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6일 일요일

수산나 타마로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 나는 깊은 바다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 마법의 원

 

- 어떤 사랑

 

- 대답해 주세요

 

- 천사의 간지럼

 

- 마음가는 대로

 

- 마법의 공원

 

- 아니마문디

 

- 뚱뚱보 미켈레

 

- 러브

 

중독처럼 읽어버린 공지영 '위로 3부작' -1

펼쳐두기..

 

제 2의 사춘기인가?

 

즐거운 나의 집(07)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08.3) - 괜찮다,다 괜찮다(08.8)

 

이른 바 공지영 작가의 위로 3부작이다.

 

오십대를 앞둔 공지영 작가, 사십을 앞둔 나.

 

그와 나는 90년에 만났다. 과 학회지에 광주민주항쟁 10주기 기념대회를 다녀온 기행문 마무리가 '더 이상 아름다운 경험은 없었다.'라고 돼 있다. 그건 공지영 작가의 초기 작품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읽고 빗댄 것이다. 중산층 집안의 딸로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글재주도 있고 예쁜 작가는 386세대가 맞아야 했던 역사적 사명을 겪어 내며 느낀 희망과 절망을 담고 있었던 소설이었다. 한창 절체절명의 역사의식과 신앙을 갖고 있었던 나는 이해는 하지만 운동의 끈을 놓아버린 그가 탐탁지 않았고 두려웠다. 내 안에도 그런 생각이 느낌이 고일까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솔직하고 쉬운 문체와 그의 독특한 감성들이 인상에 남았다.

 

세 번의 이혼과 각기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혼자 사는 여인 공지영. 세상을 올바로 바꾸려고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운동 현장으로 들어가고 다시 나오고 그 이후 겪은 온갖 인생의 풍랑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 그것을 치유하는 내면작업을 담고 있는 치유와 성찰의 글들이다.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된 딸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치유해 가는 소통의 글들이다.

 

말 그대로 위로가 되었고 동병상련의 대목들을 찾아 밑줄을 긋고 같이 아파하며 치유를 갈망했다. 나 또한 어린 딸이 있는 처지라. 자존감은 대물림 된다는 연구를 보고 끔찍하고 잔인하고 무서웠다. 아무리 발랄과 유쾌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대해도 아픔과 사상처가 풍기는 습습한 기운, 칙칙한 어둠은 드러나게 돼 있는 것 같다. 우리 삶의 90%는 무의식이 지배한다고 한다. 방법은 무의식이라는 어둠의 영역을 의식성찰을 통해 밝은 세상으로 드러내 성숙하게 해결해 가는 것이다.

 

작가랑 정서나 감성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아, 나도 글을 통해 내면 성찰 작업을 해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아, 내가 글을 쓰면 비슷하게 돼겠구나. 싫다. 늦었다....'하는 생각도 들어 씨익 웃었다. 그러나 글이 꼭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또한 글쓰는 과정이 내 아픔과 상처를 직면하고 명료하게 하는 과정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작가는 엄청난 독서를 통해  세상을 만나왔고 자신을 성찰해 왔다. 수 많은 책 속의 구절 구절에 담긴 이마를 치고 가슴을 울리는 지혜와 감동의 말씀으로 작가는 성장해왔다. 

 

나또한 책처럼 훌륭한 친구가 없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아니, 몰랐던게 아니라 참아왔던 것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며.....

 

가문 논바닥처럼 물기 한 방울 찾을 수 없이 쩍쩍 갈라진 마음, 바짝 마른 가을 낙엽처럼 만지면 부숴질 것 같은 상태에 공감과 위로, 소통라는 치유의 물기를 대주고 있다. 

 

머리를 맑게 하는 허브향 기름을 이마에서부터 천천히 흘려 내리는 듯 삶의 짐을 내려 놓고 앉아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내다보게 한다.

 

*밑줄 친 것 들

 

<즐거운 나의 집>

 

- 비록 이 세상에 큰일은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올바른 쪽에 서려고 했고 자신엑 부끄럽지 않으려고 했다.

