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31일 토요일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중에서

"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박경리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나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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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지고 왔던 것, 목숨처럼 존재의미처럼 생각해 왔던 것들을 털어버리려고 하니

왜 자꾸 이런 제목들이 내 시선을 머물게 하는 지 나도 모르겠당.

정말 호랑이처럼 혹은 산맥처럼 묵직한 느낌을 주었던 토지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시집이 나와

도서관에서 곧장 신청하고 토지도 구입했다.

왜 자꾸 한 시대를 헤쳐나간 여성들에 대해 눈길과 맘길이 가는 지

이 또한 투사요, 여성으로서의 삶이 내 삶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너무나 강렬한 동료애, 동지애 때문일까.

선생님의 시중 마음에 와 닿는 시 두어 편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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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갈대 꺾어 지붕 얹고

새들과 함께 살고 싶어

수만 리  장천

작은 날개 하나로 날아온 철새들

 

보리 심고 밀 심어서

새들과 나누며 살고싶어

수많은 준령 넘어 넘어

어미와 새끼가 날아 앉는 강가

 

밀렵꾼 손목 부러트리고

새들 지켜 주며 살고 싶어

전선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물 한모금 밀알 하나 꿈꾸는 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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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갖고 있던 시집을 모교 대학도서관과 현 어린이도서관에 죄다 기증해서 없다. 시집도 간간히 읽어야 겠당.

하늘을 통째로 들어 날으는 듯이 고요하게 나는 높은 곳의 매처럼

언덕 위 길쭉하니 높이 앉아 숨막히는 긴장과 고고함을 자아내는  솟대의  새처럼

 

시는 모가지를 길쭉하게 들이빼고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관조의 세계, 정신의 세계로, 고독의 세계로 날 안내한다.

수 많은 말보다

절제된 단어, 속도, 음률을 통한 수 많은 무언의 말들이 그 속에 있다.

 

특히나 이 시집속에 있는 김덕용님의 그림은 볼수록 편하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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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그친 뒤

또랑의 물 흐르는 소리 가늘어지고

달은 소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데

어쩌자고 풀벌레는 저리 울어 쌓는가

저승으로 간 넋들을 불러내노라

쉬지 않고 구슬피 울어 쌓는가

 

그도 생명을 받았으니 우는 것일 게다

짝을 부르노라 울고

새끼들 안부 묻노라 울고

병들어서 괴로워하며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죽음의 예감, 못다한 한 때문에 울고

다 넋이 있어서 우는 것일 게다

울고 있기에 넋이 있는 것일 게다

 

사람아 사람아

제일 큰 은총 받고도

가장 죄가 많은 사람아

오늘도 어느 골짜기에서

떼죽음 당하는 생명들의 아우성

들려오는듯......

 

먹을 만큼 먹으면 되는 것을

비축을 좀 한들, 그것쯤이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지혜로 치자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탐욕

하여

가엾은 넋들은 지상에 넘쳐 흐르고

넋들의 통곡이 구천을 메우나니

2009년 1월 30일 금요일

93년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문을 볼때마다   

 

나는 온 몸이 바늘이고 싶다.

신문 구석구석 조각기사 속에서

저들의 심장을 푹 쑤실 편린을 찾아

바늘로 갈고 칼로 녹이고 싶다.

나는 내 온몸의 세포가 고슴도치처럼 돋치고 싶다.

 

 

후배가 후배를 위해 눈물 흘릴 때

 

나는 운동할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후배가 운다.

비겁하게 나만 빠져 나왔다고

후배가 운다

나도 그런적 있다고 위로랍시고

후배를 위로한다

 

가끔은 못난 모습도 보여줘야 하나보다.

인간적인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작은 실수에 넘어지지 않도록

절망하지 않게

 

후배가 운다.

자기 후배가 잡혔다고

자기는 비겁하게 여기 있다고.

그 눈물은 반드시 투쟁의 칼날이 되고

후배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로 빛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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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엄하고 살벌한 시인지 낙서인지 하는 글은

는 오래된 일기장에 있었다.

이토록 비장함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았나보다. 나.

근데 좀 무섭다. 나.

 

2009년 1월 29일 목요일

딸내미 뱃속에 있을 때 그린 울엄마, 울아빠

 

 

단체활동하느라 변변한 태교를 해 줄 수는 없었고

그저 연필 갖고 그적그적이는 그림그리기 정도밖에

 

2001년 4월이면 임신 3개월때. 첫애 유산되고 곧바로 들어선 아기라

3개월 특별휴가를 받아 친정집에 있었던 때구나.

