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7일 토요일

김씨부녀 표류기

김씨 표류기 포토
감독 이해준
제작일 2009,한국
별점

천하장사 마돈나로 알려진 이해준 감독이

(개인적으로는 내가 다니던 교회 친구 동생이다.

감독은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게 안타깝기만 하지만^^)

 

생각의 틈새,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그럴법한

작은 이야기를 재밌게 영화로 그렸다.

마음 어디인가가 상처를 받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좀 찌질한 사람들의 이야기

찌질함이 찌질함으로 통하는

통하는 찌질함이 서로를 위로하는
그런 위로의 영화이기도 한 듯

(내 찌질함이 위로받은 것 같아서.....)

 

딸내미 꼬셔서 가족이 같이 봤다.

순수한 사람들이 상처받기 쉽다.

아니 상처받은 사람들이 상처받기 쉬운 것일게다.

 

눈물범벅으로 달리는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찌질녀가 꼭 나 같기도 하고

열두폭 병풍같은 인생을 안타깝게 접고자

버스를 타고 가는 찌질남이 또한 나인것 같았다.

그래도 그 맘껏 울면서 달려가 기어이는

버스에 올라타는 그 맑은 용기에

순수함에 나도 자유로웠다.

살수 있는 위로를 받는다.

 

영화보고 우리 가족은

오리타고 여의도 밤섬에 자장면 배달가던

 그 배달의 기수를 맡은 배우의 팬이 됐다.

정말 단무지에 식초같은 그런 역할이다.

 

영화보고 얼마 뒤에

딸내미가 학교에서 놀면서 만들어 왔다.

 

"김씨부녀 표류기"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해금이 땡긴다.

해금 연주를 듣고 있다.

애간장을 끊는 소리.

손등을 갈비뼈를 간질갈질 간지르는 소리

먹을 것을 입에 줬다 뺏어갔다 도로줬다 뺐어 갔다 하는 약올리는 소리

뒤골을 지나 머리끝을 지나 천정을 뚫고 지붕도 뚫어 하늘에 닿을 듯한 간절한 소리

가슴을 뜯어내며 죽도록 구슬피 우는 소리

목이 길게 빼어내며 핏발이 불뚝불뚝 서도록 바라고 바라고 바라는 소리

 

그 해금소리가

내 마음 어느 곳을 건드리고 있는 걸까?

내 삶 어느 지점에서 나를 위로 하고 있는 걸까?

내 분노의 어느 언저리에서 뇌관을 잡고 흔드는 것일까?

 

아직 피아노도 못가르치고 있는

그러나 리코오도 1곡, 하모니카 1곡은 불 줄 아는

우리 어린 딸내미와 합연하고 싶다.

 

이왕이면 가야금이면 좋겠다.

딸이 손이 좀 야물어지면 가야금을 권해보리라.

주민자치센터에서 3만원인가 하던데.....

 

오후내내

해금연주와

해금 카페와

해금 가격을

보고 듣고 있다.

 

왜 이럴까?

노후생활 예행연습

요즘 사는 게 마치 정년퇴임하고

이제는 돌아서 거울앞에선 누나의 얼굴같은

그런 마음으로 사는 노부부 같은 생활이다.

 

아침에 눈을 떠 허둥대며 아침차리고

아이 깨우고 헐레벌떡 밥먹여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하고 대충 치우면

딸내미 학교데려다 주고 오신

영감님이 등장하신다.

 

각자 조금 쉬거나

넘 열심히 살아오느라 밀렸던 일(?)을 하거나

그러다가 국선도 하러 같이 간다.

 

지난번에는 가게 정리하고 남은 호두 두 통을

딸내미 주려고 영감이랑 할멈이랑 머리를 맞대고

망치로 깨고 고르고 했는데

일하던 내내

짚으로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거나

나물을 만드느라 푸성귀를 다듬는

그런 할아범, 할멈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서

혼자 웃었다.^^

 

뭔 맘이 들었는지

사실 나보다 훨씬 오래전에

국선도를 하고 싶다고는 했는데

인천에는 없고 부천까지 넘어가야 하기에

도저히 엄두를 못냈던 국선도를

아직도 염증이 덜 가라앉은 발목으로도

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국선도에서 유일하게

낮시간에 같이 오는 부부회원이 되었다.

 

나보다는 초짜이니

내가 선배라 좀 알려주고

내 돈으로 산 국선도 책도 빌려줬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고

담배 니코틴으로 찌든 눈동자도 좀 맑아진 것 같고

둘째를 가진듯한 배도 들어간 것 같다.

핼스클럽에서나 흘릴 엄청난 양의 육수를 흘리며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내가 전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강해 질 수 있는 것을

한가지 하게 돼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살좀 빼고 담배도 끊고해서

다친 다리에 무리를 주지 말아라, 노후에 누가 돌봐주겠나.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선배로서

그리고 동반자로서 진심어린 걱정을 해줬다.

웬일로 큰 거부감없이 애쓰고 있다고 하니

명상과 수련이 야성을 많이 순화한 듯도 하다^^

 

국선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갑자기 포토샵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신청한

무료강좌를 들으러 간다.

그리고 오면 딸내미랑 먹을 저녁반찬을 생각하면서

장도 보고 그런다.

 

나는 그 사이 책을 보거나

내 약속을 가거나

빨래나 정리를 한다.

 

오늘 오면서

"우리 꼭 노후생활 예행연습하는 것 같아."했더니 웃는다.

신혼여행으로 끝이난 신혼생활,

출산과 육아, 도전과 혁신으로 점철됐던 10년의 전투

그리고 오늘, 요즘의 노후생활 예행연습의 시간이 있다.^^

 

10년의 아니 정확히는 한 8년?

잃어버린 시간이었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위한 전초전의 시간이었나

어른으로서 나, 어린아이 상태의 나,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 나,

어른으로서 너, 어린아이 상태의 너,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 너

이렇게 나와 너라는 존재안에 여러 존재를 담고 있는

둘만의 생활이 아닌 이런 존재들의 다양한 부딪침속에서

결혼생활은 시작돼고 진행돼 온 것이다.