 

-죽는다는 것도 삶의 일부야.  잘 사는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는 거지. 누구나 한 번은 죽으니까....

 

-  누가 누구에게 행복을 주고 말고 할게 없다는 걸 말이지요.

 

- 내가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리고 이 사랑의 이름으로 아빠에게 강요하고 있었고, 그리고 내 마음대로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날 사랑하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며 또 그 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엄마는 아저씨때문에 사랑이란 꼭 아픈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거야. 맙소사, 아저씨는 말한다...... 예전에는 나도 여자들에게 많은 아픔을 준 사람이었다고

 

- 두 사람은 커다랗고 노란 한 덩이의 전구처럼 느껴졌다. 따뜻한 빛과 열을 사방에 뿌리며 스스로도 밝고 따뜻한 그런 빛 말이다.

 

- 혁명, 이라니. 누가 이런 꿈꾸는 듯한 단어를 가르쳐준 일이 있었던가. 스물의 엄마에게 그것은 생을 걸고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낭만의 극한, 정의의 결정체, 혹은 박해받는 진리의 표상이었어. 나는 그를 존경했고 그리고 숭배했다.

 

- 우리에게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터질듯한 자부심이 있었다.

 

-  혁명의 환상이 깨어지던 순간부터 혁명보다 더 지독한 일상이 우리에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 우리는 그제야 연애하는 동안 겪어내야 할  갈등을 비로소 겪게 된 거야.

 

- 엄마가 그를 더 이상 존경하지도 않는 다는 것을.

 

- 우리가 함께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였지만, 증오의 대상이 스스로 항복하고 나자, 그 증오는 이제 미숙한 서로를 향해 겨누어지게 된 것이지.

 

- 그녀가 존경을 받을 이유는 그녀가 그 아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그냥, 놔두었다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모성의 완성은 품었던 자식을 보내주는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실에 엎디어서 엄마는 깨달았지.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은총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사랑한다고 해서 그걸 꼭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란 걸 나는 이제 알았기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해 존재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엄마가 내가 준 사랑의 열쇠는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 말이다.

 

- 그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 나는 내 모든 이런 운명들을 처음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 그러나 나는 엄마였고 엄마로서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서 있어야 했다.

 

 

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8월꿈

08-08

 

혜연, 재형, 복도

나, 어떤 새로운 물질 -- 상품 - 신기하다

두사람이 고민 

가형 나형 - 내가 만난다 - 방법이 있다

 

한가지 (결국 문제의 원인은 같은것) 이유 이기에 해답이 하나임을 안다

 

08-22

 

도서관에 사람들이 꼭찼다. 그날따라 꽉

엄마, 아빠 중학생, 아이들 갑자기 불이 났다는 생각이 들고

천장이 무너진다. 조금씩  그러더니 천장이 떨어져 사람들에게 쏟아지고 덮친다

천장은 콘크리드는 아니고 진흙과 타일로 되어있다

나는 침착하게 대피하라고 얘기한다. 우선 자기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긴급하게 얘기한다.

그러다 안되면 자기 아이들만이라도 데리고 나가라고 빨리 나가라고

꿈속에서 꾼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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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회인듯

사무처장한테 여성회 모임에 나오지 못한 이유를 미안스럽게 어색하게 한다.

어느 박사님이 개발한 약을 먹었다. 예현이랑 같이 갔던 것 같다. 그 옆 술집인지 모임자리에서 딸과 있는데 박사님이 지나가다 나를 아는척한다.

옆에 *가 그럼 그렇지 (발도 넓군)하는 뜻을 지닌듯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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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 딸아이와 나는 남들이 다하는 게임을 이상하게 하는지 못하는지 그렇다

 

읽어 볼 책

가족의 사회학적 이해  / 학지사

 

정자전쟁  / 로빈 베이커 / 까치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 /  마르티렐린 / 마음산책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  / 볼프강 라트  / 이끌리오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즘  / 새물결 / 앤서니 기든스

 

사랑은 지독한 혼란,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울리히 벡/  새물결

 

가족사회학  /  아카넷

 

쾌락의 권리 / 테리굴드 / 영미디어

 

커풀의 재발견 / 필리프부르노 / 에코리브로

 

kbs 다큐멘타리 {사랑}

 

 

08-07-26

고3 담임, 반 발표 내가 못들음

다시 알려달라고 함

왜 안왔냐?

