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일기

딸내미 학교 근처로 이사와서

학교 학부모 한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낮에 서울 엄마네 가서 반찬과 먹을 거리를 받아왔다.

김서방 주라고 엄마는 반찬그릇에 곱게 담아서 주셨다.

이웃 학부모 부부는 맥주를 사 가지고 왔다.

밥을  차리는 동안 컴퓨터를 고쳐주었다.

컴퓨터가 더위를 먹었는지 어찌되었는 지 남편이 한 번 손을 봤는데도

다시 안된다.

 

정말 고마웠다.

몸체를 뜯어 내장까지 다 살펴봐줬다.

아직 내가 못하는 수준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영어교육을 비롯한 외국어 교육,

음악교육을 비롯한 예술교육에 대해

우리 학교의 상황을 돌아보는 얘기를 나눴다.

 

오후에 그 집 아들네미와 우리 딸과 나랑 공원에서 실컷 자전거를 탔기에

몇잔 안 먹었는데 거나해졌다.

 

그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고

딸내미에게 일기를 쓰자고 했다.

딸이 은근히 싫어하는 눈치였다.

일기장을 학교에 숙제로 냈다고 했다.

내가 다른 공책에 쓰라고 하면서

"이 다음에 네가 어른이 돼서 '아, 내가 3학년때 이런 생각을 했고, 이렇게 놀았구나

나는 이런 면이 있던 아이였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추억의 선물이 바로 일기야."

애기해줬다.

 

그랬더니 엄마는 쓰냐고 했다.

 

그래서 책방에 가서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책꽂이를 뒤지며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의 그림이 그려진 내 일기장을 기어이 찾았다.

8월 2일까지 썼다.

 

같이 일기를 썼다.

 

시도 썼다.

딸내미에게

오늘 자전거 탔던 기분이나

엄마가 탔던 모습을 시로 써보라고 했다.

 

야호~하고 두 팔을 하늘로 벌리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엄마

 

천하무적

우리엄마

하지만

바람, 공기

앞에선

한업시(없이)

약해짐니다

나도 나만의 자유를

느끼고 싶습니다.

 

라고 썼다.

 

잘썼다.

역시 우리딸이라고 칭찬해줬다.

그림도 잘그렸는뎅..ㅎㅎㅎㅎ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고

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오늘 개학날 학교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자전거를 타니 정말 행복하다.

산 밑이라 kt 밖에 들어오지 않아 인터넷  신청을 했더니

자전거를 선물로 줬다.

 

내 자전거가 되어서

저녁에 많이 타고 있다.

 

------------------------------------------------

2010. 8. 24

 

딸하고 일기를 함께 쓴다.
딸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도 그렸다.

 

며칠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

내가 가질 수 있는 지

가져도 되는지 또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묻고 있다, 답을 구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지못하고

이렇게 주저하고 의심하고 있다.

 

난 이사와서

예현이에게

밥을 해주고

예현이를 도서관에 보내고

예현이가 집에 오는 것을 맞이하고

예현이와 자전거를 탔다.

 

바람이 우리 머리칼을 빗겨주고

바람이 젖은 우리 몸을 말려주고

바람이 싱싱한 산소를 우리 폐로 불어 넣어 주고

나무가 녹색향기로 온 몸을 감싸준다.

 

우린 나무가 되었다

우린 호수가 되었다.

 

난 내가 꿈꾸던, 내가 바라던,

엄마가 된 것 같다.

엄마.

 

----------------------------

 

아테나에서

아프로티데에서

데미테르가 된 것일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 행복.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겠지.

다시 전사로  나서야 하겠지.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지난주 화요일 비를 맞으며 이사를 했다.

딸내미는 4박5일 지리산으로 캠프를 가고

손가락 수술을 받고 아직도 붕대를 감고 다니는 서방이 하루 휴가를 내서

드디어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왔던 이 곳,

결혼생활 11년을 보낸 인천의 북쪽을 떠나

딸내미 학교가 있는 남동쪽으로 옮겼다.

 

불타는 청춘의 사연과 활동이 새록새록 영사기 필름 돌아가듯

머리속을 스친다.

지역 거점, 주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낮고 깊게 지역주민속으로 스미고자 했던 시간들.

일점돌파.