둘이 살지만 우글우글 여럿이 사는것이다.

여기에 보람과 책임이라는 행복과 부담의 양면을 지닌

사랑하는 딸내미 등장이요~~~

 

각 존재들이 바라는 서로에 대한 요구, 바람,

그 안에 일어나는 서운함, 실망, 고마움, 충족

여러가지가 식별되지 않은 채 엉겨서 더 힘들기도 하고

실마리를 잡을 수도 없던 때가 많은 것 같았다.

 

"내가 때로는 너자체가 아니라 너에게 우리 아빠를  들씌워놓고

네가 아닌 아빠에게 말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 하고 고백했다.

(근데 아빠가 좀 돼 주면 안되는 거였니? 하며 서운한 기억이 반감으로 올라오네^^

내 어린이가 네 안의 어린아이와 맞짱뜰 적도 있었겠지 뭐... 그것이 인생의 묘겠지?)

 

차타고 오는 길에

"이 차에 그림 그리고 싶어. 아직 가게 상호도 있고 그러니 재밌는 그림 그리자. 예쁘게"

했다.

묵....묵....부....답....

 

나는 긍정의 답으로 접수. 뭘 그릴까?^^

이 사회의 남자들 좋은 걸 좋다고 못하고 슬픈걸 슬프다 못하고 성장한 홍길동이다.

정말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하느님이나 무서운 선생님으로 여기며 성장해온 남자들이 실제 많다고 추측해본다.

그들도 자유롭게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인생이 주는 선물을 즐기며 살았으면 싶다.

인생의 마감은 언제 들이닥칠지 전혀 아무도 모르므로.

오늘 마이클잭슨의 죽음처럼.

 

나름 뭘 할거냐라는 주변사람의 적잖은 질문에

움찔할 수도 있을거라고 충분히 예상된다.

나도 그러니까.

그래도 남은 시간, 충분히 쉬고 하고싶은 것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일하더라도 국선도는 짬을 내서 계속했으면 좋겠고

 

내가 얘기하면 좋은 것은 좋다고 하고

감정표현도 하면 좋겠다.

(자기말로는 튕긴다고 하는데 이젠 그만 튕기고. 효과없는데. 친절하고 솔직한 게 더 좋은데)

 

국선도장에서

나이 많이 드시고 얼마전 홀로 되신

할머니라고 하기엔 생생하신 60대 중반 왕언니들이

둘이 다니니 보기 좋다고는 하시지만

 

뭐 영혼이 통하거나 code나 feel이 통하거나 하는

내가 지향하고 꿈꿔왔던 soul한 그런 부부의 단계는 안타깝게 아니기에

(어쩜 부부사이에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그 차거운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듯 흑흑흑..)

그저 하느님 보시기에 다 소중한 생명이고 존재이니

나도 부족한 아량으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살아야 하리.

 

그러나

하나님도 괜찮다고 하시는 것들을

인간이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 편의를 위해 가로막거나 강요하는 것은

어쩔수 없이 평화로운 맞짱이든 정열적인 맞짱이든

부딪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

냉전과 열전의 소규모 전쟁은 뭐 계속되는 게

인생이겠지.

 

지금 노후 생활 예행연습은

일종의

휴전상태인가?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 지역화페이야기

100만분의 1 (양을 가늠 할 수가 없다. 질을 따져야 하나?) 영혼이 통한다고

스무살 중반부터 여겨온 후배가 얼마전 인천여성영화제 기금마련 일일주점에서

꼭 오라고 부탁한 강의

 

공동체운동과 지역화폐 (LETS: Local Exchage  and Tranding System)

 

한마디로 한국은행이 발행한 돈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발행하는 화폐와 교환가치 체계를 만들거 가는 공동체 운동, 대안경제활동에 대한 강의였다. 현실의 돈이 없어도 생명을 이어가고 생활을 할 수 있는 또하나의 대안? 이랄까.

 

강사는 대전에서 10년 동안 700세대의 주민들과 이 운동을 해 온  '한밭 레츠' 대외협력실장이었다. 특히 날이 갈수록 민영화, 자본화가 돼 가는 불안한 의료체계에 대한 대안운동으로 의료생활협동조합 (이하 의료생협) 인 '민들레의료생협'을 만들어 한밭레츠 회원들은 대부분 이 의료시설을 이용한다고 했다. 희망스런 일이다.

 

강의 방식은 그냥 말하고 듣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직접 화폐를 만들어 보고 실천해 보는 '품앗이 놀이'라는 활동방식의 강의 였다. 활동과정 자체가 강의내용 습득이자 실천이었다. 아무리 레츠를 얘기한다고 해도 한 번 해본만 못하다는 강사의 말이 맞다.

 

화폐이름 정하기는 한밭레츠의 경우는 -두루 , 과천 품앗이는- 아리, 강사가 사는 호숫가 마을은 - 호수 라고 지었단다. 예를 들어 짐옮겨주는것은 10000 두루, 정리정돈해주기 8000 두루, 뭐 이런 식이다. 이날 우리는 풀뿌리운동에서 따와 화폐이름을 '뿌리'라고 지었다. 재료비가 드는 것은 현금으로 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재생 빨래비누는  1개에 500두루+ 현금 300원, 또 의료생협 치과치료시 단순치료는 지역화폐로, 금니나 은니 등 재료구입이 필요한 것은 직접 재료를 사야하므로 현금 000원, 이런식으로 운영한단다.

 

40여명 되는  참석자들이  '제공할 것'과 '요청할 것'을 각각 다섯가지씩 써서 돌아가면서 발표하였다.

