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0일 화요일

봄과 죽음소식들

4월 들어 지인들의 가족들 소천소식이 끊임없이 있다.

 

산천은 겨울잠을 깨고 싹이 돋는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데

 

한 편에선 죽음이라고 하는 생명정지의 기운이 또한 있다.

 

예전에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착하고 바르고 최선을 다해 살면

 

천국과 지옥문 앞에서 하나님이든 관계자들이 죄값을 측정해서 갈 곳을 정해준다고 믿었고

 

다행히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죽기전에 그를 영접하면 천국으로 간다는

 

좀 불공평한 듯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배려라고 미루어 생각하는

 

아주 얕지만 소박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나님 눈에 거스르지 않게

 

혹시나 생각으로라도 죄를 지을까봐

 

엄청 조심하고 기도하고 단속하고 성경을 보고

 

선하고 자애로운 신앙의 선배들과 목회자들을 존경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이들의 선함, 밝음, 고매함, 우아함 면들만 우선 보았고

 

나 자신 스스로도 내 안의 그런 면들만 바라보고 데리고 살아왔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내가 외면했던 내 안의 갖가지 욕망들, 욕심, 유치하다고 여겨왔던 감정들을 발견하면서

 

그것 또한 나 자신이며 내가 데리고 살아갈 것이고 관리해야 할 것이며 바라봐줘야 할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순백의 신앙인이란 겉만 보아선 알 수 없고

 

순백의 신앙인이란 가능한 것일까 싶다.

 

선과 악, 아름다운과 추함을 모두 다 가진 부족한 인간이, 부족해서 인간인 인간이

 

그저 부단하게 노력해 가며 깨지고 깨달아가면서 성숙해가는  것같다.

 

짧은 직장생활을 통해 만난 성직자들의 다른 면, 신앙인들의 또 다른 면을 통해

 

머리속 관념과 이상주의로 나에게도 제대로 없는 면을 그들에게 너무 많이, 절대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인간적으로 애쓰며 살아갈 뿐. 성찰하며 살아갈 뿐.

 

 

요즘 드는 생각은

 

하느님은 '삶 - 죽음 - 지옥과 천국 중 한가지로 간다'

 

이런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존재의 주기를 갖고 계시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궤변일까나?

 

오히려 이 생에서 여러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고

 

다음 생에서 다시 더 성숙해가고

 

이런 과정이 더욱 성숙한 인간, 성장해 가는 생명체로서의 모습일것 같다.

 

그런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불행한 사고만 아니라면 죽음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천지개벽의  불행만은 아닐 것 같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느닷없는 죽음,

 

살아있는 동안 나누지 못했던, 주지 못했던 사랑, 따스한 말 한마디,

 

못하고 맘에 안든다고 다그치기보다 '너 자체로 소중해'하고  존재를 사랑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더욱 슬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리라.

 

그저 바라기는 어디에선가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면 그 인연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지기를.

 

이왕이면 못했던 것들 아쉬웠던 것들 그때 다시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

 

갑자기 떠오르는 말들.

 

' 내 엄마로 있어줘서 고마워.'

 

' 내 딸로 내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너 때문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단다.'

 

'메마른 삶에 널 만나 내가 누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벚꽃이

 

'파하 ! , 푸하~' 하고 웃는 듯

 

팝콘처럼 터져서 몽글몽글 가지에 달려 있는

 

이 봄.

 

생명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연결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인생이 조금 여유로와지는 느낌이다.  

 

 

 

산과 들,

 

꽃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소풍가시는 모든 분들께

 

작별의 인사를 고개숙여 드립니다.

 

분홍빛 곱디 고운 벚꽃 바람도 함께 보냅니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 * * * * * *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소리의 본질

슈타이너교육예술연구소에서 공부한 내용이다.

자음 'ㄹ'이 갖는 본질이 있단다. 모든 소리, 모든 것에는 본질이 있단다.

소리의 본질을 느껴볼만한 외국시를 보면서

다들 한 두편씩 우리 한글 'ㄹ'의 본질을 담은 동시나 시를 지어보았다.

생명이 움터오르는 봄날, 마찬가지로 활발한 생명력을 가진 어린아이들.

봄과 함께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가 돼 보았다.

 

 

'ㄹ'의 본질 ( r, l의 본질)

 

r : 인간이 주위의 생명을 흡수한다.       /  ㅣ: 우리를 중력에 반하여 끌어올린다.

