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린저가 이 책을 쓴게
마흔 되던 해였다네
이 책, 위로가 되면
좋겠다
누나의 존재 그대로,
지금 이대로
내겐 정말 소중해.
있던 자리,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자리에 얽매이지 말고
누나 길을 가'
2009. 겨울. **
백만분의 일 영혼이 통한다고 해왔던 후배가 저녁에 술한잔 하자고 해서 나갔더니 읽어보라고 책을 줬다.
루이제린저. 생의 한가운데인가로 나왔던 책 같은데 봤는지 안봤는지 가물가물. 여하튼 북한방문기로 남쪽에 소개되었고 그 책을 통해 루이제린저라는 여성을 알게되었다. 그 사람이 마흔살에 썼다는 책. 어떨까? 1950년에 나온책이니 엄청 오래된 책이다. 2009년을 맞이하는 내게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 사람들은 나이 삼십에 늙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멋진 일이다. 사람들은 실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를 알게된다. 지성과 철학적 혜안을 통해 큰 자유에 도달한다.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럴 경우 맥없는 고양이일 뿐이다. 고통과 격정에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을 수도 없다. 죽는다는 것은 마지막 헌신이기 때문이다. ' -ㅡ루이제 린저
뜨거운 여인인 것 같다. 주름졌지만 지성과 열정이 담긴 눈빛과 자신감있는 입매가 멋지다. 나도 멋지게 늙고 싶다.
책을 준 울 후배, 얼마전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 생태운동을 준비하고 있고, 몇 달 전 돌이 지난 둘째아들이 있고... 얼굴이 핼쓱해졌다.
얘를 만난 것은 12년 전 내가 28살때 재야단체 상근자로 있을 때였다. 다른 상근자들에 비해 맘 약하고 큰소리 잘 못내는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냈다. 인천에서 젤 공부잘했던 얘는 서울대 가서 부모님께 효도는 했다. 머리가 좋아서 맨날 강의때나 술자리에서 졸았는데 신기하게도 질문하면 제대로 된 답을 하곤 했다. 그때 우리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하나로 참 젊고 천진했다. 상근비가 거의 없었던 힘든 재야단체라 세차를 하거나 과외를 하거나 나름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 이 녀석은 다행히 과외를 했다. 그 덕에 오토바이가 있었다. 아마 내가 젤 많이 탔을 거라고 그러네.
어느 날 내가 턱하니 고무욕조를 샀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사는게 힘들었는지 푹 담그는 그런 욕조를 원했나 보다. 자취집이 춥기도 했고. 긴 타원형 빨간색 고무욕조. 주로 집안 김장할때 볼 수 있는 것이다. 근데 그걸 내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데 운반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은 내가 머리에 욕조를 뒤집어 쓰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는 것이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지만 집까지 무사히 그 큰 욕조를 운반할 수 있었다. ( 그거 사서 2번인가 밖에 푹 담그는 목욕 못했당. 뜨거운 물이 장난 아니게 많이 들고 집이 추워 금방 식고... 물 아까워서 밀린 빨래까지 다 해야 했으니 쉬는게 쉬는게 아니라서...)
부탁하는 나나, 동의해서 감행했던 걔나 참....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월간잡지, 지역신문, 동네신문, 시민운동.. 그리고 중간에 직장생활.. 참 열심히 그리고 때론 다른 길도 길 가본 녀석인데 나는 늘 내 옆에 같이 있었다고 느끼고 살았다. 나 사는라고 무심했던 것도 있지만 애가 워낙 착해서 어딜가든 좋은 사람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첨으로 멈춰서서 쉬고 생각하고 돌아보는 내게 책 속에 적어 내민 글귀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몇순배 술이 돌기 시작하고 얼마있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녀석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병간호 하느라 맘의 여유가 없을 후배가 이리 챙겨주니 참 고맙다.
생태모임이든 환경단체든 만들면 1호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던 누나의 약속 지키마.
2009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정했다니 정말 기쁘다. 정말.
게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임까지 하고 있으니 기대가 되고.
아버지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모시길 바래. 누나도 기도할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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