요청할 것으로 나온 이야기는 중년의 아저씨들은 술친구가 필요하다, 대리운전, 기술이 없어 부인에게시달리는 한 남성분은 졸졸졸 새는 수도꼭지 고쳐주기, 맡일하는 여성들은 한달에 두어번 자녀돌봐주기, 노처녀와 노총각들은 종종 영화같이 보기, 단체상근활동가들은 외국어 번역과 자료정리,자료 올리기 , 화병많은 언니들은 말벗돼주기, 수다떨기, 그리고 출산준비를 하는 초보엄마들은 운전연수시켜 주기(남편에게 운전연수 받는 것 이혼결심이 필요하단다. 백만번 공감!!), 비혼남성, 여성들은 밑반찬 등 다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청할 것보다는 제공할 것이 많았다. 이것이 인간이 갖는 선한 마음이랄까? 물론 만족 정도야 실제 해봐야 알겠지만 나누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 기본 바탕에 있다는 걸 새삼 기분 좋게 확인했다.

 

제공할 것은 물품대여( 주로 사무실이 있는 단체 상근자들이 이야기 - 빔프로젝트, 도서, 컴퓨터, 회의장소./ 미싱, 행사하고 남은 소주 5병, 유기농 된장, 볏짚, 흙, 영화 무료쿠폰, 인문학 서적 대여, 냉온찜질기등)와 강의와 노동력 제공( 인근 맛집안내, 북아트,논술지도, 리폼, 천연비누제조, 환경교육, 포토샵, 영상편집, 텃밭대여, 한국어 교육, 운전, 부동산 상담, 재테크 등)이었다.

 

이날 거래과정을 배우기 위해 역할극으로 설정한 것은  바로 '수도꼭지 수리' 였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얘가 나한테 강의오라고 한 남자후배이다) 부인의 요청을 '지랄'이라고 표현했다. 다행히 성사가 돼서 숨통은 트이겠지.^^

 

무엇보다 이 운동이 잘 되려면 신뢰가 형성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들으면 다 좋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구현하는 곳은 많지 않거나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종종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생산자, 판매자의 익명성이 암묵적으로 보장되는 구조인데 이 운동은 일단 사람을 알고 관계가 있어야 거래가 형성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로 신뢰와 관계형성이 주요하단다. 그래서 한달이나 두달에 한 번 '품앗이 만찬'이라는 음식나눔과 물품나눔 행사를 벌인단다. 자기 먹을 거리에 2-3인분을 더 준비해서 서로 맛있게 배를 채우고 가져온 물품을 거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안면을 트고 관계를 맺고 그러면서 시스템과 공동체 운동이 활력을 얻고 확장되는 것이란다.

 

강사는 잠깐 그동안의 운동방식에 대해 언급하기를 그동안은 이슈중심으로 전업상근자가 회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먹고 생활하는 '생활'의 영역을 함께 하므로써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업 상근자의 역할을 회원간의 교류와 연결을 이어주는 것이라는 얘기.그래서 지역테두리로 묶이는 것이 중요하단다.

 

제공할 것보다 요청할 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동안의 삶이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사는, 모든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한가지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 '폐를 끼치라'는 것. 우리가 교육받아오기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 지역화폐운동은 폐를 끼치라는 것이다. 대신 갚으면 된다. 그것이 물품이든 노동력이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이든. 다시 말하면 신세를 져야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내용인 있는 이야기다.

 

거래를 촉진시키기 위한 몇가지 핵심 지점들

 

1. 친해져야 한다- 친해져야 집안 정리정돈이나 자녀돌보기를 맡길수 있지 않겠는가?

2. 보이게 하기-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게되고 알려야 한다.

3. 폐를 끼친다

4. 품앗이 만찬

 

 

마지막으로 '달동네 눈길 쓸기' 얘기로 하며 '사랑의 경제' 에 대해 얘기 했다.

눈이 엄청내린 달동네. 그 골목길의 눈을 치우는 일은 GNP로 잡히는 그런 경제활동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눈을 치우기 않은 골목에서 그 동네 어느 할머니가  미끄러져 병원에 실려갔다면 그 때부터는 경제지표에 수치로 잡힌다는 것이다. 바로 사랑의 경제라는 것은 공적으로 잡히지는 않는 생산영역이라는 것이다.

 

10년을 운영해온 한밭 렛츠 공동체의 모습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실제 하고 있다.

 

살아갈 수록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시간을 큰 꿈을 향해 달려왔다. 나름 잘 왔는데 큰 꿈은 큰만큼 소수로는 안된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근데 많아도 흩어져 있으면 허당이다. 뜨게질하듯, 옷감짜듯, 씨줄과 날줄로 엮여야 있어야 한다. 인드라의 종처럼 연결되어 일파 만파를 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슈만이 아니라 삶으로 엮인 건강한 공동체들이 무리 무리 있어서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되야 한다.

물론 각양각색의 요구와 색깔이 있겠지만 존중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 있으면 어느정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절실한 아이들 교육문제, 생명의 기본인 의료체계와 먹을 거리, 생태,

삶의 기반이 되는 것부터 짜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자전거로 주된 교통수단인 녹색 자전거 도시도, 아토피와 식중독 걱정없는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도 가능하게 할 건강한 힘들이 생기지 않을까?

 

우선 우리 스스로 실험정신을 가지고

무슨무슨 반대가 주가 되는 안티 운동이 아니라

부족해도 만들어보는 실험해보는 크리에이티브 운동으로

 

정말 살고 싶은

아이들이 살았으면 좋겠는 사회를

최소한 만들어 주고

우리대에 못만들어도 청사진이나 기초공사는 좀 하고 가는

(마무리는 후대 니들이 좀 해야 겠다~ ^^)

그런 그나마 애쓰고 간 선대들이 어른들이 선배들이 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뭘 제공할 수 있을까?

 

목소리가 좋으니까^^ 노래? 책읽어주기?

 

한 번 정리해 봐야 겠당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누구를 위하여 털을 깎아야하나?

여름이다.

시원한 민소매(나시- 일본말)의 시절이다.

까만 민소매원피스를 입고 약속에 나가야 했는데

엄청 고민이 됐다.

그놈의 털땜시.

 

얼마전 서울 친정에 갔다가

여동생이 겨드랑이 털은 깎아야 한다고 면박을 줬다.