왔다

왜 못들었냐?

젖먹인다고 뭐 그러더니 공부는 안하고 ...

** 오라버니 만남 우연하게

고3담임이 내가 기독교라서 세상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누가 앞에서 공동체놀이 진행

난 뒤에 앉아있음

약간 소외감느낌 내 시대는 지나감을 느끼기도

난 안시킬거야 라고 생각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화상캠 달다

 

여차저차해서 마련한 화상캠

이름은 QuickCam cool 이당

태어나서 처음 용산 전자상가도 가보고

와 그렇게 많은 전자기기들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왜 용산이 그런 전자용품의 중심이 되었을까? 지리적조건? 목적의식적인 조성?

하여튼 이유가 있겠지

 

울 도서관 정보관리를 맡고 있는 후배가 문자로 찍어준 곳으로 갔당

안그랬으면 난 오늘 안으로 집에 못왔을거다. 하도 많아서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담번에 남편데리고 가야지. 세상구경좀 시켜줘야지

 

근데 얘가 참 웃기다

글자를 치면 화면이 없어진다.

뭔가 문제가 있남?

 

하여튼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근데 조심할 것은 집안이 다 보일 수도 있고 혹여 속옷차림이라면 절대 주의 해야 한다.

특히 바지 벗고 속옷차림으로 편안히 있다가

전화와서 무의식적으로 나가면 남들 좋은 구경 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비디오도 찍을 수 있다니

편리하다.

 

워낙 감동을 잘하는 나로서는 대견하다. ^^

간단한 CF 한 편 찍을 수 있지 않을까 ? ㅎㅎ

 

 

 

2008년 10월 17일 금요일

고고70

미리 계획되고 그렇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지 추구하는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체로 그런것을 편안해 하는 나도 사실 갑작스런 이벤트나 약속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다.

 

'할 일 많은데 하면서도 주춤하는 마음도 있지만 숨도 좀 쉬고 문화생활도 좀 하자, 너 스스로는 못가잖아, 못 놀잖아 '하면서 일을 마치고(대충 마무리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갑작스런 지인의 약속, 그것도 영화약속은 스릴과  기대를 준다.

더구나 영화를 거의 다 보는 영화광수준인 사람이 추천하는 영화를 본다는 기대가..

아 그런데 이글아이를 본다고 했는데 어째 200석이 그렇게도 금방 찬단 말인가?

하여튼 못보고 고고 70을 봤당

 

예고편을 봐서는 저 영화 왜 만들었을까 싶었고 그저 신나는 옛 그룹사운드의 얘기겠다 싶었는데 예상보다는 많은 내용을 갖고 있었다. 아니 영화를 본다는 게 그저 좋았는지도 모르징.

 

맑은 눈과 피부를 가진 환한 조승우의 타고난 음악성이 연기처럼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빛났다.

알고보니 출연한 사람들 모두 쟁쟁한 뮤지션이거나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내내 데블스라는 소울브라더스의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나보다. 뮤지컬영화인 맘마미아의 가슴 탁트이는 시원함과 사랑의 애절함과는 조금 다른 뭔가 억눌린 것을 폭발해내는 후련함이 있었다. 아마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기지촌출신의 딴따라였다는  역사적 아픔이 영화내내 깔려있어서 그럴 것이다.

 

치솟는 인기와 일년내내 현충일 하루밖에 못 쉬는 스케줄에 조금씩 지쳐가는 데블스멤버들의 모습들,  그 와중에도 새로운 노래, 변화, 창작을 하고픈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리더 조승우의 모습은 예술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아픔을 담고 있다.

