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된 솔기를 드러난
뒤집어 입은 치마
화장실 거울 앞에서 알았다.
간 밤 그나마 12시전에는 재우려고
부산을 떨다가 정신없이 뒤집어 입은 줄도 몰랐던 게지
갑자기 애 낳고 막 키우던 그 시절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회의하러 갔던 일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덧없이 웃는다.
그때도 어이 없어 웃었던 기억이 나서
다시 웃는다.
얼이 빠져있었지. 정신이 온통 없었지
솔직히 까놓고
한 번 그저 한 번 안아보겠다고
한 번 그저 한 번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다고
그 맘 하나로 얻은 아이.
아니 한 번, 그 한 번, 몸에 품어 키우지 못하고
하늘에서 받은 별씨앗을 채 싹틔우지 못하고
다시 하늘로 돌려보낸 차디찬 몸, 생명력 없는 몸
그 몸에 다시 온 고마운 씨앗, 더 없이 고마운 씨앗
미안하기도 한 씨앗, 잘 키워보겠다고
더 보고 싶고 부화하고 싶었던 그 절절한 맘 때문에
서럽기까지 했던 임신과 출산.
알았다.
낳고서야 알았다.
임신은 상상이요
출산은 현실인 것을
얼빠진 년 되기 금방이다.
산기 덜 빠진 핏기 없는 맑은 얼굴로
한 솥 가득 미역국을 먹으며 젖을 대고 있었다.
그저 한 번 안아보고 사랑의 결실이라고 어떤 모습일가 보고 싶은 그 마음에
너를 품고 낳았는데 낳았을 뿐인데
이 거친 세상, 이 오염된 세상, 이 정글같은 세상에
어떻게 너를 기르니, 어떻게 너를 두고 가니,
내가 너무 욕심이 컸구나. 나 하나면 족한데. 나로 끝나면 되는데
내 욕심 때문에
이 여리디 여린 생명
이 따스한 아기 새
이 얇은 뼈와 덜 여문 살을 가진 이 작은 생명을
낳았구나.
세상과 만나게 했구나.
세상에 출품했구나.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랬다.
아직 네가 올 세상이, 네가 살아갈 세상이, 네가 사랑받을, 네가 사랑할 세상이
아닌 것을
아직 어미인 내가 만들어 줘야 할
내 몸을 헐어서라도 이룩해 놓고 가야 할 세상이
내 뼈를 추려서라도 지어놓고 갈 네 쉴 만한 집이 지어지지 않았는데
너무 성급했구나 엄마가.
그저 네가 와 줬다고 기뻐하며
너를 무조건 잘 품어 기르고 낳고 싶어
다시는 몸밖으로 흘러 나가는 핏물로
너를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유난 떤 다는 시선 그야말로 신경쓰지 않고
네게 좋은 공기 주는 기체조를 하며
너를 세상 밖으로 밀어 낼 그 힘을 기르고
너를 가장 편안하게 맞이하고 싶어
어미가 할 수 있는 것 힘쓰는 것 그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 다 하고 싶어 훈련했구나.
그 봄, 여름 햇살을 걷는 것도
멀고 낯선 길 찾아 가는 길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함뿐이었다.
준비도 없이 맞았다가
준비가 없어 그저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인연이 아니었다고 위로하지만
싹틔우지 못하고 떠나 보낸 아이.
외롭게 외롭게 찌꺼기 하나 남지 않게
떠나보낸 아이.
이미 핏물로 흘러 흘러
내 몸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몇 번의 숨 들이킴으로 정신을 잃어 기억은 없지만
내 몸 샅샅이 흔적을 청소했던 그 아이.
다시는 준비없이 맞고 보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마음 썼던
그 마음도 차마 밝은 빛에 드러내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 너는 그래도 내가 와서 생명으로 나와 세상과 만났구나.
고마우이, 내 딸아.
네가 예현이다. 두레. 뱃속이름 두레. 내 딸.
