 한 잔 하며 얘기를 모처럼  했다.

3개월 작정으로 지금 나가는 장애인 세탁공장에 관리인으로 나가기로 했다.

원래는 내가 다닐뻔 했는데 조건이 안맞아 거절하고 남편을 추천했으나 남편도 거절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마 밑천이 다 떨어진 집안상황이기 때문이리라. 고마웠다.

그 뒤로 새벽밥을 차려주고 있다.

 

승리하고 싶단다. 남편이.

90학번으로 만난 우리는 이제 마흔에 접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아래서 용케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좀 더 세밀한 꿈과 비젼을 준비해야 하고

엄연한 자본의 논리인 이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재정토대와 구조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내가 말했다.

"우리 세대에는 승리할 수 없어. 다만 우리가 구상했던 사회, 꿈꿨던 그 진실을 아이들이

이어 갈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이 말도 다 마저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남편의 말을 든는 날로 해야 했다.

 

솔직히 나보다 두 살 어린 남편, 공식적으로는 한 살 어린 남편이

중년 마흔 살의 고비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렇게 예민한 여편을 둔 남편으로서는.....,.

 

 

후회없다. 내 삶에

아니, 후회 있다면 좀 더 내가 하고 싶던 꿈을, 소망을 실현 시킬 수 있다는 그 한 줄기는 좀 잡고

올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밤잠이든 새벽잠을 설칠지라도 .

.

그러나 '인자가 머리둘 곳이 없다'는 그 분의 말씀과 ' 내가 나를 따르려면 집과 부모를 버려라'했던

그 말씀처럼 사실은 다 버렸다. 버리기 어려웠지만 버렸다. 이 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후대를 위해서라면 내가 그 어떤 시인처럼 그저 모래 알갱이로 큰 담벼락에 상처를 내고 가는 그 역할이라나마 하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그것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다하고 싶었다.

그게 청년 예수, 역사속의 예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한 치도 내가 다른 구멍을 만들어놓고 싶지 않았다.

두 발에 칼을 꽂아 쓰러지더라도 꿋꿋이 서서 죽고 싶었다.

한자말처럼 더 이상 도망갈 곳 없이 배수진을 쳐서라도 내 안의 욕망을, 갖가지 욕망을 누르고 싶었다.

 

숨이 끊기는 그 날, 심장에서 마지막 숨이 다하도록 벌떡이며  심장의 피가 솟아오르더라도

차마 눈감지 못하고 죽더라도 지키고 싶은 만들고 싶은 새세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회, 이 자본주의는 그리 만만치 않고 인간의 마음은 내마음을 비롯해 참 다양하다.

 

나는 말했다.

 

"승리할 수 없을 수 있어. 우리 대에. 다음 세대가 중요해."

 

정말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날은 오지 않으려는가?

 

다 괜찮다고 하시는 하느님과

어제도 오늘도 용산의 참혹한 죽음을 구명하려는 신부님들과

승리를 위해 내딛는 사람들과

인간의 존엄과 자존을 위해 가는 사람들

 

 

세상은 참으로 만만치 않다.

 

 

남편이 일하는 곳은 지적 장애인들이 일하는 세탁소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감이 더 많아진 모텔과 호텔의 세탁물을 세탁하는 세탁공장이다.

 

술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새세상에 대한 꿈을 꾸되 세상을 잘 몰라서 겪는 수업료로 지난번 했던 '가게의 청산'여긴다고.

학생운동하면서 장애인이 돼서 민주화보상법으로 받은 돈은 기부했다가 이래저래 해서 가게를 끝으로 다 바닥난 밑천.

그래, 생각지도 않은 돈, 그저 인생의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꿈을 꾸는 남편이 '괜찮다고 말했다.

나도 괜찮다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해. 나도 그럴게. 하지만 딸은 잘 기르자. 그래야 우리의 뜻을 알겠지."

 

술을 걸치며 말을 하며 텔레비젼도 시청했다. 션과 탤런트 부부가 나왔다. 평상시 기부를 많이 하는 부부이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기부를 많이 할까?"

 

"돈이 많아서겠지?"