 

아, 4월 봄볕이 환하게 들이치는 거실에서

이리도 평화로운 시간이 있구나. 조용하고 넓은 집,

부족함 없는 집. 평범한 우리 집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데

아주 잘사는 사람들, 걱정없는 사람들.
"지금 이대로!!" 하며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 어쩜 당연하지 않을까?

 

늘 긴장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일의 시작과 마무리가 확실하지 않은

이 세상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허덕이며 부족한 힘으로 쫓아가고

앞장서 가고 하느라 분주했던 나날들에

 

노란 금가루빛

환한 봄햇볕이 주는

평화로움에 유혹될까

미리 조마조마했었던 그 마음

 

이젠 말하리라.

괜찮아, 봄햇볕 마음껏 쐬고

이런 평화로움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네가 가져도 괜찮아

하느님 보시기에 좋고

우리들도 좋아

사람이라 좋은 거야.

괜찮아

느끼고

즐겨

가슴가득히 채워도 돼

 

이제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

그리고 먼저 가신 아버지를 가슴아프도록 그리워하시는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잘 돌봐드려야겠다.

이번 설에는 시간이 안돼서 시댁만 가고 친정은 못갔는데

광주에서 올라오던 새벽3시. 엄마가 전화를 했다.

잠이 안온다고. 어쩜 그리 먼저 갔냐고. 어찌 두고 갔을까, 보고싶어서.... 울먹인다.

아마 언니네 여동생네, 남동생네 식구들이 벅적벅적 대다가

썰물처럼 쏴아아 하고 사라지고 나서

그 헛헛함을 견디지 못해

남도에서 올라오는 둘째딸에게 그 시간에 전화를 하신게지.

간단히 끝냈지만 한참 운 울음이 목소리에 젖어 있었다.

 

엄마 힘내세요.사랑해

2009년 1월 26일 월요일

이곳, 텍스트큐브라는 곳

우연한 기회로 이곳 텍스트큐브닷컴 블로그에 입주했다

 

메일도 매일매일 열어보기 벅차했던 아날로그 중 상 아날로그인 내가

콩기부 모으기의 압력땜시도 그랬지만 어찌어찌하다가 네이버블로그를 시작했다.

물론 다음블로그도 있었지만 그건 그냥 만들기 연습을 한 것이고.

세상을 좀 더 진보적으로 만들어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에

혹시나 나 땜시 진보의 시계가 조금이라도 늦어질까봐 마지못해

블로그의 세상으로 한 발을 담갔다

 

정리되지 않는 내 생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 개념들,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한 세상, 사건들

어지러웠지만 신경 많이 안쓰고

그저 눈으로 바라보고

그저 있었던 일(여력되면 사진 첨부- 다행히 동료들이 찍어놓은 것 있으면 겨우 그림저장 기능사용해서)

되는 만큼 적어보고

누가 왔다갔다고 해도

별 큰 기대없이 누구야? 하면서 쓰윽 보고 오고

 

이상하리만치 이 인터넷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과 목적의식을 갖지 않았다.

아마 얼굴도 몰라요 성도 몰라~~~(아이디는 나와있지만 별명이야 뭐)

여하튼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지 않으니

가는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자 식으로

왔다 간사람 그러려니 하고

흔적 남기고 간 사람 누구거니 하고

주로는 자료보관용(아이의 사진, 그림 모으기, 추억의 동영상 모으놓기 등) 기능을 중심으로

느리게 느리게 블로그를 해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몇사람이 들어왔네, 안부글을 남겼네, 댓글이 달려있네

하면서 조금씩 쌍방향이 주는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고

왜 요즘 글 안쓰고 퍼오기만 하느냐는 보이지 않는 독자들이 생기면서

블로그의 맛을 느껴가고 있다.

 

네이버블로그를 통한 무수한 사람들과의 만남

다양함에 대한 호기심, 기대, 놀라움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견결히(?) 살아왔나 돌아보기도 하고

차디찬, 덥디더운 현실 광장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그 무수한 사람들이

이 가상의 광장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는 것도 느끼고 ...

마치 지상의 세계가 있고 지하의 세계가 있는 듯

아침의 세상이 있고 밤의 세상이 있는 듯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그런데 이 곳, 텍스트큐브라는 곳

글쎄, 내가 이사떡을 안 돌려서인지 몰라도

아님,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절대 부족해서 인지 몰라도

'잠만 잘 분'의 느낌이고

뭔가 나 빼고 다들 요 인터넷의 세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런 낯선 느낌이다.

초대장을 발부하는 그런 곳이라 그런가?

 

이웃집들을 들여다보면

뭔 말인지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알아듣는 상태(주로 컴퓨터 관련 용어겠지)

한때는 나도 못알아듣는 말이 거의 없었는데... (초등학교 때까지?, 중학교때까지였나? ^^ )

공부는 너무 안하고 사람들 만나 술만 너무 마셨남?