한 곳에 역량을 총집중해서 모델을 만들고 모범으로 승화해서 다른 곳으로 전파하는

그 한 점. 그 한 곳.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공부방, 도서관, 복지시설, 단체들이 많이 형성되고

이제 드디어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정치인들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많은 것들이 움직이는 도심 한 복판에서 살다가

이젠 새소리가 나고 텃밭이 보이고 담장이 낮은 주택들이 있는

조용한 이 곳으로 이사를 오니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오직 딸내미가 학교를 걸어서 가게 되었다는 점.

인천대공원이 바로 옆이라

좁은 집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큰 정원을 갖게 되었다는 점.

청소년수련관이 있어

값싸게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빈약하지만 도서관도 드나들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이사 오면서 얻게 된 행복들이다.

 

새벽에 공원에 나가보니

노부부가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기도 했다.

보기 좋았다.

 

이사 오면서 남편은 떼어 놓고 오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걍 뒀다. ㅎㅎ

남편도 직장이 가까와져서 심리적 육체적 부담도 조금 준 것 같고.

남편에게 있다는 삼재의 기운이 이사로 좀 더 잘 풀려가길 내심 바라고 있다.

 

딸내미 3학년, 4학년,5학년,6학년.

3-4년은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살던 곳보다 작은 집으로 왔고

오래된 가구들을 버리고 와서 알맹이만 있는 셈이라

버리고 정리할 것들이 많다.

언제 이렇게 사들였는지 모르겠는데

버리려니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버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

그닥 많이 새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해본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 갈 것이며

어떤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를.

 

 

 

 

 

 

 

 

 

 

 

 

 

 

 

 

 

2010년 7월 28일 수요일

딸내미 가슴에 새싹이~~~~ *^^*

자꾸 웃음이 난다.

뭔지 모르게 내 가슴이 아련해지고 설레인다.

기쁘고 행복하다.

 

딸내미가 자꾸 젖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만져보니

아무래도 젖가슴이 나오려는 젖몸살인 것 같다.

 

아~~~~  우리딸이 드디어 여성으로 자라는 첫 발을 떼는 셈이다.

수중분만할 때 오랜 진통끝에 내 자궁에서 물컹하고 나와

그 새카만 머리카락이 물에 나풀나풀 거린채  수영하듯  둥둥 떠 있던 딸.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딸은 한 여성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어린아이에서 소녀에서 숙녀로...

 

가슴이 나오는 것에 대해 내 준비가 안되어서

잠시 당황스럽고 몰래 검색이나 책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맞이 할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는데

가슴이 먼저이지 하고 다시 느꼈다.

 

어린시절

그리고 보니 나는 4학년 때 가슴이 나왔던 것 같다.

5,6학년때는 어깨에 매는 가방이 부담스러웠다.

반에서 네 다섯번째로 컸던 나는

가방을 매면 유난히 더 봉긋나오는 가슴이 창피했다.

골목에 앉아 있는 동네 할아버지, 아저씨들의 시선을

내가 먼저 신경썼고

그럴때면 가방끈을 손으로 잡아 가슴이 헐렁해져 보이게 했다.

6학년때 짖궃은 남자아이들이  하나 둘 브래지어를 해가는 여자아이들을

뒤에서 브래지어를 잡아 당기는 장난을 칠 때가 종종 있었다.

근데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감히 못 건든다.ㅎㅎ

 

가슴이 나오는 것,

수밀도 같은 가슴이라는 시처럼

정말 복숭아처럼 어여쁜 가슴,

아이를 살리고 키우는 소중한 젖을 만드는 가슴

이 귀한 가슴에 대해

여성들은 우선 수치감, 불편함, 숨기고 싶은 것...같은

안좋은 감정, 부정적인 정서를 먼저 갖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들어서는 풍만한 가슴을 갖고 싶은 욕망을

남모르게 지니게도 된다 ㅎㅎㅎ : 이것은 또한 누구를 위한 것이냐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제는 사회도 조금 달라져서

생리나 가슴발육에 대해

환영해주고 기뻐해주는 분위기가 됐으리라 본다.

물론 살펴보아야겠지만

 

아침에 방학으로 늦잠을 자는 딸아이를 안아주며

"으음... 엄마는 정말 기뻐. 울딸한테 예쁜 가슴이 생기는게~~ 더 더 잘 지켜줘야겠네.

점점 아가씨가 되니까는."

 

 

2010년 7월 25일 일요일

에니어그램 첫 강의

작년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낯설고 물설은 강남으로 가서

에니어그램지도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강사자격을 통과했다.

 

어제 전체강의는 아니지만

노당자인성센터 은숙언니랑 같이

딸내미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기본과정 1단계 작업을 했다.