 

"아니야, 돈 많은 연예인이 한 둘이니?. 뭔가 사연이 있을 거야"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나도 입양하고싶어. 돈 있으면"

 

"그래, 그러면 좋지. 그래야지."

 

내가 말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 너무나 중요해 "

 

"그래"

 

남편은 그냥 괜찮은 사람이다.

다만 내 결핍과 내 트라우마가 그에게 간 것이겠지.

 

언젠가는 얘기하리라.

"너 자체로 안보고 내 아버지이길 원했던 것 같고 내 결핍을 채워주길 바랬던 것 같다고. 그래서

더 서운했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애쓰고 사는 사람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예수님 탄생한  이 날.

 

우리도 다시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 했다.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공책정리하다가 ...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이......

 

 


그대, 내가 시인도 아닌데

시를 쓰게 하는 그대.

부끄러워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한 말,

집게로 건져내서 마음 밖으로 내어 두고

식혀야 할 너무 뜨거운 그 말.

 

가나다라마바사......


 

내가 또 한없이

어린아이같이 되게 해 준 그대.

고맙기만 하네요.


이래서 사랑을 유치하다 그러나요?

뭐 유치한게 나쁜가요?

어린아이와 같다는 거

그냥 인간 그 자체라는 거겠지요.


언제 다시

이런 느낌

이런 눈부심

이런 따스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겠어요?

있는 그대로 말하겠어요?


다 당신을 만난 까닭이고

당신과 내 가슴속

그 오래된 거울 반쪽 맞춰 본 탓이죠.


거울 귀퉁이가 딱 들어맞지 않으면

또 어쩌겠습니까?

 

그저 맞는 만큼

솟아오르고

차오르는

사랑


 

그대로 느끼겠습니다.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떨리고 설레고 두렵고....

 

올해 2월 4일 시작한 내 휴가는 이제 4분기에 들어가고 있다.

 

1분기 -  쉬어야 한다, 놀아야 한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난 휴가중이라고 각성에 각성을 덧붙이며

            휴가의 의식화, 신체화에 주력했던 시기.

            실천으로 그냥 마냥 누워있기, 아무생각 없이 만화보기, 해 보려고 애쓴 시기.

           그러나 이미 번역강좌 3개월짜리와 국선도, 에니어그램 지도자과정을  시작한 시기.^^

 

2분기 -  서방의 사업정리와 갑작스런 발목뼈 이상으로  부부가 손가락 빨며 백수커플이 된  묘한 시기.

            연애 6년, 결혼 10년만에 처음 얼굴 맞대고 집에서 어슬렁거렸던 시간들. 활동하느라 사느라

            바빴던 것들, 소홀했던 것, 스쳐갔던 것들을 차분히 살펴보고자 노력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다

            는 걸 절감했던 시기.

            실천으로 한 3주 정도는 사이 좋게 지내려고 애썼고 밀린 숙제(?) 를 매일 열심히  했던 시기

                       

여름방학 - 모든 것을 멈추고 가족 셋이 친하게 지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자 계획했던 시기.

                그러나 가장 무력하고 힘들었던 시간.

 

3분기 -  1년이 얼마 안남았다고 화들짝 놀라며 이것저것 또 강의를 듣고 배우러 다니느라 바빴던 시기.

             무료동화강의, 글쓰기 공작소, 시민영화학교..... 정신이 좀 없당.

             드디어 거의 1년에 걸친 에니어그램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자축함.

             시민영화학교 분반에서 단편영화를 찍음( 드디어 출연. 한장면 -.-;;)

             창작활동이 아직은 내 단계가 아닌 듯. 발산, 퍼냄, 분출의 글을 써야 할 듯.....

            

아직도 내년 2월까지 4분기가 남았지만 여러 상황이나 내 전망,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얼추 갈 길을 정한 듯하다. 이게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열정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나 자신으로 사는 삶, 나답게 꽃피는 삶. 그 삶이 어떤 것일까? 어떤 길일까?

 

사회복지사를 기반으로 직장을 구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상담심리 대학원에 진학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

 

이런 대략의 계획을 세워보자마자, 내 가슴은 좀 죄어오고 내 머리는 뜨거워지고 있다.

출발선에서 신발끈도 제대로 묶지 않은 채 결승점을 노려보고 주먹을 불끈 쥐려고 한다.