 

여하튼

이곳은

포탈의 유동인구 엄청 많은 시끄러운 동네가 아닌가 그런지

웬지 일찍 가로등도 꺼지는 신도시의 새 아파트 같다.

이웃도 잘 모르고

알기도 좀 쑥스럽고

다들 열심히 알아서들 잘 살아가는

컴퓨터만 있으면 그럭저럭 충분히 살 수 있는

여하튼 그런 곳 같다.  

 

 왜 설날부터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시어머니는 내가 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줄 아시는지

곱게 과일까지 깎아서 접시에 담아 주신다.

"아야, 먹으면서 해라잉~~"

 

여하튼 싱거운 생각

그러나 늘 들었던 느낌이당 ...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5시간 걸린 기적의 귀성길, 문제는 귀경길

결혼하고 나서 다녀본  설귀성길 중 최악의 교통대란인 것 같다.

해마다 자가용을 타고 인천에서, 혹은 친정집인 서울에서 전남 광주 시댁을 향해

많게는 18시간, 적게는 4시간 정도 귀성을 올랐다.

 

올해는 흰눈 펑펑 오고 꽁꽁 어는 강추위가 연휴내내 있다는 강력한  설이다.

그런데 진짜 귀성길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진입을 금지하는 움직임에 평균 15시간

걸린다고 하고 도로가 온통 붉은 정지의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에고 기름값이 얼마냐.....

어제 낮 3시인가 청주로 떠난 선배네 가족은 12시간이 지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단다. 헥

나도 언젠가 귀경길 18시간을 어린 딸과 차에 갇혀 도로에 멈춰 있던 기억이 있다.

정말 비효율, 무료함, 막막함, 답답함의 극치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는(밝혀내려면 또 있을 수도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런 경험을 한 뜻있는 자리였다.

다시는 하고 싶지는 않지만 ^^

 

그런데 어째 올 설이 그럴 것 같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가용이 없어지는 상황이 생겨

우리 세식구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를 향했다.

새벽 5시 30분 상봉터미날에서 광주로 출발

그런데 이게 웬일

10시 30분 광주터미날 도착

꿈인가, 생시인가

한참 자고 났더니만 광주

한국의 차들이 온통 서해안고속도로와 경부선에 줄을 대고 있을때

중부고속도로는 대체로 선선하게 차들이 빠졌다.

이른 바 틈새일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네요?" 신랑이 신기한 듯 기분좋은 듯 물으니

" 9시간 빨리 왔네요" 하시며 운전기사 아저씨도 기분 좋은 듯 대답하신다.

게다가 택시운전하시는 시아버님이 터미날로 모시러 오셨당. 물론 손녀딸 너무 보고싶어

달려오셨겠지. 손녀딸이 좀  할아버지께 인사도 잘하고 살살살 애교를 부려면 좋겠구만 역시나

뚱하거나 쌩하다. 에구에구 이눔의 딸, 무정하고 무표정은 애비를 닮았어라....

 

새벽에 출발하면서

마음 비우고 여행하듯, 책이랑 음악이랑 실컷듣는 예약석이라고 생각하자, 웃으며 마음 달랬는데

이렇게 금방와서 막내도련님 컴으로 글을 쓰고 있네

 

울 시어머님 오늘도 식당 일 나가시면서 나물 좋아하는 며느리위해 점심 밥상에 각종 나물 가득, 시원한 매생이 국 한 사발, 어젯밤 내내 하셨을 각종 전들을 차려놓으셨네. 가슴찡한 점심 밥상. 어쩐일로 둘째도련님이 차려주시고 (장가 가려고 철이 난 것일까?)

 

좀 이따가 설 차례상에 올릴 과일이랑 등등 장보러 가고 낼 완도 큰 댁에는 눈이 많이 와서 갈 수 있으려나 어쩌려나....

 

문제는 귀경길. 27일 밤 고속버스인데 모두들 한길로 몰려들텐데..

다시 마음 비우고 책읽고 음악듣고 자고 그러면서 가야지.

내 힘으로 안되는 시간들. 세상들. 기쁘게 받아들이기

 

그래도 눈이 온 설은 아름답다. 정말 설 같다. 달력에 나오는 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사랑합니다. 저를 아는 여러분, 여러분을 아는 저

행복합니다.

 

2009년도 마음 비우시고 행복 가득 채우세요

 

광주에서 멋진 윤희가~~

2009년 1월 24일 토요일

새해맞이 책 선물 - 삶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린저가 이 책을 쓴게

마흔 되던 해였다네

이 책, 위로가 되면

좋겠다

누나의 존재 그대로,

지금 이대로

내겐 정말 소중해.