나는 아직 왜 깎아야 하는지 충분한 사전지식과 검토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뭐라

의견이 없었지만 여동생은 완고했다. 근거는 보기 흉하다는 것.

어린 딸과 함께 있었는데 이모가 강력하게 주장하자 그렇게 알고 있다.

 

얼마전 남편마저 겨드랑이 털은 깎아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보기흉하다.

누가 보기 흉하다고 했단 말인가? 머리털, 눈섭 같은 털은 안 흉하고 콧털, 얼굴솜털, 다리털, 가슴털, **털은 흉한 것인가?

누가 그렇다고 했을까?

근데 또 털이 안난 사람은 무모증이라고 안나서 병원다니고 심고 약먹고 치료하고

그러잖나?

 

그러면 겨드랑이 털은 왜 나는가? 존재이유, 역할을 무엇인가?

왜 천덕꾸러기가 되었나? 창조신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네이버 지식in 에서 검색했더니

특히 땀이 날때 살갗의 마찰을 줄여주는 완충역할을 하고

땀이 차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  의학적 의견인 것 같다.

상세하게 검색을 안해봐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 의료인같은 전문가의 의견은 없는 듯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겨드랑이 털은 존재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깎을 필요는 없다 것이다.

 

그러나 여름 한철장사로 한 몫을 챙겨야 하는 제모제 제약회사의 상술로

음흉스런 겨드랑이 털 흉물설을 퍼뜨려온 탓일까?

몇몇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는 흉하다는 것이다.

 

그럼 종아리털도 깎아야 한단 말인가?

 

공중도덕이란 말인가?

 

혼란스럽다. 뭐가 맞는 걸까? 이게 맞는 게 있는 문제일까?

 

어린딸도 진보를 추구하는(특정면에서만 그런 것같은데....-.-) 남편도

깎으라고 하는 겨드랑이 털.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때 나는 자유자유 자유

 

안치환의 노래처럼 굳이 깎을 이유도 안 깎고 버틸 이유도 많지 않은 이런사안은

가족의 요청이나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그냥 들어줘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

 

일단

 

남편 일회용 면도기로 깎았다.

근데 검색해보니 쪽집게로 뽑아야 깔끔하단다.

정말 그럴것 같다.

근데 상상해보시라.

뭔 요가도 아니고 한 손 드는 벌서기에 한참 꺾고 있을 고개에 엄청 가까운 곳을 바라봐야 하는 눈동자의 괴로움을.

그러고 있는 여인들의 그 모습을

 

성질 급한 사람은 제모제로 확 떡칠해서 녹여낸다고 하지만

그것은 몸에 넘 않좋다고 하니 그도 찝찝하고

 

누구를 위하여 털을 깎아야 하나?  뎅~ 뎅~ 뎅~

 

^^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여성감독들, 기대된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포토
감독 부지영
제작일 2008,한국
별점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만취한 선배언니를 좀 돌봐줬더니 그 미안함과 쑥스러움을

영화로 쏜다기에 만사제치고 오케이하며 달려갔다.

 

인천에 몇 안되는 예술극장에서 봤다.

마지막 상영일이라 그런지

저녁으로 가는 늦은 낮시간이라 그런지

아님 언니가 나를 위해 극장을 전세낸 것인지^^

우리 둘밖에 없었다.

 

맨처음엔 영화제목처럼 그냥 무난하고 싱겁고 뭐 그런 영화아닐까 했다.

주인공들도 그리 아주 센 이미지를 가진 확튀는 배우들은 아니기에..

 

근데 이거이거 정말 괜찮은 영화다.

아, 손에 피가 마르기전에 (좀 센가?)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써야 됐는데 ....쩝

고정관념을 딩~하고 치는 반전이랄까, 역설이랄까 그런 상상이상의 맛이 숨어있다.

그리고 요즈음 많이 테마가 되고 있는 가족이라는 의미도 새삼 다시 묻고 생각하게 한다.

진일보했다.

보고싶고 그만큼 원망스러운 도대체 왜 날 버리고 갔는지, 왜 날 낳았는지 애증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만나고 싶었던 아버지가 그림자같이 자기를 돌봐줬던 곁에 있던 이모 였다는 거!

 

여기서 나는 가족에게 있어 아버지의 의미와 역할, 존재는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굳이 아버지는 있을 필요가 있을까? (아니, 있기는 있어야지.... 두 씨앗이 만나야 생명이 잉태되니)

어쩜 부성애도 모성애처럼 사회가 만들어낸 그 뭔가가 아닐까?

 

내가 아이를 낳고 느꼈던 감당할 수 없었던 모성애, 후르륵 끓어올랐던 모성애는

활동을 위해 아이를 백일지나 어린이집에 맡겨야 한다는 불안감, 미안함, 핏덩이에 대한 부족한 돌봄에 대한 죄책감이 더 많이 있었던 것 아닐까?

 

아이를 막 낳고 산후조리하면서

이 거친 세상에

이 환경오염에 언제 어떤 재앙이 일어날 지 모르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지구에 아이를 살게 해야 한다는 것에,

20:80 을 넘어 10:90의 빈부격차의 세상에 이 아이또한 살아가야 한다는 부모로서 선배로서

후대를 잘 안내하고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할 선대로서의 무능함, 부족함에

아직 미개한 성차별이 만연한 이 사회에 여성으로 살아갈 그 고단함을 얼마 해결해 주지 못한 안타까움에 대해서

불안함, 미안함이 가득해서 산후우울증으로도 이어진 것 같다. 그냥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렀다. 하염없이 ^^

 

모성애이기보다는 불안함인 것 같다. 이게 모성애인줄 착각해서 모성애라는 것이 이토록 절실하게 몸에 있었구나 싶었고 그래서 모성보호가 필요한 것이구나 생각해봤다. 그전에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구호를.

 

모성애나 부성애는 다시 한 번 공부를 해봐야겠다.