내가.

지리산둘레길에서도 다음 도착점이 정해지면 둘레둘레 둘러보며 가기로 했던 생각과는 달리 무의식적으로 나는 앞을 향해 마냥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물론 시간은 없고 알아본 대학원은 모두 필기시험을 친다. 내년 봄에 시험이 있다. 시험없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학부전공과 다른 것이니 남은 기간 공부를 해야한다. 와우, 책값도 만만치 않구나.

 

엄마한테 야단맞아서 더 시무룩해졌다. 아빠가 가라고 할 땐 안 가고 돌아가시고 나서 둘다 놀면서 무슨 대학원이냐고 , 자식들 대학원까지 가르쳐놔도 용돈 10만원 주는 자식 없다며 호통이셨다.

그렇다.

대학교 4학년때 대학원가라고 아빠가 얘기했는데 나도 사실은 가고 싶었는데 사학비리로 얼룩진 학교상황이 만만치 않았고, 다들 노동현장에 투신하는 분위기에서  나혼자 대학원 간다고 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2학점을 펑크내고 학교에 남아 학생운동을 했다. 5학년, 6학년, 그리고 재야단체 상근자로

사회진출...

 

나름 내 종교적 신념과 청년의 양심으로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약간 아쉬움은 있다. 마흔인 지금 시점에서 보니 한 5년만 젊었어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겠다 싶다. 하지만 5년전이나 지금이나 뭐가 크게 다르단 말인가? 

그러니까 지금도 할 수 있다. 충분히. 문제는 정말 간절히 원하는 가, 끈기있게 공부할 의지가 있는가, 직장생활과 학업을 잘 병행할 수 있는 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물음에 어떻게 구체적인 답을 해가며 실천을 해 갈 것인가이다.

 

답답....막막.....

 

하지만 지금 결심하지 않으면 다시 5년 뒤에나 10년 뒤에 후회하겠지. 5년만 더 젊었으면 하고.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라는 것을 쓰면서 떨리고 설레고 두렵다.

아마, 막상 직장이라는 현장에 가면 더 두렵고 떨리겠지.

이력서, 자기소개서 없이도 내 자신이, 내가 살아온 삶이 신용 자체인 사회단체나 시민운동계가 아닌

일반 직장인으로 나를 써달라고 하는 것이 어떨 것인지 약간 우울감도 온다.

 

괜찮다. 괜찮다. 좌절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인생에서.

다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우선 대학원 진학을 해 놓고 뭐 나름 나도  애썼다고 말할 수 있겠지.

경제적 문제는 정 안되면 집  평수 좀 줄여서 이사가고

 

4분기 -  3분기를 잘 마무리 하고 취업과 대학원 시험공부에 일로매진하는 시간.

            딸내미 겨울방학이 최대 고비겠지. 두달 통째로 쉬는 대안학교의 장점이자 단점.^^

            마음속에 모든 것을 철회하고 눈 딱감고 남은 이 4분기를 제대로 쉴까? 하는 생각이

            유혹처럼 손짓을 한다. 근데 왜 자꾸 서방얼굴이 떠오르지?

           같이 쉬어도 왜 난 뭔가 미안함, 쪼여옴의 느낌이 드는 걸까? 어디에서 올라오는 감정일까?  

           

            대학원 5학기면 대충 3년 흐르고, 수퍼비전 받고 그러면 대충 5년 되겠지.

            45살. 그리고 공부 더 하면 10년, 50살. 50살, 50살, 50살이라....

            내 청춘은 가고 우리 딸도 19살 꽃다운 나이

 

            이 때쯤 내 꽃은 무슨 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나리오대로 갈 수 있을까?

 

            떨리고 설레고 두렵고......            

 

그 사이 글도 쓰고 동화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춤도 추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맘껏 만날 수 있을까?