 

여배우 신민아는 잘 어울리까싶었지만 우려가 됐지만  그냥  무난했다. 많이 성숙한것 같다. 영화배우 참 매력있는 직업이다. ㅎㅎ

 

도입부분에 나오는 대한늬우스에나 나올만한 70년대의 영상은 '어디서 저런 것을 찾아냈을까?' 싶게 재미있었다. 고고장의 화재로 멤버를 잃은 대왕코너는 바로 우리 친정집 근처라 더욱 친근했당. 74년 대왕코너 화재 참사. 내가 4살때지. 어른들이 그 얘기를 했던 것 같고 그 자리는 불이 잘 나는 자리라고 해서 목욕탕인가  사우나가 들어와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최호 감독이다. 감독의 생각과 의도를 더듬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잘 모르는 감독이나 찾아봐야지. .

 

하여튼 생각보다 재밌고 시원하고 의미있는 영화였다.

특히 조승우 잠재력이 있는 실력있는 배우다.

꺼내면 꺼낼 수록 새로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

 

근데 왜 나는 그의 삶의 아픔이 더 다가오는 걸까?

또 나를 투사한다. 그래 그냥 투사해라. 투사하는 줄 알아채면 되지 뭐.

 

영화 끝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한  따스한 커피 한 잔.

가을 밤의 여유와 정취마저  마시게 해줬당

 

 

 

2008년 10월 9일 목요일

손석춘님 컬럼 - 최진실 자살바이러스의 진실

그날 아침 그이의 죽음 소식을 듣고 마치 내가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생각은 못하고 그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어린 생명들,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사랑하는 것들을 두고 차마 두고 갔을까, 독한 사람, 쓸쓸한 사람, 외로운 사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느님께 기도도 드렸다.
그런데 잠깐 죽음자체에 묻혀있던 순간 이놈의 정권은 이 글처럼 그들의 깜냥을 드러냈다. 입을 막고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음모를.
자살은 안된다. 그래서 자살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이 사회의 구조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안된다....
 
최진실과 ‘자살 바이러스’의 진실

경쟁 사회 부추기는 집권세력이 바로 '자살 바이러스'