있던 자리,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자리에 얽매이지 말고

누나 길을 가'

                                                         2009. 겨울. **

 

 

백만분의 일 영혼이 통한다고 해왔던 후배가 저녁에 술한잔 하자고 해서 나갔더니 읽어보라고 책을 줬다.

루이제린저. 생의 한가운데인가로 나왔던 책 같은데 봤는지 안봤는지 가물가물. 여하튼 북한방문기로 남쪽에 소개되었고 그 책을 통해 루이제린저라는 여성을 알게되었다. 그 사람이 마흔살에 썼다는 책. 어떨까? 1950년에 나온책이니 엄청 오래된 책이다. 2009년을 맞이하는 내게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 사람들은 나이 삼십에 늙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멋진 일이다. 사람들은 실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를 알게된다. 지성과 철학적 혜안을 통해 큰 자유에 도달한다.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럴 경우 맥없는 고양이일 뿐이다. 고통과 격정에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을 수도 없다. 죽는다는 것은 마지막 헌신이기 때문이다. '  -ㅡ루이제 린저

 

뜨거운 여인인 것 같다. 주름졌지만 지성과 열정이 담긴 눈빛과 자신감있는 입매가 멋지다. 나도 멋지게 늙고 싶다.

 

 

책을 준 울 후배, 얼마전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 생태운동을 준비하고 있고, 몇 달 전 돌이 지난 둘째아들이 있고... 얼굴이 핼쓱해졌다.

 

얘를 만난 것은 12년 전 내가 28살때 재야단체 상근자로 있을 때였다. 다른 상근자들에 비해 맘 약하고 큰소리 잘 못내는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냈다. 인천에서 젤 공부잘했던 얘는 서울대 가서 부모님께 효도는 했다. 머리가 좋아서  맨날 강의때나 술자리에서 졸았는데 신기하게도 질문하면 제대로 된 답을 하곤 했다.  그때 우리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하나로 참 젊고 천진했다. 상근비가 거의 없었던 힘든 재야단체라 세차를 하거나 과외를 하거나 나름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 이 녀석은 다행히 과외를 했다. 그 덕에 오토바이가 있었다. 아마 내가 젤 많이 탔을 거라고 그러네.

 

어느 날 내가 턱하니 고무욕조를 샀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사는게 힘들었는지 푹 담그는 그런 욕조를 원했나 보다. 자취집이 춥기도 했고. 긴 타원형 빨간색 고무욕조. 주로  집안 김장할때 볼 수 있는 것이다. 근데 그걸 내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데 운반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은 내가 머리에 욕조를 뒤집어 쓰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는 것이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지만 집까지 무사히 그 큰 욕조를 운반할 수 있었다. ( 그거 사서 2번인가 밖에 푹 담그는 목욕 못했당. 뜨거운 물이 장난 아니게 많이 들고 집이 추워 금방 식고... 물 아까워서 밀린 빨래까지 다 해야 했으니 쉬는게 쉬는게 아니라서...)

부탁하는 나나, 동의해서 감행했던 걔나 참....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월간잡지, 지역신문, 동네신문, 시민운동.. 그리고 중간에 직장생활.. 참 열심히 그리고 때론 다른 길도 길 가본 녀석인데 나는 늘 내 옆에 같이 있었다고 느끼고 살았다. 나 사는라고 무심했던 것도 있지만 애가 워낙 착해서 어딜가든 좋은 사람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첨으로 멈춰서서 쉬고 생각하고 돌아보는 내게 책 속에 적어 내민 글귀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몇순배 술이 돌기 시작하고 얼마있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녀석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병간호 하느라 맘의 여유가 없을 후배가 이리 챙겨주니 참 고맙다.

 

생태모임이든 환경단체든 만들면 1호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던 누나의 약속 지키마.

2009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정했다니 정말 기쁘다. 정말.

게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임까지 하고 있으니 기대가 되고.

아버지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모시길 바래. 누나도 기도할게. 고맙다.

 

2009년 1월 16일 금요일

미친년 글쓰기...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나온 말이 바로 미친년 글쓰기이다.

물론 어감은 안좋지만 참 중요한 말이다.

미치지 않기 위해, 병들지 않으려 예방차원에서, 

어딘가 미쳐있고 병들어 있는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

거침없이 물 흐르듯 그저 써 내려가라를 것이다.

 

이어서 읽고 있는 책은 <치유의 글쓰기> 이다 셰퍼드 코미나스가 지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힘

마음속 밑바닥까지 내려가 남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라

 

뭔가 마구 쓰고 싶기는 한데

벌써 자판에 익숙해진 내 손가락과 손바닥은 펜을 쥐기 힘들어한다.