 

그 사이 죽지는 말아야 할텐데.....^^

 

 

 

 

 

 

나에게...그리고 모든이에게

기다리는 믿음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느긋한 움직임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본래, 지체 없이 목적에 다다르려고
모든 일에 안달합니다.
거쳐야 할 단계들을 건너뛰고 싶어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 새로운 무언가에
이르려고 안달하지요.
하지만 불안정한 단계들을 거쳐야만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은
모든 진보의 법칙이랍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당신과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생각들은 서서히 성숙해갈테니,
그것들이 자라도록 쓸데없이 서두르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 꼴을 갖추도록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선한 의지 위에 활동하는 은총과 상황들이
당신에게 내일 이루어 질 것을,
오늘 할 수 있는 듯 강요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느님의 새로운 영(靈)이
서서히 당신 안에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주님께, 그분의 손길이 당신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믿음을 드리세요.
그리고 모호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당신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받아드리십시오.

- 떼이야르 데 샤르뎅(예수회 신부)

Patient Trust

Above all, trust in the slow work of God.
We are quite naturally impatient in
everything.
To reach the end without delay.
We should like to skip the intermediate stages.
We are impatient of being on the way
To something unknown,
Something new,
And yet it is the law of all progress
That it is made by passing through some stages of instability
And that it may take a long time.

And so I think it is with you.
Your ideas mature gradually
Let them grow,
Let them shape themselves,
Without undue haste.
Don't try to force them on,
As though you could be today what
time(that is to say, grace and
circumstances acting on your own
goodwill) will make of you tomorrow.

Only God could say what this new spirit
Gradually forming within you will be.
Give Our Lord the benefit of believing
That his hand is leading you,
And accept the anxiety of feeling yourself in suspense
And complete.

Pierre Teilhard de Chardin, SJ.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실랑이와 실갱이 (펌)

실랑이와 실갱이 : 자주 헛갈리는 낱말

세 번만 힘써 말하면, 헛갈리지 않는다.
세 번만 힘써 말하면, 또렷하게 새긴다.

 

실랑이는 실랑이질의 줄임말이다. 실랑이질은 남을 시달리는 짓을 가리킨다. 남을 시달리는 짓이란,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가리킨다.

  실강이라는 말은 없다. 실랑이를 헛갈려 실강이 또는 실갱이로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갱이살쾡이의 사투리이다. 실랑이와 아주 다른 말이다.
 
실래이라는 말이 있다. 실래이는 실랑이의 사투리이다. 실래이와 실갱이는 모두 경상남도에서 쓰는 사투리이다.

 
승강(昇降)이라는 말이 있다. 실랑이와 비슷한 낱말로서, 서로 제 생각과 말을 내세우며 굽히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서로 자기 생각을 내세워 굽히지 않으며 옥신각신하는 일이다. 승강이질도 같은 말이다.
 
싱갱이라는 말이 있다. 승강이를 북한에서 싱갱이라고 한다. 싱갱이는 다툼이나 겨룸에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힘쓰는 일을 가리킨다.
 
옥신각신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다투는 일을 가리킨다. 그 뜻이 실랑이와 비슷하다.
  시애(撕捱)라는 말이 있다. 서로 자기 생각만을 내세워 뜸을 들이며 늦잡도리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일을 결정하지 못한다.

  실랑이, 실래이, 다툼질, 말싸움, 승강이, 싱갱이, 시시비비, 설전, 시애가 모두 비슷하면서 달리 쓰는 말들이다. 하지만 실강이는 없는 말이고, 실갱이는 다른 말이다. 헛갈려 쓰지 말자.

  실랑이를 잘 알았으면, 오늘은 아래의 <
>도 새기자. 처음만 쑥스럽지 자꾸 쓰면 쉽다.

  손수짜기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가 재료, 부품을 사서 손수 만드는 일을 뜻하는 외래어인 다이(DIY, Do it yourself.)의 다듬은 낱말.(국립국어원)
  손수굽기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가 빵, 과자의 재료로 집에서 손수 구워 먹는 일을 뜻하는 홈베이킹(home baking)의 다듬은 낱말.(국립국어원)
  바특이라는 말이 있다.

바특하다로도 쓴다. 두 대상 또는 물체 사이가 조금 가깝거나, 시간 또는 길이가 조금 짧거나, 국물이 적어 톡톡할 때, 쓰는 말이다.

  세 번만 힘써 말하면, 헛갈리지 않는다.
  세 번만 힘써 말하면, 또렷하게 새긴다.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눈에 들어오는 그림과 글(펌)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낙원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에로스는 이런 방식으로 프쉬케를 통제했다.