2008.10.06 ㅣ 손석춘/새사연 원장
 
최진실. 고운 얼굴에 늘 슬픔이 묻어났다. 콕 집어 어디라 할 수 없지만 내겐 그렇게 보였다. 서민 대다수가 최진실을 사랑했다. 험한 세상 애면글면 이겨가려는 애처로움에 공감했을 법하다. 그래서가 아닐까.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최진실의 마지막 말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 최진실만이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 대다수의 마지막 마음 아닐까. 그 ‘세상 사람들’ 안에는 나도, 그리고 당신도 들어가 있다. 우리 또한 최진실과 같은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던가. 최진실을 섭섭하게 한 세상사람들 누구인가 집권세력은 그 ‘세상사람들’을 ‘악플’로 한정했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다짐한다. 최진실의 죽음을 ‘기회’삼아 ‘숙원사업’을 해결할 깜냥이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좌파 세력이 익명 뒤에 숨어 인터넷을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어 정부의 국정 운영을 어렵게” 한단다.
과연 이명박 정권답다. 우울증이 없다면 악플이 자살의 원인일 수 없다는 간단한 사실도 이해 못하는가. 우울증은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2000년에 20만 명대였던 연간 우울증 진료자는 2007년에 52만 명을 넘어섰다. 최진실의 자살 뒤 보건복지가족부는 뉴스레터를 보냈다. “유명연예인 자살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평소 우울하거나 마음이 답답한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직접 상담을 받도록 국민들께 당부”했다. 정부만이 아니다. 부자신문까지 ‘자살 바이러스’를 경고한다. 자살 바이러스. 두말할 나위없이 막아야 옳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자살바이러스일까? 이 땅에서 우울증은 결코 52만 명만 앓고 있지 않다. 병원에 오지 않은 우울증을 감안하면 그 수는 얼마나 될까? 이미 400만 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왜 그럴까? 왜 이 땅에 우울증이 퍼져가고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어서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경쟁사회이어서다. 승자독식의 경쟁으로 퍼져가는 우울증 피로감이나 불면, 자책 들이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인의 우울증은 생존 경쟁에 내몰린 사람 가운데 많다. 최진실조차 ‘인기 하락’을 우려했다지 않은가. 우리 대다수는 대한민국에서만 살아왔기에 이 나라가 얼마나 천박한 경쟁 사회인지 모르기 십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살고 있으리라 예단한다. 하지만 아니다. 경쟁보다 연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있다. 비인간적 생존 경쟁에 시달리지 않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 기본권을 배려하는 나라가 있다. 어떤가. 이 땅은. 더 많은 경쟁만 부르대는 정치세력이 청와대와 국회,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권력은 시장으로 ‘완벽’하게 넘어갔다.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렸다. 최진실의 자살 뒤 이명박 정권은 자살 바이러스를 경고했다. 명토박아 진실을 말한다. 최진실 뒤로 자살할 사람 줄 서 있다. 최진실 뒤로도 자살할 사람 줄 서 있다. 자살 바이러스를 부추기는 게 결코 아니다. 자살을 참으로 줄이려면 진실을, 자살 바이러스의 정체를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 객관적 통계를 짚어 보라. 2000년에 6천 명이던 자살자가 2007년 두 배로 늘어 1만3천 명을 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고다. 사실상 자살률 세계 1위가 대한민국인 셈이다. 최진실법이라는 이름으로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고 자살 바이러스를 단속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최진실 자살과 무관하게 이미 하루 35명꼴로 자살한다. 평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땅 어디선가 누군가는 자살한다. 그게 진실이다. 더구나 이 땅의 자살자 대다수는 생계비관형이다. 자살하는 청소년 대다수는 ‘학교 문제’다. 참으로 몸서리칠 일 아닌가. 그럼에도 일터와 학교에서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정치/경제/언론/교육계의 부라퀴들을 보라. 바로 그들이야말로 자살 바이러스가 아닐까. 그들을 단속하라.

2008년 10월 4일 토요일

가을의 유혹

요즘 난 방어기제중 투사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이라고 잠정정리한 상태이니 이놈의 투사가 가장 많으리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데 투사가 작용한 적은 별로 없는 듯.

 

아, 이것이 가을의 유혹이고 뒤를 돌아볼 인생의 시점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증상인가?

차라리 그렇다면 성숙의 과정으로 담담히 아니 즐겁게 받아들이리~~

하지만 이것이 안고 있는 이면의 두려움과 불안이 습기를 가득 먹은 새벽공기처럼 서늘하다. 춥다.

 

예전엔 절대 듣지 못했던, 아니 들을 새도 없고 들어서는 안되는 음악에 자꾸 심취하고 빠져들고 있다. 언제 하루라도 볕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책도 읽고 음악도 한정없이 듣고 싶다. 그러다 해질녘 좋은 사람과 만나 영화도 보고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싶다.(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듯 .. 저지르지 못하는 내가 문제지) 3개월전에 어학공부한다고 산 mp3를 작동해서 다운도 받아서  듣고 있는 진일보하는 생활을 시작했다(남들은 우습겠지만..) 음악을 듣으면서 만나는 세상과 안 그런 세상은 느낌과 빛깔도 다르다. 음악이라는 물속에 잠겨있는 느낌이다. 때로 격정적으로 때론 활력이 넘치게 때론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을듯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음악이 있어서, 음악에 따라서.. 그래서 객관적이기는 어렵기도 할 듯.

 

활자가 주는 깊은 수용과 넓은 상상력의 힘도 있지만 영상이 주는 쾌감 또한 또 다른 맛!