 

모성이든 부성이든,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하더라도 떠나가지 않을 믿을 수 있는 양육자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아빠와 엄마가 있어야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두 사람중 하나가 없는 것은 비정상이고 버려진 것이라고 느껴지고 그것은 자기자신이

사랑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수치심으로까지 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 이대로 그 가정은 괜찮았지만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하는 아버지가 집에 없었기에

늘 개인적으로는 결핍을 느꼈고 사회적으로는 놀림의 시선을 느껴왔던 것이다.

 

근데 늘 아버지는 이모의 모습을 곁에 있었다.

무슨 차이인가?

성별의 차이?

 

이게 아이러니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아닐까 싶다.

 

아이의 다른 성장기, 성인으로의 모습, 성정환 수술, 또 아버지 없는 아이를 키우는 아이,

 

영화는 얘기해 볼 거리를 많이 담고 있다.

여성감독의 섬세한 시선, 여성감독의 역사이기도 할 것 같다.

 

반갑고 기대되는 감독이다.

특히나 특이한 성씨가 맘에 든다.

인연이 닿기를 남몰래 바라게 됐당^^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생각을 쏟아내자, 가슴으로 만나고 느끼자.

머리가 참 복잡하다.

많은 생각이 순간순간 스치고 지나가고

어느 땐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덩굴식물처럼 나무를 타고 끝없이 올라간다.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생각하지 않으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불안했던 어린시절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아직도 내 안에서

때론 어쩔 줄 몰라 정처없이 서성이고

때론 무서워서 얼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고

때론 조그리고 앉아 아무말없이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 누구든 큰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사람이나 상황,

씩씩거리는 몸싸움이나 대결의 현장,

아이나 여성이 우는 소리,

노오란 햇살아래 책가방 메고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이,

공원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

미래를 꿈꾸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수강생들의 처진듯한 어깨에서

 

나를 만난다. 생각이 아니라 뭔지 모를 것들이 걸리적거린다.

 

가장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울 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살을 베어줘도 아무렇지도 않을

사랑하는 딸아이에게서

 

나. 를. 느. 낄. 때. 이. 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어린시절에 형성된다는 자존감.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 자존감이 대물림 된다는

무서운 실험결과를 영상자료로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들

 

업보, 지당한 말씀,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모르고 지은 죄,

내 대에서 끊어야 한다, 고백, 엄마가 미안해.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어

마치 선생님처럼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 동생, 오빠들을

보살핀다는

관계지향 중심적인 딸아이가

왜 그리 안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참 고단한 일이고

오히려 더 외로운 길이기도 한데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

가족의 둥지가 불안했던 걸까?

 

어린 몸과 여린 마음하나

정붙일 곳, 비빌 언덕이 없었던 나.  

아무생각없이 그저 누워있을 누군가의 무릎팍,

따스하게 안아주는 품,

온기가 전해지는 쓰다듬,

알콩달콩한 가족의 대화를

간절하게 바랬던 아이.

 

명확히 알진 못했지만

내가 간절히 바랬던 것들

그것들을

딸아이에게 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이란 주제로

마인드 맵을 작업한 아이가

말하고 있는 행복은

온통

가족이다. 엄마 아빠다.

엄마랑 아빠랑 함께 청소하는 것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산책하는 것

엄마랑 같이 그림 그리는 것.

아빠랑 함께 뭐 만드는 것

 

"엄마랑 아빠가 행복한 게 아이에겐 가장 큰 행복이예요.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 딸내미 담임선생님 말씀 -

 

 

참담한 것은 내게 가족은 있었지만 가족관계는 없었기에

나는 가족으로 산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조차 최근에 알게 됐다.  

 

내가 자라난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였다고 하지만

과일 노점을 하는 엄마와

명확한 직업없이 '술과 주정, 폭력'으로 기억되는 아버지,

그리고 딸 셋, 아들 하나의 사남매,

우리를 돌봐줬던 슬픈 미망인 이모.

이런 가족관계에서

가난해도 느끼고 싶었던 정겹고 따스한 가족관계는

오직 내 머리속에, 책속에, 드라마속에,

그리고 교회라는 성령충만한 또다른 세상속에만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딸아이와 부딪혀서 신경전을 벌일 때

나는 엄마인 어른 내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아이가 되어

어린 딸과 맞짱뜨며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도 다 내가 알아서 했는데 너는 뭐야?'

하며 어린 내가 어린 내 딸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어린 딸의 말을, 요구를, want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해 본적이 없어서

딸의 감정도 느낌도 이해하거나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고백을 한다.

 

" 엄마는 어려서 할머니가 장사하셔서 이런 것 다 혼자서 했어. 그리고 솔직히 예현이가 징징거리며 말하면 뭘 원하는 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예현이 마음도 잘 모르겠어. 네가 원하는 것을 자세하게 알려줘. 엄마가 몰라서 그러는 거 많으니까 네가 알려줘. 엄마는 몰라서 못할 때가 많이있어. 그래주면 엄마도 잘 들어보고 얘기해 줄게. 엄마는 사랑하는 딸을 도와주고 싶고 할 수 있으면 들어주고 싶고 그래. 그게 엄마 마음이야. 몰라서 미안해."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성사를 해야 한다. 그럼 아이도 좀 누그러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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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만남속에서

내가 남들에게 보여준 이미지, 모습들은

따뜻하고 밝고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포근하고 인정많고 유머있고 ...

오랜 세월 이렇게 살아온 나는 정말 이게 나인 줄 알고 살았다. 나답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초등학교 그 어느 때

식구들 다 자는 한 밤에 일어나

부모님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울던

그리고

참담한 현실과 그 슬픔은 내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나는 밝은 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던 그 아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운다고 노래하던 캔디처럼 .......ㅎㅎㅎㅎ

 

그렇게 지하실로 보낸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서른 살 후반 소위 중년의 나이에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분노의 폭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몸이 쉬면 마음이 쉬고 마음이 쉬면 영혼이 쉰다 

                                                                           - 상담선생님 말씀-

 

도서관이 나고 내가 도서관이었던 때,

공동체가 나고 내가 공동체였던 때,

커다란 톱니바퀴를 돌리는데 필요한 너트같은 나지만

빠지면 멈출 것 같아 마모가 심각한데도 견뎠던 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딸아이의 아이로서 받아야 할 돌봄의 권리를 운동이란 이름으로 당당하게

구석진 한 쪽으로 밀쳐놓은 나.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생각만 멈추지 않고 돌아갈 뿐이었다.