 

 

 

I am the rider of the wind,

 

The stirrer of the storm;

 

The hurricane I left behind

 

Is yet with lightning warm

 

                                                                     -  Byron

 

봄과 나

 

아지랑이 아른아른

봄볕받아 룰루랄라

일어나서 춤을추네

 

개나리는 노릇노릇

진달래는 불긋불긋

산머리가 울긋불긋

 

봄바람이 살랑살랑

흰나비는 팔랑팔랑

내마음은 울렁울렁

 

놀라워라 봄날아침

아름다운 꽃의 함성

바둑이도 딸랑딸랑

 

손가락이 오물꼬물

발가락이 옴질꼼질

내온몸도 무럭무럭

 

                                                - 괜찮아 ^^ -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요한씨 때문에 또 살아지네요 ~~ ^^

<378호> 기대가 있는 곳에 실망이 있다


“물속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들은 물속에 있는 물체가 빛의 굴절 때문에 커 보이는 줄도 모르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만큼 클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보고는 너무나 작아 놀란다. 그때에는 자기 이외엔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다.”

- 고대 로마 문인, 루키아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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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늘 실망이 함께 합니다. 왜 그럴까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삶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베풀면 상대방도 나에게 잘 해줄 것이라는, 자신의 자식만큼은 아프지 않고 건강할 것이라는, 자신의 배우자는 기대만큼 자신을 잘 보살펴줄 것이라는, 자신이 놀러가는 날은 응당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등등의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이 뒤따랐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상대나 상황이 우리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준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충족되지 않는 기대가 실망과 고통을 준 것일까요?      


어부들이 바다에 나갈 때 아내들은 전송파티를 열지 않습니다. 대신 엄숙한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바랄 뿐입니다. 그들은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파티가 아니라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당연한 마음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파티를 엽니다.


우리의 기대가 클수록 실망과 고통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기대를 내려놓을 수는 없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높은 기대만큼은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휴가 가는 날에 비가 올 수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싫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삶에 큰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불확실성으로 인해 더 최선을 기하게 되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라도 실망에 빠져있기보다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당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 화가 났다면, 그것은 그 사람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기대 때문일까요?
 


- 2010. 4. 14.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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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전 우선 기대하는(아니 기대가 저절로 되는) 편이지요.

정말 기대만큼 실망도 큰 것이지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죠.

하지만 이런 심리적 구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면 실망의 덫에서 괴로워하겠죠.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거나 실망이 와도

'이건 내가 걸어놓은 주문이야' 하며 다른 사람 탓을 할 경우가 점점 줄어들겠죠.

이게 성숙해진 것일 것임.

 

속상하고 화가나고 복잡할때 한번씩 내게 내가 물어봐야겠어요.

 

기대가 컸니?

정말 다른 사람들 때문이니?

내가 그런 것 아닐까나?.......

 

여러 기억이 떠오르며 엉킨 실마리들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입니다.

한 번 해보세요^^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삶의 성장을 위해

살다보면

삶의 변화, 도전과 시도를 위해

잠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하고 좋은 시간들을

줄이거나 비워놔야 할 경우도 있다.

 

격려하고 축복하고 응원해야 할 일이다. 마땅히

그런데 

아직 주지 못한 사랑,

아직 나누지 못한 따스함

아직 까르르 함께 웃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안타까와

가슴 한 켠에서

서걱서걱

마른 모래가 밟히는 것 같고

노오란 봄빛 아래인데도

서늘한 가을 바람이

스산히 분다.

 

마음 한 가운데에 있는

옹달샘을

몸 밖으로 드러낸 것 같다.

이제는 누구의 것이 아닌냥

이제는 나의 것도 아닌냥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되길 바라는 냥

 

충만함의 옹달샘은

슬픈 눈물의 우물이 된 것이려나.

 

톡하고  건드리면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

 

친구가 이사가게 되어서

내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슬픔을 참고 삼키는

아홉살짜리

계집아이처럼

상고머리

볼 빨간 계집아이처럼

 

마음이 그렇다.

 

이적의 '다행이다'를 들으며

사막처럼

메말라가는

내 가슴을 축이고 있다.

 

아홉살 소녀에게 노래를 불러줘야겠다

 

'작 은 토 끼 야 들 어 와 편 히 쉬 어 라'

 

인생길에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계곡도 있고 능선도 있고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고

아주 멀리 떠날 수도 있고

지겹도록 붙어 있을 수도 있고 ....

 

하지만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고

성장하는 삶을 바라고 기원한다면

진짜 사랑하는 것이리라.

