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정리의 달인

서방이 어제 내가 공부하러 나간 사이 딸내미 학교 데려다주고 종일 집에 있으면서 소위 책방, 공부방인 내 방 (반발이 많지만)을 정리해 놨다.

중요한 것은 내 물건을 버리지 않고(아, 이 점도 좀 의심이 간다. 말로는 안버렸다고. 찾는 것 말만 하라고. 찾아준다고 하는데 한 번 재활용버리는데 가봐야겠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보이는게 있는듯하다 ^^ )

 

서방이 몇번  80살 할아버지 수준인 내 노트북에 써보더니 자기도 질렸는 지 인수해주려고 하던 가게 컴퓨터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이제 10년 된 책상딸린 책장을 버리자고 했다.(이거 내가 다 버렸다. 반깁스를 하고 있는 서방은 목발을 집고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주는 그나마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 내가 헌 책장을 들고 나가자 수위아저씨가 받으시려고 하셨다. 백발이 성성하시고 내 반만한 몸집이시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멈추지 않고 재활용장에 갖다 놨다. 근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것일까, 냉장고도 들어볼까? ^^ )

 

그리고 내가 아직 못하는 인터넷뱅킹으로 책상과 모니터를 주문하더니 나더러 방을 치워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좀 계획을 세워서 치우겠다고 했는데 어제 후다닥 정리를 해놨다.

 

자잘한 짐( 못버리는 천조각, 여러 미술재료, 책만큼 있는 도서목록, 딸내미 장난감, 못버리고 있는 가방들...)이 많아 사진으로는 아주 산뚯하게  깔끔한 것 같지 않지만 여하튼 불편한 몸에 애썼다. 눈이 환하다. 딸도 괜찮은 지 한켠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물론 지우개가루를 손수 치우셔야 하는 엄한 아버지의 힘들어간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나보다는 확실히 정리는 잘하는 것 같다.

아, 나는 분류의 개념이 부족한 것일까?

사실 솔직히 어디 정리 잘하는 법 강좌라도 있으면 듣고 싶었던 게 오래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정리정돈의 생명은 제자리에 두는 것.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거 뭘 쓰지도 말고 건드리지 말고 뱀처럼 옷만 입고 벗고 나가야 하는 마치 '얼음땡' 놀이 같은 경우다. 누구를 위한, 뭘 위한 정리정돈이란 말인가!)

 

그러나 아이 키우는 집에서 그것 쉽지 않고

엄마와 아빠가 정신없이 바쁜 맞벌이(벌이가 시원찮았으니 '맞일'이라고 하자) 인 집은 금방 나눔장터 되기 십상이다.

(어째 온톤 합리화와 변명으로 덧칠되는 느낌이다.흑)

 

여하튼 정리정돈된 말끔한 방을 보니 웬지 글도 잘 써질것 같고 공부도 잘 될 것 같고

책도 잘 읽힐 것 같고 한마디로 좋다.

애썼다. 서방.

 

당신을 정리의 달인(이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이 올라온다. 계속 정리를 해야 이 칭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타협점은 급수로....ㅎㅎ) 3급으로 임명합니다.

 

그 뒤에 자신의 근력을 뛰어넘는 초인의 힘으로 오래된 가구를 약 100미터 가량 옮기신 어부인을  천하장사 어부인 2급 자격을 드립니다. 부탁말씀을  가급적 힘자랑은 마십시오. 도서관 하면서 8000권 책을 이리저리 옮겼다가 들었다가 놨다가 끌었다가 하다가 사지 인대가 늘어나 침맞는 고생 하셨던 것 잊지 마시고.

'힘자랑 하면 개고생이다.'

 

정말 집안살림 하면 잘할 것 같기도 하다. 서방.

요리도 생선요리를 두려움 없이 맛나게 하는 걸 보면 더 그렇다.

이 참에 요리사가 돼 보라고 해볼까?

 

내가 정리된 방에서 컴을 쓰고 있느니 서방이  

"내 방 잘 사용해죠. 뒷정리 잘하고"  한다.

내방이라니? 울컥해서

"애는 썼지만 이거 다 들고 내 방에서 나가줘. 나 노트북 쓸래"  했다.

 

아니 청소하고 정리한 것은 고맙지만 이게 웬  점령군?

 

이 때 딸아이 하는 말

"여기 원래 내방이었으니까 엄마 아빠 다 짐 갖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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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댓글 2개:

  1. 딸아이가 이겼네요~ 최후의 승자네요.. You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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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회색웃음 - 2009/06/16 18:21
    복병이 있었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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