하여 브레이크를 밟았고 수동으로 정지기어를 넣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곧 도서관은 아니다.

내가 곧 공동체는 아니다.

나는 소모품이 아니다

나는 엄마다

나는 쓸모나 기능이나 역할이 아니다.

나는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머리는 생각으로 과열돼 있었고

가슴은 쓰질 않아 차가운 상태였다.

가슴으로 느낄 것도 머리로 느끼고

뱃속으로 느껴야 할 것도 머리로 느끼는

나는

 

이제야

꽃도 좋고 그림도 좋고 노래도 좋고 춤도 좋고 시도 좋고 책도 좋고

음식도 좋고 뮤지컬도 좋고 영화도 좋고 비도 좋고

아이 얘기를 들을 시간이 있고 아이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

뭘 느끼겠다.

 

몸이 쉬니 마음이 쉬고 마음이 쉬니 영혼이 쉬고 .....그러니 느끼겠다.

 

머리에서 끊이지않는 것들,

마음에서 느끼는 것들

다 쏟아내고 싶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 속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만나고

이젠 어른인 내가 그 아이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보내주면서

새로운 나로 살아갈 힘을 얻기를 소망한다.

 

힘을 회복하면

조국을 위해 아이를 버리겠다는 문구에 붙들려 오열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조국을 살맛나게 하자 고 바꾸어 스스로와 서로를 격려하면서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희망해본다.

 

이 역사의 무게, 고개 돌릴 수 없는 발딛고 있는 현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좀 더 많은 사람이  조금씩 나눠 짊어지고 함께 가면 몇몇의 깊은 슬픔의 중압감은 덜어 내고 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몇 사람의 대표선수가 아니라 각 분야에서 각자가 맡은 일속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아는 것들을 공동선을 기조로 해서 정리해보고 상의해보고 실현방법을 단계별로 구상해 본다면 그리고 전체로  모아내면 그놈의 '대안'이란 게,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의 밑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삶터와 일터에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지혜로운 청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 또한 이상일까? ^^

 

삶이 담고 있는 고통과 행복이 모두 삶의 요소임을 수용하면서

어느 사인가  등뒤에 와 있는 딸내미를 안아주며

어디로 뻗어갈 지 모를 글을 마무리한다.

쏟아내고 들여다보고 만나고 느끼고,

두려움없이 두려움없이 !!!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리~~ 말하고 얘기하리~~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아직도 가야 할 길

 
아직도 가야할 길- (개정판) 본문보기
지은이 M.스캇펙 | 신승철외 옮김
출판사 열음사
별점

 

울 딸 다니는 대안학교 엄마들의 책모임에서 함께 본 책이다.

내 어린시절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책.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

어린이집과 방과후 교사를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강추했다.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아비와 딸

 

공부방 정리에 이어 베란다 식물식구들 집들을 정리하고 있다.

빈집에는 새 식구를 심고 있고

허물어지고 무너져 오늘 내일하면서 힘겹게 연명하고 있는 식구들에겐

비료와 물을 주고 있다 .

딸도 나도 해보겠다고 삽질에 물질을 하고 있다.

아픈 다리로 화원에 가서 몇가지 새식구들을 사오더니

아파트 장서는 날에 꼬마 식물들을 사서 옮겨 심고 있다.

 

좋은 일인데

왜 난 자꾸 할 말이 없어지지.....^^

그동안 구박해 온 몇가지 테마가 없어지고

구박받는 테마는 좀 많아지는 듯....

 

그러나 나는 네가 지난 세월 한 일을 알고 있다. ㅎㅎ

날 서운하게 했던 일들. 이른바 살생부? ^^

 

보기 좋다.

부성애, 아버지의 사랑

많이많이 나누시길

 

내 안의 어린아이가 엄청 부러워하고 있다.

목소리만 좀 부드럽고 안크면 더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텐데....

 

이 때 손가락 세 개가 나를 가르키며

'넌 완벽하니???????  '

 

그래,그런거지 뭐....완벽한 사람이 어디있어?

 

 

ㅠㅠㅠ

뱃속에서 손이 나와 입을 막는 것 같은 느낌,

 

가슴을 베는 단 한번의 사랑을 평생 가슴에 묻은 채 늙어가는 것....

 

사랑에서성행위가 분리되는 느낌, 성해위에서조차 성과 행위가 분리되는 듯한 낯선 감각을느끼며

 

애착이 극대화되는 순간 결락에의 예감으로 몸부림치는 것,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가 싶기도 했다.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자신도 세중도 저마다의 삶을 다 살고 나서, 이번 생에 부과된 사회적 의무나 가정적 책임, 주어진 과업을 가가자 완수한 다음, 한 일년 여쯤 여분의 삶이 허용된다면 생의 가장 마지막 네 계절쯤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성장하는 작가를 따라 독자도 성장해 간다

성에 본문보기
지은이 김형경
출판사 푸른숲
별점

김형경님의 책을 읽고 과정에

내 느낌에 삶의 어떤 비약단계, 업그레이드 지점?

저고리 앞섶을 풀어헤치고 밀려오는 파도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그런 자유로운

성과 죽음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며  인정하고 싶지않은 그러나 직면해야 하는

삶의 비애를 알아가는

그런 단계에 쓴 소설인 것 같다.

 

환상

에로스를 넘어 타나토스의 단계도 넘는

인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기 내면과 삶의 속세상을 해독해 가는

그런 책이다.

 

그  탐구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 한 분수령을 같이 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김형경님의 성실한 내적여정의 과정과 고통의 승화를

또 다른 책으로 기대해본다.