 

은숙언니가 학회 세미나때문에 3시에 나가야 해서

준비해 간 강의 내용외에 다른 내용 한가지를 내가 해야했다.

 

물론 잠깐 머리가 하얘졌다.

하지만 어쩌나 해야지.

그리고 담담히 진행했다.

 

진행하면서도 순간순간  내 성격유형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설문지형식이나 체크리스트로 단순하게 성격유형을 알고 있던 학부모와 교사들은

좀 더 깊은 내용과 설명으로 자기 유형에 접근해 갔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고

깊이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름 첫 강의를 무난하게 마쳤다.

강의후 난 다시 엄마들과 함께 한 학부모로 돌아와

뒷풀이를 했다.^^

 

서방이 데리러 왔다.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시간내서  강의 평가도 들어보면서

재검토를 해보지 뭐.

 

담주엔 재미교포 청소년들과 춤테라피를 한다.

언어의 장벽을 넘고 잘 할수 있을까 싶지만

비언어적 영역에서의 소통, 음악, 몸짓, 눈빛의 교감의 힘이

더 크리라 믿는다. 아자!

 

2007년 우연하게 만난 춤테라피.

폭발할 것 같은 감정과 심연에 고개를 쳐박았던 슬픔과 우울을

이 춤테라피를 통해 발산하고 쓰다듬어주었다.

 

그동안 이끌이어 해왔던 것들이

구슬꿰어지듯 뭔가 하나로 통합돼 가길 바라고 있다.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월드컵...

오늘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봤다.

요즈 내가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친구인 원장이 낮에 긴급회의를 하지 않았으면

사실 돌 맞을 일이지만 난 경기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리라.

원장의 말인 즉슨, 아이들 정신이 몽땅 축구에 가 있으니 아예 1시간만 공부하고

같이 시청하는 걸로 하자. 다른 학원처럼 아예 수업을 안하면 길거리에서 배회할 것이므로

학원에 묶어두자, 그리고 시청전에 막무가내식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겠다 였다.

뭐, 원장님 말씀 틀린 것 없어서 그닥 반대하지 않았다.

 

요즘 많이 더워 더욱 비지땀을 흘리는 서방이 일때문에 힘들다며 경기 앞두고 맥주랑 안주를 사오라고 해서  탈레탈레 슈퍼에 가서 맥주랑 과자를 좀 사서 왔다.

남편은 정말 진지하게 경기를 관전했다.

 

사실 난 별 관심은 크게 없고 질수도 있고 이길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골이 많이 들어가면서 그래도 한 골이라도 넣었으면 싶었다. 한가닥 기가 죽지 않게

청룡씨가 한 골을 넣어줘서  참 기뻤다. 정말 기뻤다. 그리고 자살골인 박주영 선수가 계속 염려되었다.

잘 모르지만 아르헨티나가 축구를 꽤나 잘하는 팀이니 동점이나 약간 차이로 져도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리이스전에서 너무 잘해서 기대를 했다고 한다.

나는 너무 큰 기대는 선수들 죽이는 거다. 하고 말했다.

 

학생시절 선배들에게 댓거리를 받으며 전두환과 독재권력의 3s정책에 대해 배웠다.(스크린,스포츠,섹스 일거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고 영화는 마음과는 달리 볼 수가 없었고 섹스는 꿈도 못꾸는(아마 이건 기독교적 사관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크게 작용) 사람으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시점부터 영화를 안보면 삶을 이해 못하는 문화문외인이 되었고 스포츠는 대중화되어 흘러갔고 섹스는 뭐 별 영향없이 그냥 섹시하다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게 들리게 되었다. 나름 매력있다로...^^

 

여하튼 당장 눈 앞에서 보면 몰라도 일일이 챙겨서 보게 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스포츠.

특히 월드컵은 효순이 미선이의 미군탱크 압사사건과 겹치면서 약간의 거부감도 있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 최전선에 있던 남편이 사실 스포츠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물어보니 화를 내며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내가 너무 우리 남편을 선배,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게 아직 분명하다.

이 꿈은, 허상은 언제나 깨지려나.

 

나는 오늘까지 이번 월드컵에서 제일 남는것은 '정대세의 눈물'이다

3년전 내가 일하던 어린이도서관 사업에서 민족교류사업으로 '재일민족학교 책보내기 사업'차

일본에 갔었다. 거기엔 소위 말하는 조총련계 조선학교들이 있었다. 국적이 북녘인 재일동포 아이들이 다니는 초, 중, 고등학교 였다. 영화 '우리학교'로 알려진 재일동포의 자치학교 이야기이다.

