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재우다가 잠들었다.
잠이 깨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속을 휘돌고
결국 이럴바에야 일어나자 하고 일어나
머리맡에 놓여있는 옛일기장 연도별로 정리하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메일과 블로그를 체크하고 있다가
또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100미터 달리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장거리 마라톤. ^^
직장인들이 금묘일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몇 등으로 들어오든 역시나 결승점에 도달하고 나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내 뱉고 살 것 같은 휴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온 신경과 몸의 세포가 움켜진 주먹같은 긴장을 풀고
잠시 멍하니 그냥 있어도 되기 때문이리라.
주말에도 일하고 주중에 하루 쉬는 남편이 토요일, 일요일 쉬는 나보고
좋겠다고 했다. 마음이 쬐금 아팠다.
손가락 끝이 독하디 독한 세탁세제로 벗겨지고 해졌다.
몸무게도 5킬로인가 줄었다. (하지만 아직 적정 체중까지는 약 20킬로는 빼야한다)
남에 집에 맡겨둔 딸을 찾아 서방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데 차 안에서 딸내미는 역시나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남편에게 실핏줄이 타들어가고 간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역시나 대답은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일단 참고 경력 쌓는 셈치고 견뎌보라고 했다.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그래. 맞다. 그래서 견디고 있다. 근데 힘들다. 그래서 하소연했다.
내가 말했다.
현실적인 경제적 문제로 취업은 했지만 이 일은 나랑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내가 잘하고 즐거워하고 할수록 더 잘하고 재밌고
열정이 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그냥 그렇다고. 이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남편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열린 창인 것처럼,
나는 남편에게 마라톤 뛰고 난 내 가뿐 숨을 내뱉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인 것을 아는 이발사처럼 나는
남편이라는 대나무 밭에서의 임금님의 비밀을 고함을 친 것이다.
그냥, 여기까지면 됐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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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조금 천천히
그래, 이 현실에서 수천만번 점멸하는 내 자신을 그대로 느껴보자. 만나보자, 바라보자.
그래, 내 무의식의 패턴도 들여다보자.
그러나, 날 너무 몰아부치지는 말자.
애쓴다고, 긴장하지 말라고, 너무 애닳아 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부딪쳐 보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속삭여주자. 내가 나에게.
이 새벽마다의 시간이 육체적으로는 힘들게 할 지라도
내 영혼의 긴장을 풀어주고
내 정신의 공간에 가습기 같은 생명의 물기를 주는
그런 시간인 것 같다.
아마 이렇게 계속 일어나는 것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내게 차 한 잔 마시는
그런 여유를, 대나무 밭을, 밭은 숨쉬기를 할 수 있게
내 내면의 내가
나를 인도하는 것이리라.
고마워. 나의 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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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든, 말을 하든, 생각이 나든 순간순간 떠오르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 그림그리고 싶다.
춤추고 싶다. 온 몸을, 사지를 새처럼 펼치고 학의 모가지 처럼 늘이는 멈추기도 하고
뛰어오르고 수초처럼 너울거리는 영혼의 춤을 추고 싶다.
피리든, 해금이든, 악기의 선율에 긴 머리카락이 오선지 처럼 펼쳐져
어느새 나도 음표가 되어, 가락이 되어 너울 거리고 싶다.
아, 나는 정말 공상가, 망상가, 이상주의자인가?
이 비난이 내 한 쪽에서 올라온다.
책도 실컷 읽고 싶다.
몰라 몰라, 그래그래, 이게 나야, 전부 나야. 왜, 어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