공책 10권을 구입해놓고 막상 자리에 앉지를 못하고 컴퓨터 앞에만 앉게 되네

 

여하튼 하루 20분씩 그저 손이 가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재지 않고 남들 눈치보지 않고

써 내려가면 만나게 되고 알게 된다고 하니 해보긴 해봐야 하는뎅...

 

* 치유의 글쓰기를 위한 열가지 실천목록

 

- 나 자신과 화해를 시작하라

 

- 몸을 위한 양식과 함께 마음을 위한 양식을 준비하라

 

- 여행을 통해 삶의 새로운 자양분을 축적하라

 

- 미리 쓰는 유언편지를 통해 자기가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라

 

-'아직은 아니야'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목록을 작성하라

 

- 지난밤에 꾸었던 꿈의 내용을 글로 옮겨 보라

 

- 자신만의 그림으로  내 안의 창조성을 해방시켜라

 

- 몸과 마음, 영혼에 재미를 줄 수 있는 인생의 놀이목록을 짜보라

 

- 명상하고 기도하라, 그리고 영혼의 목소리를 들어라

 

- 행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적어보라

 

 

구정(민속의 날)전에 내 꿈이 이루어지려나?

내가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의 신년회 문화행사를 준비하느라 저녁에 이리 늦게 들어오고 있다

지금 새벽 2시

이번주 월요일에  연락받아서리 화요일 첨 연습나가고  수요일, 오늘 세번째인데 총리허설이었당

사실 난 올해 공동체 활동을 쉬는 안식년을 선포했당

그래서 공연섭외를 사양했다

그런데 신랑이 공연연습중 다리가 안좋아져서 내가 다시 섭외되었고 연출을 맡은 후배가 선배한테 내가 말을 안듣는다고 해서 선배가 "안식년은 좀 멋있게 마무리하고 쉬어랑" 하시는 바람에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거절못하는 내가 하게 되었당

올해 우리 공동체의 화두는 변화, 전환, 그리고 희망 .

뭐 그런 것이다

내가 맡은 것은 고고 70의 데블스와 함께 하는 와일드 걸즈 이다. 이 파트는 다 40세 이상의 아저씨 아줌마가 역을 맡았다.

우리가 누구? .....위아 데블스... 우리가 누구?....

 

영화봐두길 잘했당. 갑자기 섭외되었는데 그래도 영화를 봐둬서 필이 있지.

반은 벗은 와일드  걸스의 의상은 재봉틀과 반짝이, 구슬로 만들어졌다. 웃도리, 머리밴드, 치마 까지

다 출연진 손수 만들었당. 아, 대단한 창작력과 생활력!!

 

영화를 보며 안무를 준비하고 연습을 했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주문이  내려왔당

데블스팀이 파이널 라스트 무대를 축하공연했으면.... 맘마미아로 부탁!!

 

말이 쉽지 와일드 걸스도 반쯤 벗은 촌티나도록 화려한 옷으로 춤을 추는 역할인데

이제 맘마미아까지?

물론 맘마미아 보면서 가슴터질듯한 그런 감정은 느꼈지만 그래도 진짜 할 줄은 몰랐는뎅...

 

연륜많은 왕고참언니가 안무를 짜시고  연습했당.

총 리허설장소는 엄청시리 추웠당. 반쯤 안입은 우리들은 덜덜떨며 그냥 자신을 던져 열심히 총리허설을 했당.

 

아, 나이를 느낀다. 긴장감도 긴장감이지만 무릎도 아프고 가슴이 타 들어갈 듯 힘들었다.

하지만 그 feel, passion 은 넘 좋다

맘마미아 보면서 감독님 만나보고 싶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골목을 동네를 누비고, 아픈 사랑하는 첫사랑과의 운명적인 만남도 절벽같은 곳에서

했당. 내가 다녔던 뮤지컬 영화...ㅎㅎ

 

맛보기지만 아, 어쨌든 큰 무대는 아니지만 올해 하는 구나.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더니, 이경우를 일컫는걸까? ㅎㅎ 아니다. 그러나 참 좋다. 맘마미아는 참 좋은 영화이고 여성들이 더욱 좋아하는 영화이다.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생각보다 꿈이 금방 이루어지네?

 

데블스 허리아픈 40초반 중반의 오빠들과 낼 연습하기로 했당.

 

근데 신기한 것은 다들 참 좋아한다는 것이다. 힘들지만, 참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 노래를 부른다는것, 기타를 친다는것, 춤을 춘다는 것,

잘하려고 하면 부담 만빵이지만 즐기고 느끼려 한다면

정말 열정을 기쁨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권리이자, 인간의 아름다움이리라.

 

낼 하루밖에 안 남았당.