 

영화적 상상을 남모르게 자주 해 온 나는 실상 남들 다 보는 영화도 제대로 못보고 살았다. 특히나 애 낳고는....좋아하기는 하나 엄두를 못내는, 목적의식적이지 않으면 약속이 안 잡히는... 뭐 그런. 여성주의 공부를 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용기가 생기고 나를 사랑해주고 싶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는 뭔가 힘이 생겼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영화도 만들고 싶고 출연도 하고 싶다는 내 욕구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독립영화 감독인 딸내미 친구 엄마를 꼬시고 있다. 근데 노캐런티라고 해도 영 섭외할 생각을 안하네... 아마추어는 안쓴다고 한다.(이 엄마가 동막골에 출연했다고 하니 더 설득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흐) 얼마전 본 맘마미아의 여자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외롭고 활발하고 또 감상적인 그 아주머니가 바로 나였고 그 딸은 바로 내 딸이었다. 한참이나 그 영화를 보고 몇 몇 장면을 잊을 수 가 없고 대사를 기억하고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게 난 카드를 다 보여줬다는 거.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갖는다는거.....

 

요근래에는 작가 공지영에게 몰입되고 있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동트는 새벽>은 불타는 청춘,소위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시기에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때는 어여쁘고 똑똑한 여대생이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가 포기하고 그 상처들을 기록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별로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솔직하고 섬세한 표현과 감성들은 마음에 남았다. 그 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인간에 대한 예의><고등어> 같은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 작가와 나는 함께 성장해 간 것인지 늙어간 것인지 그랬던 것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줬다.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 뒤로 여러 좋은 글들을 발표한 작가는 그 사이 깊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것도 요즘 알게 되었다. <즐거운 나의 집>을 읽으면서 말이다. 유명한 책을 썼던 첫번째 남편과 이혼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나 그 뒤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니 얼마나 많은 아픔이 가슴에 박혀있을까 짐작을 하려고 한다. 마치 내 아픔처럼.... 사실 난 비교해보자면 그이 보다 그렇게 큰 아픔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는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인 것같다. 물론 역사적 시대적 아픔은 정말 큰 깊은 아픔이라 또한 누구의 아픔이 아닐수도 있을 만큼 아픈 상처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려운 순간에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점도 비슷하다. 혀짤린 하나님, 바라보기만 하는 하나님이 싫어서 그 와의 소통의 문을 닫았던 18년. 작은 힘이나마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일에 청춘을 걸었다. 힘겹기도 해지만 즐거웠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그러다 사도바울처럼 한 번 크게 꺾인 것 같다. 바깥 것들로 온통 가득찼던 내 내면이 공허하다고 반기를 들면서 자아의 소리를 들으라고 내면을 돌봐달라고 내 발목을 꺾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무의식은 다시 하느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됐다. 하느님을 다시 사귀고 있다. 그의 본래의 모습을. 율법과 정의와 심판의 하느님이 아닌 조건없는 사랑과 치유와 쉼의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 무서운 아버지가 아닌 내가 늘 바라던 자상한 아버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먼저 만났더라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픈 그의 마음과 계획들을 좀 더 쉽게 넉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책 속에서 작가또한 이런 과정을 밟아갔던 게 아닌가 짐작해보게 되는 구절들이 있다. 몇달이고 책만 읽고 보내고 싶다. 사업이고 뭐고 그냥 작은 절간에 가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책만 보고 싶다.

 

또 하나, 문화유산 답사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천년 고찰이든 명승지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느끼고 싶다. 카페에 가입했지만 아직 참가는 못하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두렵기도 하고 또 익명으로 참가하는 편안함도 느

끼고 싶기도 하고. 내가 리드하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조용히 참가자로 더 깊이 느끼고 싶다.10년전인가 강화도 역사기행을 갔을 때 해설사가 해 준 재미난 이야기들이 역사에 대한 흥미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더 해 주었다. 아 국사를 이렇게 배운다면 아이들이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대하진 않을텐데 싶기도 했다.

 

이것 말고도 하고싶은 몇가지가 있다. 가을은 이렇게 나를 유혹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못할 것도 없는 소망들이다. 뭘 두려워하나? 50살에 다시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거니?

 

가자 가자 가자

하자 하자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