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어깨가 아프다.

어깨가 아파서 잠을 못자고 일어났다.

갑자기 두 어깨가 굳은 느낌이다.

어제 회사에서 27명의 여사님(여기서는 그렇게 부른다. 요양보호사분들)과 간담회를 하고 나서

일어나는 증상인 것 같다.

 

갑작스레 바뀐 사회복지서비스 정책과 2월부터 이에 따른 서비스 집행을 해야 하는데

아직 어떤 요양사가 있는 지, 어떤 사람에게 서비스를 나가고 있는 지

연결도 안되고

바뀐 전자결제 시스템과 행정절차가 좀 무섭기까지 하다.

 

그것이 이런 신체화 증상을 나은 것일까?

 

뭘 두려워 할까?

실수없이 하려고?

 

그냥 하자. 하자. 해보자.

 

지방방송을 여전히 하시는 수다장이 아주머니들과 잘 지내야지.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다들 어렵게 사시는 차상위계층의 아주머니들이다.

자식을 위해, 일을 해야하는 분들이다.

연세도 좀 있으시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엄청 두려워하는 나.

혹시 몰라서 뒤통수 맞는 상황이 닥칠까봐 조마조마하는 나.

역시나 평생 이런 나와 만나야 한다.

 

괜찮아, 괜찮아,

상황이 오면 그냥 부딪치면 되고

최대한 잘 파악해서 준비하면 되고.

 

정부의 복지예산이 줄어

장애인, 한부모, 조손가정에 나가던 가사간병을 서비스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정부시책이지만 담당공무원들은 민원이 들어올까봐

우리 회사같은 준공무집행 사회복지 단체에게

이  가슴 아픈 일을 은근히 시키고 있다.

손에 피 안 묻히겠다는 거다.

 

가만 살펴보면 이건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일을

민간에서 그들의 절반의 임금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 창출, 혹은 민간 참여의 이름으로.

 

여하튼 근본줄기를 따져가자면

결국 불판을 갈아야 한다는 결론에 간다.

 

지금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일이 파악이 되면

좀  여유로와지고

좋은 생각도 떠오르겠지.

 

배우는 거다, 인생은 .

 

계속....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자식이 뭐길래.... 친정, 시댁 양가공수

어제 아침에 회의하러 외근 나가 있는데 시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회의 끝나고 전화를 드리니 무슨 회의냐고, 민주노동당 회의냐고 하셔서

대충 얼버무렸다. 왜 직장다닌다는 말이 안나왔을까나? 아직 직장에 맘을 못붙여서 일까?^^

이번에 결혼한 시동생을 시켜 우리에게 쌀을 부치셨는데 시동생이 정확히 나눠서 부쳤을까 싶다고 하셨다. 막내 시동생은 삼형제중에 욕심이 많고 야무져서 아무래도 자기 집 몫을 더 챙길까 걱정스러우셨나?

 

오늘 회사끝나고 방과후 교실에서 딸을 찾아 집앞에 와 보니 네쪽으로 나눠 담은 작은 쌀가마니가 쌓여있고 과일상자도 하나 놓여 있었다.

물론 그 과일상자에는 시어머니가 싸주신 땅고기, 물고기, 김치, 된장, 그리고 하루마다 끓여 먹을 수 있게 담은 국거리들이 있다. 마늘 빻은 비닐봉지도 몇겹 겹쳐있었다.

일년에 몇 번 그렇게 보내신다.

참 고마우신 시어머님. 아침 일찍 식당일을 나가 저녁 열시나 되어서 들어오시는데도

김치랑 반찬을 담아 보내시곤 한다.

 

아들과 손주를 위한 마음일 것이다. 물론 며느리도 생각하실 것이고.

돈 못버는 아들과 살아줘서 고맙게 생각하신다는 멘트를 자주 하신다.

 

어떤 지인이 본인 아버지는 손주를 무척 사랑하는데 엄마는 자기(아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 점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이해가 간다.

아버지, 혹은 생물학적으로는 수컷들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 더 강해서 그럴 것 같다.

게다가  아들손주라면 더 살가울 것 같다.

그런데 엄마들의 경우는 물론 종족 보존의 본능도 강하지만 웬지 손주보다는 자기가 직접 낳은

아들이나 딸을 더 예뻐 할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딸내미가 힘들게 하면

'너 왜 우리 딸 힘들게 하니?'