 

이 민족학교는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있었다. 같은 외국인 학교인 프랑스,미국 등의 학교에는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유독 북녘에 적을 둔 조선학교에는 지원금을 거의 주지 않고 미용학원, 기술학원 취급을 한다. 그래서 여기 졸업생들은 정규 학력이 인정이 안된다.

일본대학에 들어가려면 검정고시 같은 것을 다시 봐야한다.

 

일제강점하에 강제징요되어 끌려간 동포들이 제나라 말을 잊지 말자며 세운 학교인데

수 차례 일본정부의 해산 명령에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지만 김치를 팔고 장사한 재산 전부를 기증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세운 학교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통학버스 이름이 어머니 차, 아버지 차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적 자부심 하나로 지켜온 학교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북쪽도 남쪽도, 게다가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으로만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은

짐작할 수 없을만큼 큰것이리.

 

내가 시범 수업을 했던 학교도 한 학년에 많게는 8, 적게는 5명 정도 였다. 그나마 유치원이 많았다.

나는 유치원을 맡아  우리말 수업을 했는데 유치원생들은 일본말을 한다. 초등학교 이상 학생들도 집에선 일본말을 더 많이 한다.

 

보이는 차별고 보이지 않는 차별속에서 재일조선동포의 아이들은 자란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몰아치기도 하고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테러로도

온다. 그 속에서 자란다.

 

민족학교가 북한에 기반한 것은 전후 그나마 북쪽이 잘 살았을 시기 (60,70년대정도) 엄청난 교육비 지원을 재일 조선학교에 한 것이다. 가보니 조국의 돌이라면서 지구과학시간에 해당할 수업에 쓰라고 북녘의 돌들을 종류별로 보냈고 식물표본도 보내고 책과 교육자료를 보냈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북쪽에서 그들을 챙겼던 것이다. 역사의 피해자이자 민족의 구성원이고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기에. 남쪽은 반공때문인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북쪽과 남쪽이 모두 조선이라는 조국이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조국.

 

정대세의 눈물엔 그 조국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재일동포들의 민족학교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아이들을 한 판 이길 수 있는것은

바로 축구인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족학교의 축구 열풍은 실로 대단하다.

 

아마 정대세도 그 속에서 자란 것 같다. 아버지는 한국적, 어머니는 북한적, 본인은.....

 

이 복잡한 자기정체성과 월드컵.

 

그 안에 켜켜이 담겨있는 사연과 설움과 눈물.

 

그것이 그날 그의 눈물이리라.

 

역사의 아픔은 오늘 2010년 푸른 청춘의 날랜 청년의 눈에서 정말 뜨거운, 멈출수 없는 눈물을

뿜어내게 하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 아니 이 지구상에 억압과, 강점과, 살육과 전쟁의 아픔을 드리우지 않았으면 싶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야만의 굴레. 아무리 고고한 사람도 그저 한 동물로 사라지는 무악한 인간의 욕망.

 

나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정대세의 눈물을 봤고 그래서 나도 그냥 울었다.

 

3년전 갔던 그 학교 아이들, 그리고 일본과의 축구로 들떠 있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속에서 자라났을 정대세를 생각하고 그저 울음이 계속 났다. 그것도 학원에서....^^

 

잘했다.

모두 잘했다.

 

그나마 이 축구라는 것이 권투같이 누굴 모질게 패서(때로는 죽도록) 이기는 야만의 경기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경기는 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싫어할 사람도 많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다.

 

축구처럼 팀플레이와 운, 응원, 같이 통합적인 전랴과 전술이 어우러진 인간활동의 총제적인 움직임이 있거나 개인의 극도의 훈련을 통해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던가, 여하튼 그런게 스포츠였으면 싶다.

 

승패를 떠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을 줄 아는 우리 관람자들의 자세도 정말 중요하다.

 

그냥 맥주 두 잔에 드는 생각이당.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예현이와 그림그리고 글쓰고 놀기

지난주 토요일 예현이와 슈타이너 교육예술연구소에서 홈스쿨링하는 가족과 만나
활동을 했다. 동시와 그림을 그렸다. 

 

예현이가 그린 강아지새끼 낳는 장면과 쓴 동시

 

강아지의 탄생

 

개가 새끼를 낳았다.