 

누군가 선물같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인생에서

참 행복한 기억이자 소중한 진짜 선물이다.

 

 

 

2010년 4월 3일 토요일

펌) 어느 어머니의 말씀 - 가슴으로 읽는 글

 

어느 어머니의 말씀


아들아!

결혼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면
네가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면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하는 맘이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않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네 생일 여태까지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무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겠느냐.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 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희 어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 걸
너희도 좀 이해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마라.
너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마라.
날 나쁜 시어미로 몰지 마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2010년 4월 2일 금요일

딸내미의 영어숙제

3학년이 되자 학교에서 딸내미가 영어수업을 받기시작했다.

cd가 달린 노래, 역할놀이, 단어가 나오는 교재와 역시 cd가 달린 유명한 동화작가의 영어동화책.

 

언젠가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려고 미리 봐뒀던 엄마표 영어지도서들과,

이것을 실제로 먹고 사는 일로 연결하고 싶어서 주 1회씩  한달간인가

집에서 하는 영어공부방 프렌차이즈 연수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반년인가 열기도 했었다.

 

동네가 좀 가난한 편이었고

처음으로 선거에 선배들이 나가면서 홍보파트쪽을 지원하기로 해서 접었다.

그때 만들어 놓은 영어단어들과 교구들이 아직 좀 남아 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상.....)

 

드디어 사랑하는 딸이 어쩔 수 없는 인정해야 하는 현시대의  세계공통어 위상을 가진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좀 설렌다.

내가 생각하고 미흡하나마 준비하기도 했던 영어를 아이와 진짜 함께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수학문제 푸는 것 보다가

가슴에서 욱! 하고 뭔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 물 한잔 마셨던 기억이 난다.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고 공부에 관여한다는 것은 엄청난 득도의 경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식탁에서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보고

( 딸내미에게 엄마도 숙제해야 한다고 했다. 안그러면 본인이

텔레비젼 보는 것과 똑같이 취급을 한다. 그럼 난 화가 난다. 억울해서. 난 게임도 거의 전혀 안하는데...^^)

 

딸은 숙제를 했다. 우선 수학 숙제.

나눗셈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눗셈의 개념을 이해했는 지 알아보기 위한 주관식 문제가 여러개 반복적으로 나왔다.

'몫'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서.

교과서이기에 답안지를 볼 수 없어 내가 대답한 것이 맞았는지, 그 문제가 원하는 정확한 답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나눗셈에 대해 몇가지 예를 들었다. 나는 예를 들어야 이해가 되는 스타일이라....

그랬더니 딸도 예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답으로 적기 시작했다.

그냥 뒀다.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데...답이 원하는 것은 뭔지 모르겠다. 나중에 살짝 어디다 물어봐야지.

 

그 다음은 영어숙제.

노래로 부르는 영어 단어들이다.

팝콘, 소다팝, 피자, 케잌의 단어를 이용해서 '더 달라고 하기'도 하고 '여기 있다고 대답하기'도 하는 내용이다.

 

딸아이는 이 노래를 10가지 버전으로 나름 여러가지 춤을 추며 불렀다.

그 때마다 나는 박수를 쳐야 했다. 엄연한 공연이므로..........

본인이 공연을 시작하겠다고 사회를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난 버전, 슬픈 버전, 도도한 버전, 노예취급을 하는 버전, 수줍은버전....기억은 다 안난다.

약간 비슷비슷하게 표현해서.

 

덩달아 나도 그 노래를 다 외우다시피 됐다.

 

내가 아는 그 어떤 학습방법보다 뛰어난 방법을 우리 딸은 알고 있었다.

시각, 청각, 촉각, 동작, 역할, 감성까지.........ㅎㅎㅎㅎㅎ

 

재밌다.

괜찮은 방법이다. 근데 분량이 많아지면 영어숙제하다가

걍 잠들 것 같다. 힘들어서.

 

나름 연예인이 되겠다는 강한 소망을 가진 딸은

드라마도 예사로 안본다.

모니터링 하면서 본다.

230짜리 신발을 신기 시작한 딸은

서울 이모에게 얻은 230짜리 뾰족 구두를

아침 등교때 아빠차로 들고 나간다.

 

왜냐고?

 

연예인은 뾰족구두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집에 올 때 차에서 운동화를 뾰족구두로 갈아신고

아파트 입구부터 집까지 온다.

훈련하고 있다. 우리딸.

 

내 피가 많이 흐르는 것일까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