한 순간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 내 딸아.
이 또한 미안하구나. 미안해.
엄마가 살아온 시대적 한계이고
한계에서 자유롭고 싶었지만 여전히 자유롭기가 힘든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엄마의 한계
왜냐하면
세상을 바꾸는 일이 만만치 않기에
엄마 때는 하나만 낳으라고 했단다. 주변 사람들이든 본인이든.
이미 경제적으론 자발적 가난을 신념으로 삼았고
육아에서는 활동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하나가 적당하다고.
엄마도 여기엔 동의했지(머리론^^)
(사실 엄마는 셋은 낳도 싶었어. 좋은 세상 오면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했다. 어느 날인가 전철을 타고 가는데 귀뚫은 예술가 같은 아빠와 사람 좋은 것 같은 엄마, 그리고 아들 셋이 있었어. 세 아이는 아기 곰 세 마리처럼 타고 매달리고 징징거리고 얌전하기도 하고 그러더라.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결혼이란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보기 좋았다. 물론 그 부부의 갈등까지는 내가 생각하지는 않았고. 거기까지야..... 뭐....절대적 사랑의 신봉자였으니까. 내가.... ㅎㅎ)
갑자기 시가 산문이 되고
시적 영감이 회한이 되고
그러네.
짧은 순간,
그 찰나를 잡아내는 언어.
그 찰나에 떠도는 그 낱말들.
그것을 잡아 땅바닥에 앉히는 것이
시인인 거지.
시인은 가수이자
가수는 시인인거야.
아직도 예현이를 앞둔 엄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엄마는...
그래도 얘기할게
시인은 가수이자
가수는 시인이고
누구나 시인이고
누구나 가수야.
다만 평가하지는 말자는 거지.
직업과도 성과와도
그 맘이 있고
그 느낌이 있으면
그리고 애써 만들지 않고
저절로 나오면 되지.
그러면 돼
자연스러운 거.
엄마는 횡설수설
뒤집어 입은 치마에서
여기까지 왔잖아.
육아일지까지 온거니?
여하튼
여기까지.
네 가슴이 말하는 것을 들어.
엄마가 뭐라고 해도
네 가슴이 말하는 것을 들어라. 내 딸아
엄마는 결코 널 대신 살아줄 순 없어.
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야.
네가 행복하면 좋아.
네 말처럼
엄마가 그림 좋아하니까
초등학교 앞에서 그림 그려서
(네 말처럼 정성들인 것은 100원, 그냥 그린 것은 10원 ^^)
아이들에게 팔아도
그게 행복이면 행복인거야.
딸아
날개를 펴고
너를 사랑하고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
배부를 것은 보장할 순 없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그래도 네가 행복하다면
넌 충분히 즐겁게 그 길을 가리라고 생각해.
바람이 돼든 구름이 돼든 새가 되든
온 힘을 다해
빌고 또 빌게너 답게 살아
그게 네가 빛나는 길이라고 생각해
엄마는 그 중간 쯤 살았다고 할 가?
아직도 못버린 희망은
선배는
갖가지 경우의 수든 실험이든
경험이든 그것을 토대로
안되는 경우를 밝히면서
후배들이 되는 경우의 확률을 높이는
이른 바
시행착오를 줄이는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한가지 얘기해 줄게
어떤 것은 바보같이
그 값을 치러야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있어
인생이 그래.
물론
배밀이 안하고 걸을 수 있다는 거지.
배밀이는 시행착오로 보면 될까, 안될까?
수험료 내도(시간이든 돈이든..)
배밀이를 하면 좀 더 튼튼하게 건강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는 거야.
그게 인생이기도 하다.
네가 요즘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지.어리광을 부리는 **이를 보면서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를 대왔던 엄마에게
들이대고 있다는 거 알았어.(사실 몰랐어)
그러나 엄만 고마워. 힘들지만
엄마는 그걸 못했어.