비닐처럼 생긴걸 감고

나왔다. 귀엽고 좀

징그럽다. 비닐을 뚫고

엄마 젖을 쪽쪽

 

정말 귀엽다.

 

 

사자개라고 별명 붙여준 중국개 치아우.

 

사자개 치아우

 

도원역에서 내리면

스프레이 휘황찬란한 고물상 벽화를 만나요.

그 담장을 지나면

황토빛 자투리 공원에 남도에서나 만날법한

유채꽃이 웃고 있지요.

 

파란 대문, 분홍 창문, 파스텔빛 예쁜 쪽방들을 거쳐

아예 담조차 없는 철사그물 얼기설기 엮어 세운

한겨울 찬바람 정통으로 맞을 것같은  아주 시원한 집을 만나요.

 

그 집을 돌면 살색 벽돌 큰교회와 학교가 보이고

왼쪽엔 손바닥만한 공원이 있지요.

나무로 만든 아담한 정자에서

잠시 쉬고 가고파 앉았지요.

 

뭔 이유가 있어 공원바닥에 깔았겠지만

우레탄 깔판이 벌건 해에 잔뜩 달궈져

매캐한 냄새를  쾍쾍 내뿜고 있어요.

에잉, 그냥 가자며 무릎을 세워 길을 나서지요.

 

공원을 조금 벗어나면

바로 그 개를 만나지요

사자개, 치아우!

 

맨처음 그 개를 만났을 때

도대체 저 동물이  진짜 개가 맞는지,

곰인가, 사자인가, 아님 극고도 비만견인가?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 맞아요.

 

다섯살짜리 단발머리 꼬마 아이가

자기보다 두어배 큰 그 개에게

뭐라고 야단을 칩니다.

다시 귀쫑긋이 들어보니

그 개이름이었어요.

 

"꼬마야, 얘 이름 뭐야?"

"치아우"

"응?"

"치아우"

"아하, 치아우. 어디나라 개야?"

"중국"

"응........ 치아우. 진짜 중국개이름이다. 난 사자인가 곰인가 했다."

 

중국개라 만두를 많이 먹어 그리 큰 걸까요?

치아우는 혓바닥이 까매요. 아주 까매요.

한참 쳐다보고 쓰다듬다가

다시 길을 나섰지요.

가다가 돌아보니 치아우가 묶여 있는 그 집 간판이 보이네요.

'운동화 세탁소'

 

갑자기 슬픔과 걱정이

먹물처럼 가슴에 번져왔어요.

혹시 집에 벌레있는지 정기검사 오는

아주머니가 짜놓고 간

싱크대 밑 치약같은 바퀴벌레약을

자주 핥아먹은

죽은 우리 토돌이.

 

.

.

.

.

.

 

 

혹시,

치아우

독한 빨래세제

너무 많이 핥아먹어서

혀가 그렇게

까만건 아닐까? 

2010년 5월 4일 화요일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토요일 오후 시아버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뭔 마음이 생겨서인지 퇴근할 서방을 모시러 회사까지 갔다.

고기가 먹고 싶다더니 집에 남은 삼겹살을 확인하고

오징어를 넣어서 오삼불고기를 해먹자고 딸내미를 꼬셨다.

오징어는 육류를 안먹는 나를 위한 배려차원이었으리라 짐작하지만

같이 넣고 요리하는데 별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요부분은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은 요리를 하겠으니 두 딸내미(서방은 딸과 나를 이렇게 부른다)가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오란다.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아버지처럼 얘기하니 우리도 딸처럼 그냥 순순히 심부름을 갔다.

물통 5개를 가지고 거의 어둑어둑할 무렵에는 처음으로 뒷산 약수터를 갔다.

속으로 뭔 이런 서방이 다 있나, 어두운데 여자 둘을, 그것도 산으로 내보내는 무심한 아버지, 남편..

하면서도 저녁무렵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딸과 다정하게 약수터에 도착했다.

다행히 순진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 둘이 있어서 좀 안심했지만

그들도 청년인지라 한편으론 불안했다.

 

왜이리 서두가 길까나 내 글은....ㅎㅎ

 

돌아오는 길에

딸내미가 내게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여신중에 아테나같다고 했다.

속으로 ' 나 그리스로마신화 잘 모르는데....' 하면서도 아는 척했다 .

"아테네가 어떤 여신이더라?" 하며 알고 있지만 다시 묻는 척 질문을 던졌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라나 뭐라나...