즐겁게 해야징.

이게 다 초석이 될게야

 

박찬욱 감독이나

김민기씨나

송승환이

 

나에게 메일을 보낼날이 멀지 않았기에

하루하루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되지.... ㅎㅎ

 

* 술이 과했다. 뒤풀이 술이.. 그러나 취중진담. 난 기다리고 있당 사실.

그들은 날 기억 못하지만 난 그들을 기억하는데...... ㅎㅎ

 

얼른 자고 낼 연습 열심히 하자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6번유형에 대해 -1

2009년 첫 상담에서 선생님이 공격형 6번유형을 다시 잘 들여다보라고 하셨다.

두려움이 너무 많아 공포감에 휩싸여 공격하거나 반항하거나 저항하는 유형이 방어적인 6유형과

다른 공격형 6유형이다.

 

흑, 내가 젤 싫어하는 불쌍한 유형인 6유형에 닻을 내려야 하다니...

젤 싫어하는 유형이 자기라고 하더니만 에니어그램 지도자 과정을 먼저 한 사람들도

집단상담이나 개인상담으로 통해 새로운 자기 유형을  발견해가면서  놀라고 있다.

물론 사람은 9가지 유형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번째 6 유형에 대해 책을 보고 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한구절한구절이 새롭다

 

난 주로 쾌활한 성격과 나서는 역할, 그리고 좀 독특한 표현과 취향땜시 주변 사람들이 7번이나 4번일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건 내 성격유형의 한쪽 날개였거나 사회적 교육과 책임에 의한 역할이었던 것 같다.

 

6번은 The royalist  - 충실한 사람 이다.

보호하는 사람, 신봉자, 의심이 많은 사람, 분쟁을 조정하는 사람, 전통주의자, 충성스러운 사람

 

* 기본적인 두려움: 지원과 안내를 받지 못하는 것, 자기 혼자서 생존 할 수 없는 것

* 기본적인 욕망: 안전과 지원을 찾는 것

* 수퍼에고 메시지: "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한다면 너는 좋고 괜찮다"

 

♦ 충실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유형: 책임감 있고 의심과 불안이 많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 대체로 맞는 것 같다. 근데 의심이 많다는 것은 좀 거북스러웠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것도 같다. 호감을 주는 것도 6번이구나....

 

♦ 모든 성격유형 중에 6번유형이 친구나 자기가 믿는 신념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 이상, 체제, 신념등에도 충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신념은 반항적이고 체제에 반대되는 것이거나, 심지어 혁명적일 수도 있다. 자기자신보다 자신의 지역사회나 가족을 보호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

 

- 그래. 힘든 유년시절부터 날 지켜왔고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고 교회였지. 머리가 커가면서 뒷쪽 설명이 바로 내가 되었던 것 같네. 예수님 말씀중에 '인자가 머리둘 곳이 없다"는 말씀이 오랫동안 남았고 웬지 공감이 갔고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찌 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라고 생각했다. 또 성경구절에 예수님을 따르려면 집과 처와 자식을 버리라는 말씀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내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예수처럼 사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사람은 자기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했다. 성경말씀에 있었으니까 더욱 위로와 용기가 되었던 것 같다.

 

♦ 6번유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충실한 이유는? 끔찍하다.불쌍하다.흑흑

 

- 자신이 버려져서 다른 사람의 지원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두려움.

 

♦ 6번 유형의  주요문제 : 자신감의 상실 (삶의 도전을 헤쳐 나갈 내면의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느낌)  그래서 조직, 자기편, 신념에 의존하고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 그래서 내가 뭔가 구체적인 것들은 직접하기를 두려워하고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려고 했던가? 그토록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가? 사실 할 수있는 힘과 지식이 있긴 있는데.... 선후배들이 의외로 내가 뭔가 나서서 하길 두려워한다고 했던 말들이 떠오르네. 완벽하고 성공적이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아주 못하겠다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잘 준비하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또 잘 준비해야 나도 스스로 인정이 되니까...

 

♦ 6번 유형의 아이러니 : 사고중심의 유형. 자신의 내면의 안내와 접촉하는데 어려움겪음. 생각을 많이 하는데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결정해 주는데 대해서도 저항.

 

- 참 어쩌란 말이냐 같은 유형이다. 결정을 못내리니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2때 2학기 반장하는데 정말 내가 우유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반 아이들 말을 다 존중해주다보니 결론을 내기 어려웠고 다수결로 하니 챙기지 못하는 소수가 있었고. 내심 성격땜시 힘들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데 괜히 나 자신만 질책했던 것 같다. 그 놈의 카리스마? 내지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했지.

