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에 결혼했으니 이 세탁기도 벌써 11년이 되었다.
우리딸보다 1살 더 많다.
자취할때 제일 아쉬운 것이 바로 세탁기였다. 23살부터 자취했으니 7년동안은 손으로 빨고
근처 빨래방을 이용했다.
결혼하면서 번쩍 번쩍 10킬로 짜리 세탁기가 '마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며 내게 왔다.
요즘 들어 빨래를 하면 옷에서 약간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세탁기 돌려놓고 제 때 꺼내서 얼른 널지 않아서 그럴까나 싶어서
부지런을 떨어 보았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세탁기를 열어 먼지를 모아주는 거름망(?)을 보니 농축된 먼지덩어리가 회색빛을 띠며
곰팡이와 먼지가 결합된 안 좋은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먼지를 꺼내고 다 쓴 칫솔로 망을 긁어낸 뒤 향좋은 비누로 빨았다.
칫솔질을 하면서
'11년 결혼생활에서도 이렇게 찌들고 농축된 삶의 찌꺼기들이 있을 텐데....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찌든 오래된 찌꺼기들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남편은 이 거름망을 청소한 적이 있을까 싶었다.
빨래를 돌리기보다 더 힘든 게 널기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름망도 청소해줘야 한다.
갑자기 딸내미 다니는 학교에 집안의 각종 가전제품이나 생활제품 사용법을 배울 것을
건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 학교에는 복사기 사용 자격증 시험(1.2급) 스캐너 사용 자격증 시험 등이 있다.
이 참에 숙제로 '자기네집 세탁기 기종 알아오고 사용법 익히기, 빨래 5번 이상 하기.'
뭐 이런 과제를 내 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청소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단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하든 안하든 스스로의 삶을 알아서 꾸려갔으면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소홀하기 쉬운 게 일상생활, 집안일 부분이다.
발도로프 학교나 대안학교에서는 그래서 요리나 농사, 수공예(뜨게실, 바느질, 옷만들기,가방만들기..)
를 배운다. 목공도 하고(숟가락, 밥그릇, 책꽂이, 고학년때는 악기도 만든단다. 기타 같은 것을! 헉!)
살림과 지식이 잘 어우러지고 과학과 예술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다.
세탁기 거름망 청소를 하면서 든
내 짧은 생각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