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0일 토요일

생각을 쏟아내자, 가슴으로 만나고 느끼자.

머리가 참 복잡하다.

많은 생각이 순간순간 스치고 지나가고

어느 땐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덩굴식물처럼 나무를 타고 끝없이 올라간다.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생각하지 않으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불안했던 어린시절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아직도 내 안에서

때론 어쩔 줄 몰라 정처없이 서성이고

때론 무서워서 얼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고

때론 조그리고 앉아 아무말없이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 누구든 큰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사람이나 상황,

씩씩거리는 몸싸움이나 대결의 현장,

아이나 여성이 우는 소리,

노오란 햇살아래 책가방 메고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이,

공원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

미래를 꿈꾸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수강생들의 처진듯한 어깨에서

 

나를 만난다. 생각이 아니라 뭔지 모를 것들이 걸리적거린다.

 

가장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울 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살을 베어줘도 아무렇지도 않을

사랑하는 딸아이에게서

 

나. 를. 느. 낄. 때. 이. 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어린시절에 형성된다는 자존감.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 자존감이 대물림 된다는

무서운 실험결과를 영상자료로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들

 

업보, 지당한 말씀,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모르고 지은 죄,

내 대에서 끊어야 한다, 고백, 엄마가 미안해.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어

마치 선생님처럼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 동생, 오빠들을

보살핀다는

관계지향 중심적인 딸아이가

왜 그리 안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참 고단한 일이고

오히려 더 외로운 길이기도 한데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

가족의 둥지가 불안했던 걸까?

 

어린 몸과 여린 마음하나

정붙일 곳, 비빌 언덕이 없었던 나.  

아무생각없이 그저 누워있을 누군가의 무릎팍,

따스하게 안아주는 품,

온기가 전해지는 쓰다듬,

알콩달콩한 가족의 대화를

간절하게 바랬던 아이.

 

명확히 알진 못했지만

내가 간절히 바랬던 것들

그것들을

딸아이에게 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이란 주제로

마인드 맵을 작업한 아이가

말하고 있는 행복은

온통

가족이다. 엄마 아빠다.

엄마랑 아빠랑 함께 청소하는 것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산책하는 것

엄마랑 같이 그림 그리는 것.

아빠랑 함께 뭐 만드는 것

 

"엄마랑 아빠가 행복한 게 아이에겐 가장 큰 행복이예요.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 딸내미 담임선생님 말씀 -

 

 

참담한 것은 내게 가족은 있었지만 가족관계는 없었기에

나는 가족으로 산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조차 최근에 알게 됐다.  

 

내가 자라난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였다고 하지만

과일 노점을 하는 엄마와

명확한 직업없이 '술과 주정, 폭력'으로 기억되는 아버지,

그리고 딸 셋, 아들 하나의 사남매,

우리를 돌봐줬던 슬픈 미망인 이모.

이런 가족관계에서

가난해도 느끼고 싶었던 정겹고 따스한 가족관계는

오직 내 머리속에, 책속에, 드라마속에,

그리고 교회라는 성령충만한 또다른 세상속에만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딸아이와 부딪혀서 신경전을 벌일 때

나는 엄마인 어른 내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아이가 되어

어린 딸과 맞짱뜨며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도 다 내가 알아서 했는데 너는 뭐야?'

하며 어린 내가 어린 내 딸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어린 딸의 말을, 요구를, want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해 본적이 없어서

딸의 감정도 느낌도 이해하거나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고백을 한다.

 

" 엄마는 어려서 할머니가 장사하셔서 이런 것 다 혼자서 했어. 그리고 솔직히 예현이가 징징거리며 말하면 뭘 원하는 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예현이 마음도 잘 모르겠어. 네가 원하는 것을 자세하게 알려줘. 엄마가 몰라서 그러는 거 많으니까 네가 알려줘. 엄마는 몰라서 못할 때가 많이있어. 그래주면 엄마도 잘 들어보고 얘기해 줄게. 엄마는 사랑하는 딸을 도와주고 싶고 할 수 있으면 들어주고 싶고 그래. 그게 엄마 마음이야. 몰라서 미안해."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성사를 해야 한다. 그럼 아이도 좀 누그러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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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만남속에서

내가 남들에게 보여준 이미지, 모습들은

따뜻하고 밝고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포근하고 인정많고 유머있고 ...