여성은 일정 시간 동안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 혹은 내면의 신 아니무스의 지배하에 살아간다.

에로스가 만든 낙원에서 의식적 깨달음에 대한 욕구는 침묵한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마침내 여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의 지배에 도전하여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지켜보겠다"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은 한 여성의 내면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기가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런 선포를 한 결과로 여성은 견디기 어려운 심한 외로움에 빠진다.

이 외로움이 두려워 통제상태, 낙원에서의 삶이 오래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알고 나면 아니무스는 더 이상 그 여성의 심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아니무스와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단 관계를 시작하면 더 이상 아니무스에게 끌려가지만은 않는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에로스의 본 모습을 궁금해하는 의식의 등불을 켜지 않는다면

프쉬케는 완전한 무의식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무의식 상태'란 불가능하다.

 

프쉬케의 두 언니가 제안한 등불과 칼의 상징에 주목하자.

만일 여성이 자기 안의 빛과 칼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깨닫는다면 살아가는 동안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여기서 심오한 법칙 하나가 있다.

여성은 등불은 사용하되 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칼은 개인적인 용도로 써야한다.

명쾌한 식별을 위해서나, 애매모호한 것을 잘라낼 때만 사용해야 한다.

칼은 단절을 가져올 뿐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등불은 이용하되 칼은 사용하지 말라는 법칙은

남성의 아니마에게도, 그리고 남성이 만나는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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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들어왔다. 그림이

그림.

많이 보고싶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를 읽고

 

우연히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제목이 눈에 쏘옥 들어왔고  나오는 여인들이 무지 궁금해서 덥석 집었다.

 

내 수첩 한 귀퉁이에 적힌 글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읽는 내내 내 안에 미친년들이 어슬렁 거리는 느낌이 든다.

떼로 몰려 오려고도 한다.

어떤 녀 ㄴ 은 쭈그려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 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책소개 )

 

이 책은 여성문화운동 1세대인 사진작가 박영숙, 여성운동가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 실리콘밸리의 작은 거인 CEO 김태연,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만든 극작가 이브 엔슬러, 신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현경,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가톨릭 사제 빅토리아 루, 뉴욕 맨해튼에서 한국 불교를 포교하는 묘지 스님, 캐나다 이민세대인 설치미술가 윤진미, <이프>를 창간한 언론인이자 시인 유숙렬 등과 같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국내외 여성 멘토 아홉 명의 인생 편력과 그녀들이 전하는 행복한 인생을 위한 지혜와 철학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국내외 여성 유명 인사들의 인생 역정과 인생 철학,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한 권의 책에 모았다. 그녀들은 모두 다른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고 다른 인생길을 걸어왔으며 다른 인생관을 갖고 있지만 한결같이 인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건강한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끝까지 간직한 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생에 대한 한 여성의 진지하고 절실한 질문의식이 단초가 된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우리 모두의 실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지닌 여성 멘토들의 전언, 그러나 어렵지 않고 평범하여 도리어 특별한 힘과 깊이로 가슴에 와 닿는 가르침들, 밑줄을 그어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픈 보석 같은 문장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황당한 경우와 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가 성격이 거칠면 남자답다 격려 받지만 여자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성격이상’으로 낙인찍힌다. 남자들이 조리있게 한 문장씩 분석하면 논리적이라고 말하지만 여자가 그럴 때면 ‘따박따박 따지기 좋아하는 피곤한 여자’로 손가락질 받는다.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 마녀, 나쁜 여자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날 때부터 미친년은 아무도 없다. 페미니즘의 필요성은 미친년으로 몰려보면 안다.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 소리를 듣는다는 건 자신의 길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진화의 증거이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친년이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현실과 맞장을 뜨며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올라갔다 추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오직 하나고, 나는 오직 나’일 수 있는 정체성이 있다면 미친년 소리는 축복의 메시지다. 내가 누군가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면, 멈추지 말고 그 길을 가도 좋다. 문제는 미칠 수 있는 열정과 용기가 우리에게 있느냐이다.(프롤로그 중에서) “인생에서 한 번쯤 미친년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