이어서 딸내미 학교 친구들 엄마들을 얘기하며 각각 어떤 여신 닮았냐고 물었다.

딸은 엄마들과 여신들을 조합해주면서 이유를 설명해줬다.

와우, 딸의 이 문학적 감성.

내심 기뻤다.

물론 만화로 섭렵한 그리스로마신화이지만

신화를 읽고 사람의 유형을 느끼고 분류하고 실제 사람들과 짝지을 수 있다니...

 

얼마전 책모임 함께 하는 엄마가 내게

자기는 아르테미스 유형이고 나는 아프로디테 유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그 책은 읽지 못했는데.

 

딸이 느끼는 나 (아테나)와

주변 엄마들이 느끼는 나 (아프로디테)는

어떤 차이일까나?

 

그리스로마 신화는(만화로 일단 봐야지) 나중에 보고

일단 궁금함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근데 요 내용으론 여신의 특징이 잘 안온다.

아무래도 책을 읽어봐야지.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여신일까요? ~~~~  

 

-----------------------------------------------------------------------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주요신들

 

<여신들>

 

▶ 가이아 - 카오스에서 나온 최초의 신.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와 결혼해 티탄 족을 낳았다.


▶ 레아(로마/오프스) -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난 딸. 크로노스와 결혼해 올림포스 신족 6남매, 즉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를 낳았다.


▶ 데메테르(로마/케레스) - 대지의 여신이자 곡식의 신. 제우스와의 사이에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 헤라(로마/유노, 주노) - 가정과 결혼의 신. 제우스의 아내

 

▶ 헤스티아(로마/베스타) - 화로와 신전의 신.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원한 처녀 신. 처음엔 12주신에 들었으나 나중에 디오니소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 아테나(로마/미네르바) - 지혜와 공예·전쟁의 신. 어머니 메티스가 제우스에게 잡아먹히는 바람에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 아르테미스(로마/디아나) - 사냥과 달의 신. 제우스와 여신 레토 사이에서 아폴론과 쌍둥이 남매로 태어났다.


▶ 아프로디테(로마/베누스) - 사랑과 미의 여신.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제우스와 바다의 정령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

 

<남신들>

 

▶ 우라노스 - 최초의 하늘 신.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

 

▶ 크로노스(로마/사트르누스) - 티탄 신족의 막내로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신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레아와 결혼하여 올림포스 신족을 낳았다.


▶ 제우스(로마/유피테르) - 올림포스의 최고신. 번개와 천둥의 신. 여러 여신·여성들과 관계를 맺어 많은 자식을 두었다.


▶ 포세이돈(로마/넵투누스) - 바다의 신. 제우스의 형제. 여신 암피트리테와 결혼하였다.


▶ 하데스(로마/플루토) - 저승의 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다.


▶ 아폴론(아폴로, 로마/메르쿠리우스) - 태양의 신이자 입법자 · 궁수 · 예술 ․ 예언의 신. 아르테미스의 동생.


▶ 헤르메스(로마/메르쿠리우스, 머큐리) - 신들의 전령이자 여행자 · 무역 · 상업 · 도둑 ․ 통신의 신. 제우스와 여신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 아레스(로마/마르스) - 전쟁의 신.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이라고도 한다.


▶ 헤파이스토스(로마/불카누스) - 대장간의 신. 헤라가 아비 없이 낳은 아들로서 절름발이다. 아프로디테의 남편


▶ 디오니소스(로마/바쿠스) - 술과 황홀경의 신.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레사이에서 태어났다. 헤스티아 대신 나중에 12주신에 들었다.

 

※ 올림포스 12신은 헤스티아,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아테나,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등을 가리키는데 헤스티아는 기원전 5세기경 디오니소스가 올림포스 신으로 추앙되면서 12신에서 탈락되었다. 저승의 신 하데스(플루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지하 세계에 살았으므로 올림포스 12신에서 제외된다. 제우스Zeus라는 이름은 ‘상공(上空)의 빛’을 뜻하는 인도유럽어 ‘디오스’에서 온 것이고, 주피터Jupiter란 이름도 ‘디우스’와 아버지를 뜻하는 ‘파테르pater’를 결합한 것으로서 결국 아버지 제우스라는 뜻이다. 헤라Hera는 영웅을 뜻하는 ‘히어로Hero’의 여성 형이다. 서양에서 6월은 결혼의 계절이고 6월을 준Jun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혼의 여신 주노Juno의 이름을 딴 것이다.