어린 엄마는 그래도 바쁜 엄마. 덜 성숙한 아빠를 이해해야만 했거든.
그래도 엄마
공부하고
엄마안의 소리를 들으며
네게는 최소한으로 상처를 주려고 해.
상처없는 인생이 어디 있게니?
하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엄마가 차마 무너지지 않을 그 경계까지는
엄마가 할게
널 사랑해
언제 이해해 줄가?
이해를 바라는게 넘 욕심일가?
예현아
엄마는 네 엄마이지만
네 인생의 선배이고
다 따를 필요는 없지만
널 엄청 사랑했다는 거.
널 낳아서 더욱 사랑했던 엄마였다는거 (엄청 낮은 단계이지?^^)
하지만
누가인정하든말든
너로서 너를 사랑하는
너로인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네가 가진 그 한가지 뭔가를 발현, 발산하는 너로 커가길
바라는
여성으로
인생의 선배로
살고싶다.
그렇게 엄마는 살고 싶다.
뒤집어 입은 치마가
이렇게 긴 글을 쓸 줄은 몰랐고
아마 그건
곁들인 맥주와
남아있는 집안의 술이겠지만
모처럼
네게
이런 말을
네가 아홉 살 된
구년 묵은 말을 할 수 있어서 엄마는 좋다.
그냥 좋다
내일
아니 이미 오늘
현재 시간 다섯시
나는
이미 괜찮아.
어느 날인가
네가 엄마의
이 부족하고 노골적인 글을 보고
그래도 엄마를
무조건 주는 엄마가 아닌
삶을 고민하고
세상을 사랑했던
엄마로
인간으로
선배로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족하다.
예현아
엄마가 쉬고 있으니까
순대국 같이 거기에 소주 한 잔도 탁 곁들일 것 같은 자극적인 맛의 인생이었다가
요즘은 맑은 장국이 되는 듯해서
적응 이 잘 안된다고 어느 자리에서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이리도 살아보고 저리도 가보는 게 인생인가 싶다.
그 본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
짙은 꽃내음이 지는 5월이구나.
하여 계절은 짙푸른 여름을 향해 가는 구나.
엄마는 여름아이야.
가난한 사람 더 서러운 겨울에 안 태어난 게 다행이다 싶지만
사람들 여름 휴가연휴에 태어난 엄마는
생일상 차려먹기 힘들다며 어린 너에게 투정이다.
난 여름이 좋아
쨍쨍한 여름, 가난한 사람도 모기만 이기면 날 수 있는 여름
짙푸른 해변, 뜨거운 모래사장.
휴가에만 다녀오시고
나머지는 에어컨 나오는
도서관에서 책 보시거나
일터에서 일하시거나
글구 밤에 생맥에 마른안주
출출하시면 골뱅이 소면도 괜찮고
긴 얘기 썼네
요즘 엄마가 읽은 책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땜시 엄마 엄청 기운 얻었나봐
아침에 세 편이나 글썼다.
세 권의 시집 읽고 엄청 사랑의 열정 불태우고 ^^
딸아 딸아 내 딸아
지금 여기, 다행이다, 거리에서, 좋아하는 내 딸
오늘
‘사랑, 사랑, 예현이 우리딸, 내 사랑, 예현이 우리딸 내몸같이 사랑하네~~’
이 노래 좋아하단고 했지?
근데 아들 낳으면 어떻게 불러주냐고 물어봤지?
딸을 아들로 빠르게 부르라고 엄마는 가르쳐 줬지. 고추라고 바꿔도 된다고 팁까지 알려줬지. ㅎㅎ
사랑해 딸아
해가 뜨는 구나.
새벽녘 아버지 안들어와 그냥 저절로 깬 엄마가 본 그 장면으로 시작한 것이
벌써 8쪽을 이루는 구나.
어쩌냐
그렇게 된 것을
엄마의 글발, 술발 인것을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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