 

♦ 6번은 자신을 지원하는 힘이 충분하다고 느낄때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수 있으나 but  추진하는 일이 잘 안될때는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제 나 혼자야. 어떻게 해야하지?"

 

- 어려서부터 원했던 것은 격려해주고 자상하고 따스한 아버지였지. 가난해도 서로 도닥여주는 가족. 왜 동화책에 나오는 그런 가난해도 성숙한 선비같은 아버지. 현실이 캄캄했기에 반대를 꿈꾸었던 것이겠지. 어려운 결정, 새로운 책임을 져야 할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지. 어느 시점부터인가 참 혼자라는 생각,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외롭고 무섭기도 했지. 그런 상상을 했지. 허허 벌판, 바람이 불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날리는데 한 손에 칼을 든 내가 곧 맞짱을 뜰 준비를 하고 긴장을 하고 대결을 기다리는 여전사의 모습. 결정한다는 것, 책임진다는 것은 그런 이미지로 내게 있었지. 그냥 주어지는게 아니라, 일생 한 번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었던, 긴장하고 아둥바둥해야 하고 애써야 하는 그런 것,그것이 내 운명인것 처럼 느껴졌지.

 

***** 중간 질문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언제 아는가?  "안전이란 무엇인가?

 

♦ 6번은 알수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으려하고 찾지못하면 이유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삶에 뭔가 견고하고 명확한 것이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론이나 관점이 있으면 그것에 집착한다.

 

- 돌아보면 38살까지는 이런 두려움도 모른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38살 중반부터 뭔가 알수 없는 것, 여기서 보니 두려움에 휩싸여 힘들어했던 것 같다. 사회적 역할이 많아지면서 넘어야 할 산은 많고 우리가 가진 역량은 한계가 있고, 앞으로 뻗어나가야 하는데 전초기지의 역량이 약하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고...조금 더 역량이 있으면 뼈대를 세우거나 밑그림을 그릴 초석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안타까움. 지금 두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에니어그램이 또 하나의 내 집착이 되면 어쩌나 하는 것.

 

♦ 6번 : 강하고 약하며, 두려움이 많고 용기있으며,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없기도 하며, 공격적이면서 수동적이고, 난폭하기도하며 약하기도 하며,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이며, 생각하는 사람들이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며, 사람들과 모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며, 신뢰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며, 협동적이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하고,  너그럽기도 하며 마음이 좁기도 하다.

 

- 미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냐 넌? 종잡을 수 없는 사람.

 

♦ 6번의 가장 큰 문제 ; 자신의 감정적인 불안을 해결하려하지 않고 환경안에서 안전을 만들어 내려는 것.

 ※ 자신의 불안에 직면하는 방법을 배우면 세상은 항상 변하며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는 법'을 알게되는 선물을 얻게 됨

 

-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헉헉 ~~

 

당신은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습니다.

안내자, 스승, 권위자는 없습니다.

당신만이, 당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당신과 세상의 관계만이 있을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크리슈나무르티(KRISHNAMURTI) -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인생 하편은 오롯이 내가 쓰는 거야, 축하해!

딸내미가 친구네 생일잔치 초대에 뒤도 안돌아보고 게다가 하룻밤 자고 오겠다기에 버스타고 데려다 주고 왔다.

늦은 아침을 넘어 점심을 먹인 설거지가 그대로 있다.

벌써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노을빛이 조금씩 산 능선에 파스텔처럼 번져가고 있다.

2시부터 지금까지 맨처음엔 자서전 쓰는 무료강좌를 구글에서 검색하다가 번지고 번져 새해맞이 네이버블로그 단장 좀 하고, 일어공부 좀 한 사람 블로그 검색을 쭉하고, 새글이 올라온 이웃블로그 좀 보고, 안부인사해 주신 분들 들어가서 잘 있다고 안부남기고 그러니

 3시간이 꼴딱이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또 든다.

꾸준하게 서평쓰고 영화평 쓰고 뼈가 있고 씨앗이 있는 삶의 얘기를 쓰고 있는 블로거들의 활약을 보면서 언제 그걸 다 하지 싶다.

직장생활이든 뭐든 자기활동을 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란(그것도 비주얼하게 사진이나 동영상까지 멋지게 첨부해서) 보통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글로도 족하지만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 한 장은 더 많은 얘기를 해준다.

이런 성실하고 창조적이고 살아있는 가슴을 가진 블로거들에게 새해인사를 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풍요로워 집시다. 경제는 어려워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우리의 자유로운 광장에서

 (MB땜시 자유롭지 않구나, 몸조심도 하시면서..)  "

 

인내심을 좀 건드리는 노트북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다운받고 올리고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이거라도 있으니 하면서 감잎차를 혹시 쏟을까 조심..조심...조심

 

아, 좋다. 토요일 오후. 이렇게 잠잠하게 고요하게 음악과 함께 전등하나 켜놓고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렇게 토닥토닥 치고 있으니. 배도 별로 안고프다.