오랜 세월 이렇게 살아온 나는 정말 이게 나인 줄 알고 살았다. 나답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초등학교 그 어느 때

식구들 다 자는 한 밤에 일어나

부모님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울던

그리고

참담한 현실과 그 슬픔은 내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나는 밝은 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던 그 아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운다고 노래하던 캔디처럼 .......ㅎㅎㅎㅎ

 

그렇게 지하실로 보낸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서른 살 후반 소위 중년의 나이에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분노의 폭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몸이 쉬면 마음이 쉬고 마음이 쉬면 영혼이 쉰다 

                                                                           - 상담선생님 말씀-

 

도서관이 나고 내가 도서관이었던 때,

공동체가 나고 내가 공동체였던 때,

커다란 톱니바퀴를 돌리는데 필요한 너트같은 나지만

빠지면 멈출 것 같아 마모가 심각한데도 견뎠던 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딸아이의 아이로서 받아야 할 돌봄의 권리를 운동이란 이름으로 당당하게

구석진 한 쪽으로 밀쳐놓은 나.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생각만 멈추지 않고 돌아갈 뿐이었다.

하여 브레이크를 밟았고 수동으로 정지기어를 넣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곧 도서관은 아니다.

내가 곧 공동체는 아니다.

나는 소모품이 아니다

나는 엄마다

나는 쓸모나 기능이나 역할이 아니다.

나는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머리는 생각으로 과열돼 있었고

가슴은 쓰질 않아 차가운 상태였다.

가슴으로 느낄 것도 머리로 느끼고

뱃속으로 느껴야 할 것도 머리로 느끼는

나는

 

이제야

꽃도 좋고 그림도 좋고 노래도 좋고 춤도 좋고 시도 좋고 책도 좋고

음식도 좋고 뮤지컬도 좋고 영화도 좋고 비도 좋고

아이 얘기를 들을 시간이 있고 아이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

뭘 느끼겠다.

 

몸이 쉬니 마음이 쉬고 마음이 쉬니 영혼이 쉬고 .....그러니 느끼겠다.

 

머리에서 끊이지않는 것들,

마음에서 느끼는 것들

다 쏟아내고 싶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 속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만나고

이젠 어른인 내가 그 아이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보내주면서

새로운 나로 살아갈 힘을 얻기를 소망한다.

 

힘을 회복하면

조국을 위해 아이를 버리겠다는 문구에 붙들려 오열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조국을 살맛나게 하자 고 바꾸어 스스로와 서로를 격려하면서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희망해본다.

 

이 역사의 무게, 고개 돌릴 수 없는 발딛고 있는 현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좀 더 많은 사람이  조금씩 나눠 짊어지고 함께 가면 몇몇의 깊은 슬픔의 중압감은 덜어 내고 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몇 사람의 대표선수가 아니라 각 분야에서 각자가 맡은 일속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아는 것들을 공동선을 기조로 해서 정리해보고 상의해보고 실현방법을 단계별로 구상해 본다면 그리고 전체로  모아내면 그놈의 '대안'이란 게,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의 밑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삶터와 일터에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지혜로운 청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 또한 이상일까? ^^

 

삶이 담고 있는 고통과 행복이 모두 삶의 요소임을 수용하면서

어느 사인가  등뒤에 와 있는 딸내미를 안아주며

어디로 뻗어갈 지 모를 글을 마무리한다.

쏟아내고 들여다보고 만나고 느끼고,

두려움없이 두려움없이 !!!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리~~ 말하고 얘기하리~~

 

댓글 2개:

  1. 밤도 늦었고, 밀린 숙제하듯 그간 못읽었던 글을 읽으러, 블로그 돌아다니려고 이제 첫 개시를.. 이 블로그로 시작했는데..

    제 댓글이 자꾸만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여기서 끊어야 겠어요.

    아함~~~~~~ 주인장께서 쓰신 소중한 글은, 맨정신에 다시 읽으러 오기로 하고~ 이만 물러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암~~~ 꾸뻑~ m(_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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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회색웃음 - 2009/06/27 03:02
    피곤하시군요. 어여 주무세요.오시면 저는 반갑죠.차가운 매실차 한잔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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