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들어 지인들의 가족들 소천소식이 끊임없이 있다.
산천은 겨울잠을 깨고 싹이 돋는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데
한 편에선 죽음이라고 하는 생명정지의 기운이 또한 있다.
예전에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착하고 바르고 최선을 다해 살면
천국과 지옥문 앞에서 하나님이든 관계자들이 죄값을 측정해서 갈 곳을 정해준다고 믿었고
다행히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죽기전에 그를 영접하면 천국으로 간다는
좀 불공평한 듯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배려라고 미루어 생각하는
아주 얕지만 소박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나님 눈에 거스르지 않게
혹시나 생각으로라도 죄를 지을까봐
엄청 조심하고 기도하고 단속하고 성경을 보고
선하고 자애로운 신앙의 선배들과 목회자들을 존경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이들의 선함, 밝음, 고매함, 우아함 면들만 우선 보았고
나 자신 스스로도 내 안의 그런 면들만 바라보고 데리고 살아왔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내가 외면했던 내 안의 갖가지 욕망들, 욕심, 유치하다고 여겨왔던 감정들을 발견하면서
그것 또한 나 자신이며 내가 데리고 살아갈 것이고 관리해야 할 것이며 바라봐줘야 할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순백의 신앙인이란 겉만 보아선 알 수 없고
순백의 신앙인이란 가능한 것일까 싶다.
선과 악, 아름다운과 추함을 모두 다 가진 부족한 인간이, 부족해서 인간인 인간이
그저 부단하게 노력해 가며 깨지고 깨달아가면서 성숙해가는 것같다.
짧은 직장생활을 통해 만난 성직자들의 다른 면, 신앙인들의 또 다른 면을 통해
머리속 관념과 이상주의로 나에게도 제대로 없는 면을 그들에게 너무 많이, 절대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인간적으로 애쓰며 살아갈 뿐. 성찰하며 살아갈 뿐.
요즘 드는 생각은
하느님은 '삶 - 죽음 - 지옥과 천국 중 한가지로 간다'
이런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존재의 주기를 갖고 계시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궤변일까나?
오히려 이 생에서 여러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고
다음 생에서 다시 더 성숙해가고
이런 과정이 더욱 성숙한 인간, 성장해 가는 생명체로서의 모습일것 같다.
그런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불행한 사고만 아니라면 죽음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천지개벽의 불행만은 아닐 것 같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느닷없는 죽음,
살아있는 동안 나누지 못했던, 주지 못했던 사랑, 따스한 말 한마디,
못하고 맘에 안든다고 다그치기보다 '너 자체로 소중해'하고 존재를 사랑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더욱 슬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리라.
그저 바라기는 어디에선가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면 그 인연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지기를.
이왕이면 못했던 것들 아쉬웠던 것들 그때 다시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
갑자기 떠오르는 말들.
' 내 엄마로 있어줘서 고마워.'
' 내 딸로 내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너 때문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단다.'
'메마른 삶에 널 만나 내가 누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벚꽃이
'파하 ! , 푸하~' 하고 웃는 듯
팝콘처럼 터져서 몽글몽글 가지에 달려 있는
이 봄.
생명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연결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인생이 조금 여유로와지는 느낌이다.
산과 들,
꽃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소풍가시는 모든 분들께
작별의 인사를 고개숙여 드립니다.
분홍빛 곱디 고운 벚꽃 바람도 함께 보냅니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