단소소리와 바이올린이 어우러지는 한충은의 '란을 위한 노래'가 고요하게 깔리고...

난 이미 바이올린 활을 켜고 있고 단소를 불고 있다, 바이브레이션인가를 구사하려고 고개와 입술도 떨면서....ㅎㅎㅎ

 

이런 고요와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었나보다.

에니어그램 7번유형의 현란한 날개를 써왔던 유쾌하고 발랄하고 앞에 나서는 삶에서

이제 골방에 처박혀 책과 그 무엇인가에 몰입하면서 세상에 대한 지식과 지헤를

탐독해가는 5번유형의 날개를 펼치는 그런 삶으로 전환하기를

내 안의 내가 원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난 여전히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싶고 악기를 연주하고 싶고

뮤지컬 음악을 들으면 바람이 머리칼을 날리며(난 머리가 짧지만) 가슴터질듯한 몸짓으로 노래하고 있고(상상)

고흐나 그 밖에 이름있는 화가들의 덕지덕지 유화가 발린 그림을 보면 그 물감덕지에서, 터치에서, 형상에서 무언가  예술의 고통스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이건 7번 날개가 여전히 작용하는  것일까?

 

아니.

억눌러운 욕구가 올라오는 것일 게다.

의식이 가둬놨던 예술적 욕망들이 이제는 말을 하겠다고 탈출하려고 하는가 보다.

아~ 나는 누구이지. 뭐가 나지?

 

더구나 이 어려운 생존의 시기에...

 

머리속을, 가슴속을 떠 다니는 것들.

 

느끼는 대로 해보기, 안해봤던 것 해보기, 인터넷 바다에서 일주일간 폐인돼보기,  하모니카, 기타, 바이올린, 크로키, 수채, 유화, 수묵, 살사, 살풀이, 밸리, 바느질, 조각보, 천연염색, 청바지에 그림그리기, 옷 디자인해서 입어보기, 천정에 그림그리기, 모기죽인 자리에 그림그리기, 혼자 여행가기, 인천의 산줄기 다녀보기, 일본여행, 일본놈들 제대로 알기, 일본영화보기, 3년뒤 유럽배낭여행을 위한 영어공부하기, 영화출연하기, 영상교육받기, 수학과 맞짱뜨기(^^) 피아노배우기, 도자기, 소설쓰기, 동화쓰기, 대안학교  

 

쓰다보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은 듯.

확실히 글로 쓰니 실체가 보이는 것 같다.

 

여기서 사업적 필요성 때문에 원했던 것과 진짜 원하는 것을 구별해 봐야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어느 정도가 문제이지. 깊이.)

장기간 준비할 것과 단기간 준비할 것, 일회성으로 해볼수도 있는 것을 나눠보면

 

별로 못할 것도 없는 것 같네

근데 뭐가 문제니. 너?

 

에니어그램 6유형이라고 정리해 가는 나는

무엇이든 직면하기 전의 두려움이 엄청 크다고 한다. 공포수준이라네.

근데 막상 닥치면 침착하고 잘 하는데 말이다.

늘 자신이 없고 자기 자신을 잘 못믿는다고 한다. 실제보다

 

이젠 아쉬워할 시간이 없다.

나 이제 40대 아주머니 됐다.

게다가 올해 난 안식년을 선포했다.

 

creative break

healing

 

올해 내 키워드이다.

 

축하해. 진정 네 자신이 되가는 것.

참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

잘 해 낼 수 있을거야

 

20년 활동을 쉬는 게 아니라

인생 상권을 마감하고

새로운 인생 하권을 시작하는 거다.

인생 상권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공동작업이 결정적이었고 남의 입김이 많았다면 

이제 인생 하권은 오롯이 내가 써가는 주옥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주옥같다는 표현이 나자신도 약간 불편한데 뭐 어떻단 말이냐?

내 인생인데, 누가 대신해주지 못하는 (해주고 싶어도 절대 못하는)

또 주옥같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다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인생인데

 

날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제대로 사랑해보자. 그게 제대로 사는 길이지.

 

갑자기 힘이 나네. 역시 글쓰기는 치유의 힘을 가지는가봐?

이러다 또다시  자기불신과 혐오로 추락하더라도

나는 다시 툴툴 먼지를 털고 깃털을 매만지며 뚜벅뚜벅 걸다가 힘차게 질주해서  

땅을 박차고 날아 오르리라.

 

힘차게 날아올라, 네 안에 힘이 있어, 널 믿고 비상해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