 

삶이  담고 있는 여러면을

음지와 양지를 모두를 통합하는

그 과정을 자신 스스로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겪어내며 느껴가는

성실한 작가에게 박수 ~~~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그 자아~쉭 !! -.-;;

아는 사람이랑(마음이 설레이게 하는 *.* ~~) 길을 가다 아이스크림을 사먹게 됐다.

찰떡같이 쫄깃해서 주걱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신기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줄을 선 앞 사람들에게 가게 직원(알바생 같기도 한데)이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묘기를 부린다는 듯 여러 장난을 치면서 너스레와 호들갑을 떨고 있다( 어, 벌써 감정이 묻어나는데. 워어 --- 워어 ----)

 

기다리고 있는 한 아이에게 주걱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떨어진다며 한참을 늘어질 때까지( 나도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하긴 했다^^) 두기도 하고 과자컵에 담아 주다가 갑자기 거꾸로 돌려주기도 하고 하여튼 상술인지, 나름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고 재밌게 노동시간을 보내려는 자구책일수도 있고.(애쓴다고 생각, 인생은 이런거야 라는 깨달음까지 이 짧은 시간에 하고 있었다)

 

근데 뒤에 서서 이미 한번은 다 본 광경이라 지루함이 슬슬 올라오는데

'그 자아~쉭' 이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는 뭘로 하실래요? " 였나? 흥분돼서 질문 전체는 생각이 안난다.

여하튼 나를 보고 '엄마'라고 했다.

순간 내 느낌은 아주 큰 해머가 내 뒤통수를 내리치는 것 같았고,

무대에서 갑자기 드레스가 확 벗겨져 빨리 무대커튼을 닫아야 하는,

유체이탈이라도 해서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

순간이동이라도 해서 어디 구석 자리에라도 가고 싶은

그것이었다. 꺼이꺼이~~

 

아니, 아직까지는 결혼 안한 노처녀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이거 내 말이 아니라 순전히 들은 거다. 남들한테 - 왜 이리 처절한 느낌이...흑흑)

하필이면 설레이는 사람이랑 있는 자리에서

'아줌마'도 아닌 '엄마'가 뭐냐?

아니, 좀 지나면 지루한 온갖 호들갑을 안스럽고 대견하게 봐주었더니만

고작 돌아오는게 산통을 깨는 듯한 그 말이란 말인가? '엄마!'

 

엄. 마.

그 숭고하게 담아온  낱말이 갑자기 낯설고 약간 밉고 저 한쪽으로 밀어놓고 싶고 그러네.

맘 속으로 '설마 이 사람 엄마처럼 보인다는 얘기는 아니겠지?'하는 아주 엉뚱한 생각까지 (근데 갑자기 혹시 진짜 그 말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반문이 내 뇌리를 스쳐간다. 유성처럼 쉬이익 *---)

 

못들은 척하고 얼렁덜렁 아이스크림을 받아갖고 가던 길을 향했지만

내 시선은 쳐다보지 않고 있지만 내 마음은 이 사람을 살펴보고 내 생각은 온갖 상상을 하고 있다. 흑흑흑 ...슬픈 상상.....

 

오늘 아침

딸내미 학교 가는 길에

"예현아, 엄마 아가씨 같지 않니? "

"아니, 아줌마 같아. 배가 그렇고 머리모양이 아가씨는 긴 생머리야, 그리고 높은 구두 신어.뾰족한 거."

 

침을 꿀꺽 삼켰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 들이는 것이 인생이고

중년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근데 속에서 몇가지 고함소리가 들린다.

- 이것아, 너 뱃속에 품었다 낳고 젖먹이느라 이렇게 됐어!

- 긴 생머리?  누구는 안하고 싶냐? 엄마는 안돼. 곱슬머리 생머리로 펴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돈 엄청 들어. 글구 엄마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긴머리 안 어울릴 것 같아.

- 높은 구두? 엄마 이거 신으면 걸을때마다 뒷골이 울려. 어지러워. 평생 운동화만 신고 살아서 발모양이 free한 걸 어떡하니? 그리고 하이힐인가 이젠 킬힐까지 그거 허리에 안좋다.

 

집에 들어오려고 현관 문을 여니 된장국 냄새가 확 난다.

얼른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는데 한 물음이 올라온다.

 

'염색이라도 할까? '

 

아니 근데 날씨가 갑자기 우중충한 거야.

 

고상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가져서는 안되는, 절대 갖고 있지 않을 듯한

유치한 것 같은 , 세속적인 것 같은, 저급한 물욕같은

그런 것들에 대한 욕망도 다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 수용하는 거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욕구라면

좀 채워주기도 하는거

 

그게 이 나이에 해도 될 일 아닐까?

 

괜찮아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정리의 달인

서방이 어제 내가 공부하러 나간 사이 딸내미 학교 데려다주고 종일 집에 있으면서 소위 책방, 공부방인 내 방 (반발이 많지만)을 정리해 놨다.

중요한 것은 내 물건을 버리지 않고(아, 이 점도 좀 의심이 간다. 말로는 안버렸다고. 찾는 것 말만 하라고. 찾아준다고 하는데 한 번 재활용버리는데 가봐야겠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보이는게 있는듯하다 ^^ )

 

서방이 몇번  80살 할아버지 수준인 내 노트북에 써보더니 자기도 질렸는 지 인수해주려고 하던 가게 컴퓨터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이제 10년 된 책상딸린 책장을 버리자고 했다.(이거 내가 다 버렸다. 반깁스를 하고 있는 서방은 목발을 집고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주는 그나마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 내가 헌 책장을 들고 나가자 수위아저씨가 받으시려고 하셨다. 백발이 성성하시고 내 반만한 몸집이시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멈추지 않고 재활용장에 갖다 놨다. 근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것일까, 냉장고도 들어볼까? ^^ )

 

그리고 내가 아직 못하는 인터넷뱅킹으로 책상과 모니터를 주문하더니 나더러 방을 치워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좀 계획을 세워서 치우겠다고 했는데 어제 후다닥 정리를 해놨다.

