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딸내미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솔직히 난 바로 찬성은 못하겠다.
물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 하겠지만
감수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말하는 것일까
차분히 얘기 할 것 같다.
아니, 어쩜 그 전에 다행히 대부분 중요한 핵심사안들을 공유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이라는 것,
결혼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산다는 것에 대해
뭔가 내가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마흔을 넘겨도 혼란스럽다.
마흔 언저리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 언젠가 작가 공지영이 한 출판회에서
이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사랑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준 것이 있는가,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난 사랑조차 가르쳐 줄 자신이 없다.
내가 아직도 사랑에 대해
생각으로 갖는 사랑과
내가 생각한 사랑과
현실과
건강한 사랑에 대해
많이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지상에서 발이 떨어져 있거나 너무 묶여 있거나
이러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딸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진 말기를.
사랑보다 자신을 더욱 온전히 느껴볼 기회는 없다는 것을
상처받아도 사랑은 값진 것이며 사랑을 통해 발전해 간다는 것은
꼭 알려주고 싶다.
모두 자기 안경으로, 자기 필터로 사랑을 느낀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은 비숫하리라.
사랑하고
사랑받고
소통하고
공감하고
그러므로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어린 것들,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까지
사랑으로 인간은 성장해 가는 것.
사십이 넘어도
사랑은 이렇게 푸른 빛으로
내 안에 너울 거린다.
요즘은
체온을 느끼며
촉감이 살아있는
그런 에너지장이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이제는 형이상학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온전히 사는 것이 아니다.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가슴이 얘기하는 대로 살고 싶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나누는 사랑.
존재 자체로 나누는 사랑.
그런 사랑이 아직 있다고 여기는 한
난 결코 늙지 않으리.
팔과 다리가 아니라
이젠 몸통으로 느끼고 싶다.
오늘 춤테라피를 하면서
팔과 다리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일했는데
정작 호흡의 중심인 몸통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땅에 발을 딛고
꼬리뼈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이어진 자신감의 축을 바로 세우고
나는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를 보호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리라.
내 몸을 사랑하지 않은 시간들은
온전히 내 이웃을 사랑한 시간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진정 인류와 함께 하는 길이라고 여기며
찬바람을 맞으며
안개숲을 지나며
나는 오늘도 춤을 추러 갔다 왔다.
나는 몸으로 맞짱을 뜨고 있다.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