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6일 금요일

노후생활 예행연습

요즘 사는 게 마치 정년퇴임하고

이제는 돌아서 거울앞에선 누나의 얼굴같은

그런 마음으로 사는 노부부 같은 생활이다.

 

아침에 눈을 떠 허둥대며 아침차리고

아이 깨우고 헐레벌떡 밥먹여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하고 대충 치우면

딸내미 학교데려다 주고 오신

영감님이 등장하신다.

 

각자 조금 쉬거나

넘 열심히 살아오느라 밀렸던 일(?)을 하거나

그러다가 국선도 하러 같이 간다.

 

지난번에는 가게 정리하고 남은 호두 두 통을

딸내미 주려고 영감이랑 할멈이랑 머리를 맞대고

망치로 깨고 고르고 했는데

일하던 내내

짚으로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거나

나물을 만드느라 푸성귀를 다듬는

그런 할아범, 할멈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서

혼자 웃었다.^^

 

뭔 맘이 들었는지

사실 나보다 훨씬 오래전에

국선도를 하고 싶다고는 했는데

인천에는 없고 부천까지 넘어가야 하기에

도저히 엄두를 못냈던 국선도를

아직도 염증이 덜 가라앉은 발목으로도

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국선도에서 유일하게

낮시간에 같이 오는 부부회원이 되었다.

 

나보다는 초짜이니

내가 선배라 좀 알려주고

내 돈으로 산 국선도 책도 빌려줬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고

담배 니코틴으로 찌든 눈동자도 좀 맑아진 것 같고

둘째를 가진듯한 배도 들어간 것 같다.

핼스클럽에서나 흘릴 엄청난 양의 육수를 흘리며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내가 전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강해 질 수 있는 것을

한가지 하게 돼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살좀 빼고 담배도 끊고해서

다친 다리에 무리를 주지 말아라, 노후에 누가 돌봐주겠나.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선배로서

그리고 동반자로서 진심어린 걱정을 해줬다.

웬일로 큰 거부감없이 애쓰고 있다고 하니

명상과 수련이 야성을 많이 순화한 듯도 하다^^

 

국선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갑자기 포토샵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신청한

무료강좌를 들으러 간다.

그리고 오면 딸내미랑 먹을 저녁반찬을 생각하면서

장도 보고 그런다.

 

나는 그 사이 책을 보거나

내 약속을 가거나

빨래나 정리를 한다.

 

오늘 오면서

"우리 꼭 노후생활 예행연습하는 것 같아."했더니 웃는다.

신혼여행으로 끝이난 신혼생활,

출산과 육아, 도전과 혁신으로 점철됐던 10년의 전투

그리고 오늘, 요즘의 노후생활 예행연습의 시간이 있다.^^

 

10년의 아니 정확히는 한 8년?

잃어버린 시간이었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위한 전초전의 시간이었나

어른으로서 나, 어린아이 상태의 나,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 나,

어른으로서 너, 어린아이 상태의 너,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 너

이렇게 나와 너라는 존재안에 여러 존재를 담고 있는

둘만의 생활이 아닌 이런 존재들의 다양한 부딪침속에서

결혼생활은 시작돼고 진행돼 온 것이다.

둘이 살지만 우글우글 여럿이 사는것이다.

여기에 보람과 책임이라는 행복과 부담의 양면을 지닌

사랑하는 딸내미 등장이요~~~

 

각 존재들이 바라는 서로에 대한 요구, 바람,

그 안에 일어나는 서운함, 실망, 고마움, 충족

여러가지가 식별되지 않은 채 엉겨서 더 힘들기도 하고

실마리를 잡을 수도 없던 때가 많은 것 같았다.

 

"내가 때로는 너자체가 아니라 너에게 우리 아빠를  들씌워놓고

네가 아닌 아빠에게 말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 하고 고백했다.

(근데 아빠가 좀 돼 주면 안되는 거였니? 하며 서운한 기억이 반감으로 올라오네^^

내 어린이가 네 안의 어린아이와 맞짱뜰 적도 있었겠지 뭐... 그것이 인생의 묘겠지?)

 

차타고 오는 길에

"이 차에 그림 그리고 싶어. 아직 가게 상호도 있고 그러니 재밌는 그림 그리자. 예쁘게"

했다.

묵....묵....부....답....

 

나는 긍정의 답으로 접수. 뭘 그릴까?^^

이 사회의 남자들 좋은 걸 좋다고 못하고 슬픈걸 슬프다 못하고 성장한 홍길동이다.

정말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하느님이나 무서운 선생님으로 여기며 성장해온 남자들이 실제 많다고 추측해본다.

그들도 자유롭게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인생이 주는 선물을 즐기며 살았으면 싶다.

인생의 마감은 언제 들이닥칠지 전혀 아무도 모르므로.

오늘 마이클잭슨의 죽음처럼.

 

나름 뭘 할거냐라는 주변사람의 적잖은 질문에

움찔할 수도 있을거라고 충분히 예상된다.

나도 그러니까.

그래도 남은 시간, 충분히 쉬고 하고싶은 것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일하더라도 국선도는 짬을 내서 계속했으면 좋겠고

 

내가 얘기하면 좋은 것은 좋다고 하고

감정표현도 하면 좋겠다.

(자기말로는 튕긴다고 하는데 이젠 그만 튕기고. 효과없는데. 친절하고 솔직한 게 더 좋은데)

 

국선도장에서

나이 많이 드시고 얼마전 홀로 되신

할머니라고 하기엔 생생하신 60대 중반 왕언니들이

둘이 다니니 보기 좋다고는 하시지만

 

뭐 영혼이 통하거나 code나 feel이 통하거나 하는

내가 지향하고 꿈꿔왔던 soul한 그런 부부의 단계는 안타깝게 아니기에

(어쩜 부부사이에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그 차거운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듯 흑흑흑..)

그저 하느님 보시기에 다 소중한 생명이고 존재이니

나도 부족한 아량으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살아야 하리.

 

그러나

하나님도 괜찮다고 하시는 것들을

인간이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 편의를 위해 가로막거나 강요하는 것은

어쩔수 없이 평화로운 맞짱이든 정열적인 맞짱이든

부딪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

냉전과 열전의 소규모 전쟁은 뭐 계속되는 게

인생이겠지.

 

지금 노후 생활 예행연습은

일종의

휴전상태인가?

 

 

 

   

댓글 2개:

  1. 노후 생활 예행연습 .. 재미난 말씀이시네요.

    그나 저나 스킨이 바뀌었네요? (이미 예전에 보긴했지만.. ㅋㅋ)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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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회색웃음 - 2009/06/27 02:22
    반가워요 회색웃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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