그러신다. 그럼 그 때 나는 엄마의 어린 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한 편 좋다. 물론 딸을 좀 서운하겠지만. ^^

 

 

뱃속에 담아 금지옥엽 조심하고 기뻐하며 기다리길 10개월,

배아프고 하늘이 다 노래지도록 힘을 들여 낳아 젖물리고 숨결을 불어넣어 기르기를 1년,

옹알거리고 아장거리며 학교 들어가고 신경질부리기도 하지만 소년,소녀가 되고 청년이 되는 모습 십여년.

 

당신 삶의 절반이상을 어린것들,  작은 생명들에게 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른거리는 자식의 모습.

가슴 가운데 복판에 함께 살고 있는 게 자식이지 않을까?

 

어제는 친정엄마가 돈을 부쳐줘서 차를 샀다.

작년에 서방이 가게 할 때 배달가다가 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한 뒤 계속 차 없이 지냈다.

차없이도 그럭저럭 살만하다.

지구도 살리고 건강도 살리고 자전거 도시 만드는 일에 일조한다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폐차한 그 차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10년동안 애지중지하시며 2만킬로미터  타시고 주신 차였다.

 

물론 3녀 1남의 남매 중 가장 지원을 안 받고 살아온 나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서 도움을 받게되니 죄송스럽다.

돈 벌어서 용돈 한 번, 내복 한 벌 제대로 사드린 적도 없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면목이 없다.

 

자식이 뭐길래.....

 

우리 딸을 보면이야 십분 그 마음을 이해하겠지만

정말 고맙다는 마음과 표현도 별로 안하고 사는 것 같다.

올해엔 엄마랑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야겠다.

시댁 어른들도 모시고 온천이라도 가고.

 

건강하시고 사이 좋게 잘 지내시길 빈다.

고맙습니다~~

 

방금 시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쌀이랑 잘 받았냐고.

떡갈비용 고기가  담긴 검은 봉지에

손주딸 예현이 뭐 사먹이라고 5만원 넣었다고 하시며

싸기는 뭐 이것저것 쌌어도  뭐 먹을 것은 없다시며......

 

어떤 때에는 쌀가마니 속에

어떤 때에는 김장김치 비닐 한 귀퉁이에

담겨 있는

예현이 맛있는 거 사주라고 보내시는

아버님 몰래 주시는 쌈지돈.

 

코끝이 찡하다.

 

엄마들은 비슷하다. 친정이나 시댁이나 ^^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삼일이 삼년같다?

수요일부터 출근해서 삼일이 지나고 오늘 토요일 한 숨을 돌리고 있다.

급작스런 취직이라 마음은 아직 공중에 떠 있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도 일이 내게 맞는다, 안맞는다는 생각이 변덕스레 왔다갔다 한다.

 

전임자의 공백으로 두 사람의 직원이 대신 일처리를 하고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해에  정부 시책이 바뀌면서 급작스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다들 엄청 고생했나보다.

업무파악도 채 안된 나는 시간이 갈수록 밀려오는 일이 가늠하고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센터소장의 사람대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거스른다.

면접할때부터 마음이 상했다.

알아보니 원래 그런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네.

 

근데 왜 나는 일하러 나온 것일까?

추천해준 후배의 마음이 고마워서일까? 이력서 쓰고 면접 보는 일에 지쳐서일까?

 

하고 있던 스터디 3개 중 낮에 하는 2개는 정지했고 저녁에 하는 1개는 고민 중이다.

 

20여명의 요양사와 그 분들이 돌보는 90여분의 노인과 장애인, 한부모가정과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관리하고 연결하고 점검하는 일. 기타 회계처리와 방문, 업그레이드를 위한 교육을 해야한다.

사회복지 판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영업도 겸해야 한다며

이용자들이 떨어지면 봉급 다 가져갈 생각은 아니지않냐는 센터장의 말은

일면 이해도 가지만 협박에 가깝게 들리니 왜 그런걸까?

 

센터장이지만 목사님 부인이기도 한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상업적인 언사때문에 그런걸까나?

 

난 아직도 종교인들에 대한 환상이 있나보다.

 

여하튼 배우는 자세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보지만

복잡한 마음은 여전하다.

일단 해보고 지켜보고 파악해가면서

그리고 내 마음도 들어보고

 

옆자리에 있는 나보다 세살 어린 동료도

맘 고생 많이 한듯하다.

 

정말 먹고 사는 일이라는게, 산다는 게, 직장생활한다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인갑다.

 

우야튼

소중한 나! 휘둘리지 말고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