 

자잘한 짐( 못버리는 천조각, 여러 미술재료, 책만큼 있는 도서목록, 딸내미 장난감, 못버리고 있는 가방들...)이 많아 사진으로는 아주 산뚯하게  깔끔한 것 같지 않지만 여하튼 불편한 몸에 애썼다. 눈이 환하다. 딸도 괜찮은 지 한켠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물론 지우개가루를 손수 치우셔야 하는 엄한 아버지의 힘들어간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나보다는 확실히 정리는 잘하는 것 같다.

아, 나는 분류의 개념이 부족한 것일까?

사실 솔직히 어디 정리 잘하는 법 강좌라도 있으면 듣고 싶었던 게 오래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정리정돈의 생명은 제자리에 두는 것.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거 뭘 쓰지도 말고 건드리지 말고 뱀처럼 옷만 입고 벗고 나가야 하는 마치 '얼음땡' 놀이 같은 경우다. 누구를 위한, 뭘 위한 정리정돈이란 말인가!)

 

그러나 아이 키우는 집에서 그것 쉽지 않고

엄마와 아빠가 정신없이 바쁜 맞벌이(벌이가 시원찮았으니 '맞일'이라고 하자) 인 집은 금방 나눔장터 되기 십상이다.

(어째 온톤 합리화와 변명으로 덧칠되는 느낌이다.흑)

 

여하튼 정리정돈된 말끔한 방을 보니 웬지 글도 잘 써질것 같고 공부도 잘 될 것 같고

책도 잘 읽힐 것 같고 한마디로 좋다.

애썼다. 서방.

 

당신을 정리의 달인(이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이 올라온다. 계속 정리를 해야 이 칭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타협점은 급수로....ㅎㅎ) 3급으로 임명합니다.

 

그 뒤에 자신의 근력을 뛰어넘는 초인의 힘으로 오래된 가구를 약 100미터 가량 옮기신 어부인을  천하장사 어부인 2급 자격을 드립니다. 부탁말씀을  가급적 힘자랑은 마십시오. 도서관 하면서 8000권 책을 이리저리 옮겼다가 들었다가 놨다가 끌었다가 하다가 사지 인대가 늘어나 침맞는 고생 하셨던 것 잊지 마시고.

'힘자랑 하면 개고생이다.'

 

정말 집안살림 하면 잘할 것 같기도 하다. 서방.

요리도 생선요리를 두려움 없이 맛나게 하는 걸 보면 더 그렇다.

이 참에 요리사가 돼 보라고 해볼까?

 

내가 정리된 방에서 컴을 쓰고 있느니 서방이  

"내 방 잘 사용해죠. 뒷정리 잘하고"  한다.

내방이라니? 울컥해서

"애는 썼지만 이거 다 들고 내 방에서 나가줘. 나 노트북 쓸래"  했다.

 

아니 청소하고 정리한 것은 고맙지만 이게 웬  점령군?

 

이 때 딸아이 하는 말

"여기 원래 내방이었으니까 엄마 아빠 다 짐 갖고 나가!"

 

.........................

.........................

 

ㅎㅎ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화장대 사수 투쟁기

얼마전 아파트를 돌다가 멀쩡한 것 같아서 주워온 조그만 컴퓨터 책상이다.

근데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서쉬기 시작한 남편이 이걸 버렸다.

이거 닦느라고 1시간은 족히 투자했는뎅.

그래서 가게 뒷정리를 하는 틈을 타서 얼른 주워와서 작업을 했다.

화장대로 쓰려고.......흑흑

화장대가 없어서 맨날 화장실 거울이나 내 얼굴보다도 작은 거울에 내 얼굴을 맞춰보는

불편을 감수해왔다.  

 

바로 아래 보라여인은 웬 엽서에 있는 그림을 그저 연습삼아 그려봤는데 연필로 그린 것이랑 느낌이 다르다. 하여튼 보라색으로 안정감을 주는 느낌을 주려했는데....

 

 

그 아래 노랑바탕의 붉은 여인은 구스타프 클림프의 아담과 이브인가 하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는 그림을 보고 그렸다. 붉은 색을 써서 느낌이 다르다. 체모를 가려야되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 그냥 뒀다.

(각 그림마다 글을 달아야 하는데 잘 안되네. 기술부족 -.-)

 

 

2009년 6월 9일 화요일

모기때문에....

결국 모기때문에

잠을 못자고

이렇게 귀신처럼

새벽 2시 반부터

잠을 못자고 있는 건

결국 나다.

서방이 시작한

모기잡기

딸내미랑 셋이 같이 자기에

모기로부터 딸을 보호하겠다는 듯한

그의 태도에

모른척하는 모진 에미 안될라고

시린 눈을 비비며

흐린 촛점을 맞추며

벽을 천정을

가재도구와

옷가지들을

살펴보았고

먼저 가신 것들의

흔적과

우리가 찾는 살아있는

그것을

잘 구별하려고

온통 집중에 집중을 하여

결국

두 마리 잡는데 성공은 했지만

"아직 몇 마리 더 있는 것 같아"

하는 서방 말에

염증나서 반 깁스하고 있는

쉬고 있는

서방이기에

모기가 다시 움직이길

기다리며

집중해서 읽어야하는 김형경님의 소설을 두 챕터나

읽어내며

그것들의 비행을 기다리건만

 

들리는 것은

일을 부추긴

서방의

코고는 소리

 

결국

맘 약한

이 여인

인천의 잠 못드는 밤

컴을 켜고

뭔지 모를

배신감과

미움을

삭이며

 

여기 앉아 있다.

 

자야한다.

 

4시다.

 

이불 걷어 차기 명수

딸내미 땜시

다시 들어가서

살펴주고

 

자야한다.

잘거야.

 

아,오늘은

새벽에

국선도에

가려고

했지.

 

1시간 30분 남았는데

어쩌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